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불 레이싱/2004년 이전

 


1. 팀의 역사
1.1. 스튜어트 그랑프리
1.2. 재규어 레이싱 F1 팀


1. 팀의 역사



1.1. 스튜어트 그랑프리


'''스튜어트 그랑프리'''
'''Stewart Grand Prix'''
'''타이틀 스폰서'''

'''국적'''
영국[1]
'''본부'''
영국 밀튼 케인즈
'''설립자'''
재키 스튜어트
폴 스튜어트[2]
'''드라이버'''
루벤스 바리첼로
조니 허버트
얀 마그누센[3]
요스 베르스타펜[4]
'''섀시'''
SF01, SF02, SF3
'''엔진'''
포드 VJ Zetec-R/CR-1 3리터 V10
'''그랑프리 우승'''
1
'''포디엄'''
4
'''폴 포지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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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그랑프리 팀의 차량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재키 스튜어트가 팀 대표로 있었던 스튜어트 GP 팀이다. 창단된 해에 루벤스 바리첼로가 모나코 GP에서 2등으로 포디엄에 올라가는 등, 짧은 기간동안 신생팀치고 굉장히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곳이다. 하지만 다음해인 98년에는 포인트권에 2번 올라간 것이 전부지만 99년도에는 레이스 시작 전 루벤스 바리첼로와 조니 허버트의 스튜어트 SF3 차량 모두 하부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화재가 나는 바람에 두 차량 모두 시동을 끄고 소화기로 진압되는 문제를 겪었다. 이로 인해 바리첼로는 피트로 복귀해서 스페어 카로 바꾸고 피트레인 차선에서 출발해야 했고, 허버트는 스페어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 선택의 여지도 없이 경주 시작전부터 리타이어 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겪고도 바리첼로는 개막전 호주 GP에서부터 포인트권 이내인 5위를 따내며, 제 3전 산 마리노 GP에서 3위로 포디엄을, 그리고 제 6전 캐나다 GP에서는 조니 허버트도 포인트권 이내인 5위로 끝마친다.
그리고 다음 프랑스 GP, 서킷 드 네버스 마그니 쿠르에서는 바리첼로가 웻 컨디션에서 폴포지션을 따낸다! 아쉽게도 이날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여 3위로 피니쉬하고 포디엄에 올라가는등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이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헝가리와 이탈리아 GP에서 바리첼로가 각각 5위, 4위로 들어왔었지만 그 다음 경기인 유러피안 GP(뉘르부르크링)는 전보다 더욱 믿을수 없는 결과가 나타나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99년 그랑프리 하이라이트 장면
이 그랑프리는 경기 시작부터 문제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리드에 모든 차량이 정렬해야하는 순간에 윌리엄스-슈퍼텍 소속의 알레산드로 자나르디와 미나르디-포드의 마크 진이 정렬해야 할 그리드가 아니라 잘못된 그리드로 가서 다시 되맞춰 가는데 경기가 지연되었다. 후에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는 순간, 상위권에 위치한 드라이버들과 후미 그리드에 있는 6명[6]등이 점프 스타트를 하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여러명이 동시에 실수하는 일이 드물기에 초반부터 관심을 끌었다.[7] 레이스 재개 후 드디어 경주가 시작되면서 제대로 관람이 가능할거라 예상했지만 첫 코너에서 베네통 차량의 알렉산더 우르즈와 자우버에 타고있던 페드로 디니즈가 충돌하여 자우버 차량이 뒤집어지면서 세이프티 카 상황이 발생(...), 또 다시 경기가 멈추게 되었다. 경기가 재개된 이후 28랩쯤 흘렀을때 페라리에서 에디 어바인을 피트 인 시켰으나, 후방 오른쪽 타이어를 담당하는 피트 크루가 제때 타이어를 받지 못해 늦게 장착하게 되면서 피트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4배 가까이 되는 시간을 허비하였다.[8] 이후에는 줄줄이 리타이어의 행진으로 이어지는데, 제일 먼저 프렌첸이 아웃되고[9], 알레시도 아웃[10], 쿨싸드[11], 애로우스의 토라노슈 타카기[12], 페라리 소속 미카 살로[13], 베네통의 지안카를로 피지켈라[14], 애로우스의 페드로 드 라 로사와 미나르디의 루카 바도어는 차량 변속기 문제로, 그리고 BAR-슈퍼텍의 빌르너브는 클러치 이슈를 마지막으로, 출전 차량 22대 중 12대나 미완주하게된 경기가 되었다. 이런 혼돈의 상황에서 조니 허버트는 우승을, 프로스트 소속의 트룰리는 2등, 바리첼로는 3등을 차지하여 이변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경기는 포디엄에 올라간 3인 모두 전직 F1 드라이버가 따로 설립한 팀에 속한 드라이버들이라 의미가 더 남다르다고 볼수있는 명경기였다.

이렇게 3시즌도 채 지나지 않아 F1에서 내로라하는 상위권 팀들(페라리,맥라렌,조던)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당시 이 팀의 엔진공급사인 포드 측에서 이들을 눈여겨보았는지 팀을 인수하겠다는 제의를 나타냈다. 당시 포드의 고급 브랜드로 분류되던 재규어[15]가 팀을 인수받아 재규어 레이싱이라 이름짓고 팀을 창단하였으며, 포드-코스워스 엔진을 공급사로 확정하고, 스튜어트 팀의 타이틀 스폰서이던 영국계 메가뱅크인 HSBC와 맥주회사 벡스를 타이틀 스폰서로 받아들여 F1에 출전하였다.

1.2. 재규어 레이싱 F1 팀


'''재규어 래이싱 F1 팀'''
'''Jaguar Racing F1 Team'''
'''타이틀 스폰서'''

'''국적'''
영국
'''본부'''
영국 밀튼 케인즈
'''섀시'''
R1 ~ R5
'''엔진'''
코스워스 CR2 자연흡기 V10
'''그랑프리 우승'''
0
'''포디엄'''
2
'''폴 포지션'''
0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재키 스튜어트가 팀 대표로 있었던 이 팀이 재규어 레이싱 역사의 시작이다. 창단된 해에 루벤스 바리첼로가 모나코 GP에서 2등으로 포디엄에 올라가는 등, 짧은 기간동안 신생팀치고 굉장히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곳이다. 하지만 다음해인 98년에는 포인트권에 2번 올라간 것이 전부지만 99년도에는 바리첼로가 개막전 호주 GP에서부터 5위, 제 3전 산 마리노 GP에서 3위로 포디엄을, 그리고 제 6전 캐나다 GP에서는 조니 허버트도 5위, 그리고 다음 그랑프리인 프랑스에서 바리첼로가 또다시 3위로 피니쉬하여 포디엄에 올라가는등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이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헝가리와 이탈리아 GP에서 바리첼로가 각각 5위, 4위로 들어왔었지만 그 다음 경기인 유러피안 GP(뉘르부르크링)는 전보다 더욱 대단한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하여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이후 포드가 인수해 당시 포드의 고급 브랜드로 분류되던 재규어[16]가 인수받아 창설하였으며, 포드-코스워스 엔진을 공급사로 확정하고, 스튜어트 팀의 타이틀 스폰서이던 영국계 메가뱅크인 HSBC와 맥주회사 벡스를 타이틀 스폰서로 받아들여 F1에 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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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첫 출전 차량인 R1부터 2002년 차량 R3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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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출전 차량인 R4부터 2004년 마지막 시즌 출전 차량 R5까지.
공식 팀명은 '''Jaguar Racing F1 Team | 재규어 레이싱 F1 팀'''.
마크 웨버, 에디 어바인[17] 페드로 드 라 로사, 저스틴 윌슨 등등 여러 쟁쟁한 베테랑 드라이버들이 이 팀을 거쳐갔고, F1 3회 챔프인 니키 라우다대표로 영입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성능은 개판이었고, 철수 전까지 일궈낸 성적은 '''포디엄 2번[18]에 전체 성적 49점'''[19], 그리고 '''팀 순위 9-8-7-7-7'''(...). 결국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재규어는 팀을 레드불에게 매각하고 철수했다. 그리고 이후 11년 동안, 재규어는 오픈휠 클래스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 국적은 영국이지만, 팀의 설립자인 재키 스튜어트의 가문이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리버리에도 스코틀랜드 국기모양을 표현할 정도였다.[2] 재키 스튜어트의 아들.[3] 98년 캐나다GP부터 요스 베르스타펜으로 대체되었다.[4] 99년 시즌부터 조니 허버트로 대체된다.[5] 99년 프랑스 GP[6] 폴포지션이던 조던-무겐-혼다 소속의 하인츠-해럴드 프렌첸과 2,3등인 웨스트 맥라렌-메르세데스 소속이었던 데이빗 쿨싸드,미카 하키넨, 4등 윌리엄스랄프 슈마허, 그리고 5등 프로스트-푸조 소속의 올리비에 파니스와 16등인 자우버-페트로나스의 장 알레시.[7] 6명 모두 경기 출발이 중단되었기에 페널티는 받지 않았다.[8] 이때 피트 스탑 기록은 평균적으로 7~8초대 수준이다.[9] 안티-스톨로 인해 차량 시동이 꺼지면서 그대로 DNF.[10] 드라이브 샤프트 문제로 리타이어.[11] 빗길에서 컨트롤 실수로 미끄러짐.[12] 충돌로 반파됨.[13] 브레이크 문제[14] 쿨싸드와 같은 이유로 스핀함.[15] 과거 1950년~57년까지 페라리를 포함한 F1 팀들에게 엔진을 공급한적이 있었다.[16] 과거 1950년~57년까지 페라리를 포함한 F1 팀들에게 엔진을 공급한적이 있었다.[17] 1996년부터 페라리 미하엘 슈마허의 팀메이트로 있었으며, 재규어 레이싱팀이 레드불에 팔리면서 F1도 같이 은퇴한다.[18] 모두 어바인이 달성하였다.[19] 전체 성적 중 17점을 웨버가 따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