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지아/가족관계

 


1. 개요
2. 선대 가계
6. 마리아 엘리자베트 요제파 요한나 안토니아 (1743~1808)
7. 카를 요제프 에마누엘 요한 네포무크 안톤 프로콥 (1745–1761)
10. 마리아 요제파 가브리엘라 요한나 안토니아 안나
12. 페르디난트 카를 안톤 요제프 요한 스타니슬라스 (1754~1806)
14. 막시밀리앙 프란츠 그자비에 요제프 요한 안톤. (1756~1801)


1. 개요


16명의 자녀 중 12명이 성인으로 자랐으나, 마리아 테레지아의 편애로 남매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결혼 이후 건강이 좋지 않거나, 배우자가 일찍 세상을 뜨거나, 프랑스 혁명에 휘말려 비명에 가거나 나라를 떠나기도 하는 등 불행을 겪기도 했다.

2. 선대 가계


마리아 테레지아
카를 6세
레오폴트 1세
노이부르크의 엘레오노르
브라운슈바이크의 엘리자베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루트비히
외팅겐의 크리스티나

3. '''마리아 안나 요제파 안토니아 요한나''' (1738~1789)


차녀. 그러나 맏이인 언니 마리아 엘리자베트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사실상 장녀였다. 총명하고 성실했으나 병약하여 정략결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후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 프란츠 1세가 붕어한 이후 수녀가 되었다.

4. '''요제프 베네딕트 아우구스트 요한 안톤 미하엘 아담''' (1741~1790)


장남. 프란츠 1세 붕어 후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했다.냉정하고 시니컬한 성격이었으나 가족들에게는 따뜻했다.

5. '''마리아 크리스티나 요한나 요제파 안토니아''' (1742~1798)


4녀. 그러나 언니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 사실상 차녀였다. 모후의 가장 총애받는 딸로, 해외로 시집간 동생들과 달리 자매들 중 유일하게 연애결혼을 했다.

6. '''마리아 엘리자베트 요제파 요한나 안토니아''' (1743~1808)


5녀. 애칭은 리슬.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들 중 제일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고 한다.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부심으로 거만하고 경박했지만, 크리스티나 못지 않게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랑을 받았으며, 크리스티나와 사이가 좋았던 거의 유일한 형제. 2녀 안나의 건강이 나빠진 게 엘리자베트의 탓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크리스티나와 짜고 큰언니 안나를 따돌리고 어머니와 안나 사이를 이간질했다. 덕분에 안나와 사이가 좋았던 아말리아와도 사이가 나빴으며 결혼과 수도원행으로 헤어진 뒤에도 계속되었다. 1767년 궁정에 천연두가 퍼졌고 엘리자베트 역시 천연두에 감염됐다. 회복은 됐으나 아름다운 얼굴을 잃어버려 다른 왕실과의 혼담이 영영 깨지고 말았다. 결국 수녀가 됐으며 나중에 인스브루크 수녀원의 수녀원장이 되었다. 먼저 수녀가 된 큰언니 마리아 안나와는 화해해서 세상을 뜰 때까지 같이 살았다.

7. '''카를 요제프 에마누엘 요한 네포무크 안톤 프로콥''' (1745–1761)


차남. 마리아 테레지아와 남편 프란츠가 가장 총애하던 자식이었다. 형인 요제프가 조용하고 약간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과 달리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하고,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특히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지성을 잘 물려받았다고 생각해 자식들 중 편애해서 장남인 요제프와 라이벌이 됐고 사이도 약간 불편했다고 한다. 형인 요제프가 당연히 그를 경계했고, 자신도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고. 그러나 16세 때 천연두에 감염되어 요절했다.

8. '''마리아 아말리아 요제파 요한나 안토니아''' (1746~1804)


6녀.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들 중 가장 많은 차별과 남매간의 비교를 당해서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원수지간이었다.

9. '''페터 레오폴트 요제프''' (1747~1792)


삼남. 전근대 이전 시대에는 장남은 대를 이을 후계자이고,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차남까지는 '보험용'으로 관심을 받지만 그 이하의 아들들은 그러기 힘들었는데, 레오폴트도 3남인 탓에 성장기에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장남 요제프는 어머니의 작위를, 차남 카를은 아버지의 영지 토스카나를 물려받고, 레오폴트는 밀라노를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둘째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1765년 토스카나 대공이 되었고, 1790년 형 요제프 2세가 붕어한 후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 레오폴트 2세가 된다.

10. '''마리아 요제파 가브리엘라 요한나 안토니아 안나'''


9녀. 예쁘고 유순한 성격으로 다른 형제들과 매우 사이가 좋았고 오빠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767년 빈에 천연두가 돌았고[1] 마리아 테레지아와 함께 납골당에서 기도하고 왔으나 그 직후 마리아 요제파는 천연두에 걸렸고, 결국 사망했다.

11. '''마리아 카롤리나 루이자 요제파 요한나 안토니아''' (1752~1814)


10녀. 나폴리 왕국의 왕비가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가장 친한 언니였다.

12. 페르디난트 카를 안톤 요제프 요한 스타니슬라스 (1754~1806)


4남. 모데나 공작. 이쪽은 아버지처럼 모데나 공작령의 상속녀에게 데릴사위로 팔려(?)간다. 실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일찌감치 미래의 며느리 모데나의 베아트리스매의 눈으로 노리고 4남의 결혼 상대로 찍어놓고서는 다른 데서 못 채가게 빈의 궁정에서 놔주지 않았다고 한다.

13.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1755~1793)


11녀.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다. 원래는 혼담이 없었으나 마리아 요제파가 천연두로 세상을 떠난 후 마리아 카롤리나 대신 프랑스 왕세손과 결혼했다. 야심만만하고 드센 언니들에 비해 유순하고 얌전한 성격이었으나 최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녀들 중 가장 안습한 인물이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14. 막시밀리앙 프란츠 그자비에 요제프 요한 안톤. (1756~1801)


5남이자 막내. 쾰른 선제후대주교가 된다. 머리가 나쁜 데다 무례하고 자신의 지위[2]를 지나치게 뽐내는 성격이어서 형제들을 항상 곤란하게 했다고.

[1] 이때 마리아 테레지아와 마리아 엘리자베트가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맸으나 회복했고, 요제프 2세의 황태자비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요제파는 사망했다.[2] 신성 로마 황제인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여대공이자 헝가리-크로아티아, 보헤미아의 여왕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이자 신성 로마 황제 요제프 2세와 레오폴드 2세의 동생, 프랑스와 양시칠리아 왕비의 동생이자 본인은 선제후였던 쾰른 대주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