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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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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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Vincent Edward 'Bo' Jackson[1]
생년월일
1962년 11월 30일
국적
미국
출신지
앨라배마 주 베서머
출신학교
어번 대학교
체격
185.4cm, 104kg
포지션
외야수(MLB)[2] / 러닝백(NFL)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MLB 1986년 드래프트 4라운드(캔자스시티 로열스)
NFL 1987년 드래프트 7라운드(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3]
소속팀
'''MLB'''
캔자스시티 로열스(1986~1990)
시카고 화이트삭스(1991~1993)
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94)
'''NFL'''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1987~1990)
SNS
트위터 @BoJackson
'''1989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테리 스타인박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보 잭슨
(캔자스시티 로열스)'''

훌리오 프랑코
(텍사스 레인저스)
1. 개요
2. 아마추어
5. 기타
6. 관련 항목


1. 개요


"the best pure athlete in America today"

- 로얄스 스카우트인 켄 곤잘레스의 스카우트 리포트 중 # 전문

미국 4대 스포츠인 MLBNFL에서 동시에 뛴 이력을 가진 선수. 그냥 뛴 수준이 아니라 ''' NFL & MLB 두 종목에서 올스타가 된 경험이 있는 두 명 중 한 명.'''[4]
미 엘리트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운동능력을 가졌던 선수. 불의의 부상 탓에 재능을 보여준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 잠깐의 기간 동안 보여준 인간을 초월한 운동 능력 덕에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 스포츠계의 전설로 그의 이름이 회자된다.

2. 아마추어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슬럼 지역 중 하나인 베세머 출신[5]으로 한부모 가정에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상처가 되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도 못하고 말도 없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운동 괴물은 어릴 때부터 비범해서 미래 야구선수의 미친 어깨로 돌을 던져대고, 미래 러닝백답게 도망가는 애들을 쉽게 쫒아가 혼내주는 등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무리들을 홀로 물리치곤 했었다고 한다(...).
이후 잭슨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고등학교 때부터 그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미 학교 코치들로부터 역대 최고 수준의 운동능력을 인정받았으며 그런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이때부터 야구미식축구를 병행,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로인해 1982년에는 이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에 2라운드 지명이 되기까지 했다.[6] 하지만 금방 가난에서 탈출할 기회였음에도 아들이 꼭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신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이른 프로 진출을 고사한다. 본인 또한 일찍 프로 야구에 진출하여 단지 야구선수만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다양한 방면에서 발휘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러한 넘치는 재능을 주체하지 못하여 육상 10종경기에까지 참가, 몇몇 종목은 혼자 연습을 했음에도 앨러배마 주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잭슨이 대학 진학 쪽에 더 관심을 보이면서, 이번에는 대학 미식축구의 최상위권 학교들이 잭슨에게 주목하게 된다. 바로 같은 주의 미식축구 명문인 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어번 대학교가 잭슨에게 오퍼를 해온 것. 그 중 앨라배마는 전설적인 감독 폴 브라이언트가 말년에 직접 잭슨과 접촉하기까지 했었다.[7] 그러나 어번은 잭슨에게 야구를 병행할 수 있는 기회는 물론, 1학년부터 주전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잭슨은 어번으로 진학하게 된다[8].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잭슨은 팻 다이 감독의 가르침을 받아 미식축구에서 최대 라이벌인 앨라배마를 상대로 학교의 10년만의 승리를 이끌고, 야구에서도 역시 뚜렷한 두각을 보이면서 전국적인 스포츠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이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계속해서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우는 등의 활약 끝에 본인의 등번호인 34번이 영구결번이 되는 영예와 함께 4학년인 1985년에는 최고 대학풋볼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인 하이즈먼 트로피를 수상하기까지 한다.
이윽고 마지막 미식축구 시즌이 끝나자 잭슨은 NFL 드래프트 참가 선언을 하게 되고,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40야드 대시에 무려 4.12초라는,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NFL 기록을 남기면서 본인의 괴물같은 재능을 드러내보인다.[9] 이러한 미칠 듯한 신체능력에 대학시절 보여준 운동선수로서의 능력으로 당연히 잭슨은 전체 지명 1순위가 예상이 되었고, 지명권을 갖고 있는 탬파베이 버캐니어스가 그의 행선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잭슨은 여전히 야구를 병행하면서 한 종목 선수로서 묶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반면, 벅스 구단주 휴 컬버하우스는 구단의 전체 지명 1순위 선수라는 귀중한 자원이 다른 종목 때문에 팀에 집중하지 못하는걸 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4학년 마지막 야구시즌을 보내고 있던 잭슨에게 구단주는 잭슨을 속이고 불법 접촉을 하여 NCAA 규정을 위반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잭슨이 남은 야구시즌의 참가 자격을 박탈되게 만들어버리는 짓을 저질러버리고 만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잭슨은 엄청나게 분노하여 버캐니어스가 본인을 지명해도 자신은 그 팀과 절대로 계약을 맺을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대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지명팀과 계약을 체결하여 우선 야구쪽에서 프로 진출을 하게 된다.

3. MLB




1986년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한 팀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아메리칸리그에 속한 팀인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이 팀에서 프로 무대 데뷔를 이루게 된다.
이듬해인 1987년부터 팀의 중견수좌익수를 맡아 활동했다. 3할을 칠만큼 정교한 타자는 아니었지만 타고난 파워로 4시즌 동안 꾸준히 20홈런 이상씩 기록하였으며 20개 이상의 도루를 하기도 하였다. 수비쪽에서는 캐사기적인 운동능력을 곧잘 보여줬다. 엄청난 강견인지라 외야 깊숙한 곳에 떨어진 타구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원스텝만 밟고도 홈(좌익수 시)/3루(우익수 혹은 중견수 시)로 뿌려 주자를 잡아내기도 했고, 괴물같은 주력으로 타구를 따라잡는 서커스 캐치도 간간이 보여줬다.
1989년에는 3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였고, 같은해 올스타전에서 MVP까지 차지하는 등[10]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해를 기록했다. 1990년 NFL 플레이오프에서 상대선수와의 충돌로 큰 부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로열스에서 방출되어 1991년아메리칸리그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한다. 그러나 부상의 여파로 23경기 출전에 그치며 시즌을 마감.
이후 대타 위주로 그럭저럭 성적을 내다가 결국 1994년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한 후, 메이저리그 생활을 끝냈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50/출루율 0.309/장타율 0.474. 598안타 141홈런 82도루.

4. NFL



한편 미식축구 쪽에서는 상기한대로 1986년 NF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 지명됐으나 탬파베이가 야구와의 투잡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꼼수를 부리자 계약을 거부하면서 NFL 입성을 고사했었다. 이듬해에 열린 드래프트에서도 본인의 투잡에 대한 의지가 워낙 완강해서 모든 팀들이 포기하고 지명을 건너뛰고 있던 중[11], '''기행을 일삼는 구단주'''로 유명한 알 데이비스가 구단주로 있는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가 투잡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잭슨을 7라운드에서 과감하게 지명하고 입단시켰다. 잭슨도 처음에는 일단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이를 수락, 마침내 그는 투잡의 꿈을 이뤘다.
말이 7라운드 지명이지 그 직전해에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지명을 받을만한 스타 후보였으니[12]만큼 NFL에 와서도 활약은 충분하였다. 비록 야구와의 시즌이 겹쳐서 풀시즌을 뛰지 못하고 야구 시즌이 끝나고 나면 출전하는 바람에 매년 시즌의 2/3 정도의 출전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시도당 평균 5야드 이상을 기록하면서 특급 러닝백으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매년 풀시즌으로 환산하면 특급 러닝백의 기준인 시즌 1,000야드에 가까운 기록을 남겼고[13],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1990년 시즌에는 NFL의 올스타 게임인 프로볼 멤버로 뽑히기도 했다. 다만 마커스 앨런 등 기존 선수들은 영입 과정 때문에 그를 고깝게 봤다.
특히 1989년 시즌에는 불과 11경기만 출전하면서 시즌 1,000야드에 육박하는 950야드의 기록을 남겼다. 1989년은 야구에서도 시즌 30홈런을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보 잭슨 개인에게는 '''영광의 시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한 해였다.
보 잭슨의 미식축구 퍼포먼스 중에서 가장 명경기는 1987년 11월 30일, 시애틀 시호크스와의 정규시즌 경기였다. 당시 시호크스의 라인베커였던 브라이언 보스워스는 "보를 멈춰세우겠다."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잭슨에게 도전장을 들이밀었던 것. 당시 보스워스는 악동 이미지가 풀풀 풍기는 떠벌이라 많은 팬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그러나 잭슨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쿼터에서 보스워스를 제치고 91야드 러싱 터치다운을 기록했는가 하면 후반전에서는 골라인 상황에서 보스워스의 태클을 그대로 뚫어버리고 터치다운을 시전해 보스워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990년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신시내티 벵골스의 라인배커인 케빈 워커에게 태클을 당하면서 중상을 입고 경기에서 실려 나가버리게 된다. 그 때까지 게임에서 6번 러싱 시도에 77야드 전진을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경기 MVP급의 활약을 보이던 중이었으나 이 태클로 인해 대퇴골이 골반에서 탈골되는 끔찍한 부상을 입은 것. 더욱 불행히도 대퇴골 탈골은 주변 관절 조직의 괴사로 이어져 엉덩이뼈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결국 이러한 대수술로 인해 보 잭슨의 NFL 커리어가 마감되어버린다. 이후 재활훈련 끝에 풋볼은 포기하고 야구에 전념한다고 선언하고 야구에 복귀했으나 운동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역대 최고의 운동 천재의 미식축구 커리어가 너무나도 짧게 비극적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에, 그의 부상이 종종 관련 의학계에서 나오는 이야깃거리인 듯 하다. 대체로 최신 의학 기술이라면 조직의 괴사를 막아 뼈 교체 수술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의 이른 은퇴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말이 주로 나온다.

5. 기타


5 Hour Energy 드링크 광고가 매 이닝교체시, 투수교체시, 매우 잦은 빈도로 나온 탓에, MLB.com에서 중계를 보던 사람들은 광고 첫 마디인 I'm Bo Jackson을 지겹도록 들었다. 해결책으로는 AdBlock을 깐 크롬으로 시청하는 방법이 있다. 2014년부터는 광고모델을 카를로스 벨트란으로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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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딴 운동화(크로스 트레이닝 슈즈)를 처음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이키에서 런칭한 'Bo Knows(보는 안다)'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여기서 탄생했다.# #[14][15] 최근에도 나이키 광고에 가끔씩 등장을 하곤 한다. 가장 최근에 찍은 나이키 광고로는 나이키 골프의 베이퍼 드라이버. ## 주인공은 로리 매킬로이지만, 보 잭슨을 비롯하여 타이거 우즈, 미셸 위, 찰스 바클리도 등장해서 깨알같은 재미를 줬다.
은퇴 후엔 사업가로도 성공했고, 5 Hour Energy의 광고를 촬영하기도 하였다.

2016년 기아 쏘렌토 북미 광고모델로 재등장. 등장하는 게임은 테크모패미컴 풋볼게임 테크모 볼. 이 게임에서의 잭슨은 달리기가 너무 빨라 태클을 시도해도 막을 수가 없었던 사기 캐릭터였다.

NFL시절 라이벌이었던[16] 브라이언 보스워스와 찍은 버전이다.[17]

6. 관련 항목


  • 드류 헨슨
  • 디온 샌더스: 보 잭슨 이후 야구와 미식축구를 병행했던 선수.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잭슨과 달리 야구에서는 리드오프, 미식축구에서는 코너백이었으나 이쪽은 월드 시리즈슈퍼볼에 출전한 경험이 있으며 무엇보다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위대한 선수로 보 잭슨을 훨씬 압도하는 커리어를 갖고 있다.
  • 제프 사마자: 보 잭슨의 'Bo Knows' 스틸컷을 패러디했다. 사마자도 노트르담 대학교(Univ. of Notre Dame)에서 야구와 미식축구를 병행했다.
  • 톰 글래빈: 현역시절 글래빈은 체인지업의 달인이었지만 마이너리그 시절 결정구는 원래 포크볼이었다. 글래빈이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삼은 계기 중 하나가 잭슨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글래빈 항목 참고.
  • 카일러 머레이: 풋볼과 야구에서 모두 1라운드 지명받은 유망주. 하지만 결국 풋볼 하나만 선택함. 보 잭슨의 'Bo Knows'를 패러디한 화보를 찍은 적이 있다.

[1] 보 잭슨의 Bo는 멧돼지인 Boar를 의미한다.[2] 캔자스시티 시절에는 좌익수와 중견수를, 큰 부상을 당하고 복귀한 이후에는 우익수를 봤다.[3] 최초 지명은 1년전인 1986년에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게 받았다.[4] 보 잭슨 이후에 브라이언 조던이 NFL 프로보울(대체선수), MLB 올스타에 뽑혔다. 단, 조던은 보 잭슨과는 달리 NFL에서 뛰던 시절 야구 쪽은 아직 마이너리거였고, 야구 전업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NFL을 은퇴한 뒤에야 MLB에 콜업이 되었기 때문에 MLB, NFL을 같은 해에 뛴 잭슨 쪽이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한 종목만 집중한 덕인지 야구 쪽 커리어는 조던이 훨씬 낫다. 보 잭슨의 슬래시라인은 .250-.309-.474 통산 141홈런 415타점, 조던의 슬래시라인은 .282-.333-.455. 통산 184홈런 821타점.[5] 제이미스 윈스턴과 동향이다. 재밌는 점은 윈스턴은 잭슨이 절대 뛰지 않겠다고 다짐한 탬파베이 버캐니어스에서 현재 주전 쿼터백으로 뛰고 있다는 점.[6] 캔자스시티 로열스 스카우트 케니 곤살레스가 당시 잭슨의 포텐셜을 20-80 스케일에서 72로 측정했다. 그 칼 립켄 주니어가 고교 졸업 당시 66을 받았을 정도로 잭슨의 운동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7] 폴 브라이언트가 1982년 앨라배마 감독에서 은퇴, 1983년에 사망했으니 1982년이면 거의 최후반부였던 셈.[8] 두 학교는 같은 주에 위치한만큼 엄청난 라이벌 관계로, 이 둘이 대결하는 경기의 이름은 '아이언 보울'(Iron Bowl)이라고 한다.[9] 미식축구 선수의 스피드를 평가할때 주로 쓰는 40야드 대시는 4.3초나 4.4초만 달려도 빠른 스피드로 분류되고 그 정도의 스피드를 보여주는 선수는 날렵한 와이드 리시버나 이들을 마크하는 수비수인 코너백이 대부분.[10] 이후 로열스에서 올스타전 MVP가 나오기까지 27년이 걸렸다.[11] 사실 이건 구단측으로서도 당연했던것이 4월부터 9월말까지 무려 5개월이나 강행군을, 그것도 연장전을 해서라도 승부를 보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주전으로 뛰면서 풋볼에서까지 주전으로 활약하기에는 체력적인 부담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시 잭슨의 포지션이 러닝백인지라 이러한 부담은 솔직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구단으로서는 공들여 투자한 선수가 이런 무리한 활동으로 인해 부상을 당해 운영에 차질을 빚는 일을 환영할리가 없다.[12] 사실 7라운드라고 해도 NFL의 7라운드 드래프트 순번이면, 매우 확률이 낮을 뿐이지 1라운드 못지않은 운동실력과 재능을 갖춘 선수들은 꽤 나오는 편이다. 그래서 7라운드 지명자도 미국의 대학 미식축구 선수 입장에선 성공한 것. 보통 그런 선수들은 외부적으로 큰 하자가 있거나, 단지 스카우터들의 좁은 안목과 미식축구계에 퍼져있는 선입견들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누군가에 의해 발탁된 것 뿐이다. 한 예로 터렐 데이비스와 함께 덴버 브롱코스의 첫 슈퍼볼 우승의 일등공신이었던 로드 스미스는 대학시절 3부리그 지잡대팀에서 에이스였다는 이유로 듣보잡취급받아 그 재능을 여겨보지 못한 스카우터의 외면 때문에 94년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받았고, 자유계약으로 브롱코스에 입단해 통산 11389 야드 전진과 68 터치다운 캐치로 존 엘웨이의 한을 풀어주고 자신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3] 이건 경기당 평균 100야드를 뛰어야 성립될 수 있는 대기록인데 실제로 러닝백들이 100야드를 달성한다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먼저 러닝백 스스로의 컨디션이 좋아야하고 그 앞에서 통로를 만드는 오펜시브 라인맨들과의 협력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수비진들이 쿼터백 다음으로 많이 타겟을 삼는게 러닝백인데 그래서 공격수들 가운데 부상의 빈도도 심한편이다.[14] 당시 최고의 선수들을 만날 수 있는 광고이다. 마이클 조던, 커크 깁슨, 웨인 그레츠키 등이 출연했다.[15] 한편 'Bo Knows'의 크로스 트레이닝 슈즈가 국내에도 런칭됐는데, 당시 해당 제품의 모델로 LG 트윈스노찬엽이 기용됐다.[16] 사실 프로 경력만 따지자면 "보즈" 보스워스는 보 잭슨에 한참 못미친다. 탑클래스 라인배커였던 대학 시절 경력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워낙 핵이빨로 유명한 선수고 본문에서 언급한 일화도 있었던터라 잭슨과 관련 인물로 항상 소개되기는 한다.[17] 보스워스가 시애틀 시호크스 시절 "보 잭슨은 내가 쓰러뜨린다!"라고 설레발을 쳤다가 코가 납작해진 일화는 유명하다. 특히 골라인 대결에서 잭슨이 보스워스의 태클을 그대로 뚫어내고 엔드존으로 돌진했던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