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
1. 개요
고려왕조 무신정권 말기의 무관이자 문관. 본관은 문화 류씨로 이름은 '유경'이 아닌 '류경'이라 읽는다. 개국공신 류차달(柳車達)의 8대손이다.[1]
2. 상세
문신으로 김준과 모의해 최의 암살을 주도하면서 정권을 차지했다. 최의 처단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지주사(知奏事) - 좌우위 상장군(左右衛 上將軍) 직위를 받았지만 과거 최충헌 등 권신이 지주사 직위를 역임했다는 것을 의식해 사양했다. 이에 고종은 추성위사공신(推誠衛社功臣) - 우부승선(右副承宣) - 좌우위 상장군(左右衛 上將軍) 관작을 하사했다.
최의를 주살한 뒤, 권세를 이용해 재산을 엄청나게 모아 민간에선 '삼한거부(三韓巨富)'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곧 김준에 의해 밀려나고 임연이 정권을 잡자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다가 원종에게 밉보여 흑산도(黑山島)로 1차 유배를 당했다.
유경은 정권을 잡은 기간이 짧았고(1258년 3~11월), 잘하면 이 사람대에서 무신정권이 끝나고 과거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본인부터가 김준을 비롯한 무신들과 결탁한 결정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정권을 잡은 후에는 후속처리를 미흡하게 하는 바람에 실제로는 이뤄지지 못했다.
아무튼 무신정권 후기의 느슨한 분위기 덕에 실각 후에도 살아남았다. 임연은 류경을 풀어주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다른 섬으로 2차 유배를 당했다가 강도(江都)로 귀환했다.
삼별초의 난이 터졌을 때 강도에서 개경으로 가던 중 삼별초에게 붙잡혔다. 하지만 아픈 척을 해 적을 속인 뒤, 얼른 탈출해 원종을 호종했다.[2] 이후 노비 문제로 다루가치와 분쟁이 생겨 애도(哀島)로 3차 유배당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충렬왕 시대에선 정계에 제대로 복귀해 김방경을 귀양지에서 구출했고 신종, 희종, 강종, 고종 실록 편찬을 담당했다. 또 다루가치와 정화궁주 저주 사건으로 분쟁을 생겼으나 이번엔 이긴다. 제국대장공주가 궁궐을 지으려 하자 길일을 잡아야된다며 공사를 늦추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말년엔 승려 최탄의 무고에 걸려 4차로 유배당할 뻔했지만 다행히 최탄이 무고죄로 잡혀 유배당해 억울함을 면했다.
류경은 스승이자 후원자로서 제자를 키웠는데,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이 그의 직계 제자였으며 류경이 후원한 문사들이 고려 말기 정부 요직을 꿰차면서 하나의 문벌로 성장한다.
생전 치부에 능해 탐욕스러웠다는 평을 받았으나[3] 충렬왕 대에 조정 원로로서 활약을 했으며 무엇보다 인맥 형성을 잘했기에 큰 비난은 받지 않았다.
정계 거물답게 인맥이 어마어마한데 어머니가 이의방의 동생인 이린[4] 의 딸이다. 류경의 증손녀 사위는 이제현이다.[5] 제자론 해동성리학의 시조 안향이 있다.
3. 최종 관작
류경은 충렬왕 년에 치사(致仕)[6] 했다. 그의 치사 관작은 다음과 같다.
- 문산계 품계: 광정대부(匡靖大夫)[7]
- 직위: 첨의중찬(僉議中贊)[8] - 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9] - 감수국사(監修國史)[10] - 상장군(上將軍)[11] -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12] - 세자사(世子師)[13]
4. 창작물
5. 같이보기
[1] 고려사 유공권 열전 출처. 가계는 류차달 → ... → 류공권 → 류택 → 류경.[2] 원종은 류경이 모반을 일으킬 줄 알고 염려했지만 그가 곧장 본인에게 달려온 것을 보고 중서문하성의 차관인 평장사 직위에 임명한다.[3] 별명이 삼한거부였다. 그 사치스럽다는 문벌귀족, 무신 집권자들도 이런 별명이 없었다.[4] 이성계의 직계 조상이다.[5] 류경 → 경의 아들 류승 → 류승의 딸 → 류승의 외손녀.[6] 은퇴를 이른다. 다만 역임했던 관작을 명예로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은퇴이다.[7] 종2품 품계. 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였지만 원의 간섭으로 인해 광정대부로 품계명이 변형되었다.[8] 첨의부(僉議府)의 장관이다. 첨의부는 고려의 최고위 정부기관으로, 충렬왕이 중서문하성을 첨의부로 고치면서 문하시중도 첨의중찬으로 바꾸었다.[9] 대학사는 임금의 정치 자문관 역할을 하는 직위다.[10] 사관(史館)의 장관이다.[11] 고려의 최고위 무관직이다. 류경은 2군 6위 중 좌우위(左右衛)의 상장군이었다.[12] 전리사(典理司)의 장관이다. 전리사는 충렬왕이 인사관리 부서인 이부와 외교 부서인 예부를 합친 부서다.[13] 세자부 소속 직위로 세자의 스승이다. 세자사는 충렬왕이 태자태사(太子太師)를 격하시킨 직위다.[14] 정도전에서 박상충, 화정에서 백사 이항복을 맡은 배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