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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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의 2인자격인 왕국이었으며 수도는 뮌헨이었다. 비텔스바흐 왕가가 통치했다. 1910년 기준으로 면적 75,865 km², 인구 652만 가량이었다. 오늘날 독일 '''바이에른'''주의 모태가 되는 왕국이다.[1]
2. 약사
바이에른은 중세 시절 부터 독일의 5대 공국의 하나였던 유서 깊은 공국이었다. 이후 선제후국 중 하나가 되었다. 원래도 독일 내에서 위세가 큰 공국 중 하나였지만 나폴레옹 전쟁기에 나폴레옹에게 줄을 잘서서 주변 팔츠 공국 등을 흡수하며 더욱 영토를 확장했고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하며 유럽을 평정한 나폴레옹이 협력해 준 바이에른, 작센, 뷔르템베르크 3개의 공국을 1806년 왕국으로 승격시켜줬다.[2]
나폴레옹 전쟁 후 바이에른 왕국은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에 이은 3번째 국가가 되었다. 이후 대독일주의를 지지하며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의 편에 섰으나, 오스트리아가 패전하면서 영향력이 크게 축소하여 결국 1871년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독일 제국에 가맹했다.
그래도 독일 제국에서 프로이센에 이어 두번째로 큰 왕국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폭넓은 자율권과 자치권을 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이에른 사람들은 모든 게 프로이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불만이 많았다.[3]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한때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곧 바이에른 자유주(Freistaat Bayern)가 되었고, 이 이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 이모저모
바이에른 왕국은 독일 제국 성립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왕국의 군대를 육성하고 보유할 수 있도록 하여 평시 정규군으로 바이에른 1군단~3군단을 보유하고 있었다.[4] 아돌프 히틀러가 제 1차 세계대전 때 바이에른 왕국군에 들어가 참전한 것도 유명한 이야기.
4. 왕사(王史)
-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 (1806-1825) - 바이에른 선제후에서 왕으로 승격
- 루트비히 1세 (1825-1848) - 비교적 명군이었으나 여배우 롤라 몬테즈(Lola Montez)와의 스캔들로 큰 비난을 받고 양위함.
- 막시밀리안 2세 (1848-1864)
- 루트비히 2세 (1864-1886) -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은 바로 그 궁전덕후.
- 오토 (1886-1913) - 형 루트비히 2세처럼 정신질환이 있어 폐위되어 1916년 죽었다. 위의 두 왕 시기에 실권은 이들의 숙부인 루이트폴트 (Luitpold) 공에게 있었다.[5]
- 루트비히 3세 (1913-1918) - 루트비히 1세의 손자이며 루트비히 2세 시대부터 섭정이었던 루이트폴트 공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오토 1세의 섭정직을 이었다가 왕위를 빼앗아[6] 즉위했지만, 망국군주가 된다..
[1] 바이에른 왕국의 영토는 오늘날 바이에른주 영역 대부분과 라인란트팔츠주의 일부분(팔츠 지역)을 합친 영역이다. 단, 현재는 바이에른주에 속하는 코부르크 지역은 원래 바이에른 왕국이 아닌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영토였다.[2] 물론 이는 신성 로마 제국 내 유일한 제국인 오스트리아 제국과 유일한 왕국인 프로이센 왕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3] 이런 특징은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바이에른 왕국의 후손격인 바이에른주는 독일 내 다른 연방주들과 달리 고도의 자율권을 보장받고, 거의 별개의 독립국 수준으로 지역색이 강하다. 과거 프로이센에 속하던 연방주들과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덤.[4] 다른 제후국들의 군대는 편제상 독일 제국군에 흡수되었다. 작센 왕국군은 제국군 12군단, 뷔르템베르크군은 13군단, 바덴군은 14군단으로 운용.[5] 참고로 루이트폴트 공은 자신의 조카들이 정신적으로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폐위될 정도로 정신질환이 심각한 것은 아니라며 변호한 바 있다.[6] 국왕이 10년 이상 섭정없이 국사행위가 불가능할 시, 섭정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의 헌법 개정을 통해 즉위. 폐위된 오토는 왕으로써의 예우는 그대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