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야 케즈만

 

'''마테야 케즈만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2000-01 · 2002-03 · 2003-04




'''베스트팀'''





''' 세르비아의 前 축구선수 '''
'''이름'''
'''마테야 케주만
Mateja Kežman'''
'''본명'''
마테야 케주만
Матеја Кежман
'''출생'''
1979년 4월 12일 (45세)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제문
'''국적'''
세르비아 [image]
'''신체'''
182cm
'''직업'''
축구선수(스트라이커 / 은퇴)
''' 소속 '''
''' 선수 '''
FK 라드니츠키 피로트 (1996~1997)
FK 로즈니차 (1997~1998)
FK 사르티드 (1998)
'''FK 파르티잔 (1998~2000)'''
'''PSV 에인트호번 (2000~2004)'''
첼시 FC (2004~200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5~2006)
페네르바흐체 SK (2006~2009)
파리 생제르망 FC (2008-2009, 임대)
파리 생제르망 FC (2009~2010)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10, 임대)
사우스 차이나 AA (2011)
FC 바테 보리소프 (2011)
사우스 차이나 AA (2012)
'''국가대표'''
49경기 17골(세르비아-몬테네그로 / 2000~2006)
1. 개요
2. 선수 시절
3. 은퇴 이후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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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르비아의 전 축구선수로, PSV 시절에는 에레디비시에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를 받았으나, 첼시로 이적하면서 먹튀로 전략한 선수. '''첼시 이적 전까지만''' 해도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꼽혔던 선수였다.

2. 선수 시절


케즈만은 17살의 나이로 FK 라드니츠키 피로트에서 데뷔했다. 데뷔 시즌, 케즈만은 17경기에 출전해 11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을 했다. 이로 인해 케즈만은 세르비아 청소년 대표에 소집되기도 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하지만 그 이후 2년간 27경기 9골에 그치며 슬럼프에 빠지며 그저 그런 선수가 되는가 싶었다. 이때, FK 파르티잔으로 이적해 22경기 6골을 넣으며 부활을 조짐을 보였다. 99/00시즌에는 32경기 27골을 넣으며 최연소 득점왕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7경기에 출장해 6골을 넣으며 유럽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에 빅클럽들도 케즈만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이 중 에레비디지에의 명문 클럽 PSV 에인트호번에 1050만 유로에 이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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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즈만의 전성기'''
PSV로 이적한 후, 첫 시즌에 33경기 24골을 넣으며 데뷔하자마자 득점왕을 차지, 리그 우승과 리그컵을 동시에 석권하는 맹활약을 한다. 물론 이 활약을 바탕으로 국가대표에도 소집됐다. 그 이후 세 시즌 동안 득점왕을 2번을 차지하여 호나우도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주목받는 스트라이커로 떠올랐다. PSV에서의 4시즌동안 127경기 98골, 득점왕 3번을 차지, 특히 02-03시즌에는 33경기 35골,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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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로 이적하며 케즈만의 축구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2004년 여름, 500만 파운드 (한화 약 106억 원)의 이적료로 첼시로 이적한 케즈만은 PSV 시절 동료였던 아르연 로번과 함께 배트맨-로빈 조합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디디에 드록바아이두르 구드욘센에게 밀려 벤치 신세로 전락했다. 무리뉴의 전술에도 맞지 않았던 케즈만은 25경기 4골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내며 '''폭망.'''[1]
결국 한 시즌만에 방출되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하지만 케즈만의 실망스러운 모습은 여전했으며 다시 한 시즌 뒤, 터키 쉬페르리그페네르바체 SK로 이적한다. 페네르바체 이적 후에는 바닥을 찍던 폼을 회복하는 듯 했으나 끝내 부활하지 못했다.[2] 이후 케즈만은 파리 생제르망 FC,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의 클럽을 전전하다가 33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국가대표로는 2006 독일월드컵에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표로 참가하였으나 죽음의 조에[3] 편성된것도 모자라 2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한테 거친 태클을 가하여 다이렉트 퇴장을 당한다. 결국 0대6으로 졌고[4] 3차전 코트디부아르전까지 역전패를 당하며 예선에서의 1실점[5] 돌풍을 이어가지 못하고 3전 전패 2골 10실점을 기록 32개 국가중 최하위로 마친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스포츠 에이전시에 몸 담고 있다. 자국 리그의 선수들이 주 고객이며, SS 라치오의 촉망받는 미드필더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에이전트를 맡고 있기도 하다. 또한 같은 소속팀 아담 마루시치의 에이전트이기도 하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득점왕: 1999-00
  • 에레디비시 득점왕: 2000-01, 2002-03, 2003-04
  •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선수: 2002-03
  • ESM 올해의 팀: 2002-03

5. 여담


3시즌 만에 100골을 달성한 몇 안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2005년 11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s-1.2 시절에 방한하여 용산 전자상가를 방문했었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로 외국 유명인사들이 방한했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무시당할 때마다 인터넷상에서 '''추억의'''란 접두사가 붙은 채로 강제소환 당하고 있다. PSV시절에는 이영표, 박지성과도 친하게 지냈었다.
[1] 케즈만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독단적으로 영입했던 선수였기에 전술에 맞지 않았던 그를 무리뉴가 쓸리가 없었다. [2] 사실 활약이라고 해봤자 전성기의 골수에 반도 못 미친다.[3] 전통의 강호 아르헨티나, 네덜란드에 아프리카 최강 코트디부아르가 묶였다.[4] 리오넬 메시의 월드컵 데뷔골도 이 경기에서 나왔다.[5] 스페인의 라울 곤살레스에게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