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가장(은어)

 


1. 비유적 의미
1.1. 대표적인 소년 가장
1.1.1. 스포츠계
1.1.1.1. 국내 야구
1.1.1.2. 해외 야구
1.1.1.3. 국내 축구
1.1.1.4. 해외 축구
1.1.1.5. 농구
1.1.1.6. 배구
1.1.1.7. 수영
1.1.2. e스포츠계
1.1.3. 연예계
1.1.3.1. 그룹 멤버
1.1.3.2. 그룹 전체
1.1.3.3. 그 외
2. 노년 가장
2.1. 대표적인 노년 가장
2.1.1. 야구
2.1.2. 해외축구


1. 비유적 의미


소년가장의 원래 의미에 빗대어, 소속 팀의 경기력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나이 어린 선수, 혹은 유일한 선수를 말한다. 즉 원맨팀이다. 대개 이런 선수가 있는 팀은 높은 확률로 이 선수 1명빼면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이 눈뜨고 못봐줄 정도의 막장이라 하위권 혹은 간신히 중위권이다. 간혹 성적이 상위권, 심지어 1위라 하더라도 이 가장의 실력이 나머지 서포팅 캐스트에 비해 너무 압도적 차이가 나서 가장이 조금만 삐끗하거나 다쳐서 못나오기만 하면 바로 다른 강팀의 추격이나 업셋을 허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이런류의 팀은 약팀이건 강팀이건 원 맨 팀이라는 비난, 혹은 팬들의 자학을 면치 못한다. 게다가 선수도 혹사당하는 만큼 선수 생명에 좋지 않다. 이 선수는 99.9% '''노예#s-2'''. 본래는 이런 비유로 널리 쓰이는 용어는 아니었으나 프로게이머 이영호가 2008년 경부터 스갤 등에서 소년 가장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차츰 타 분야의 혹사당하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붙는 용어가 됐다.
소년 가장이 성인#s-1인 20대가 되면 청년 가장으로 진화#s-1하게 된다. 여성형 버전으로는 소녀가장(10대), 여인 가장(20대)가 있다.

1.1. 대표적인 소년 가장



1.1.1. 스포츠계



1.1.1.1. 국내 야구

이 분야의 대선배이자 KBO 역대 모든 소년가장의 시조격 되는 인물로 독보적인 꼴찌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에 특급 선수로 입단하여 1년 뿐이었지만[1] 427⅓이닝 44선발 36완투 30승 16패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세웠다.[2]
그 당시 롯데 자이언츠에는 선발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동원은 선발등판하고 다음날 불펜으로 등판하는 식의 연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83년부터 87년까지 5년동안 1,200이닝을 던졌고 데뷔 후 5시즌 연속 200이닝을 던졌는데 특히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의 4승 1패[3] 선동열의 통산 방어율 1.20과 함께 KBO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꼽힌다.
1994 시즌 태평양 돌핀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첫해 13승에 평균자책 2.51(6위)을 올리며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힘을 보태 앞으로 돌핀스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듬해 장종훈의 타구에 직격당하는 사고를 당한 이후 슬럼프에 빠져 1996 시즌 개막 직전 박재홍의 반대급부로 해태에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후 두 해 동안은 팔꿈치 부상으로 제몫을 못하다가 1998 시즌에 8승을 올리며 재기 가능성을 보였다. 그 후 팀이 자금난으로 오늘내일하던 2000 시즌과 KIA 타이거즈로 바뀐 2001 시즌에 2시즌 연속으로 185이닝 이상 투구하며 12승씩을 기록[4]하여 무너질대로 무너진 타이거즈 마운드의 유일한 기둥으로 활약했다.[5]
SK 와이번스 창단 원년부터 강병철 감독에 의해 마구 굴려졌고, 그 여파로 인한 부상 때문에 3년을 날려먹었다.
롯데의 암흑기를 홀로 짊어지고 간 선발투수. 2005년에는 팀이 정규시즌 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MVP를 따 내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의 롯데 자이언츠 선발진의 성적 을 보면 손민한만이 수준급 선발투수의 성적을 내고 있고, 나머지는 10승을 한 투수가 없을 정도로 초토화 되어 있다.
8888577 시절 롯데 타선은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로 불렸다. 그리고 오릭스 버팔로즈로 가서 또다시 그 시절을 재현했다.
답이 없는 한화 이글스 시절은 설명이 필요없고 LA 다저스 입단 후에도 2013년 시즌 초기에는 소년가장 역할을 하였다.
MLB 진출 이전 KIA 타이거즈 시절 한정. 윤석민상이 생겼을 정도였다.
2013년 한정.
588689967을 기록하면서 초토화된 한화 이글스 토종 선발진을 홀로 이끌고 있다시피 하다. 특히 이태양이 활약한 2014년과 2016년에는 용병 농사까지 망해서 에이스 놀이까지 해야 했을 정도.
KIA 타이거즈의 용병 타자로 2014년부터 뛰었지만, 중요한 순간에 해결사 능력이 아주 돋보이는 선수. 605 대첩에서 손등에 공을 맞춰 아작낸 배 모씨만 아니었어도 2014년에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KBO 리그 2년 차인 2015년 6월 9일 현재 결승타를 7개 기록중인데, 특히 만루상황에서 아주 강하다.[6][7]
2015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조쉬 린드블럼과 원투펀치역할을 하다가 2018년 린드블럼이 두산 베어스로 이적 후 명실상부한 1선발로 자리잡았고 2019년에는 좋은 모습에도 팀의 저조한 득점지원과 수비실책에 승리를 챙기지못하고 꾸준히 패전을 기록하면서 레크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6년 박석민나바로가 이적하고 시즌 삼성의 타선이 부진에 빠지자 당시 1번이였던 구자욱을 3번으로 이동시켰다. 이 후 구자욱을 중심으로 타선이 짜임새가 맞춰 졌다. 특히 삼성의 타선의 혈이 막혔을때나 안풀리는 경우가 많지만 계속해서 구자욱이 장타를 생산하며 득점과 타점을 꾸준히 올려주고 있다. 현재는 4번타자인 최형우도 살아나면서 3번으로 이동시킨게 적중하였다. 그러나 부상으로 빠진 6월부터 팀이 심각한 부진을 겪다가 8월 복귀 이후 승률이 거의 5할대가 되어간다. 2017년 시즌 4월에는 팀에서 바라는 홈런타자의 모습하고는 상성이 맞지 않는 듯하며 부진했지만, 5월에 원래 페이스를 찾아가면서 홈런, 타율, 타점 등등이 팀 내에서 모두 1위다. 설상가상으로 2018년부턴 팀의 대들보도 이젠 없다. 과연 소년가장...[8][9]
NC 다이노스가 창단 처음으로 꼴찌를 기록하고 타선 역시 역대 최악을 찍는 등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100득점을 달성했다.
의 부진 속에서도 꾸준히 활약해 주었다.
고졸신인이지만 소속팀인 kt wiz가 워낙 성적이나 흥행 면에서 약세를 보이다 보니 팀의 중심타자와 흥행 카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1.1.2. 해외 야구

풀타임 첫 시즌인 20세 때부터 팀 내 최고 선수로 활약했으며,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하던 2010년대 중반부터는 사실상 팀 타선을 홀로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다. 현 세대 최고의 야구선수로 인정받는 현재 LA 에인절스의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 자릿수 완봉승 기록인 110완봉승을 기록했는데, 그의 소속 팀이었던 워싱턴 세너터스가 너무 약체였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 완투패 / 최다 0 : 1 완투패 기록까지 동시에 갖고 있다. 심지어 110번의 완봉승 중에서도 38번이 스코어 1:0 완봉승으로 이 부분에서도 1위. 그래서 불펜과 타선이 얼마나 못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사이 영 상 선발 투수 한정 역대 최소 승 수상을 달성했다.
2010 시즌까지는 처참한 팀 타선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정작 타선이 살아났던 2011 시즌에는 오히려 본인이 부진하였다.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한정이었는데 2014년 텍사스 레인저스의 선발 투수진이 몽땅 무너져버리면서 또 소년가장 노릇을 하였고, 결국 부상으로 시즌아웃됐다.
2013년 잭 그레인키LA 다저스로 영입되면서 2선발 그레인키와 원투펀치를 이루고 3선발 류현진도 준수한 활약을 하며 소년가장을 벗어났으나 2015년 그레인키가 6년 2억 650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 계약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하고 류현진이 어깨부상으로 시즌아웃되고 2년 쉬면서 소년가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1.1.1.3. 국내 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시절. 결국 사우디로 도망갔다(...).
인천 시절 유병수는 그 전의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방승환 라돈치치가 이적하고 드라간이 노쇠화하여 '왜 대체자로 듣보잡 신인이나 데려오나?'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데뷔전부터 그 소리를 씹어먹고 오히려 팀이 병신이라 미안해 소리를 들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2010년은 절정으로, 이렇다할 공격자원이라고는 유병수 뿐인 인천이 역대 최다득점 기록을 세우는데 공헌했다.

1.1.1.4. 해외 축구

소년 가장이라는 표현을 양지로 나오게 한 인물. 2009년 3월 스포탈코리아의 구자윤 기자가 파투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KT의 이영호에 빗대어 기사를 쓴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
위 파투의 선배이자 실제 원조 소년가장 케이스로, 파투 앞시기에 파투 못지 않게 6년동안 밀란에서 빡세게 혹사당하면서 밀란을 이끌었었다. 그리고 밀란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우며 옮긴뒤 먹튀로 장렬히 산화해 먼 친정사랑(...)까지 실천했다.
  •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10])(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현재)[11])
파본 정책 시절, '수비진' 한정 소년 가장.
웨일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본인은 발롱도르 역사상 최초의 비유럽인 수상자에 오르는 등 월드 클래스를 자랑했던 선수였으나, 국적이 라이베리아라 한 번도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는 본선 진출을 위해 본인이 주장에 감독까지 맡아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승점 1점이 부족해 지역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라이베리아 국민들은 어떻게든 원망할 대상을 찾아야 했는데, 웨아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서 달리 눈에 띄는 대상이 없었는지(...) 웨아를 비난하고 나섰고, 빡친 웨아는 즉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축구계를 떠나 정계에 몸담기 시작해 2018년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본인은 FC 바르셀로나의 세계 최강의 공격진인 MSN의 일원이고 영원한 우승 후보이자 월드컵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의 에이스 선수다. 하지만 브라질은 예전과는 달리 공격진이 많이 빈약해져 네이마르에 의존하는 팀이 되어 버렸다. 2014년 자국 월드컵에서 네이마르는 에이스다운 활약으로 브라질을 4강으로 이끌었으나 8강전에서 후안 카밀로 수니가니킥에 따른 척추 부상으로 아웃되자 다음 경기에서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극이 터지며 울분에 떨어야 했다. 이듬해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퇴장을 당하고 징계를 받으며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브라질은 8강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한다. 2016년 현재도 네이마르의 소년가장 모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와일드카드 출전으로 코파 아메리카에는 불참했는데, 네이마르가 없는 브라질은 남미의 그저 그런 축구 대표팀으로 전락하며 조별 리그에서 광탈했다. 하지만 자국에서 열린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 부상으로 또다시 불참했지만, 브라질은 그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우승하면서 여기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겼다.
  • 케빈 더브라위너(맨체스터 시티 FC) : 팀의 공격력이 이전만큼 위협이 되지 못해 부진하고 있는 와중에도 더브라위너 만큼은 폼을 유지하며 팀의 공격 전개를 홀로 책임지고 있다.
* 페드리 (FC 바르셀로나) : 같은 포지션의 필리페 쿠티뉴,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 선수들의 부진에도 항상 중원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바르셀로나의 소년 가장으로 거듭났다.

1.1.1.5. 농구

독일 농구 국가 대표팀 나머지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가 워낙 넘사벽이다. 그래서 노비츠키는 국가 대표 출전을 거의 거른 적이 없다.
2010년대 중반 KBL 소년가장의 상징
입단 이후 타고난 스타성과 함께 관중들을 매료시키는 압도적인 스피드와 화려한 테크닉들을 앞세워 SK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매경기 거의 풀타임을 출장하는데다 문경은 감독이 문애런, 문선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하여 대체자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지라 대형 FA를 영입하거나 김선형 본인이 SK를 떠나지 않는 이상 소년가장 자리를 탈출하긴 어려워 보인다. 15-16시즌이 끝난 이후 5년간 연봉 6억이 조금 넘는 FA 계약을 했고, 박승리의 귀화 실패 및 그나마 얇던 스쿼드마저 지난시즌보다 더 빈약해져 버렸기 때문에 한동안은 SK의 소년 가장으로 남게 될 듯 하다.
16-17 신인드래프트에서 빅3 중 하나로 평가받는 최준용을 뽑는데 성공했으니 집중 수비견제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있을 줄 알았는데 본인의 공격과 어시스트 사이의 딜레마가 심하고, 팀 사정상 최준용이 정형화된 포지션 롤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공격력이 감소하고, 테리코 화이트가 무릎 부상이후 경기력 기복이 심해짐에 따라 기어이 소년가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17~18시즌에는 나머지 팀원들이 최고조의 기량을 선보이면서 챔프전은 우승하긴 했다. 다만, SK 입단 이후 누적된 소년가장 생활탓에 본인도 큰 부상을 당해 현재시점인 2018년에는 그 후폭풍을 맛보면서 기량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가드 왕국이라고 불리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가드진들이 삽질을 해대는 와중에도 삼성에서 평득 10점 이상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국내선수인 탓에 농구팬들에게 동정표를 많이 얻게 되었다. 소년가장 역할에 매우 충실해서 공격스탯은 잘 쌓았기 때문에 친구이자 라이벌인 이승현과 함께 박빙의 신인왕 경쟁을 벌였다. 그래도 15-16시즌에는 구단이 쇼미더머니를 열심히 한 탓에 리카르도 라틀리프, 문태영 등 확실한 공격옵션을 보강했기에 소년가장에선 벗어났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본인이 낮은 BQ로 인해 공격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외국인 소년가장을 뛰어넘어 국대 농구의 소년가장으로
모비스 1기 시절에는 3-peat에 공헌한 준수한 외국인 선수로만 평가받았으나,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 소속팀에서 줄기차게 굴려지고 있다. 철인으로 소문난 라틀리프 마저도 혹사의 영향으로 17~18시즌을 절반정도 결장하게 되었고, 그 결과 6강에 실패하였다. 2018년 특별귀화로 라건아라는 이름을 짓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여 시즌 중 2018 아시안 게임 국대로 선발된 이후에는 김종규, 이종현, 오세근이 없는 와중에 골밑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소년가장이 되었다. 대표팀에서 혼자서 뛴다고 들을만큼 뛰어난 활약을 하고[12] 8강전에서 필리핀을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했으나 4강전에서 이란을 만나 37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하고도 라틀리프에게만 의존한 결과 대패하여 금메달 획득을 실패하였고 대표팀의 병역 특례도 좌절되었다. 결국 2018 아시안 게임 농구대표팀은 3,4위전에서 대만을 이기고 동메달에 그쳤다.
비유적 의미의 소년가장으로써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
농구단에 대한 소극적인 투자로 유명한 KT에서의 유일한 FA 잔류자로, 매경기 시원한 3점슛과 야투감각을 보여주면서 팀내 에이스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KT 팬들에게는 신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 팀의 공격과 수비의 핵심인 탓에 조성민이 해야 할 역할이 과중되어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났고, 그 결과 매해마다 부상이 누적되어 시즌 중 10경기 정도는 거르게 되는 편이다. 한편 15-16시즌에는 오용준이 SK로 떠나고, 전창진 전 감독이 본인이 꼭 살려내겠다고 선언한 이광재는 뜬금포마저 안터지는 최악의 슛컨디션을 달리고 있어서 팀 내에서 3점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슈터가 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심했던 견제가 더욱 심해져 팀의 외곽 공격이 정말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깨기위한 전략마저도 없다. 사실 언급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15-16시즌 길렌워터 못지 않은 KBL 극한직업 중 한 사람. 15-16시즌이 끝나고 FA로 김종범과 천대현이 영입되었으니 조성민이 짊어진 공수부담을 얼마나 떨쳐낼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과연 조성민은 소년가장을 탈출할 수 있을까??
어쨌든 16-17시즌 도중 팀을 탈출해서 소년가장 자리도 탈출할 줄 알았는데......LG도 김종규가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다시 소년가장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김종규가 복귀하자마자 공격밸런스가 최고조로 맞아떨어져 5연패 뒤 2연승을 하여 6라운드로 접어든 시점에서 전자랜드와 6강 경쟁을 하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후임 감독 시대로 접어든 17~18시즌 부터는 그의 양아들 사랑덕에 본의 아니게 소년가장에서 탈출하긴 했으나 시즌이 끝나고 5억원에 재계약하여 농구팬들은 이런 황당한 계약을 저지른 엘런트에게 의문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 문단의 조성민과 비슷한 느낌으로 구단의 안습한 재정상황과 빈약한 스쿼드 때문에 전천후역할을 다 수행해내면서 몸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고 있다. 특히 팀내 2, 3번의 공격 첨병이던 차바위, 김상규의 군복무 및 좋지 못한 외인 공격옵션으로 인해 정병국과 함께 공격부담이 너무 커져 가뜩이나 유리몸 소리 듣던 이미지가 더 심해져버렸다. 하지만 팀 내 국내 선수 중 실질적으로 매경기 평균 10득점이 가능한 유일한 선수이자, 유도훈 감독도 문애런, 문선형 소리를 들을 만큼 쓸놈쓸 정책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소년가장 자리를 탈출하긴 힘들어졌다.
지나치게 높은 비중은 팀의 상황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공격 부담을 줄여주어야 할 다른 선수들을 기용하여 스쿼드를 다양화시켜야 했지만 D리그 르브론이라 불릴 정도로 1군에서의 공격 역할도 어느 정도 기대가 되었던 박진수가 은퇴를 선언하고, 반쪽짜리 역할밖에 못하지만 그래도 공격부담을 덜어줄 3,4번 역할을 수행할 함준후는 이대헌과 트레이드로 인해 SK로 떠난데다가, 미드레인지 및 3점슛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어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던 한희원마저 KGC로 떠나는 바람에 오히려 15-16시즌보다 공격부담이 더 커질 위기에 봉착해있어 더욱 소년가장 역할이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16-17 신인드래프트에서 빅3 중 하나로 평가받는 강상재를 뽑는데 성공해서 공수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16-17시즌에서는 김지완과 김상규가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혹사당하는 모습이 없이 20분 내외로 출전시간을 부여받고 있다.
국내 가드, 빅맨 레전드인 두 명은 신인때부터 팀과 국대를 안거르고 전대미문의 혹사를 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두 선수에 대한 팀의 의존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에서 소년가장 취급을 받는다. 16-17시즌 기준 양동근은 FA 재계약으로 3년, 김주성도 마찬가지로 2년의 기간이 남아있는데, 이 두 선수들이 팀 내 소년가장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대체전력을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암흑기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결국 양동근이 부상당한 16-17시즌의 모비스는 함지훈이 새로운 소년가장이 되어버렸고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지만, 양동근이 합류하면서 PO권의 성적을 내고 있다.

1.1.1.6. 배구

2011년 국가 대표팀에 발탁된 이후 소속 팀과 국가 대표팀을 오가며 혹사를 당하고 있다(...). 공격 능력이 워낙 출중해 소속 팀에서 몰빵을 당하고 있는 실정.
상술한 전광인이 현대캐피탈로 이적하면서 한전의 소년가장 타이틀을 물려받았다. 18-19시즌 상황은...

1.1.1.7. 수영

우리나라에서 수영은 남녀노소 누구나 배울만큼 대중적인 스포츠지만 정작 국제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박태환이 수영계에서 영웅으로 떠오르며 수영 역사상 최초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 은메달과 동메달도 여러 개 획득했으나 도핑 검사에서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 사실이 적발되어 약물 복용자라는 불명예를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박태환 빼고는 눈에 띄는 선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다른 선수가 못한다기 보다는 박태환이 너무 뛰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다.

1.1.2. e스포츠계



1.1.2.1. 스타크래프트

비스폰 팀이었던 SG 패밀리에서[A] 투나 SG부터 시작해서 팬택 EX 시절의 이윤열은 프로리그 개근상을 받아야 할 정도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혼자 팬택 3년 먹여 살렸고, 2005년 초에는 개인 리그/프로리그 모두 결승까지 갔고 안기효가 아웃되어도 임요환 박태민 혼자 물리쳤으니 이건 뭐….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팬택 이윤열은 전체 출전의 40%를 담당했으며, 팀 전체 승수의 46%를 챙겼다. 단적인 예로 2006년 전기 리그에서 팬택이 거둔 성적은 6승 4패이며, 이 중에 5승이 3:2의 스코어였고 모두 이윤열의 하루 2승으로 챙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팀이 2007년 8월 위메이드에 인수되어 위메이드 폭스로 바뀐 후 이윤열은 당시 최고액인 3년 6억 9천만원(연봉 2억 3천만원) 계약이라는 높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 스타크래프트 2 전향을 위해 팀을 떠났으며, 이후 1년 뒤에 위메이드 폭스는 해체되었다.
비스폰 팀이었던 POS 시절[A] 팀플, 개인전은 물론이고 랜덤까지 뛰었다. 그리고 랜덤 테란으로 조용호를 불꽃 러시로 격파했다. 팀당 경기가 10경기인 시절 박성준은 50경기 넘게 출전했다. 설명이 더 필요한지? 이제동, 이영호를 뛰어넘는 단기 혹사의 레전드 of 레전드. 이고시스와의 스폰완료 후 POS 팀명으로 활동하던 팀은 2006년 3월 MBC GAME에 인수되어 MBC GAME HERO로 바뀐 후 2006년 전기리그 준우승, 후기리그 우승, 그랜드 파이널까지 우승하며 팀은 전성기를 맞게되었고 박성준은 이에따라 높은 대우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모기업인 MBC GAME의 자금난과 신인 선수들의 등장으로 활약에 비해 아쉬운 4000만원이라는 크게 삭감된 연봉을 제시받게 되고 이에 실망한 박성준은 6000만원을 제시한 SK텔레콤 T1으로 이적하면서 팬들은 게임단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었다. 그 후에도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에이스였던 김택용이 SK텔레콤 T1으로, 이재호웅진 스타즈로 이적하면서 약팀으로 전락했다가 모기업 MBC 플러스가 게임채널을 운영하는 것을 포기하고 MBC MUSIC으로의 전환이 확정되면서 MBC GAME HERO는 2011년 8월 31일 해체되었다.
비스폰 팀이었던 Plus 시절[A] 만년 하위였던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고 So1 스타리그 2005 우승을 계기로 르까프에서 팀을 인수하여 르까프 OZ 창단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르까프 OZ는 오영종과 신예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2007년 전기리그 준우승, 후기리그 우승, 그랜드 파이널까지 우승하여 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이때부터 오영종 대신 이제동이 팀의 에이스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 조정웅 감독과의 불화설에 팀이 부진에 빠지다가 오영종은 공군 ACE로 입대하였고 2010년 제대 후 화승 오즈에 복귀했으나 화승은 주전 선수들의 이탈과 부진으로 이제동 혼자 팀을 이끌던 답이 없는 상황에 있다가 복귀한 지 1년도 안된 2011년 8월 31일 화승이 게임단 운영을 포기하고[13] 팀이 해체되면서 쓸쓸하게 은퇴하였다.
그가 공군 ACE 있던 시절의 선임 테란 게이머들이 한동욱, 차재욱, 서지훈이었는데, 이들은 당시에 이미 전성기가 훨씬 지났다는 평을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민찬기가 테란 라인에서 청년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이성은, 변형태가 새로 들어오면서 상황은 많이 나아졌고 테란 라인의 에이스 자리가 이성은에게 넘어갔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3라운드에 들어서 kt 롤스터 선수들이 많이 선전해서 이제서야 가장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으나, 4라운드 들어서 KT의 연이은 부진으로 다시 소년 가장 모드로 들어섰다(…). 하지만 4라운드 마지막에 이영호가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패배함으로 대 하이트 스파키즈전에서 이영호 없이(!) 팀원들이 삼대 떡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5라운드 웅진 스타즈 전에서는 이영호 혼자 지고 팀원들이 이겨서 3:1로 승리. 그리고 신한은행 09-10 결승전에서 KT 토스의 활약과 이지훈 감독의 신의 엔트리 작렬로 KT는 이영호 원 맨 팀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었나 싶었다.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시즌 도중 박지수우정호가 각각 은퇴와 백혈병 투병을 이유로 kt 롤스터 로스터에서 빠지면서 심각한 공백이 생겼고, KT가 1, 2 라운드에서 처참한 성적을 내며 패를 거듭하면서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었고, 위너스 라운드에서 그나마 팀이 살아나면서 5라운드 끝에는 공동 2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이 될 위험은 높았다. 그리고 2011년을 기준으로 그는 20대로 들어서면서 청년 가장이 되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KT는 이영호가 청년 가장인 팀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팀원들이 활약을 하면서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결승전에서 우승했다는 거. 그리고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1 결승전에서는 이영호가 2패를 하고 정규 시즌에서 잉여라인 취급을 받던 KT 저그가 세 세트를 따냈다는 것.
그리고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1에서는 김대엽 덕분에 청년 가장을 면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2와 병행하면서 진행되는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2. 이영호뿐만 아니라 김대엽, 임정현 등의 에이스들 조차 부진에 빠졌다 살아났다 기복을 거치다 결국 정규 시즌을 7위로 마무리,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게다가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2 듀얼 이상 진출한 선수, 2012 HOT6 GSL Season 4 코드 A 이상 진출한 선수는 팀 내에서 이영호뿐이다.
르까프 시절에는 오영종이 에이스 역할을 해줬으나 2008년 공군 ACE로 입대하였고, 좋은 활약을 하던 박지수가 KT로 이적하면서 결국 우려하던 청년 가장이 되어버렸다. 화승 오즈 시절엔 혹사 수준으로 사실상 혼자서 팀을 이끌게 되었는데, 이제동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관계로 이제동 원맨팀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하였다. kt 롤스터이영호가 그랬듯이 자기만 승리하고 팀은 패배를 거듭하였다. 그나마 이제동의 뒤를 바치며 버팀목 역할을 해주던 손찬웅, 손주흥이 부진에 빠지고 위너스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하던 구성훈은 10-11 시즌에 이르러선 큰 기복을 보였다. 또 박준오가 작은 북으로 떠오르면서 희망이 보였으나 역시나 기복을 드러냈고, 일명 화승 토스라고 불리던 팀 내의 프로토스 부진이 빈약한 엔트리를 더 암울하게 만들던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렇게 홀로 팀을 이끌다 2011년 말, 화승 오즈가 해체되는 상황까지 맞이한 이제동은 본의 아니게 제8게임단[14]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염보성, 전태양 등이 있었기에 드디어 청년 가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는데… 이제동은 화승에서의 청년 가장의 명성을 제8게임단에서도 이어 나갔다. 물론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2 때에는 전태양의 포텐이 터지는 등 화승에 비하면 화려한(?) 팀 멤버들이 각성하여 골고루 활약해주었지만, 정작 제8게임단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이제동의 에결 5연승이었다. 이후 2013년 말, 이제동은 북미 지역의 Evil Geniuses에 이적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때 팀 전체가 최악의 부진을 겪으면서 청년 가장 소리도 들었다. 2라운드 들어서 허영무 등이 다소 회복했으니 다행이었으나 그런데 문제는 자신도 스막화 상태로 돌입했었다.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부터 자신도 살아나고 팀의 신예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 어느 누구도 그를 가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하이트 스파키즈 시절에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이 대부분 주전급 선수들이었으며 이명근 감독은 직무 정지를 당했고 단장은 해임돼버린 상태에서 그야말로 홀로 팀을 지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15] 그 뒤 CJ 엔투스와 합병되면서 소년 가장에서 완벽히 탈출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5라운드부터 팀의 투 펀치였던 김윤환김구현이 부진하는 바람에 모든 에결을 도맡아 하는 등 급 소년 가장 모드가 되었다. 그나마 백업카드인 신대근, 김윤중, 김성현이 있었기는 했기 때문에 이영호나 이제동급으로 가장 노릇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1에서는 이신형 자신이 급속한 테막(6전 전패)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가장 소리를 듣기는커녕 거품 소리를 들었다. 이는 시즌 2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기막힌 것은 방송 경기에서의 계속된 패배로 인해 연습실에서는 신인왕, 다승왕을 휩쓸면서 STX SouL 신흥 소년 가장에 등극한 조성호도 때려잡건만 막상 방송 경기에 나오면 자신감이 하락해서 경기를 계속 말아먹었던 것(…).

1.1.2.2. 스타크래프트 2

스타크래프트 2에 있어서 가장 대표되는 소년 가장. GSTL May 4강에서 혼자 oGs 선수 3명을 상대로 승리해 팀을 결승에 올리고 결승에서도 김동주랑 문성원이라는 손가락 안에 꼽히는 테란들을 상대로 분전했고 2011 GSTL Season 1에서는 oGs를 상대로 3:1의 스코어에서 출전해 4:3으로 역전, SlayerS와의 2차전에서도 3:1인걸 다시 재역전시켰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IM안호진한테 3:0으로 밀리는걸 출전해서 3:3까지 돌려놓기까지 했다. 게다가 온게임넷 옥션 올킬 스타리그에서도 16명 중 단 둘 뿐인 저그로 출전, 결국 혼자 남아 결승까지 갔으나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 애초에 2011 GSTL Season 1도 플레이오프, 결승전은 모두 팀원들이 해주면서 소년 가장 소리는 아주 잠깐 들었던 거고 지금은 오히려 박수호가 팀리그에서 힘을 못 쓰는 경향이 있다. 이는 MVP가 협회에 합류한 뒤 출전한 SK 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에도 유효한 상황. 다만 2014년 3월 2일 에결에서 김민철을 잡아내면서 강적 SKT T1을 격파. 오랫만에 수호신의 위용을 드러낸 바 있다.
NS호서 팀원 중 한 명이 꼭 포텐이 터지면서 멀티 킬을 하고 그 선수가 꺾이면 멀티 킬을 당한다(...). 기세를 굉장히 잘 타기 때문에 특정 선수가 기세를 타기 시작하면 굉장히 잘해서 올킬이 많이 나오지만 반대로 기세를 못 타면 올킬을 당한다. 그래서 최다 피올킬 팀... 팀의 소년 가장을 팀원들이 번갈아가면서 골고루 해주고 있다. 라는 얘기는 예전의 일. 최근에는 팀원이 고작 5명 밖에 안 되는 위기의 상황에서 정지훈의 기량에 따라 NS호서의 운명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 점차 많아 지고 있는 추세다. 이제는 팀이 해체되고 MYinsanity에 입단했으니 다 옛말이 되었지만.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2 3라운드 내내 스타2 부분에서 자기 혼자 이기고 나머지가 지는 것을 반복했다. 그래서 1라운드와 2라운드에 6~7위를 반복하는 팀에 있어야 했고 2라운드 후반에 들어서 그나마 팀이 에이스 결정전까지는 이끌어주는 덕택에 출전해서 승리, 팀을 3위까지 끌어올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정윤종과 마찬가지로 시즌 2 내내 엄청 고생을 했다. 에이스 결정전에는 감독이 다른 선수를 내보내는 등 그렇게 혹사시키진 않았지만 문제는 내보내는데 대부분 져버렸다.(...) 결국 에이스 결정전은 다시 자기 몫이 되었고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려고 용을 쓴 덕에 다승왕과 신인왕을 접수했지만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12-13 시즌에서는 김도우,[16] 변현제, 백동준과 함께 막강한 4토스 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으며, 결승전에서도 김명운을 막상막하의 접전 끝에 훌륭한 경기력으로 잡아내면서 MVP까지 수상했다. 다만 팀 해체 후 IM에 합류한 뒤부터는 존재감이 옅어져 버렸다.
FXOpen팀은 본래 고동녕이라 하여 고병재와 이동녕 투 탑을 앞세운 팀이었지만 고병재가 팀리그는 물론 GSL에서도 코드 S 32강 탈락을 계속하는 등 장기간 부진으로 인하여 팀 리그에서는 이동녕 혼자서 팀을 이끌어가는 처지... 개인 리그로 가면 더욱 처참하다. 이동녕 말고 코드 S에서 분전하는 선수가 없다. 코드 A는... 팀 리그에서 그나마 잘하고 있는 이인수나 남기웅조차 예선을 못 뚫고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시즌2 플레이오프에서부터 정윤종에게 용 2패, 어윤수에게 에결 승을 거두면서 승리한 것에서부터 낌새가 드러나더니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12-13에서는 아예 소년 가장에 등극해 버렸다. 지나치게 날빌을 질러대는 정우용과, 토막 기질이 다분한 김정우와는 달리 종족별로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어 주고 있기 때문. 그러나 5연승 이후 4연패에 늪에 빠진 동시에 팀도 4연패에 빠지면서 CJ 엔투스의 김준호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 뒤로도 2014~2016년 다승왕을 하고[17]있다. 2015년엔 한지원이 이영호와 김대엽 급으로 잘 받쳐주며 짐을 더나 싶었는데, 2016년 의 승부조작 연루 이후 팀이 폭망, 프로리그 2016 2, 3라운드에서 김준호가 에결에 가지 않고 이긴 경기는 딱 한번이다(...) 한지원은 보통 스막이 되어버렸고 나머지 세명 중 변영봉0승 클럽 가입자, 신희범은 날빌도 애매한 상황. 이재선은 그나마 낫지만 불안한건 마찬가지. 3라운드에 장민철을 영입하긴 했는데 이쪽도 주성욱을 잡아낸거 말곤 딱히 활약이 없다. 김준호와 그외 3명이 어떻게든 1승을 해서 에결에 가서 김준호가 이기는게 CJ의 승리공식(...)
SK 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이후 새롭게 떠오른 소년 가장. 2014년 기준으로 만 17세이니 정말 소년인 데다 1라운드에서는 이정훈, 조성주, 변현우가 모두 빠진 Prime을 홀로 지탱해야 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조성주진에어 그린윙스 이적 후 에결에 자주 출전하면서 소년 가장 노릇 한다지만 이쪽은 김도욱, 이병렬, 하재상, 김유진 등의 백업이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는데 Prime은 차포가 다 빠져 버렸으니... 게다가 성적도 4승 5패로 그다지 좋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 이 패배에는 황규석과의 OME 경기와 김성대의 연패를 끊어 준 경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나마 2라운드에서는 이정훈이 재합류하고 변현우 또한 출전이 예정되어 있어 부담은 덜해질 듯.[18] 그러나 2라운드 3경기에서 전승했건만 프라임의 성적은 1승 2패. 게다가 1승은 에결승까지 거두면서 2승을 챙겼기에 8승 5패로 단숨에 다승 경쟁 순위에 포함되었다. 그나마 T1전의 경우 이형섭, 라이언 비스벡이 포함된 실험적 엔트리를 안고도 에결까지 갔건만 장현우 혼자만 이긴 IM전은... 프라임 해체 후에는 그냥 스막이 되었다.

1.1.2.3. 리그 오브 레전드

LoL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대개 영원히 고통받는 XX 식으로 표현한다.

1.1.2.4. 철권 시리즈

말이 필요없는 데빌진 의 최고봉. 팀이 다 나가 떨어졌을때 대장으로 나와 역으로 관광시킨 경기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2번 이기면서 콩라인 탈출...? 자세한 건 통발러브 참고. 최근 들어서는 무릎이 통발러브와 역할을 바꾼 상태이다.
시즌 4 때부터 The Predator의 대장으로 나와 거의 혼자서 팀을 이끌듯이 했다. 또한 시즌 7 나진 제우스 팀의 대장으로 들어가 또 혼자서 로 데자뷰 팀과 나진 스페셜리스트(!)를 역올킬하면서 조 1위로 4강전 안착. 그러나 시즌 7 2위로 마감하여 결국 콩라인이 되었다!
  • 고어택
시즌 6때 더 거너스의 대장으로 나와 거의 혼자서 4강까지 끌고 갔고 심지어 3, 4위 전에서 3몬스터즈(빈창, 다살기, 미스티[19])를 올킬하면서 시즌 6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로저의 한계인지 아니면 대응법이 나온 것인지 시즌 7에서는 16강전에서 무기력하게 패배. 시즌 8에서는 예선 탈락을 하고야 말았다.

1.1.2.5. 오버워치

오버워치 소년가장의 대명사. 플레타 럭스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혼자서 팀을 이끌고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 오버워치 HOT6 APEX 시즌 4에서는 CoMa 손경우 선수도 같이 같이 고통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2017년 10월 15일 리그 서울팀으로 이적하면서 영고라인 탈출에 성공했다! 싶었는데.... 여기서도 소년가장이 됐다.
김병선과 함께 서울 다이너스티에서 고통받는 소년가장. 삐걱거리는 팀을 어떻게든 잡아 보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보스턴 업라이징, 이후 상하이 드래곤즈에서는 행복워치를 하고 있지만 CONBOX 시절에는 상단의 김병선 선수와 맞먹는 한국 오버워치계의 고통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버워치 HOT6 APEX 시즌 4에서 팀이 막장 탱커진과 힐러진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 두 선수가 분투하고 있지만 팀원 절반이 구멍인 상황에서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단행된 리빌딩에서 리베로 선수는 팀을 탈퇴하여 뉴욕 엑셀시어에 입단하면서 영고라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야플레이어는 플로리다 메이헴으로, 아프리카 프릭스 시절부터 영고라인에 있다가 메타 아테나로 이적했던 아르한은 휴스턴 아웃로즈로 이적하며 셋 다 어찌저찌 소년가장을 탈출했다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리베로는 진짜로 탈출했고, 아르한은 행방불명인데, 사야플레이어는 여전히 고통받는다는게 정설이다.
스웨덴이 FPS 강국이지만, 어째 혼자서 멱살캐리하면서 고통받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준다. 오버워치 월드컵에서도 2연속 3위를 하는 등 고통받고 있다. 심지어는 오버워치 리그에서조차 영고라인 신세.
기존 선수들을 모두 갈아엎은 뒤 컨텐더스 출신의 선수들을 영입해서 신생 밴쿠버로 거듭났으나 완벽한 폐급 탱힐진이 구성되어버려 쇼크웨이브 영입 전에는 달튼 혼자 보이스를 올뮤트하고 빡캐리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쇼크웨이브 영입 후에 과장섞어 말해서 컨텐더스에서도 중하위권 이하의 탱힐진을 딜러진 둘이서 강제캐리하며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도 3승을 수확했다.

1.1.2.5.1. 관련 문서


1.1.3. 연예계



1.1.3.1. 그룹 멤버

  • 조권(2AM) : 사실 그룹 전체가 소년가장처럼 버려진 신세였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히 팀을 먹여 살린 멤버는 깝권이다. 하지만 조권도 JYP와 결별하면서 그룹 자체가 사실상 와해되었다...
  • 김우석, 이진혁(업텐션) : 프로듀스 X 101 출연 후 본인들은 물론 그룹 업텐션의 인지도까지 크게 오르면서 2명의 개인 활동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였고, 업텐션의 활동 또한 다시 활방해졌다. 다만 이들의 개인 팬덤인 짤랑단과 브이단이 업텐션의 공식 팬덤인 허니텐과 갈등을 빚고 있어서 업텐션 완전체 활동은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짤랑단과 브이단도 서로 사이가 나쁘다.
  • 이준(엠블랙) : 엠블랙이 활동활 때 인지도가 가장 높은 멤버였고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주로 출연했다.
  • 유키스 : 동호[20]수현 : 아예 이 그룹은 활동을 하면 시점상 막내가 소속사와 그룹을 먹여 살리고 있다. 동호는 천하무적 야구단으로 팀을 알렸다면, 중간에 합류한 이준영은 더 유닛과 부암동 복수자들을 통해 그룹의 존재감을 다시 알렸다. 하지만 멤버 대부분이 소속사를 떠난 상태. 그러다가 2020년 수현이 문명특급에 출연하면서 본인과 유키스 모두의 인지도를 다시 띄우게 되었다.[21]
  • 민경훈(버즈), 이홍기(FT아일랜드), 제이(트랙스), 정용화(씨엔블루) : 이들의 공통점은 밴드의 리드보컬이라는 점. 한국의 밴드 형태의 그룹에 대해 보컬 외의 연주자들을 백 밴드 취급하는 일반인의 시선상 좋든 싫든 팀의 얼굴인 보컬이 가장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 장기하(장기하와 얼굴들) : 음악그룹에서 보컬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고 장기하가 압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룹 이름부터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 아스트로 : 차은우 : 화려한 비주얼 덕에 각종 드라마, CF, 예능 등에 출연하고 있으며 아스트로 중에서도 인지도가 가장 높은 멤버다. 사실상 차은우가 먹여살리고 있는 상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인지도가 넘사벽 수준이며 다른 멤버들은 대중들이 모르는 경우가 상당한 반면[22] 차은우는 대중들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 "아스트로는 몰라도 차은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며. 한 마디로 차은우 혼자 멱살 잡고 하드캐리한 수준이다. 이 정도면 보이그룹 버전 수지라고 볼 수 있겠다.[23]
  • AB6IX - 이대휘, 박우진 : 그룹 자체는 전웅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신이기 때문에 정식 데뷔 전부터 멤버들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들 중에서도 시즌2의 최종 프로젝트 그룹 Wanna One 경력이 있었던 이대휘와 박우진의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 CIX - 배진영 : 이미 전에 워너원으로 데뷔했던 배진영이 센터로 서 있고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아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지는 배진영을 제외하고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멤버가 없다. 이대로 간다면 배진영이 소년가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 블락비 - 지코 : 2011년~2018년 한정. 블락비에서 제일 인지도가 높고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멤버였으며 대중들 또한 블락비 하면 십중팔구 지코를 떠올렸다. 그나마 지코 다음 박경이 유명했었으나 지코에 비하면 인지도가 많이 낮았다. 지금은 그나마 박경도 많이 알려지고 피오도 예능에 많이 나와 대중적으로 알려지며 지코도 소년가장에서 벗어났다.
  • iKON - 구 B.I, BOBBY : 데뷔 전 이 둘은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데뷔 이후에도 파트도 그렇고 인지도도 이 둘에게 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지금은 비아이가 마약 문제로 탈퇴를 하였고 바비가 그룹의 소년가장이 되었다. 데뷔한 지 5년이 되가는 지금도 대중들은 아이콘 이라고 하면 바비나 비아이만 떠올린다. 다른 멤버들은 당연히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 게다가 예전에 구준회가 팬의 피드백을 무시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 라고 하여 논란을 일으킨 탓에 더욱 답이 없는 상황.
  • 골든차일드 - 최보민: 웹 드라마 에이틴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으며, 2019년 7월 5일부터 2020년 7월 17일까지 뮤직뱅크 MC를 맡았다.[24] 그 외에도 각종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면서 그룹을 먹여 살리는 소년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 SF9 - 로운 : 찬희SKY 캐슬으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로운 혼자 압도적인 활동량으로 그룹을 하드캐리했다. 오히려 개인 활동 탓에 팀 활동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정도.

1.1.3.2. 그룹 전체

  • 빅뱅 - 현재 YG 엔터테인먼트2NE1, WINNER, iKON, BLACKPINK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킬 정도로 대한민국 대표 기획사 중 한 곳이 되었지만, 그 전에 YG를 지금의 규모로 성장해 후배그룹을 양성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빅뱅이 한 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건사고가 웬만한 아이돌 그룹들보다도 많긴 해도 그래도 팬덤이 존재하며 YG 수익 대부분도 빅뱅이 차지하고 있으며 "YG=빅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2020년 기준 현재 멤버 전원 군복무를 마쳤고[25] 또 YG와 재계약해 조금씩 활동을 재개할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26] 구 막내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명예는 과거형이 되었다.
  • B.A.P - TS를 대표하는 보이그룹이자, 소속사의 어려운 사정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년가장. 하지만 TS의 처우 때문에 법정 공방까지 간 적이 있다.[27] 결국 방용국이 TS와 계약 만료 후 결별했고, 그 후 2019년 2월 18일에 해체에 이른다..
  • B1A4 - WM엔터테인먼트의 개국공신이고 회사 수입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그룹이지만 2018년 6월 30일에 멤버 2명(진영, 바로)가 재계약을 포기한데다가 2019년 1월 22일 신우의 입대 이후 주요 멤버들이 군입대를 앞두고있고 후배 보이그룹 온앤오프는 활동이 부진한 상태이다. 한편, 2018년부터는 유명 걸그룹으로 크게 떠올라 2018년 1월 비밀정원으로 데뷔 첫 1위를 차지한 오마이걸이 발매한 음반마다 승승장구하면서 소녀가장으로 자리잡았다.
  • 인피니트 - 3세대 걸그룹에서 확고한 컨셉으로 자리잡은 러블리즈와 2017년에 데뷔한 골든차일드도 있지만, 인피니트가 울림에서 가장 큰 수입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2018년부터는 멤버들의 군입대[28]가 시작되었다. 2020년 1월 성규가 만기전역, 이후 열린 콘서트 규모가 현 소속사 내에서 가장 큰 것을 볼 때 여전히 수입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 BTOB - 큐브엔터테인먼트의 잘나가던 비스트[29]포미닛이 해체하고 소속 펜타곤CLC도 띄우지못한 상황에서 댄스발라드그룹으로 떠오른 비투비가 큐브의 소년가장역할을 하고있다. 그래서 큐브에서 2018년 데뷔한 발라드 걸그룹 가을로 가는 기차의 롤모델이 비투비였다. 그나마 다행히 2018년부터 걸그룹 (여자)아이들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1위도 차지했다.
  • 세븐틴 - 2015~2017년 4월 한정. 당시 애프터스쿨은 말할 것도 없고 프리스틴은 활동이 부진했으며[30] 뉴이스트가 소속사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해외만 돌리는 탓에 한국에서 거의 잊혀졌고 그동안 세븐틴이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높여가며 소속사를 먹여 살렸었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뉴이스트 멤버들이 출연하고 황민현이 워너원 데뷔에 성공하고 뉴이스트 멤버들도 얼굴을 알리고 음방, 음원차트에서도 1위를 얻게 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로써 세븐틴의 소년가장 노릇도 끝이 났다.

1.1.3.3. 그 외

  • 런닝맨 -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예능. 2012년까지만 해도 두자릿수 시청률은 물론 19~20%를 왔다갔다하며 황금전성기를 누렸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주요 스태프가 죄다 중국으로 가 버리는 바람에 시청률은 한자릿수로 추락했고, 그 이후에 암흑기와 안정기를 왔다갔다했다. 그러다가 전소민, 양세찬을 교체하여 점차 안정기를 찾다 싶었지만 다시 하락하는 등 엄청난 부침세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런닝맨은 갤럽, L.Point 리서치 플랫폼 라임에 의한 '지난 주 재미있었던 예능 순위', 런닝맨의 주요 타깃시청층인 2049 시청률에서 꾸준히 높은 순위를 기록한 덕분에 광고단가도 꽤 비싸게 팔리고 있다. 거기다 중국, 베트남에서 각각 그 나라 버전의 런닝맨 프로 제작은 물론 런닝맨 애니매이션 제작과 런닝맨 모바일 게임까지 발매되는 등 sbs에 엄청난 수입을 안겨주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 표절논란이 일어났지만, 멤버마다 사건 사고를 끊임없이 터트렸던 옆 동네에 비해 런닝맨 멤버들이 아닌 제작자들의 사건사고였기에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런닝맨 관련 해외 버전 프로그램과 애니매이션 제작, 해외 사업 등이 많기 때문에 런닝맨을 폐지하기에는 sbs에 가져다주는 수입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표절논란이 일어난 이후에 2019년 5월 19일 방송분부터 이전 런닝맨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철민 PD가 복귀를 선언하면서 과연 런닝맨의 부흥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2. 노년 가장


위의 의미와 비슷하나 반대로 고령의 선수나 멤버가 그 팀을 먹여 살리는 상황이 일어날 때 그 캐리하는 사람을 흔히 노년 가장이라 한다.

2.1. 대표적인 노년 가장



2.1.1. 야구


  • 박용택: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팀내 최고 타자로 활약했다. 이병규가 은퇴하고 정성훈, 이진영도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베테랑 4인방에서 노년가장이 되었다.

2.1.2. 해외축구



[1] 물론 다음 해에는 전년도보다는 부진했지만 무려 261이닝이나 던졌기 때문에 소년가장이라 할 수 있다.[2] 2015시즌부터 적용된 KBO의 한시즌 경기수인 144경기로 환산하면 대략 615이닝, 그 당시 시즌 절반을 던졌다고 보면 된다(...)[3] 4번 선발등반, 1번 구원등판으로 이 중 1승은 구원승이고 1패는 완투패다.[4] 이 두 시즌 동안 완투만 총 14회, 완봉은 총 4회를 기록했다.[5] 1999 시즌부터 해태 마운드는 그야말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1999 시즌을 공친 이대진은 2000 시즌의 혹사 후유증으로 2001 시즌부터 기나긴 재활에 들어갔고 무릎부상으로 1999 시즌을 통째로 쉬었던 이강철은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으나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해태가 KIA로 바뀌기 직전인 2001년 7월말 타이거즈로 반품되었다.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던 김상진은 1998 시즌 후부터 위암을 앓다가 1999년 6월 10일 유명을 달리했고 임창용은 1998 시즌 종료 후 양준혁, 곽채진의 반대급부로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이들을 대신하여 마운드를 지킨 곽채진, 곽현희, 소소경, 오철민, 유동훈 등은 너무나 중량감이 떨어졌다. 이렇게 붕괴된 해태 말기의 마운드에서 그나마 가장 활약했던 선수가 바로 최상덕이었다.[6] 시즌 만루 상황이 4차례 있었는데 3차례 안타를 기록했고, 그 중 2개가 만루홈런이니 말 다 했을 정도.[7] 단 매우 훌륭한 클래식 스탯에 비해 세이버메트릭스적 관점에서 보면 그 공헌도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브렛 필/2015년 항목 참조.[8] 더군다나 2017년에는 중심타선이었던 최형우, 채태인과 선발투수 차우찬이 이적하고 2017시즌 이후에는 이승엽마저 은퇴하기 때문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사실상 러프와 둘이서 팀을 먹여살려야 할 판이다.[9] 이사만루2017에서도 한명재 캐스터가 "소년가장 구자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라고 한다.[10] 07/08 시즌 호나우지뉴 방출 직전, 12/13시즌, 19/20시즌~현재[11] 클럽에선 뛰어난 동료들이 어째 국대에만 오면 다 죽을 쒀대는 통에 혼자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는 수준이라는 평이 많다. 결정적으로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당시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자 온 나라가 난리가 난 것으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2] 예선 3경기에서만 100득점을 기록하였다.[A] A B C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는 팀마다 스폰서가 생겼지만 그전까지는 비스폰 팀이 대부분이었고 대부분 감독 사비나 우승 상금으로 힘들게 팀을 운영하였다.[13] 화승은 이후 제8게임단의 유니폼을 후원한 적이 있긴 하다. 문제는 질이 안 좋아서 그렇지.[14] 애초에 이 팀은 비슷한 시기에 해체된 팀의 우수 선수들을 모아서 만든 팀이다.[15] 실제로 이 당시에 신상문은 플레잉코치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했다.[16] 종족 전환은 군단의 심장으로 진행된 4라운드부터.[17] 그만큼 에이스 결정전에 많이 나왔다는 말도 된다.[18] 근데 변현우는 2라운드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19] 에디신 미스티 맞다![20] 정작 동호 본인은 자기가 대중적 인지도는 있어도 팬덤의 인기는 별로라고 한다.[21] 이준영도 여전히 활동 중이긴 하지만 이준영은 가수보다는 배우로서의 활동이 더욱 왕성하다.[22] 그래도 2020년부터는 MJ의 뮤지컬 출연 및 다섯장 활동, 문빈윤산하유닛 활동으로 다른 멤버들도 차차 인지도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23] 실제로 차은우와 수지는 비슷한 부분이 굉장히 많은데 그룹보다 개개인이 더 유명한 것, 다른 멤버들과의 인지도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비주얼로 유명세를 탄 것, 둘 다 키가 큰 것, 연기자 테크를 타고 있는 것 까지 매우 비슷하다. 단, 미쓰에이는 음악방송 1위가 거의 없으며 음원차트 상위권에는 오른적이 한번도 없는 아스트로와 달리 음원차트 1위도 여러번 해봤으며, 음악방송 1위도 여러번 경험했었다.[24] 2019 KBS 연예대상 베스트 커플상 공동수상을 하였다.[25] 탑은 2017년 의경으로 입대 후 대마초 혐의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 후 2019년 7월 6일에 소집해제, GD는 10월 26일에, 태양과 대성은 11월 10일에 전역했다.[26] 본래 2020년 4월에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로 컴백할 예정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전 세계적인 전염병 창궐로 취소 되었다.[27] 이 때문인지 2018년 4월 28일 김태송 대표의 부고가 떴을 때 정산 관련 문제를 들먹이는 댓글이 올라왔다.[28] 만기전역한 리더 성규와 아직 입대하지 않은 을 제외한 멤버 4명이 군복무 중이다. (우현, 성종은 사회복무요원)[29] 정확히는 전 소속사와 상표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2017년 2월 24일 그룹명을 하이라이트로 개명하고 어라운드어스엔터테인먼트로 둥지를 옮긴 것이다.[30] 결국 프리스틴은 소속사의 방치 끝에 해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