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레스 사우스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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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잉글랜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6년부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덕장임과 동시에 농구, 미식축구, 골프 등 다른 스포츠의 전술을 대거 채용하는 독특한 전술가로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자국 대표팀을 4강에 진출시킨 데 이어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도 3위를 차지하는 등 잉글랜드의 메이저대회 성적을 이전보다 높이 끌어올리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대한민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 미들즈브러 FC에서 뛰던 이동국과 사제 지간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런 인연 때문인지 '남대문 감독', '대박이 할아버지' 등으로 친근하게 불리고 있다. 한편 2002 한일 월드컵 때 잉글랜드 대표팀에 선발되어 일본에 왔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 했다.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2.1.1. 클럽
1989년 크리스탈 팰리스 FC에서 데뷔, 1995년에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하였다.
2년 후에는 아스톤 빌라의 중앙 수비수로서 잉글랜드 리그컵 결승전에 출전하여 리즈 유나이티드 FC를 제압하고 우승을 달성하였다.
이것이 2004년 미들즈브러 FC에서 리그컵을 우승하기 전까지 그가 경험한 우승의 전부이다.
이후 아스톤 빌라가 부진한 성적을 거듭하자 다른 클럽에서 우승을 맛보기 위해 정식으로 구단에게 이적을 요청하였고, 결국 2001년에 미들즈브러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2004년 주장 완장을 차고 미들즈브러를 이끌며 리그컵 결승에서 볼턴 원더러스 FC에 2-1로 승리하여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2006년에는 UEFA컵 우승에 도전했으나 아쉽게 준우승했다. 이 시즌 이후, 사우스게이트는 미들즈브러의 감독이 되어 선수 생활을 끝냈다.
2.1.2. 국가대표
1995년 포르투갈과의 경기로 국가대표에 데뷔했다.
그에게 있어 자국에서 열렸던 유로 1996은 기억하기 싫은 대회이다. 당시 독일과의 4강전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으나 실축하는 바람에 잉글랜드의 결승전 진출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4]
이 때문에 국민들에게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었고, 언론에서도 "워터게이트, 화이트게이트, 사우스게이트"란 제목으로 조롱했다. 거기다 온갖 욕으로 지친 상태에서 집에 왔는데, '''어머니마저 '실축하지 말지 그랬니.' 라고 하는 바람에'''[5] 엄청난 충격을 받고 결국 비난을 못견디고 가출까지 했는데, 그제서야 국민과 언론들이 지나쳤다는 걸 알고 사우스게이트를 집으로 돌려보내야한다고 여론이 일어 다행스럽게도 귀가했다(…). 그리고 훗날 언론과 팬들이 욕한게 뻘쭘해질 정도로 잉글랜드의 이때 이 성적은 졸지에 재평가가 시급한 성적으로 바뀐다(...)[6]
1998 FIFA 월드컵에서는 3경기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은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와 접전 끝에 또 다시 승부차기로 패하고 만다.
2년 뒤 다시 유로 2000에 출전하지만, 3경기 중 단 한 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었고, 잉글랜드는 수비불안을 드러내며 1승 2패로 탈락한다.
2002 FIFA 월드컵에서도 대표팀 명단에 오르지만, 리오 퍼디난드와 솔 캠벨 등의 쟁쟁한 후배 선수들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에 주전자리에서 밀려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8강에서 잉글랜드가 브라질에 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2004년까지 국가대표 57경기에 나서 2골을 넣었다.
2.1.3. 플레이 스타일
크리스탈 팰리스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의 자리에서 뛰었으나,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 뒤로는 중앙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하여 좋은 활약을 펼치며 잉글랜드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발이 빠른 수비수는 아니었으나 그의 강점은 게임 리딩능력과 섬세한 대인 마크 능력이었으며, 이러한 강점으로 그는 유로 1996, 1998 프랑스 월드컵, 유로 2000, 2002 한일 월드컵 때까지 잉글랜드 대표 명단에도 포함되는 등 꾸준히 국가대표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2.2. 감독
2.2.1. 미들즈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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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즈브러 FC 감독 시절.
UEFA 컵 결승전 직후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떠나자 그는 보로의 감독에 취임했다. 전 시즌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전 시즌부터 맥클라렌에게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맥클라렌이 떠나자마자 바로 감독으로 선임된 것. 그런데 급하게 감독이 되어서 그런지 감독 자격증을 제대로 갖추지 못 하고 임시 자격증을 가지고 감독 데뷔를 한다.[7] 꽤나 불안한 시작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첫 시즌에 사우스게이트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미들즈브러의 당시 별명이 도깨비 팀일 정도로 성적이 매우 뒤죽박죽이던 팀인 만큼, 중상위권이 아닌 중위권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자신의 자리였던 센터백 자리에 첼시 FC에서 로베르트 후트를 영입하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먹튀로 전락한 유리몸 조나단 우드게이트를 임대 영입했다. 특히 우드게이트 영입은 우드게이트가 잘할까보다 얼마나 많이 뛸 수 있을까 팬들이 걱정했었지만 놀랍게도 우드게이트는 미들즈브러에서 상당히 많은 경기를 뛰며[8] 미들즈브러의 핵심 수비수가 되고 국가대표팀에 다시 뽑힐 정도였다. 결국 겨울 이적 시장에서 우드게이트를 완전 영입에 성공하여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메꾸는데 성공했다.[9]
그리고 대한민국의 '''이동국'''을 영입하며 화제를 일으켰다.
팀 성적이 아쉬운 상황에서 부진한 이동국을 주전으로 쓰지는 못했지만,[10]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11] 교체로 투입하는 모습을 보며 국내 네티즌들은 하라 타츠노리, 찰리 매뉴얼을 능가하는 생불이자 이 시대의 진정한 성인으로 불렀다.[12] 사실 그 이전에는 이름 때문에 '''남대문'''이라 불리곤 했다(…).
그는 모든 선수들에게 신사적이고 부드러운 태도를 가지고 대했다. 특히 코치진들이 전부 자기보다 선배들이라 오히려 자기가 굽신거렸다(…). 나쁘게 말하면 감독으로서의 카리스마, 즉 권위가 없었다.
이동국이 계약만료로 떠난 다음 해인 2008/09시즌 초반 잘나가면서 상승세를 타나 싶었는데, 이후 엄청난 하락세[13][14] 를 타며 2부리그로 강등. 그래도 스티브 깁슨 구단주는 그를 경질하지 않았다. 구단주도 과연 생불.
2009/2010시즌 2부리그에서 와신상담하며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의 진입을 다시 노렸으나, 이번에도 초반 상승세 이후로 하락세[15] 를 타며 결국 깁슨 구단주의 뚜껑을 열리게 만들어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직후 경질되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잘못된 선택이었던 듯(…).[16]
사실 사우스게이트 체제의 미들즈브러가 성적이 좋지 못 했다고만 평가하기 뭐한 게 미들즈브러는 원래 EPL과 챔피언쉽 리그를 왔다갔다하는 뒤죽박죽 성적의 팀이며 그나마 EPL에 안착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도 성적은 항상 중위권이었다. 맥클라렌이 팀을 UEFA 컵까지 끌고간 04/05 시즌에 7위를 기록했는데 이전에 미들즈브러가 EPL에서 10위 안에 들어간 시즌은 '''1950/1951 시즌이다.'''(...) 사우스게이트 체제는 19위로 강등당한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면 12위, 13위로 맥클라렌 체제의 미들즈브러와 다를 바 없는 성적을 기록했으며 팀을 안정적으로 EPL에 잔류시켰다.
2.2.2. 미들즈브러 이후
영국방송국 ITV의 2010 FIFA 월드컵 프로그램에 아일랜드의 레전드 안디 타운젠드와 함께 월드컵 유망주 몸값을 매겼는데 타운젠드가 박주영의 몸값으로 900만 파운드를 책정하자 너무 비싼 게 아니냐고 했다.
한국 유소년지도자들이 참가한 지도자 컨퍼런스에서 이동국과의 인연으로 한국을 돕고싶다라고 하며 다시 한번 생불인증을 하셨다.
2.2.3. 잉글랜드 대표팀
보로에서의 실패로 잊혀진 감독이 될 뻔했으나, 2013년 3년 계약으로 잉글랜드 U-21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4년에는 U-20 대표팀 감독을 임시로 맡기도 했다. 2016년에는 서드파티와 관련된 비리 문제로 퇴진한 샘 알라다이스를 대신해 감독 대행을 맡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잔여 경기를 지휘했고, 2016년 11월 30일 정식으로 A대표팀 감독으로 승격했다. 계약 기간은 4년으로 알려졌다.
선임 당시만 하더라도 '뭐 하나 보여준 거 없고 애송이들이나 가르치고 있던 감독에게 월드컵을 맡기냐.'라는[17][18] 비난 여론이 있었지만 갑작스런 전임 감독의 사임에도 불구하고 감독 대행으로서 스코틀랜드를 압살하고, 스페인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이며 2승 2무의 호성적을 기록한데다가, 전술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공격 전개 방식과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정식 감독으로 오르는 데 성공해 감독으로서 완전히 기사회생했다는 평가이다. 번리의 떠오르는 신성 마이클 킨을 불러들여 수비진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34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리그에서 날아다니는 저메인 데포를 다시 불러들이는 등 오직 출장 횟수와 최근 리그에서의 활약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고 있다. 또한 과거 선수 시절 국가대표 붙박이 수비수였다는 점, 젊은 감독으로서 선수들과의 소통도 원할하게 한다는 점 때문에, 선수들이 그의 정식 감독 취임에 굉장히 긍정적이었다는 후문이 있다. 괄목상대라는 사자성어에 정확히 알맞는 감독이 되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다음 월드컵 성적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덤으로 젊고 잘생긴 외모 덕분에 잉글랜드 국대의 인기도 조금 올라갔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F조 예선을 1위로 이끌었다.
# 벨기에와의 최종전을 앞둔 상황에서, 벨기에를 이기면 향후 토너먼트에 어려움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나는 오직 승리를 바라본다'''라는 말을 하였다.
선임 이후 평은 갈리고 있으나, 비교적 신선한 선수를 중용한다는 평은 받고 있다.[19] 특히 잉글랜드가 오랫동안 쓰던 4-4-2를 버리고 독특한 스타일의 3백[20] 을 세우면서 생각보다 안정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운영이 괜찮다는 평가가 월드컵을 통해 나오고 있다.[21]
그리고 결국 16강에서는 콜롬비아를 상대로 '''잉글랜드의 월드컵 통산 첫 승부차기 승리'''라는 업적을 달성하면서 평가가 올라가고 있다. 사우스게이트 본인이 선수 시절에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승부차기를 실축한 적이 있어서인지,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한다.[22] 이어진 8강전에서도 강력한 수비를 보여주는 스웨덴을 상대로 깔끔한 경기력으로 2득점을 거두고 승리하면서 바이킹 징크스를 해소했으며 28년 만에 대표팀을 4강에 올렸다.
월드컵 준비기간 동안 축구 경기는 거의 보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 NBA나 NFL 등을 관전하며[23] 타종목의 데드 볼 시츄에이션 상황에 특화된 전술을 축구에 융합하는 연구를 했다는 모양이다. 그 결과가 그동안 뻥글랜드라는 오명을 벗어던지는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골 결정력. 2018년 월드컵 8강 경기까지 잉글랜드의 총 득점인 11골 중 8골(PK 포함)이 세트피스로 만들어낸 골이다. 세트피스로 밖에 골을 넣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으나, 사우스게이트 본인은 '세트피스 이전에 상대가 우리를 파울로 끊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줬으면 한다'라고.[24]
그 후 비록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는 유효 슈팅을 한 개밖에 기록하지 못하는 집중력을 보이며 연장 접전 끝에 1-2로 석패하여 고배를 마셨지만, 잉글랜드의 팬들은 28년만의 성과를 보고 수고했다면서 경기를 마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014년 월드컵과 유로 2016 이후 침체되었던 잉글랜드의 분위기를 반전 시킨 점에서라도 국가대표 감독직은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8년 10월 4일, 2022년까지 4년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이후에도 잉글랜드를 2018-19 유럽 네이션스 리그 4강 진출에도 성공하고, 유로 2020 예선에서 7승 1패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에 성공하는 등 훌륭하게 팀을 이끌고 있다. 유로 1996 4강 이후 유로 2016 16강 탈락까지 무려 20년 가까이 침체를 겪어온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서는 환골탈태에 성공한 셈.
하지만 2020년에 치뤄진 2020-21 유럽 네이션스리그에서는 부진에 시달렸다. 5경기 동안 2개의 PK골 포함 3골 밖에 넣지 못하는 답답한 경기가 이어졌고 결국 덴마크전과 벨기에전 연속적인 패배 이후 잉글랜드 팬들은 매우 분노하며 감독 교체를 요구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COVID-19로 인해 프리시즌이 짧아지고 그에 따라 선수들이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부족해진 나머지 다른 지역의 리그들은 교체 카드 수를 5장으로 그대로 유지했는데, FA가 유일하게 2020-21 시즌에도 리그 교체 카드 3장 환원을 고집한 영향도 있다. 이에 대해서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이 '''이러한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 결국 힘들어지는 건 사우스게이트 감독 아닌가'''라고 할정도. 실제로 이 여파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대부분의 팀들이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네이션스리그 내내 대표팀의 경기 외적 잡음이 역대 메이저 대회 중 가장 심하기도 했다.
3. 이야깃거리
- 잉글랜드 대표팀의 A매치에는 보통 포멀한 3피스[25] 수트 차림으로 등장하는데, 부임 이후 월드컵에서의 호성적으로 인기가 생기자 잉글랜드에서 사우스게이트를 모방한 3피스 수트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베스트(조끼)의 판매량이 3배 이상 올라버렸다고.
- 월드컵 본선 도중 조깅을 하다가 어깨가 탈구되는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본인의 10km 최단 기록을 만들어보려다 넘어졌다는 모양(…). 깁스를 한채 미팅에 등장하자 선수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라고 경악했다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다들 웃겨 죽을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고..
- 리그 경기에서 충돌을 원인으로 라힘 스털링이 조 고메즈의 목을 잡고 눈 주변에 찰과상을 입히며 싸움을 하자 스털링을 명단 제외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후 고메즈의 부탁으로 스털링을 몬테네그로 전에서만 빼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는 리오 퍼디난드 등으로부터 괜히 사건을 더 키웠다며 비판을 받았지만[26] 팬들은 국대의 기강을 확실히 잡으려고 한다며 호평을 했다. 이전까지 잉글랜드 국대가 선수들에 비해 성적이 안 좋았던 것이 선수들이 리그 내에서의 라이벌 감정을 국대에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선수들 간에 화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27] 생각하면 사우스게이트의 결단을 나쁘게만 보기 어렵다.
- 실제로 축구외에도 많은 구기종목의 스포츠를 전술로 참고하는데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농구를 직접 눈으로 보며 잉글랜드의 세트피스를 격상 시켰다. 그결과 국대에서 좋은 세트피스 효과를 보여줌으로써 잉글랜드 국가대표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이러한 사우스게이트의 세트피스 전략은 다른 구기종목의 전술이나 움직임을 축구에도 접목시켜 성적을 낼수 있다는것을 증명 하였다.
4. 둘러보기
[1] 2019년 수훈, 4등급 대영제국 훈장 Offic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2] 센터백[3] 중앙 미드필더[4] 후술되어있지만 이 때의 경험이 감독이 된 이후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콜롬비아와의 16강전 당시 승부차기를 준비할 때 많은 자극제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1번 선수부터 23번 선수까지 사전에 미리 다 정해두고 준비시켰을 정도라고. 그리고 그 결과는 잉글랜드의 월드컵 사상 첫 승부차기 승리라는 결실로 돌아왔다.[5] 가족마저 그러면 되나 싶지만 당시엔 가족마저도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6]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이전까지 잉글랜드가 거둔 메이저 대회에서의 마지막 4강이다. 그 오르지 못한 고지를 자신이 감독으로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 멋지게 설욕한다. 추가로 그 때 아픔을 준 독일은 이동국의 후배들한테 처참하게 멍석말이를 당하는 수모를 당한 건 덤.[7] 다행이도 자격증은 1년 뒤에 취득한다.[8] 부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장기 부상은 없었다.[9] 이후, 우드게이트는 다음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하는데 이 때, 우드게이트는 주전 센터백이 되었고 칼링컵에서 첼시를 무너뜨리는 결승골로 팀의 컵 우승에 기여하며 완전히 부활하는 듯 했지만 유리몸이 다시 재발하여 결국 후보로 내려갔고 미들즈브러도 급격히 수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10] 이 시기에 미들즈브러의 투 톱인 마크 비두카 - 야쿠부 조합이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이동국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11] 사실 사우스게이트가 영입하려했던 이동국은 십자인대 부상 전의 이동국이다. 부상 전 절정의 경기력을 보이던 이동국이라면 충분히 매력있는 선수였다. 십자인대 부상이 운동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데 이동국은 부상 이후 경기 감각도 찾지 못한 채 급히 진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예를 찾아도 마이클 오언, 라다멜 팔카오 같은 최정상급 선수들조차 이 부상 이후 끝내 부상 전 기량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모습만을 보였을 정도의 치명적인 부상이다. 이동국 역시 당장 K리그를 복귀하고도 두 시즌 가까이 이전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최강희 감독을 만나고 나서야 이전 기량을 어느 정도 찾은 모습을 보였다. [12] 이후에도 한국 기자를 만나면 이동국 잘 있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기량 회복해서 잘 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분명 그럴 줄 알았다며 기뻐했다고. 참고로 이동국 방출 결정 당시 혼자서 끝까지 방출에 반대하였으며, 방출 강행 시에는 본인도 감독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13] 11월 9일 아스톤 빌라 원정에서 승리한 이후 이듬해 2월 28일 리버풀 FC와의 홈 경기까지 리그 14경기 무승행진을 했는데 그것도 6무 8패였다.[14] 비두카와 야쿠부의 이적 이후 고민덩어리였던 공격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팀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인 무려 1,270만 파운드'''를 들여 영입한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 출신 스트라이커 알폰소 알베스가 리그 4골에 그치며 제대로 먹튀짓을 했다.(...) 당시에 구단 서랍속 동전까지 닥닥 긁어모아 샀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로 팀의 운명을 걸고 행한 영입이었다. [15] 초반 상승세를 주도한 툰차이 산리와 로베르트 후트가 이적마감 직전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며 생긴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16] 후임 감독으로 셀틱 FC에서 명장이었던 고든 스트라칸이 왔으나 기존 선수들을 이적시키고 SPL 출신 선수들로 채워넣다가 막장성적을 찍으며 물러나야 했다.[17]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연령별 대표팀에서 유소년 선수들을 오랜 기간 지도한 것이 결국 성인 국가대표팀의 세대 교체를 주도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애쉴리 콜 - 레이턴 베인스의 레프트백 계보를 이을 선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애쉴리 영을 그럭저럭 쓸만한 상태로 활용하고 있으며, 존 스톤스, 해리 매과이어, 키어런 트리피어, 제시 린가드, 조던 픽포드 등 러시아 월드컵에서 처음 주역이 된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던 것은 사우스게이트의 경력이 도움이 되었다 볼 수 있다.[18] 그리고 베인스를 이을 레프트백은 네이션스리그에서 벤 칠웰을 국대에 뽑으면서 그를 레프트백 후계자로 쓸 생각인 듯 하다.[19] 러시아 월드컵에 나선 잉글랜드 대표팀은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으로 이루어져 있는 매우 젊은 팀이다[20] 혹자들은 3-3-2-2나 3-1-4-2로 부르는 포메이션. 3-5-2의 변형 포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21] 다만, 3백은 임시로 쓸 생각이었는지 네이션스리그에서는 4-3-3 전술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22] 여태까지 잉글랜드 국대는 승부차기에 돌입하면 자신이 차겠다는 선수를 내보내는 방식이었으나, 사우스게이트의 잉글랜드 국대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감독이 직접 지정한 승부차기 키커들이 승부차기에 나섰다는 모양.[23] 슈퍼볼 52도 직관을 다녀왔다고 하는데, BBC에서 중계도중 스튜디오에 찾아오기도 했다. [24] 사실 오심이나 여러 페이크 전술로 파울을 못 따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도 대단하다. 다만 필드골이 적다는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25] 재킷, 바지, 조끼를 모두 갖춰 입는 형식[26] 다만 퍼디난드는 박지성에게서 똥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건 정말 좋은 문화라고 말할 정도로 구식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27] 데이비드 베컴, 프랭크 램파드, 리오 퍼디난드, 스티븐 제라드, 존 테리 등 당시 잉글랜드 국대 내에 선수들을 아우를 수 있는 주장감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화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문제가 컸다. 국대에서 라이벌 팀 선수들끼리는 말도 안 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고, 심지어는 각 소속팀별로 식사를 따로 하는 추태를 벌였다는 것이 밝혀졌을 정도이니. 비슷하게 지역 감정이 심했던 스페인 국대가 카를레스 푸욜과 이케르 카시야스의 적극적인 중재로 어떻게든 화합을 이루자 성적이 급격히 상승한 것과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