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로베르토 마르티네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벨기에'''}}}
{{{-2 30대



'''클럽'''
'''에버튼'''}}}
{{{-2 21대




'''위건 애슬레틱 FC 역대 감독'''
스티브 브루스
(2007~2009)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2009~2013)
'''

오언 코일
(2013)



'''Belgisch voetbalelftal'''
<colbgcolor=#3c3c3b> ''' 이름 '''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Roberto Martínez'''
''' 본명'''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몬톨리우
Roberto Martínez Montoliú
''' 출생 '''
1973년 7월 13일 (51세) /
스페인 카탈루냐지방 예이다주 노구에라구역 발라게르
''' 국적 '''
스페인
''' 신체 '''
175cm
''' 직업 '''
축구선수(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colbgcolor=#3c3c3b> ''' 선수 '''
레알 사라고사 B(1991~1993)
레알 사라고사(1993~1994)
CF 발라게르(1994~1995)
위건 애슬레틱 FC(1995~2001)
머더웰 FC(2001~2002)
월솔 FC(2002~2003)
스완지 시티 AFC(2003~2006)
체스터 시티 FC(2006~2007)
''' 감독 '''
스완지 시티 AFC(2007~2009)
'''위건 애슬레틱 FC(2009~2013)
''' 에버튼 FC(2013~2016)
'''벨기에 대표팀(2016~)'''

''' 국가대표 '''
없음
1. 개요
2. 어린 시절과 선수 시절
3. 감독 경력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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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부터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2007년 스완지 시티 AFC에서 첫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 생활을 시작했고 2009년 위건 애슬레틱 FC으로 자리를 옮겨서 잇따른 패배에도 불구하고 강팀을 연달아 잡아내고 EPL 잔류를 이끌면서 '''생존왕'''으로서 이름세를 높였다. 2013/14시즌부터 에버튼 FC의 감독을 맡게 되었지만 15/16시즌 막바지에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었다.
유로 2016 이후 벨기에 대표팀을 맡게 되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벨기에를 3위로 이끌었다.

2. 어린 시절과 선수 시절


스페인 발라게르에서 태어난 마르티네스는 자신의 고향팀이자 당시 스페인 4부리그에 속해있던 CF 발라게르[1]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9살 유스 경기를 뛰기 시작한 그는 모든 유스 아카데미를 거친 뒤, 16살이 되자 기대주라는 평가 아래 1991년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B팀이나 유스팀에서 보내던 그는 1992-93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약 40분을 뛴 것 외에는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다음 시즌 4부리그에 있던 레알 사라고사 B팀[2]을 3부리그로 승격시키는데 공헌했지만, 해당 시즌이 끝난 후 고향팀인 발라게르로 돌아오게 된다. 한 시즌 동안 심적 부담감이 덜한 발라게르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유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자신의 감독으로서의 생활과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3]
1995년, 당시 잉글랜드 4부리그 팀인 위건 구단주 데이브 웰란으로부터 오퍼를 받아 수락한 마르티네스는 잉글랜드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팀 내 득점왕에 오르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그는 여섯 시즌 동안 180경기에 출전했고 3부리그 승격과 풋볼 리그 트로피[4] 우승에도 공헌한다. 그러나 2000년을 기점으로 하향세가 찾아오게 되는데 2001년 승격한 팀에서 '방출대상자'가 되어 계약이 해지된 마르티네스는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머더웰 FC로 이적하지만 8경기밖에 선발로 출전하지 못했고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팀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계약 해지를 당하게 된다.[5]
2002년에는 운 좋게 당시 잉글랜드 2부리그에 있던 월솔로 이적하지만 단 한 경기밖에 선발 출장하지 못하며 벤치워머 신세를 면치 못했다.[6] 결국 2002-2003 시즌 도중 단기계약으로 4부리그 팀인 스완지로 이적하고 여기선 좋은 활약을 하면서 주장자리까지 꿰차지만 새 감독 케니 자켓(2015년 기준 울브스 감독)이 온 후 주전 자리에서 밀리는 아픔을 겪는다.(...) 그래도 팀 선수층이 부족해지자 로테이션 멤버로 포함되며 팀을 3부리그(리그 1) 승격시키는데 공헌했지만 다시 방출당하고, 2006-2007시즌 역시 4부리그 팀이었던 체스터 시티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여러 팀에서 뛰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고, 운까지 좋지 않던 마르티네스. 그러나 세상만사는 모르는 법...감독이 되자 큰 반전이 찾아오는데...

3. 감독 경력



3.1. 스완지 시티 AFC


2007년 2월, 스완지 시티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다름아닌 '''감독'''으로서 복귀하게 된다. 그것도 '''자신을 방출'''시켰던 케니 자켓의 후임으로! 감독 경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스완지 팬들은 그를 반겼는데 우선 팀에 대한 희망이 전무한 상태였고(...), 마르티네스는 선수 겸 감독이 불가능했기에 감독직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7] 마르티네스 본인은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으나, 체력적 한계로 인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감독직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이로서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감독에 데뷔한 그는 언론의 관심을 모은 만큼 파란을 일으키는 성적을 내는데 감독 데뷔 후 11경기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며 하위권에서 허덕이던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 근처까지 이끌며 시즌을 마쳤다.
다음 시즌인 2007-08 시즌에는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를 일으키며 팀을 3부 리그(풋볼 리그 1) 챔피언에 등극시키며 2부리그로 승격시키는데 공헌한다. 스완지가 20여년만에 2부리그로 올라온 2008-09 시즌에는 리그 초반 31경기 단 5패만을 기록할 정도로 놀라운 상승세를 이끌었고, FA컵에서는 지난 대회 챔피언이자 당시 프리미어 리그 팀인 포츠머스 FC를 2-0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후, 소속팀 선수들이 야망이 아닌 돈때문에 더 큰 클럽들로 이적하는 걸 비판한 그는 팀에 대한 애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터뷰에서는 "몰아내지 않는 한 팀에 잔류하겠다"고 이야기했으나, 스완지에서는 감독을 구하던 스코틀랜드의 강호 셀틱과 프리미어리그 팀 위건의 오퍼를 받아들였고 결국 마르티네스는 이전 구단주와 인연이 있던 위건으로 이직하게 된다. 이때 웰란 구단주는 1.5m 유로의 이적료에 3년 계약을 제시했고 "재임 기간동안 팀이 강등당하더라도 해임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엄청난 구애를 보냈다. 그러나 위건으로 이적하자 스완지 팬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분노했다. 이에 대해 마르티네스는 사과의 뜻을 보이면서 "선수로서 커리어 하이라이트를 보냈고 프리미어리그 팀이 된 위건의 감독 제의를 거절하기엔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3.2. 위건 애슬레틱 FC


2009-10시즌부터 위건의 감독이 된 마르티네스는 데뷔전인 아스톤 빌라와의 원정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기대를 받는다. 그러나 이 해의 위건은 정말 도깨비팀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는데 첼시, 리버풀, 아스날 등을 잡는 이변을 일으킨 반면 승격팀 울버햄튼에게 패했고, 3번의 대형 떡실신을 당했다. 맨유에게 2번의 5-0 패, 토트넘에게 1-9 패, 첼시에게 0-8 패. 이 중 토트넘전 패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팀이 기록한 최다골 타이인 9골[8]을 기록한 경기로 위건 팬들에게는 뼈아프고 심장까지 아픈(?) 경기였다. 다행히 16위를 기록하며 강등은 면했지만 -42라는 최악의 골득실을 기록하고 말았다.
위건이 이렇게 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밖에 없었던건 팀 내 재정이 안 좋았고 지원이 너무나 미약한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럭비 도시로 알려진 위건은 2부리그나 3부리그 팀보다도 적은 관중을 기록할 정도로 티켓 판매량이 적고 구단 예산 자체도 빈약하다.[9] 이 때문에 매 시즌 초와 겹치는 이적시장에서 타 클럽들의 관심을 받는 팀내 주전 선수들을 이적시키는 건 불가항적인 일이었고 팀내 조직력이 무너지면서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네스는 반쪽짜리 스쿼드로 팀을 프리미어 리그에 잔류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축구 팬들의 찬사를 받는다. 2011-12시즌 위건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시즌 초 8연패를 기록하고 시즌 개막(2011년 8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위건은 단 4승에 그치며 강등이 유력한 것으로 보였다. 30라운드 당시 19위에 그친 위건은 강호들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어 최하위이던 울버햄튼보다도 강등 확률이 높게 점쳐지던 상태였는데...마르티네스는 이때부터 믿을 수 없는 마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생존왕의 2011-12시즌
리버풀 - 스토크 - 첼시 - 맨유 - 아스날로 이어지는 죽음의 5연전에서 첼시전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에게 '''승리'''를 거둬 승점 12점을 얻으며 순식간에 강등권을 탈출했다. 이후 풀럼전에서 패배하자 분노한 듯, 뉴캐슬 - 블랙번 - 울버햄튼 3연전을 모두 스윕하며 시즌을 15위로 마치는 위엄을 보인다. 이때 기적에 가까운 모습을 연출한 마르티네스에게 국내 축구팬들은 베어 그릴스에서 따온 '''생존왕'''이라는 칭호를 수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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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 시즌에는 위건의 '''FA컵 우승'''을 이끌며 위건의 첫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가져옴과 동시에 UEFA 유로파 리그 출전권까지 얻는데 성공한다. 다만, 팀내 부상자들과 재정 악화로 리그에서는 지난 시즌과 달리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생존왕의 모습을 보일 수 없었고 결국 위건의 챔피언쉽으로의 강등은 막을 수 없었다. FA컵 우승 3일 후 아스날전에서 위건의 강등이 확정될때 마르티네즈 감독의 체념하는 표정은 아쉬움과 연민을 자아내는 대목.
한편 이때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맨유의 새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2013/14시즌부터 감독자리가 공석이 될 상황이던 에버튼은 마르티네스 감독을 차기 사령탑 후보로 낙점하고, 위건에게 오퍼를 넣게 된다. 위건은 당초 "보내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으나, 곧 마르티네스 감독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입장을 바꿔 에버튼의 마르티네스 감독에 대한 접근을 허락했고 마르티네스 감독은 며칠 뒤 결정을 내리게 된다.

3.3. 에버튼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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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6일(한국시간), 마르티네스는 에버튼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취임회견에서 켄라이트 구단주의 이야기에 따르면 에버튼은 차기 감독 후보로 3명을 정했었는데, 여기서 선임된게 마르티네스. 마르티네스 감독은 에버튼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인 모예스 감독에 이어 에버튼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겠다"고 이야기했다. 현지 팬들의 반응은 선임 당시에는 찬반 논란이 있었으나, 마르티네스 감독 선임 기자회견 후에는 호감으로 돌아서며 큰 지지를 보냈었다.
그후, 꿀영입과 챔피언스리그에 도전을 할 수 있는 성적을 보여주며 순항중이다. 전술도 괜찮아서 에버튼팬들 입장에서는 전임인 모예스급으로 훌륭한 감독이라는 평을 받는다. 임대위주의 영입이지만, 위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맥카시의 완전 영입이나 콜먼의 포텐폭발 베인스의 재계약등이 시너지를 내게 했다.
하지만 14/15시즌은 유로파 리그의 병행에서 오는 피로와 완전이적시킨 루카쿠의 부진 등 악재들이 생기며 리그 11위에 머물며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이때 마르티네즈는 첫 시즌때와 비슷한 전술을 유지했으나 이미 대비 준비가 된 상대 팀들에게 고전하며 무너졌다. 시즌 초에는 에버튼 팬들도 팀의 고전을 어느정도 이해하는 분위기였으나 시즌 중 중위권팀들에게 5연패를 당해버리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팬들이 늘어났다. 그래도 유로파 리그 16강 탈락 이후 막판 5연승으로 어느정도 만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약은 성공.
15/16 시즌에서도 에버튼과 마르티네스는 끔찍한 성적 부진에 빠져있다, 공격진에서는 로멜루 루카쿠가 확실한 해결사 역할을 하고 2선에 있는 선수들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다양한 공격 루트로 득점을 해도, 수비가 심각한 부진을 보이며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잘 드러난 경기가 28라운드 웨스트햄과의 경기인데, 77분까지 2:0으로 앞서다 나머지 시간에 3골을 허용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에버튼의 가장 큰 수비 문제는 공중볼 처리 미숙. 패스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전술때문에 모예스 시절 투박하지만 헤딩에 강한 마루앙 펠라이니스티븐 네이스미스 같은 선수들을 모두 팔아버렸다. 그 결과, 상대팀들은 강팀이든 약팀이든 단순한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시키기만 해도 골을 얻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경기는 리그 23라운드 웨스트 브롬위치전. 에버튼은 32차례의 슛을 날렸지만 단 한골도 넣지 못한 반면, 상대팀인 웨스트 브롬위치는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 슛 한 차례를 날린 것이 전부였는데 이게 '''경기의 결승골'''이었다. 위에서 언급된 웨스트햄전의 첫번째 실점과 두번째 실점은 모두 단순한 크로스 - 공중볼 경합 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내준 실점. 더 큰 문제는 본인도 팀 수비 문제가 안 좋은 것은 인지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마땅한 대책을 강구하거나 변화를 주지 않고 있어 실점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모예스 시절 에버튼 최대의 강점이 투박하지만 안정적인 수비 플레이 그리고 펠라이니와 팀 케이힐로 대표되는 헤딩 싸움이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
에버튼은 15/16시즌 리그 홈에서 승점 16점을 쌓는데 그쳤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리그 홈 최소 승점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1992년 이후 프리미어 리그 시대만 치면 '''구단 역사상 최소 리그 홈 승점'''이다. 또 리그 5경기가 남은 가운데, 팀의 리그 순위는 상위 10위권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진 상황이라 두 시즌 연속 11위 이하의 성적을 찍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더 최악의 문제는 핑계와 어이없는 변명으로 대표되는 인터뷰 스킬. 국내에서는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해 잘 안 알려져있으나, 영국 내에서는 루이 반 할 다음으로 비난 받는 인터뷰들을 양산하고 있다. 리그 홈 경기 부진 문제를 팬 탓으로 돌리거나, 언론과 팬들의 지적에 대해 '드레싱룸에서 나는 야유 소리를 들어보라'[10]고 반항조로 말한 것은 대표적인 최악의 인터뷰. 특히 시즌 말 레이턴 베인스가 팀의 부족한 결속력을 지적하며 팀의 부족한 케미스트리를 지적하며 투지 있는 플레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한 지역 언론 기자의 보도를 찌라시로 모욕하며 선수에게는 사과를 받아냈다'''고 말했다가 팬들과 언론에게 거센 질책을 받았다.[11] 엄청난 비판이 나왔음에도, 마르티네즈는 사과는 커녕 인생 모든 걸 다 바쳐 이기는 팀을 만들겠다는 오그라드는 대사를 날리기에 급급했다. 더 웃긴 것은 이기는 팀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2016년 3월 1일 아스톤 빌라전 이후 7주째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
부임 당시와 달리 마르티네즈를 지지하는 에버튼 팬은 매우 보기 드물어진 상태이며, 전 세계 대다수의 에버튼 팬들이 마르티네즈의 경질을 구단에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마가놈''', '''마원장'''[12] 등의 별명으로 까이고 있다.
그나마 FA컵에서 4강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였으나 반 할의 맨유에게 극장골을 내주며 패배하는 바람에 더 위태로워질 수 없을 것 같던 입지가 더 위태로워졌다(...). 중계진들이 FA컵에서 패배할 시 경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한 걸 봤을 때 짧으면 즉각 경질이고 길어야 올 시즌이 에버튼에서의 마지막일 듯.

5월 12일, 강등권 싸움을 하던 선덜랜드에게 3대0으로 패하며 선덜랜드의 잔류의 은인이 되는 모습(...)을 보였고 에버튼이 10경기에서 1승밖에 거두지 못하는 극도의 부진 끝에 결국 에버튼 감독 자리에서 경질되었다.

3.4.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그 후 8월 4일, 유로 2016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짤린 마르크 빌모츠 감독의 후임으로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이후 코칭 스태프로 티에리 앙리를 수석코치로 임명하고 본격적인 새출발을 알렸다. 국대소집을 함에 있어 부상 복귀한지 얼마 안 되는 선수들을 불러모으거나 부상 당하는 등 클럽과는 마찰이 꽤 심한 편...예비명단에 31경기 3골(!!) 넣은 '''공격수'''인 크리스티안 벤테케를 포함시켰고, 40경기 6골을 넣은 '''미드필더'''인 라자 나잉골란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란지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케빈 더브라위너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사용하는 등...[13] 도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든건지 이해가 불가능하다. 월드컵 때의 성적이 안좋으면 욕을 한 사발로 얻어먹을 것이다. 그 와중에 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14]
다만, 이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왜 마르티네즈가 3-4-3 전술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고찰을 해야 한다. 먼저, 백4 사용하기에는 기용할 만한 왼쪽 풀백이 벨기에 국대에 전혀 없다는 큰 문제가 있다. 게다가, 오른쪽 풀백인 뫼니에도 스피드나 체격은 좋지만 민첩하고 기술이 좋은 드리블러에게는 약점을 드러내는 유형이다. 그러하기에 마르티네즈는 과감하게 백3 전술로 가게 된 것.
그리고 백3에서도, 3-5-2가 아닌 3-4-3을 쓰면서 KDB를 희생을 하는 건 아자르 & 메르텐스의 존재가 크다. 아자르는 최고의 선수지만, 수비가담이 좋은 선수는 아니다. 때문에 후방에서 받쳐주는 선수가 수비에 능할 필요가 있다. 허나 안 그래도 아즈필리쿠에타와 콤비네이션에 문제가 있던 아자르가 가뜩이나 퀄리티가 아쉬운 벨기에 왼쪽 풀백과 호흡이 좋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마르티네즈는 과감히 아자르와 루카쿠, 메르텐스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서 3-4-3전술을 사용을 하게 된 것이다.[15] 기본적으로 3-5-2는 아자르의 퍼포먼스를 제한한다는 점 때문에 벨기에 국대와는 잘 맞지 않는 편이다. 왼쪽 윙/윙포워드가 재격인 선수를 세컨톱 자리에 위치시키면 사이드에서의 드리블을 통한 파괴력이 확 줄어들기 때문. 게다가 아자르는 상당히 이타적인 선수인지라 세컨톱 자리에서 뛰게 되면 사실상 공미처럼 뛸 공산이 높다. 이러면 오히려 KDB와 동선이 겹치면서 서로의 시너지가 오히려 반감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4에서 뛰어야 할 KDB의 희생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KDB는 불만이 많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도 많지만, 현실적으로 아자르와 KDB를 공존시키기는 팀에 수비적으로 부담이 가기에 현재 스쿼드를 고려해서 아자르를 살리는데 주력한 것이라고 봐도 된다.[16] 그리고 이 전술을 통해서 월드컵 예선전과 평가전에서 루카쿠는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보여주고 아자르의 폼은 국가대표에서 역대 최고의 폼을 보여주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만약, 벨기에가 4강까지 올라가게 된다면 마르티네즈의 선택은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17]
그러나 일본전에서 결국 문제점이 드러났다. 윙백으로 기용된 카라스코는 공격 흐름을 끊었고 수비 또한 계속해서 측면을 내주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의 더브라위너와 비첼이 공격과 수비를 끊임없이 오가긴 했으나 더브라위너는 상대적으로 공격 성향이 강한 선수다보니 비첼에게 수비 부담이 과중되었고, 결국 다수의 일본 미들진에게 밀리며 2골을 먹혔다. 그러면서도 수비가담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 더브라위너의 공격력이 거의 죽어버리면서 아자르 한명에게 공격을 풀어주는 역할이 과중되어 공격력 역시 반감. 결국 펠라이니와 샤들리를 투입하면서 4백으로 전술을 바꾸고서야 수비가 그나마 안정화되고, 여기에 우월한 피지컬을 이용해 일본을 몰아붙이며 역전에 성공해 탈락은 면했다.
일본전에서 전술적으로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3-4-1-2와 4-3-3을 혼용한 하이브리드 전술을 꺼내들었다.[18] 더 브라위너가 전방로 올라오면서 살아났고 비첼 옆에 펠라이니를 세워 한층 더 터프한 중원을 형성했다. 또한 부진했던 카라스코 대신 일본전에서 활약했던 나세르 샤들리를 세워 공수 양면으로 활력을 불어넣게 했다. 결국 브라질을 2:1로 이기고 벨기에를 32년만에 준결승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
21세기 이후 벨기에를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준결승에 진출시키고, 월드컵 3위를 달성하며 벨기에의 월드컵 기록을 갱신했고, 또한 전술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만큼 더 이상 그를 향한 과도한 비난은 실례가 될 것이다. 다만 그 당시 벨기에는 피파랭킹 3위에 역대급 황금멤버를 보유하며 조심스레 우승후보로도 언급되었던걸 감안하면, 3위를 기록했다고 그동안의 합리적인 비판을 무시하고 과도한 칭찬을 하는것 역시 자제해야 할 것이다.
다만 벨기에 대표팀 선수들이 부상에서 갓 복귀했거나, 부상에서 완치 되지 않은 경우에도 국가대표팀에 소집하여 풀타임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잦아, 클럽 팀 팬들에게는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 맨체스터 두 팀과 첼시가 대표적인 희생자들. 실제로 부상 복귀를 앞당기거나 풀 컨디션이 아닌 선수를 풀타임으로 돌리는 일은 당장의 경기는 이길지 몰라도 선수 생명에는 매우 좋지 않은 행동이다. 심지어 마르티네스는 월드컵, 유로 같은 국가대표팀 메이저대회 본선이 아니라 중요도가 매우 떨어지는 평가전에서 이런 짓들을 빈번히 저질렀다(...).[19]
월드컵 이후 긍정적인 성적을 거두며 네이션스리그에서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4. 기타


아내는 마더웰 시절에 만난 베스 톰슨이라는 스코틀랜드 여자로, 딸 Luella도 낳았다.
영어가 매우 유창하다. 영국에서[20] 선수 + 감독 생활 도합 22년에 가까운 시절을 보냈기에 어찌보면 유창하지 않은게 이상할 수 있긴 하다만... 인터뷰 때만 대충 영어로 뭔말 할지 생각해놓고 말하는 선수들과는 매우 다르게 프리토킹이 자유자재로 가능하며, 외국 화자들에게서 두드러지는 부분인 억양도 크게 튀지 않는다. 리버풀과 첼시 감독을 지낸 라파엘 베니테스 등 스페인어권 출신 인물들이 영어로 말할 때면 스페인어 억양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안정적.
여담이지만 마르티네즈는 경기장에 입장하면 경기 끝날 때까지 벤치에 절대 앉지 않고 항상 터치라인에 서 있는다. 그만큼 경기에 임하는 열정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제이슨 데룰로의 팬이다. 실제로 2016년 2월 리버풀에 방문한 제이슨 데룰로의 콘서트에서 '''특이한''' 좌회전 춤을 추는 것이 한 팬에게 촬영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의 성과때문에, 스페인 감독직 물망에 오르고 있다. 허나, 정작 본인은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그럴만하게, 그는 선수 커리어 대부분을 스페인이 아니라 잉글랜드에서 보낸 이. 실제로, 스페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잘 알면서 그 감독 후보군에 올려 놓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였다. 훌렌 로페테기가 경질되고 나서 레알 마드리드도 마르티네즈를 감독 후보군에 올렸으나 이번엔 '시간 낭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강한 표현까지 써가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1] 2013/14시즌 현재 스페인 4부리그에 속해있다. [2] 스페인 리그 특성상 B팀(2군팀)도 하부 리그에 참여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1992-93시즌 당시 레알 사라고사 A팀은 1부리그 상위권이었지만, B팀은 3부리그에서 4부리그로 강등당한 상태였다.[3] 매 주말마다 9살 어린이들이 축구하는걸 지도했는데, 전술이나 구체적인 플레이를 이해하기 힘든 어린 아이들이보다니 세세하게 가르치기보단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유도했다고 한다. 본인의 자서전에서 마르티네스는 "적어도 15살까지는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플레이를 하게 해야 축구선수로서의 특별함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프로감독으로서도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전술을 구사하고 유스 시스템의 성장을 강조하는 현재의 마르티네스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4] 3~4부 리그 팀들간의 컵 대회[5] 그런데 이 기간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자를 꼬셔서 결혼까지 했다.[6] 그나마 선발출전한 레딩 전에선 퇴장을 당하고 만다(...).[7] 체스터 소속이던 마르티네스는 이적시장이 닫힌 2월 감독으로 선임되었기에 선수로서 뛰는건 불가능했다. 오로지 감독으로서만 활동 가능.[8] 1994/95 시즌 맨유가 입스위치를 9:0으로 이긴 바 있다.[9] 이 때문에 에버튼과 같이 엮어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에버튼은 이적예산이 적을 뿐 주급예산은 리그 7위를 기록할 정도로 구단 운영에는 큰 지장이 없다. 반면 위건은 2012-13시즌 당시 이적과 주급예산 모두 리그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안 좋던 상황.[10] 번역 문제가 아니고 정말로 원문이 'You should hear the booing in the dressing room'이었다. 이때문에 현지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도 '도대체 드레싱 룸에서 나는 야유 소리를 듣는게 뭔 소리냐?'고 지적하면서 유머 소재로 사용할 정도.[11] 당시 베인스의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는 리버풀 에코의 그렉 오 키프 편집장. 오 키프 기자는 에버튼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보이지만 팀의 성적이나 경기력에 대해 섣불리 비판하는 것을 꺼리는 기자다. 팬들이 마르티네즈에 대해 비판과 비난을 쏟아낼 때도, 최대한 중립적인 태도로 기사를 보도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기자. 그런 기자를 마르티네즈는 '찌라시'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에버튼의 연고 지역인 리버풀의 지역 언론 대표 기자를.[12] 리그 홈 경기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원정팀에게 승점을 헌납한다는 점에서 유래된 별명.[13] 그러나 이는 뒤에 자세히 나오지만 '''벨기에 선수들의 구성상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다'''.[14] 어차피 재계약은 신임을 주기위해 한거고 월드컵 성적이 개판으로 떨어진다면 짤릴게 뻔하다.[15] 혹자는 메르텐스의 희생을 통한 공존을 말하는데, 이는 옳지 않은 지적이다. 벨기에의 3-4-3에서 3명의 공격수는 활발한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서 포워드 - 윙어로서의 스위칭이 경기 중에도 가능한 유형의 선수들이다. 루카쿠는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밑에서 오른쪽 윙포워드로 뛴 적이 있었고, 메르텐스는 원래 포지션 자체가 윙어지만 커리어 하이를 나폴리에서 스트라이커로 맞은 선수이다.[16] 여기서 왜 마르티네즈가 나잉골란을 뽑지 않은 이유 역시 알 수 있다. 사실상, 3-4-3에서 두 명의 중앙미드필더는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뎀벨레와 비첼, 펠라이니처럼 좀 더 밸런스가 후방에 쏠린 선수를 우선시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문제점이 있다면 3-4-3이라는 플랜A가 무너졌을 때 다른 유형의 선수가 필요한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나잉골란 제외로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17] 만약 나잉골란을 뽑았으면 필연적으로 중앙미드필더나 샤들리와 같은 선수가 빠지게 된다. 중앙에서 수비적인 롤인 펠라이니 & 비첼, 뎀벨레를 제외하고 나잉골란을 뽑아야 했을까?(물론, 결과론적으로는 뎀벨레가 빠져야 했으나 클럽에서의 그의 퍼포먼스가 훌륭했기에 빼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렇다고 샤들리를 빼는 것이 맞았을까? 하기에는, 샤들리 자체가 벨기에가 토너먼트 도중 경기력을 급반전시킨 마르티네즈의 낭중지추였기에 이를 비판할 수도 없다.[18] 특히, 공격라인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스위칭을 차용하였다. KDB가 센터 포워드 위치에 있고, 오히려 루카쿠가 윙포워드 위치에 있었다. 이는 과거 에버튼에서 마르티네즈가 루카쿠를 활용했을때 가끔 사용했었던 전술이다.[19] 다만 이는 지나치게 클럽 팀 입장의 서술인게, 대표팀에서 친선경기 출전은 훈련이 극히 제한된 국가대표팀 특성상 꼭 필요한 일이다. 거기다가 1년에 고작 8번 모이는데 선수의 체력을 생각해서 부르지 않으면 언제 손발을 맞추어 경기를 제대로 경기를 뛸수 있겠는가? 소집일이 극히 적어서 손발을 맞출 수 있는 날짜가 극히 제한적인데 친선경기에서 선수를 선발하지 않으면 훈련 한번 안하고 중요한 경기에 뛰게 되어 대표팀 경기력에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어차피 대부분의 혹사는 클럽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선수의 컨디션은 클럽에서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20] 심지어 잉글랜드 외에 스코틀랜드(마더웰 선수 시절), 웨일즈(스완지시티 감독 시절)등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의 모든 구성국에서 생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