디온 샌더스
1. 소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과 미식축구를 오가면서 투잡을 뛴 인물[3][4]
2.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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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레즈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포함해 4개팀에서 활약한 톱타자 겸 중견수이며, 발이 대단히 빨랐기 때문에 별명은 '''Neon''' Deion. 평소라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3루수 앞 땅볼을 친 상황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 3루수는 공을 받자마자 죽을 힘을 다 해 1루로 던졌는데 이미 1루를 밟은 상황을 연출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 그정도로 발이 대단히 빠른 선수이다. 심지어 1992년에는 3루타를 2루타보다 많이 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박찬호 선발등판 경기가 인기를 끌 무렵에는 신시내티 레즈에 있었는데 이런 장면들은 국내 야구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통산 9시즌 641경기에 나와 타율.263, 39홈런, 168타점, 출루율 .319, 장타율.392에 통산 558안타 186도루를 기록했다. 커리어 통산 3루타가 43개로 통산 성적만 보면 메이저리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빠른 똑딱이 외야수의 성적이다.
3. N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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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계에서 디온 샌더스는 역사상 최고의 코너백으로 꼽히는 전설적인 선수이다. 별명은 Prime Time.[5]
대학 풋볼 시절 플로리다 스테이트 세미놀스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명문의 반열로 이끌었을뿐만 아니라 이미 NFL에서도 탑급 활약을 펼칠 재능으로 인정받았었다. 이후 애틀랜타 팰컨스에서 1989년 전체 5순위로 지명받은 샌더스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워싱턴 레드스킨스등 4개팀에서 11년간 뛰면서 8번의 프로보울, 그해 최고의 선수인 AP 퍼스트팀 동시선정을 받았고, 2번의 슈퍼볼 우승, 1994년 AP DPOY(최우수 수비선수) 수상등의 경력을 자랑한다. NFL.com이 공식 선정한 All time best player 순위에서 34위에 선정되었다.[6]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후 셧다운 코너백이라는 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수비수로서 토털 패키지의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인데 최고의 장기는 상대 와이드 리시버 한 명을 작정하고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면서 막아내기. 그 수비가 얼마나 압도적이냐면 상대해본 쿼터백들이 아예 샌더스가 막고 있는 선수에겐 던질 엄두도 못낼 정도이며 컨디션이 좋으면 좋을수록 샌더스가 마크하는 WR는 샌더스와 함께 그날 방송에서 전혀 잡히지 않는다. 아예 그쪽으로 공이 안 가니까. 2016년 현재 최고의 코너백으로 꼽히는 리차드 셔먼은 필드의 왼쪽만 커버하기 때문에 경기 중 그쪽으로 공이 가는 적이 없지만 샌더스는 상대팀의 #1 리시버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그 리시버는 안습.
이때문에 명성과 실력에 비해 인터셉트, 태클 등의 정량적인 스탯이 상당히 적다. 공이 와야 태클이든 인터셉트든 할 텐데 상대 쿼터백이 그쪽으론 던지지도 못하는 걸 어쩌란 말인가.[7] 그래서 미식축구 전문가들도 스탯으로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선수라고 했다.[8] 유일한 단점이라면 상대적으로 태클링 실력이 좀 부족하긴 했는데, 매 경기 리시버들과 맞서 우주방어를 보여줬기에 이 단점이 별 의미가 없없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NFL을 대표하는 선수였으며 각주에 전술한 2년 선배 로드 우드슨과 함께 수비로 게임을 바꿀 수 있다는 평을 받은 몇 안 되는 선수이다. 그 때문에 위 SI표지에서 보듯 그에게 3500만달러의 장기계약을 주는 것이 왜 타당한가라는 주제가 표지에 실릴 정도. 라이벌 우드슨과 마찬가지로 샌더스는 수비뿐 아니라 리터너역할도 뛰어났고 종종 와이드 리시버로도 나설 만큼 다재다능한 선수라 돈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선수였다. 실제로 샌더스와 동시대에 뛰었던 와이드리시버 중[9] 샌더스를 이긴 선수를 거의 찾기 어렵다.
2000년 이후 은퇴하여 방송쪽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볼티모어 레이븐스 소속으로 깜짝 복귀해 2시즌을 뛰었다. 이때 그의 나이 37세. 코너백이 아닌 세이프티로 뛰었지만 당시 에드 리드가 아웃된 공백을 착실히 메꿨다는 평을 받으며 2년간 명성에 상처나지 않을 만큼의 활약을 했고, 2011년 시즌에는 NFL 네트워크의 해설자로 활동중이다. 그리고 2011년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미국 스포츠 역사상 유일하게 '''슈퍼볼과 월드시리즈 양쪽에 다 출전해본 선수'''였다.[10][11] 그것도 '''주전'''으로. 슈퍼볼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 댈러스 카우보이스 소속으로 두번 우승했으나, 안타깝게도 월드시리즈는 소속팀이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91, 92년 연거푸 미네소타 트윈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고배를 마시며 두 종목에서 우승반지를 끼는 선수까지는 되지 못했다. 뭐 슈퍼볼이나 월드시리즈를 구경도 못해보고 은퇴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고 그 중에서는 명예에 전당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도 못한 사람들이 있는 걸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이때는 야구와 미식축구 모두 같은 연고인 애틀랜타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9월달 개막하는 미식축구와 시즌이 겹치던 때는 일요일 경기때 애틀랜타에서 헬기타고 브레이브스와 팰컨스를 오갔을 정도.
그리고 미국 스포츠 역사상 유일하게 '''같은 주에 MLB에서 홈런을 날리고 NFL에서 터치다운을 한 선수'''이기도 하다.[12]
위 하이라이트 영상을 봐도 약간 짐작할 수 있지만 출중한 실력만큼 화려한 쇼맨쉽을 갖춘 선수다. 인터셉션 후 엔드존 근처에 가면 특유의 하이스텝 댄스가 나오는 게 그만의 퍼포먼스.
과거 대학시절에 트라이 아웃에서 나중에 복싱선수가 된 제임스 토니와 싸움을 벌인걸로 유명하다. 두들겨 맞았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나중에 제임스 토니에 의하면 토니가 한 방 때리고 사람들이 말려서 끝났다고. 싸움이 난 경위에 대해서는 토니가 "난 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라는 뉘앙스로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다.[13]
4. 기타
힘겨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마약이 판치는 슬럼가에서 자랐으며, 도시 한가운데에는 마약사범을 바로 집어넣을수 있는 감옥까지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삶의 목표가 어머니를 이 도시에서 탈출시켜드리자 였으며 프로선수가 되고 난 이후 이 목표를 달성하였고 현재도 어머니와 같이 살고있다고 한다.
뱀을 매우매우 싫어한다.
[1] 최초 지명은 1985년 드래프트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에게 받았으나, 사인하지 않았다. [2] 96,98,99시즌은 야구를 하지 않고 풋볼만 뛰었다.[3] 원조는 사실 80년대 오클랜드 레이더스와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번갈아가며 활약했던 보 잭슨(Bo Jackson)이다. 앨러배마주 소재의 어번 대학교 시절 야구선수와 미식축구선수를 겸하던 선수였는데 하이스만 트로피를 수상했을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 1순위로 선택되었으나 팀에서 미식축구에만 전념해 주길 원했던 이유로 거부하고 두종목을 동시에 뛸 수 있도록 허락한 레이더스로 간 것.[4] 그 외에 NFL 프로보울(대체선수로 선정), MLB 올스타 경험이 있는 브라이언 조던이 있다. NFL은 애틀랜타 팰컨스에서 세이프티로 3시즌을 뛰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면서 풋볼을 그만두고 야구에 전념하게 된다. 다만 브라이언 조던은 메이저리그 승격 이후에는 풋볼을 그만두고 야구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양쪽 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이기는 했으나 두 종목을 메이저 레벨에서 한 해에 동시에 투잡으로 뛴 보 잭슨이나 샌더스보다는 가치가 떨어진다.[5] 방송에서 시청율이 가장 높은 '황금시간대' 뜻하는 단어이다. 쉽게 말한다면 샌더스가 뛸때는 TV를 꼭 봐야 한다는 뜻.[6] 코너백 중에서는 50년대에 활약했던 Dick Lane이 가장 높은 순위인 30위이고 Sanders가 두 번째, 그 다음으로는 Sanders와 더불어 90년대 양대 컨퍼런스 최고 코너백으로 군림했던 Rod Woodson과 70년대 최고의 코너백이었던 Mel Blount가 각각 41위와 44위에 꼽혔다.[7] 던지면 어떻게 되냐고? 상대팀 공격 영상을 보고 일부러 자신이 마크하는 리시버에게 공을 던지게 한 다음 인터셉션을 하고 패스실패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리시버에게 공을 던지면 리시버가 캐치할 것 같은데 어느새 날아와 공을 낚아채는 일도 빈번했다. 때문에 쿼터백으로서 샌더스가 커버하는 리시버에게 던지는 건 자폭이나 마찬가지다.[8] 그 높은 찬양에 비해 최우수 수비선수를 한 번밖에 못 탄 것이 바로 이 스탯 부족때문이다. 코너백은 위에 언급한 특성상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스탯이 안 쌓이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역대 최우수 수비선수에 코너백은 딱 3번 선정되었을 정도. 위에서 언급한 멜 블런트와 로드 우드슨, 그리고 샌더스가 각각 1975년, 1993년, 1994년에 수상했다. 참고로 AP DPOY가 생긴 해는 1971년.[9] 정말 무서운건 이 리시버들이 NFL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명예의 전당에 오른 대단한 선수들이다. 현재까지도 최고의 리시버로 인정받으며 NFL All Time Best Player 1위인 제리 라이스도 잘 막아냈고, 카우보이스의 전설인 마이클 어빈도 샌더스를 뚫지 못했다. 게다가 라이스의 쿼터백은 샌프란시스코의 전설인 조 몬태나와 스티브 영(...). 즉, 샌더스는 역사에 남을 쿼터백-리시버 듀오를 자신의 실력으로 온전히 막아냈다는 뜻이다.[10] 역시 투잡으로 유명한 보 잭슨의 경우, 야구는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카고 화이트삭스등을 거쳤는데, 로열스의 경우 그의 빅리그 승격 전해였던 1985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후 '''그 이후에 2014년까지 플레이오프에 한 번도 못나갔었다.''' 풋볼은 오클랜드 레이더스 소속이었는데 그 당시 레이더스는 버팔로 빌스에 밀려서 1990년 시즌 AFC 챔피언십에 출전한 게 잭슨의 유일한 풋볼 플레이오프 경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90년 PO에서 선수 생활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잭슨은 두 스포츠에서 올스타에 등극, 특히 1989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MVP를 차지했으니 두 스포츠에서 모두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는데 의의가 있다 하겠다.[11] 한가지 안타까운건 샌더스가 94시즌 도중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됐는데, 애틀랜타가 95시즌 월드시리즈를 우승했다는거.....샌더스가 1년 반만 애틀랜타에 있었다면 95시즌 월드시리즈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차지하고 같은 시즌 슈퍼볼도 댈러스 카우보이스 소속으로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선수가 될 수도 있었다.[12] 1989 시즌. 투잡을 뛰고 MLB와 NFL은 9월달에 시즌이 겹치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게 또 왜 대단한 거냐하면, 미식축구에서의 샌더스는 '''수비수'''이다. 즉, 자신이 점수를 내는 게 아니라 상대팀이 점수를 내지 못하게 막는 게 주요 임무이며 이러한 수비수들이 점수를 내는 건 인터셉트나 펌블된 공을 주워서 그대로 상대팀 엔드존까지 달려가는 상황밖에 없다는 거다. 따라서 이러한 수비수들이 터치다운을 기록하는 건 1년에 잘해야 2~3 차례나오는 기록으로 그걸 MLB시즌이 진행되는 기간에 투잡을 뛰면서 했다는 거다. 게다가 야구쪽으로 봐도 디온 샌더스는 9시즌간 600경기 넘게 나오면서 통산 40홈런도 기록하지 못한 똑딱이고, 대충 한 시즌당 고작 4~5개의 홈런을 때려낸게 그만인데 그 홈런 중 하나를 NFL 시즌과 겹치는 시기에 때려낸 것이니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13] 이 일을 계기로 풋볼을 그만두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토니는 그 후 감독의 지휘 아래 팀웍을 중시하는 팀 스포츠가 자신의 성격과 도저히 안 맞는 걸 깨닫고 복싱으로 바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