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1. 소개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 선대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1세와 구분하기 위해 Maximilian I Joseph라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이에른을 크게 중흥시킨 군주다.
프랑스 혁명기와 나폴레옹 전쟁기의 혼란의 와중에서 시의적절하게 처신하며 손쉽게 바이에른의 국력을 크게 강화했다. 영토를 확장했으며 바이에른은 왕국으로 격상되었고 본인도 초대 국왕이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바이에른은 독일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이은 세 번째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다.[1]
2. 생애
1799년 바이에른 선제후로 즉위했다. 그가 선제후로 즉위하기 전에 바이에른은 반프랑스 동맹에 가입해 있었으나,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전유럽을 휩쓸자 막시밀리안은 프랑스에 쉽게 굴복하고 오히려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이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승승장구하자 바이에른은 여기에 숟가락을 얹으며 손쉽게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승전에 기여한 공으로 마침내 바이에른은 선제후국에서 왕국으로 승격되었고, 막시밀리안 1세는 1806년 초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러시아 원정 이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막시밀리안 1세는 재빨리 나폴레옹을 버리고 반프랑스 동맹에 가세했다. 덕분에 빈 회의에서 바이에른은 나폴레옹 전쟁기에 획득한 영토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빈 체제가 들어서면 보수주의가 유럽을 휩쓸게 되지만 시대흐름을 읽는 눈이 탁월했던 막시밀리안 1세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헌법과 의회를 수립했다.
3. 기타
여담으로 이 사람은 왕세자 시절에 무너진 유리제조업자의 집의 잔해에서 친히 구조작업에 나섰다가 한 소년을 구출하였는데, 그 소년이 고아이면서 어린 나이에 가혹한 노동에 혹사를 당해왔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한 나머지, 직접 숙식과 교육비를 지원해주었다가, 그가 성인으로 성장하자 바이에른 왕립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취직을 시켜준 바 있었다. 막시밀리안 왕이 구출했던 이 소년이 바로 햇빛의 연속 스펙트럼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검은 선인 프라운호퍼 선을 발견한 물리학자인 요제프 프라운호퍼다.[2] 또한, 오늘날 세계적인 축제로 꼽히는 옥토버페스트를 최초로 연 왕이기도 하다.
4. 자녀
[1] 물론 이 전에도 바이에른은 독일 내에선 굉장히 강한 국가였다. 그러나 이 전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과 동군연합을 이루던 작센 선제후국, 대영제국과 동군연합을 이루던 하노버 선제후국이 있었기에 완벽하게 세 번째라고 말하기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2] 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2014년판에서 언급되는 내용이다. 참고로 프라운호퍼는 어릴 적에 가혹한 중노동에 시달린 일의 후유증으로 인해 고작 39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3] 막시밀리안 2세, 오톤 1세 등[4]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비 조제핀, 브라질의 황후 아멜리 등[5] 알베르트, 게오르크 등[6] 프란츠 2세의 3남이자 페르디난도 1세의 외손자이다.[7] 프란츠 요제프 1세, 막시밀리아노 1세 등[8] 오스트리아의 황후이자 헝가리의 왕비 엘리자베트, 양시칠리아 왕국의 왕비 마리 조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