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용왕이 하는 일!)
1. 개요
용왕이 하는 일!의 등장인물.노쇠를 모른다.
느슨해지지도 않는다.
누구보다 먼저, 누구도 본 적 없는 경지에 선 신동은,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그 경험치를 힘으로 바꿔, 항상 최강으로서 존재해 왔다.
대부분의 신동은 성장하면 평범한 인간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한 신의 아이는......무엇이 될 것인가?
'''신동은────"신"이 된다.'''
'''현 세계관 최강자이자 먼치킨이며 최종 보스'''. 신동(神童)으로 태어나 신(神)이 된 남자.
역대 세 번째 중학생 프로기사로 데뷔해[6] 몇 십년이 지난 현재까지 최정상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초절정의 고수이자 살아있는 전설. '''영세 6관'''겸 '''19세 명인''', '''유일무이한 한해 7대 타이틀 동시 석권(연간 그랜드슬램) 기록 보유자'''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대로 '''7대 타이틀을 통산 99기 획득'''했고 통산 타이틀전 도전 혹은 방어 참여횟수 131회, 7대 타이틀을 제외한 기타 기전 우승 44회 등 만화에나 나올법한 전설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어 '''자타공인 일본 쇼기계 No.01'''으로 불리고 있다. 1500년 쇼기 역사에서 가장 강한 기사로 이야기되고 있으며,[7] 19세에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로 단 한번도 타이틀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고. 그를 존경함과 동시에 반드시 뛰어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운 주인공 쿠즈류 야이치는 천운이 따라준 덕분에 갑툭튀로 용왕의 자리에 있으며, 아직까진 명인의 실력에 비빌만한 실력은 안된다고 인정하고 있는 수준.[8][9]
본명은 불명이며 작중에선 '''명인(名人)'''으로만 불린다. 특이하게 안경을 썼다는 것 외엔 의도적으로 외견에 대해 잘 언급되지 않는데, 원작에선 위의 일러스트처럼 뒷모습이 나오는게 전부.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를 준수하여 코위로는 얼굴이 안나오는 연출을 사용했다. 아마도 외모 묘사를 피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캐릭터성 자체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설정인듯. 용왕전 4국 연장전에서 문득 야이치가 명인의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외모에 대한 묘사가 약간 나오는데, 길어진 대국 탓에 초췌해진 인상(거칠어진 호흡, 자라난 수염)임을 인식하는 게 전부. 후에 설정화를 통해 얼굴이 100% 공개 되었는데 중년 꽃미남이었으며, 애니메이션에선 이 설정화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얼굴이 12화에 자세히 나온다. 또한 직접하는 대사도 거의 없다시피해서 5권의 용왕전 4국후의 인터뷰가 현재까지 최초이자 최후의 대사이며, 이외엔 명인의 말을 야이치가 듣고 ~라고 한다는 식. 애니에선 3국째 한숨 소리로 일단 최초 대사(?)가 나온다. 이후 4국째 미소 지을 때 숨소리와 투료할 때의 "졌습니다."로 끝. 인터뷰가 삭제돼서 저 세 개가 끝이다.
쇼기에 대해서 미스터리한 말들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심오한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아 쇼기기사들의 오래된 연구거리가 되기도 했다. 특히 작중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어록으로 ''''타보외통이 없으면 선수필승''''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고민을 통해서 야이치가 용왕전 4국에서 최후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0] 단 츠키미츠 명인에게 결국에 승리를 거두어 연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이후에, 자신의 말이 의도와 벗어나게 해석되는 걸 경계해 이후 명언들을 남기지 않는다고.
이런 인간을 초월한 듯한 묘사와 설정과 달리 5권에서의 언급에 따르면 슬하에 딸이 둘 있고 쇼기관련으로 일이 없을땐 집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포켓몬 고를 하는 평범한 아저씨라고 한다. 또한 대국 중 결정적인 수를 두기 전엔 오른손이 떨리는 버릇이 있다고.[11]
2. 작중 행적
1권부터 틈틈이 언급은 됐지만 정식 첫등장은 4권. 명인 & 옥좌 & 반왕 타이틀을 보유한 3관왕이였는데, 시노쿠보 七단이 가지고 있던 기제(棋帝) 타이틀을 탈취해 '''4관왕'''에 올랐다. 작중 최강자답게 그 존재감이 엄청나 배짱 두둑하기로 소문난 오이시 미츠루도 두려워할 정도이며,[12] 몰이비차 승률이 오이시 같은 순수 몰이비차 파 기사들보다 높을 정도로 강력하다.
3권에서 쇼기 연구를 함께 하는 파트너인 나타기리 진과 함께[13] 싱글벙글 중비차를 누를 전법을 만들어냈다는 언급이 나오며 현 용왕인 야이치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작중 공인 노력왕인 나타기리와 함께 순수 연구에만 1,000시간을 할애했을 정도. 그리고 용왕전 도전자 결정전 3번기에서 차기 명인감으로 불리는 칸나베 아유무를 가볍게 누르고 도전자로 결정, 5권부터 야이치와 용왕전 7번기 승부에 들어간다.
용왕전 1국에서 명인은 야이치의 주전법인 한수 버리기 각교환을 사용했다. 쇼기기사 100명에게 물어보면 모두가 야이치가 유리하다고 할 국면이었지만, 이 국면 자체가 명인이 장군까지의 수를 읽고 만든 것이었던지라 패배했다.[14] 2국에서는 연구할 시간도 얼마 없었고, 야이치도 멘붕해버렸던지라 뭐라 할말이 없는 시시한 대국이었다. 3국에서는 둘 모두 1분 쇼기까지 갈 접전이었고, 야이치가 페이스를 잡았지만 명인의 묘수에 천일수를 이용한 시간벌이를[15] 하려다가 연속 장군의 천일수를 눈치채지 못해 당황해 악수를 두고[16] 패배하게 되었다.[17] 그런데 멘붕에 빠진 야이치가 제정신을 차리고 각성하여[18] 제4국에서 실전에서 전력을 다해 임하게 되었고 최후의 심판 문제가[19] 재현되어 명인의 요청으로 대국이 중단, 입회인 자격으로 참관중이던 츠키미츠 세이이치 회장의 중재로 이번 대국은 무효로 돌리고 연장전 성격의 재대국까지 들어가게 된다.
연장전에서도 야이치는 제한시간을 전부 써서 1분 쇼기를 두는 상태 / 명인은 몇 분 정도 여유 시간을 남겨둔터라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야이치가 장고 끝에 내놓은 수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니 야이치는 여기까지인가 하고 명인이 다음 수를 두면 투료하자며 반 포기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 명인이 물을 마시기 위해 1분30초 가량을 쓰자 그동안 부족했던 수읽기 시간을 확보, 역전의 기회를 발견해 후반을 잘 이끌며 버텼고 이후에 체력적 한계에 다다른 명인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패하고 말았다.[20][21]
이후 용왕전 4국 종료뒤에 가진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대국에 관한 이야기보단 자신의 국민영예상 수상 같은 세속적인 질문 공세를 펼치자 불쾌해하며 "쿠즈류 용왕은 그 누구보다 강한 기사이며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승리를 장담 못하는 상대이다."라며 같은 최정상급 기사이자 호적수로서 진지하게 대국하고 싶다 + 폄하하지 말아달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4국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해 기세가 오른 야이치가 3연속으로 승리, 명인은 리버스 스윕 패배를 당해 용왕 타이틀 탈취에 실패했다. 용왕전 종료후 왜 야이치의 전법을 들고 나왔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명인은 쇼기를 비롯한 보드 게임의 최대 명제인 '''양쪽이 최선의 수를 뒀을 때 이기는 것은 선수인가 후수인가'''에 대한 답[22] 을 낼 상대로 '''야이치'''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며 이유를 언급했다.[23] 여하턴간에 첫 대결에선 야이치에게 패했지만, 그의 최종 보스로서의 위상은 전혀 흔들림 없으니 추후의 재등장이 기대되는 인물. 내년도 용왕전을 비롯해 다른 타이틀전은 물론이고 기전은 많다.
한참동안 등장이 없다 9권에서 간접적으로 행적이 언급되는데, 아이치현에서 명인전 제2국을 치루는 중이라고 한다.[24]
11권 시점에선 명인위 방어에 성공함과 동시에 타이틀 획득 통산 100기란 대위업을 달성한다. 그리고 일본정부에서 명인의 타이틀 방어가 확정된 날에 국민영예상 시상을 강행할 뜻을 천명하였는데,[25] 이런 세속적인 명예욕이 희박한 명인은 당연히 질색하였지만 츠키미츠 회장의 간곡한 설득 때문에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고 한다. 추후 진행된 인터뷰를 볼때에 현재 자살미수까지한 긴코의 상황을 전해듣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26] 이 국민영예상 시상 인터뷰에서 장기소프트와 싸워볼지를 묻는 질문에 그것에도 흥미가 있지만 자기가 가장 싸워보고 싶은 상대는 '''여성 프로기사'''[27] 라고 대답함과 동시에, 여성 프로기사는 틀림없이 탄생할거라는 코멘트를 했다. 여자로서 프로기사가 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세세히 열거하며,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온 사람의 장기는 누구보다 강할 것이라고 말했다.[28] 를 남겨 좌절감에 빠져있던 소라 긴코를 다시 일으켜세우는 것에 크게 공헌하였다.
12권에선 야이치와 제위 타이틀 도전자 자리를 놓고 진검승부를 벌였으나 또 다시 패한다. 대국장에서 물러나면서 일전의 인터뷰로 긴코를 격려한 일을 두고 감사했다고 말하는 야이치를 말없이 격려를 하는데, 두번이나 야이치에게 패한것 때문에 주변에선 명인의 위세가 떨어져 가는거 아니냐는 말과 함께 조만간 쇼기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한 연구에 들어갈거란 소문이 돌기도 한다.[29] 그리고 감상전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그 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재능의 수치화를 시도했다는 오키토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인물에 대해 뜸을 들이자 쿠구이가 대번에 명인인지를 묻는다. 즉, 많은 이들이 사상 최강으로 여긴다는 것. 이에 속기 한정으로 역사상 그 어떠한 명기사보다 이상하게 높은 수치를 보인다며 조건부이긴해도 오키토도 동의한다.
3. 기타
캐릭터의 모티브는 사상 최초로 영세 7관을 달성한 '''하부 요시하루 九단'''. 다른 캐릭터들은 실제 쇼기 기사들로부터 단편적인 설정만 따 왔을 뿐이지만, 명인은 예외적으로 본인을 그대로 작품 속에 갖다놓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위에 언급된 통산 커리어가 바로 하부 九단의 커리어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며, 작품 내에서 묘사되는 인상착의나 착수시의 손버릇도 정확히 일치한다. 때문에 작중 의도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것. 참고로 이 작품이 갓 발매된 2015년 즈음에 하부 九단이 영세 6관이여서 명인과 설정상 딱 맞았는데, 2017년 용왕전에서 와타나베 아키라 용왕을 상대로 4-1로 승리를 거두고 타이틀을 탈취, 사상 최초로 영세 7관이 되면서 이 작품상의 커리어를 뛰어 넘었다.[30]
그리고 위에 언급된대로 명인이 야이치에게서 용왕 타이틀을 탈취했다면 국민영예상 수상이 가능했는데 실패한 반면, 하부 요시하루 九단은 영세7관 달성으로 2018년 2월 13일 정식으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하면서 또다른 차이가 생겼다. 실제 기사들의 일화나 행적을 반영하는 편인 작가가 명인의 국민영예상 수상에 관해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볼만한 부분.[31]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티브만 따온 것이므로 굳이 일화가 아닌 행적까지 똑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32] 문제는 작중에 야이치가 명인과 대국한 용왕전 기수가 30기라는 거다.[33] 그리고 용왕전 후인 6권에서 오이시 옥장과의 대화에서 '''"네가 영세용왕이 되면 딸과의 교제를 허락해 줄 수 있다"'''는 오이시 옥장의 말에 대한 야이치의 반응으로 봐서는 이 작품에서 영세용왕은 아직 한명도 나오지 않은 듯 하다.
7권에 나온 레이팅은 2014점으로 1위다.
[1] 야이치가 (명인 이후) 25년만의 중학생 프로기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략 4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된다.[2] 등장 이래 숨소리 두 번에 졌습니다.라는 대사 하나만 연기했다. 페이 지급 방식이 대사량이 아니라 목소리 출연 유무로 지급되므로 그야말로 개꿀. 일본 성우계는 베테랑 성우들의 출연료가 세서 자주 나오는 배역을 맡기면 제작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이렇게 대사가 별로 없는 역에 캐스팅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아니면 미도리카와 히카루처럼 대사 한 줄당 페이를 계산할지도.[3] 쇼기계의 영세칭호는 특정 기전 통산 5기/10기(단 용왕전은 7기) 또는 연속 5기 우승 이상일 때 주어지는데, 명인은 용왕전에서는 아직까지 통산 6번밖에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세용왕 칭호를 획득하지 못했다. 참고로 구왕(駒王)=실제 명칭 예왕(叡王)이라는 타이틀이 신설되어 8대 기전이 된 상태지만, 이건 2015년에 신설된 타이틀이라 역사가 짧아 당분간은 영세칭호가 나올 수 없다.[4] 명인과 용왕 외에는 저작권 때문에 실제 명칭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옥좌는 '''왕좌(王座)''', 반왕은 '''기왕(棋王)''', 기제는 '''기성(棋聖)'''이 실제 명칭이다.[5] 명인 타이틀을 잃으면 A급으로 내려오지만 타이틀 보유중엔 그냥 제xx기 명인으로 표시된다.[6] 참고로 두 번째가 명인의 라이벌인 츠키미츠 세이이치 九단. 명인을 끝으로 장려회 규정이 대폭 바뀌어, 현재의 쇼기계에서 가장 가혹하다는 현행 3단 리그가 만들어졌다. 이후 25년만에 중학생 신분으로 3단 리그를 뚫고 프로입단한 인물이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 쿠즈류 야이치 용왕.[7] 자오 타츠오 9단이 전성기 시절에 맞서싸운, 현대의 명인처럼 과거의 타이틀들을 모조리 독점한 위대한 명인이 있었다는 언급은 있었지만, 연간 그랜드슬램이나 영세 7관이 아직 없었다는 언급을 보면 현대의 명인보다 아래의 커리어인듯.[8] 사실 운이 좋아서 용왕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다. 작중 언급을 모아보면 용왕 타이틀 획득 당시 확실하게 안 만난 A급 기사만 따져도 명인, 츠키미츠 세이이치, 오이시 미츠루, 나타기리 진, 오키토 요우로 5명이나 된다. 이런 식으로 용왕 타이틀 획득 당시 유명한 강자와의 대국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인다.[9] 다만 용왕전의 치열함을 감안하면 신인인 야이치가 용왕 타이틀을 차지한 일은 놀라면 놀랐지, 폄하할 일이 아니다. 작중 다른 타이틀은 최소 11기(명인) 최대 24기(옥좌)를 보유한 명인조차 6기 밖에 못했을 정도로 치열한 기전이 바로 용왕전이다. 게다가 당시 갓 데뷔한 신인으로 최하위 랭크(순위전-C급2조, 용왕전-6조)인 야이치가 용왕 도전자로 결정되려면 실력은 둘째치더라도 강자들과의 연이은 대결(본선만 해도 6연전)에서 사실상 무패에 가까운 성적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실제로도 6조 우승자의 최고성적은 4강으로 용왕은 커녕 도전자 결정전에 조차 진출한 적이 없다.[10] 이 말은 실제로 명인의 모티브인 하부 요시하루가 한 말이기도 하다. 다만 작중에서는 이 말이 선수와 후수가 모두 실수없이 두다보면 결국 최후의 문제로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처럼 묘사되었는데, 최후의 문제 자체가 문제를 만들기 위한 문제란 걸 보면 실제 요시하루가 그런 의도로 했을걸로 보이진 않는다. 야이치가 처음에 한 해석인 타보외통이 선수에게는 손해를 주는 규칙이고, 이런 규칙들이 없으면 쇼기는 본질적으로 선수필승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할 듯.[11] 모티브인 하부 요시하루 9단에게도 이런 버릇이 있다. 한국의 바둑기사 이세돌 九단도 같은 버릇이 있다.[12] 오이시는 명인이 가진 타이틀을 2번 탈취한 경력이 있다. 1~9권 시점에 가지고 있던 옥장 타이틀도 명인에게서 탈취한 것.[13] 3권의 언급에 따르면 연구회 파트너를 아주 까다롭게 고르기로 유명한 명인이 나타기리에게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14] 같은 한수 버리기 각교환의 스페셜리스트였던 츠키미츠 회장조차 이런 국면에서 선수가 질거라고 상상하지 못했고, 이건 매직 같이 가벼운 게 아니라 기적이라고까지 말했다. 특히 야이치의 주전법에, 읽어버린 수읽기를 그대로 해서 패배하는 그동안의 장기를 모조리 부정해버리는 대국으로 인해 야이치는 위로해주는 히나츠루 아이한테 그런 쇼기를 보고도 고작 한 번 졌을뿐이라는 소리가 나오냐고 고함을 칠 정도로 멘붕해버렸다.[15] 천일수를 통한 시간벌이는 평소 야이치도 경멸했을 정도로 사도였다. 그러나 3연패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하게 되었고, 이 죄책감은 후에 악수를 두는 요인이 되었다.[16] 이때 명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17] 참고로 대국 장소는 호놀룰루 - 오사카 - 야마가타 텐도시.[18] 주변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키요타키 케이카가 마이나비 오픈 본선 1국에서 전설의 여류기사인 샤칸도 리나 퀸4관을 이기고 꿈에도 그리던 여류 3급 자격을 따낸 이후의 인터뷰에서 야이치 보고 힘내라는 의미의 멘트를 한 게 결정적이였고, 최종적으로 늘 곁에 있어준 아이의 존재가 가장 컸다.[19] 1997년 1월 발표된 츠메쇼기로 타보끝내기 금지와 연속 장군 천일수의 금지라는 룰 위반이 겹치는 상황이다. 작중에서 설명하는 대로 최후의 심판에서 어느 쪽을 승리로 해야할지는 실제 쇼기 승부에서 이런 상황이 나올 리가 없다는 이유로 미해결된 상태로 남아있다.[20] 그렇기에 만약에 재대국이 바로 펼쳐지지 않고 다음날 펼쳐졌다면 명인이 이겼을거라는 세간의 평도 있었지만, 오히려 입회인이자 명인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츠키미츠는 그렇지 않다며 이런 재대국이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평했다. 지금까지 재대국에서 이런 명대결이 펼쳐진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고.[21] 사실 이렇게 당일날 재대국이 벌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영세7관왕 및 타이틀 100기란 전대미문의 기록이 야이치를 정신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명인도 이를 통해 이득을 보았던 셈이기에 뭐라 할수는 없다.[22] AI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바둑, 장기, 쇼기, 체스같은 보드게임에 대해서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답이 명확하지 않다. 체스의 경우에는 이론상 무승부다.[23] 이 말을 들은 평생의 라이벌 츠키미츠 회장은 명인이 자신이 아니라 야이치를 상대로 생각한 것에 약간의 분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애니판에선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을 TV해설 중이던 샤칸도 리나가 추측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변경.[24] 야이치의 선배기사인 카가미즈 히우마 3단이 여왕전 기록담당직을 거절하고 이 명인전 기록담당으로 간다는 언급이 작중에서 나온다.[25] 참고로 이런 짓거리를 하면 명인위 도전자에게 엄청 실례가 되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된다. 작중에선 명인전 최종국 첫날 봉수를 한 시점에서 누가봐도 명인이 우세하다는 평이 나왔고, 이런저런 사건으로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자 대중의 관심을 다른데로 돌려보려는 의도로 국민영예상 시상을 무대포로 밀어 붙혔다는 언급이 나온다.[26] 긴코가 듣기로는 마치 처음부터 여성 프로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해온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27] 일본 쇼기계는 바둑계와 달리 남녀 구분 없는 '''기사 제도'''와 여성만으로 구성된 '''여류기사 제도'''라는 '''2개의 프로 제도가 병존'''하고 있다. 여기서 명인이 말한 여성 프로기사(棋士)란, 여류기사 제도를 통해서 '''프로'''가 된 여성(여류기사)이 아닌, 기사 제도를 통해서 프로기사(棋士)가 된 여성을 의미한다.[28] 기자들이 "소라 긴코 장려회 3단을 가리키시는 겁니까?"라고 질문하자, "기보도, 타이틀 보유자로의 행동과 장려회 회원으로의 노력도 쭉 지켜봐왔다."라고 답했다.[29] 이때 제위전 도결전 해설을 맡았던 나타기리 진의 말에 의하면 명인은 지금까지 쇼기 소프트로 수를 연구하는 방식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30] 더 자세히 설명하면 하부 九단은 야이치의 모티브로 유력한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과 2008년에 열린 제21기 용왕전에서 역사상 최초의 영세용왕 자리를 두고 맞붙었다. 당시 와타나베 9단은 4회 연속(2004~2007) 우승 / 하부 九단은 통산 6회 우승(89,94~95,2001~2002)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이기든 영세용왕 칭호를 획득하게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 7번기 타이틀전에서 하부는 1~3국에서 승리했지만, 4~7국에서 패하는 리버스 스윕을 당해, 초대(初代) 영세용왕 칭호를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31] 결국 11권에서 명인이 명인전 방어에 성공하면서 타이틀 통산 획득 100기 달성과 동시에 국민영예상을 수상하게 되었다.[32] 그리고 작중에서도 결국 국민영예상을 받긴 했다.[33] 실제 용왕전은 2018년 기준 30기가 됐다. 명인의 모티브가 된 하부 요시하루 九단이 영세 7관이 된 그 기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