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즈류 야이치

 


쿠즈류 야이치 (九頭(くず(りゅう ((いち)
Yaichi Kuzuryuu
[image]
생일
2000년 8월 1일
별자리
사자자리
나이
16세(1권) → 17세(4권) → 18세(12권)
출신지
후쿠이현 오노시
자격
프로 九단[1]
보유 타이틀
* 용왕(竜王)
* 제위(帝位)
통산 타이틀 획득 이력
* 용왕 : 3기(29기-2016년/30기-2017년/31기-2018년)
* 제위 : 1기(2018년)
순위전
C급 2조(1권) → C급 1조(7권)
성우
우치다 유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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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요타키 일문 관련 관계 열기 / 접기 】
스승
키요타키 코스케 九단
사백[106]
츠키미츠 세이이치 九단
사고[107]
오가 사사리 여류 초단(은퇴)
사저
소라 긴코 四단
사매
키요타키 케이카 여류 3급

히나츠루 아이 여류 초단
야샤진 아이 여류 2단
샤를로트 이조아드 아마추어 1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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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4. 성격 외
4.1. 여성 취향
5. 이력
6. 인간관계
7. 대국 스타일
8. 모티브
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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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용왕이 하는 일!주인공. 직업은 쇼기 프로기사다. [2]

2. 상세



6살 때 키요타키 코스케 九단의 내제자로 들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과거 키요타키 九단과의 지도대국에서 탈탈 털린 이후 그의 쇼기에 반해서[3] 전국을 누비며 키요타키 9단과 대국을 하기 위해 쫒아다녔는데, 그 근성과 열정을 높게 평가한 키요타키 九단이 제자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했다고. 5권에서 키요타키 코스케의 언급으로는 그 지도대국 당시 야이치가 가진 재능이 너무 엄청나서 ''''큰일났대이~ 이 아이를 그냥 키웠다간 얼마 못가서 보은 당하고 말 거대이~'''[4] 라고 겁먹어 야이치가 장려회에 들어갈 떄 쯤에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사형이자 영세 명인인 츠키미츠 세이이치에게 맡기려고도 했었다고 말한다. 말은 장난스럽게 했지만 실은 '천재가 아닌 자신이 천재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를 걱정했던 것.[5][6] [8] 이후 내제자 생활을 거치면서 키요타키가 진지하게 대국에 임하는 모습을 TV중계를 통해서 보면서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모양.[9]
초등학교 3학년 때 초등부 명인전 준결승에서 칸나베 아유무, 결승에서 츠키요미자카 료를 꺾고 사상 최연소 우승을 달성했고, 덤으로 이때 츠키요미자카 료쿠구이 마치에게 플래그를 꽂았다. 이후 장려회에 입회하여 단숨에 유단자가 되었고[10] 중학교 3학년 때 3단 리그를 돌파하고 만 15세 2개월이란 나이로 사상 네 번째 중학생 프로기사(四단)가 되었다.[11]
열 여섯살 때(만 16세 1개월) 용왕전 본선 토너먼트에서 우승, 용왕전 도전자로 결정됨과 동시에 七단으로 승단했다. 3달 뒤에 열린 용왕 타이틀전 7번기에서 승리하며 사상 최연소로 '''용왕#s-2 타이틀을 획득''', 명인과 함께 쇼기 기사 서열 공동 1위에 등극했다.[13][15] 그리고 용왕 타이틀 획득과 동시에 야이치는 八단으로 승단했다. 그러나 프로기사가 된 지 얼마 안 된지라 명인전 도전자 결정을 위한 순위전 리그에선 하위에 속하는 C급 2조라고 한다.[16]
처음 프로기사로 데뷔해서 순위전 A급에 오른 후 명인 타이틀에 도전하기까지 적어도 5년은 걸리는 명인전#s-2.2과는 달리[17] 용왕 타이틀 도전자를 뽑는 리그전은 실력에 따라 6개의 조로 나뉘어서 운영되며, 다른 기전에 비해 승수만 잘 쌓을 수 있다면 젊고 프로 경력이 짧은 기사들도, 극단적으로 최하위 그룹인 6조 소속이라도 도전자 결정 토너먼트에 진출해 대활약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18] 즉, 야이치 같은 어린 프로기사가 용왕이 되었다는 이 작품의 설정은 현실성이 있으며, 현실에서도 비슷한 나이대에 타이틀을 획득한 어린 기사가 몇몇 존재한다.[20]

3. 작중 행적




4. 성격 외


세간의 평가에 신경쓰는 편이며,[21] 자신의 대국이 끝나면 2ch에 올라오는 반응을 확인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22] 안습하게도 인터넷상에선 매우 평가가 박한데, 특히 본인의 이름과 타이틀을 조합한 말장난에 의해 '''쓰레기 용왕'''이라 불릴만큼 안티가 많'''았'''다. 용왕 타이틀 보유자라 그를 쿠즈류 용왕(쿠즈류 류오/九頭竜 竜王)이란 존칭으로 부르는데, 이게 쓰레기 용왕(쿠즈 류오/くず 竜王)과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놀림. 사실 이 놀림은 야이치의 모티브가 된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이 용왕전 빼곤 다른 기전에선 성적이 매우 부진하자, 용왕전에만 집중하는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은데서 유래한 것이다. 다만 와타나베 九단이 이후 영세기왕에 오르면서 현재는 언급되지 않는 이야기. 용왕 타이틀 획득 후 공식전 11연패를 기록했다보니[23] '정말 운이 좋아서 타이틀을 딴 녀석' 정도로 안티들이 폄하를 해서 그렇다.[24][25][26] 게다가 두 제자인 히나츠루 아이야샤진 아이를 받아들이고 둘이 귀여움과 천재적 실력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제자들의 팬들로부터 질투를 받는 바람에 로리콘이라는 말까지 듣는 중. 또한 이름이 야이치(八一)이고 현재 8단이라 합치면 818단이 되며 이것도 네타거리로 작중 인터넷에서 놀림받기도 한다.
본인의 자학적 지문과 험하게 또는 장난감처럼 대하는 가까운 사람들, 헤타레같은 모습이 작품 전체(...)에 널려 있어 느낌이 잘 안오지만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재이며, 쇼기에 임하는 자세 또한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5권에서 명인이 "쿠즈류 용왕은 그 누구보다 강한 기사이며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승리를 장담 못하는 상대이다."라고 말할 정도. 천재적인 쇼기 실력을 겸비한데다 어린 나이에 용왕 타이틀을 딴 커리어가 있으니 쇼기계에선 인기인이자 상급자 취급으로, 히나츠루 아이와 야샤진 아이, 키요타키 케이카가 참가한 마이나비 여자 오픈[27]에 세 사람을 대회장에 보내고 나서 구경 삼아 혼자 어슬렁거렸더니 대회 관계자들이 발견하고는 급히 귀빈석과 내빈용 꽃을 준비하느라 허둥거리기도 했다.
친구인 칸나베 아유무의 영향도 있어서 초등학생 쇼기 꿈나무들에게는 '드래곤킹'이라 불리며 소년소녀 불문하고 매우 인기가 많다. 본인도 싫지 않은지 '나쁜 짓'을 할 때는 자신이 '악의 용왕'이라며 기세를 붙인다. 공주님을 납치해서 제자로 삼는다거나, 전국민이 기대하는 명인의 국민영예상 수상을 저지하여 기다리던 높으신 분들과 일본 전체를 좌절시킨다거나.
쇼기 자체에 대해서는 사회에 도움되는 것 없는 '놀이'라는 자괴감도 지니고 있다. 히나츠루 료칸에 방문했을 때 아이의 팬인 동네 어른들이 쇼기꾼이라니 요리사만도 못하지 운운하며[28] 대놓고 들리게 뒷말을 했을 때 한 마디도 반박 못하고 찌그러들었을 정도. 그러면서도 쇼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고, 쇼기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벗어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습은 착하고 재주 많은 사람일수록 쇼기의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다거나 쇼기기사는 쇼기반에서는 다음을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자학적 지문으로 자주 나타난다.
작중 설정에 따르면 위에 언급된 커리어 덕분에 현재 상금 및 대국료 순위도 상위 3등에 랭크될 만큼 아주 잘 벌고 있다. 야이치가 지난 2년 동안 프로기사로 활동하면서 번 금액을 대략 추정해 보자면 용왕 타이틀 획득+방어 성공 상금 8400만 엔+용왕 타이틀 획득을 위해 올라갔던 승리들 중 도전자 결정전 승자의 상금은 350만 엔이고 그 외 여타 대국료 등을 포함하면 1억 엔에 가깝다. [29]
집에는 매우 비싼 쇼기판&쇼기말 세트가 있는데 차 한 대 가격인 거 같다. 보통 이런류의 물건들이 최고급 목재를 사용해 장인이 100% 수작업으로 만드니 비싼게 당연한데[30] 야이치의 언급에 따르면 아직 할부가 안 끝났다고. 그런데 히나츠루 아이가 긴코한테 진 게 분해서 쇼기말을 깨물었다가 젖니가 부러지고 말에는 흠집이 생겨서 야이치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있었다. 물론 쇼기말보다는 아이 걱정이 먼저였고, 앞니가 빠진 모습을 야이치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히나츠루의 모습도 볼거리.
'대국 스타일'란을 보면 알겠지만, 천재 중의 천재임에도, 본인은 그걸 잘 자각하지 못한다.[31] 오히려 자신의 재능은 괴물급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제자들 대단하다며 감탄하며 박수치는 거 보면… 여자의 문제에 대해서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둔감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
그렇기 때문에 자주 자신은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들이 얼마나 어려운 것들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6권에서의 긴코 같은 경우는 멘탈 챙겨야 할 때 '아. 이거는 이렇게 하면 돼요. 간단하죠?' 그래대서 멘탈 깨지고... 공교롭게도 이 부분은 야이치의 두 제자인 히나츠루 아이, 야샤진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히나츠루 아이의 경우는 4권의 마이나비 여자 오픈 챌린지 매치 때 아이와 대국한 샤쿠시 토모에 여류 2단이 그 희생자. 수 한번 잘못 뒀다가 순식간에 털리고 감상전에서 아이를 상대로 실수로 졌다며 그런 무모한 수로는 안 된다느니, 나도 과거에는 그런 식으로 뒀다느니 허세 좀 피우다가 히나츠루 아이 '''아마추어'''의 ''''간단하면서 친절하고도 잔인한(...)'''' 외통수 지적에 아예 멘탈이 박살나서 첼린지에서 조용히 탈락했을 정도. 야샤진 아이는 종반력이 형편없다고 평가절하한 로쿠로바 타마요 여류 2단과의 대국에서 별 말도 없이 수를 집어넣는데, 이게 타마요에게는 정말 압박 그 자체(...).
본인이 잘 인지하지 않지만 여성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이다. 긴코는 물론이고 료, 쿠구이 같은 여류기사들에게도 노려지는 대상. 그 외에도 어린 시절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들이 야이치에게 접근했다가 긴코에게 박살나고 접는 경우가 빈번했다. 야이치가 타마요에게 나같은 미남 프로기사가 스캔들이 나면 여성 쇼기팬들이 실망하지 않겠느냐고 드립을 쳤을 때, 쿠구이가 인정하고 넘어간다던지. 또 긴코가 넷상에서 야이치랑 여친처럼 군다고 시기를 받았다고 이야기한걸 보면[32] 외모도 꽤 빼어난 모양이다.

4.1. 여성 취향


다른 라노벨 주인공이었으면 '역시나 둔감 속성 장착 중인 놈이구나~' 정도로 넘길텐데 이 녀석을 보고 있으면 '너무 천재여서 둔감한 건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모로 대단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이다.[33]

'''당연한 이야기지만 절대로 로리콘이 아니다'''.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제자로 보기는 하지만, 이성으로 본 적은 한번도 없다.[34] 은연중에 품은 열등감이 아니었다면 6-7권에서 긴코와 선을 넘었을 수도 있었다. 여성취향은 키요타키 케이카쿠구이 마치와 같은 연상의 글래머. 특히 케이카는 야이치가 간간히 케이카에게 대시하고 있다.[35][36] 주변에 기 센 여성들밖에 없어 휘어잡히기도 하지만 본인도 남 돌봐주기를 잘한다.
하지만 오해받을 구석은 더럽게 많다.[37] 문제는 쿠즈류 야이치에게 무슨 로리 전용 페로몬이라도 흐르는 건지 로리들이 자석에 이끌리는 사철처럼 그의 주위에 모여든다는 것. 두 와 여초연[38], 그리고 심지어 두 살 짜리인 하나다치 아자미의 딸 사쿠라까지 좋다고 모여드는 판이다. 거기에 연상의 여인이긴 하지만 초등학생 때 만난 쿠구이 마치와 츠키요미자카 료, 그리고 사저인 소라 긴코까지 포함하면 참...
12권 감상전에서 다른 기사의 발언을 빌려서 용왕의 시점으로 된 이야기가 있다면 본인 입장에서는 진실일지라도 옆의 주변인들에게는 아니다 라는 발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인공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점 차이를 보여준다.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로리콘이 맞는 듯.
사실 야이치와 아이들의 나이 차이는 고작 7~8세 정도다.[39] 5~6살만 더 먹었어도 이야기를 진행했더라도 전혀 문제가 안 될 테지만[40] 하도 어려서부터 경력이 시작되는 경우가 수두룩한 쇼기계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41]

5. 이력


  • 8세
    • 초등학생 명인전 우승(결승 상대 츠키요미자카 료)[42]
  • 9세
    • 장려회 입회 시험에 합격하여 6급으로 입회(2009년 9월)
  • 15세
    • 장려회 3단 리그 통과. 프로 四단으로 승단(2015년 10월 1일)
  • 16세
    • 용왕전 6조 결승에서 우승. 용왕전 본선 진출.
    • 용왕전 본선에서 우승. 용왕위 도전자로 낙점 및 七단 승단(2016년 9월 8일)
    • 용왕전에서 우스이 미코토 용왕을 상대로 4승 3패로 우승하며 용왕위 1기 획득. 八단 승단(2016년 12월 25일)[43]
    • 제위전 리그[44]에서 칸나베 아유무 6단에게 승리. 공식전 11연패 탈출.
    • 제자 히나츠루 아이&야샤진 아이를 들임(2017년 봄~여름)[45]
    • 현왕전 예선에서[46] 나타기리 진 八단에게 3연속 한정 멍군으로 승리.
  • 17세
    • 용왕전에서 명인을 상대로 4승 3패(리버스 스윕)로 우승하며 용왕위 2기 획득. 九단 승단(2017년 12월)
    • 제위전 리그에서 나타기리 진 八단에게 승리.
    • 순위전 C급 2조에서 9승 1패의 성적을 거둠. C급 1조로 승급(2018년 3월)
    • 제위전 리그 준결승에서 오이시 미츠루 옥장을 꺾고 도전자 결정전에 진출.
    • 상금왕전[47] 참가자 12명 중 한명으로 선정.
    • 샤를로트 이조아드를 제자로 들임.
  • 18세
    • 제위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명인을 꺾고 제위전 도전자로 확정.
    • 제위전에서 오키토 2관을 상대로 우승하여 제위 1기 획득.
    • 용왕전에서 오키토 옥장을 상대로 우승하여 용왕위 3기 획득.

6. 인간관계


잘 부각이 되지 않을 뿐이지 열여섯이면 한창 사춘기인[48]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람됨됨이는 확실한 인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등장인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야이치가 싫어하는 인물은 있어도 야이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그의 재능과 인품에 매료된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꼬이고, 이와 관련된 치정싸움(?)이 발생해 야이치가 휘말려 이런저런 고생을 한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관심은 있을지언정 쇼기에 집중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이성교제나 여심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쑥맥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변 이성들의 돌발행동에 두근거리는 등 예전보단 관심을 두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는 있지만, 쇼기밖에 없는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온갖 것을 지닌 절벽 위의 꽃이라는 자격지심이 발동해서 물러서 버리기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는 게 대부분.
  • 히나츠루 아이 : 친여동생처럼 아끼는 제자 1호. 그리고 자신이 쇼기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아군. 그래서 야이치가 매우 귀여워하며 아낀다. 또한 묘수풀이 능력 등 자신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쇼기 실력 향상을 위해서 도움을 주는 동료로도 여기는 중. 다만,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건 아니며 야이치에 대한 독점욕이 강한 아이가 조금이라도 자신이 다른 이성과 엮이는 모습을 보이면 얀데레가 되어 갈구기 때문에 상당히 두려워 하는 부분도 있다. 야이치 본인을 고문하고 약물심문(...)을 한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49] [50] 샤를로트에 못지않게 야이치를 로리콘으로 몰아가는 주범이지만 야이치 쪽에서 아이를 이성으로 본다는 묘사는 9권까지도 일절 없다.[51] 그런데 아이는 이미 스승을 남자로 보고 있다. 특히 6권 시점부터 어머니와 상의하면서 스승을 본격적으로 유혹 중.[52] 정작 야이치는 "아직 동경과 사랑을 잘 구분하지 못할 나이." 라고 여긴다는 게 11권에 나왔다.
  • 야샤진 아이 : 친여동생처럼 아끼는 조금 건방진 제자 2호. 처음 츠키미츠 세이이치회장에게 제자 권한을 받을 때는 당혹스럽고, 야사진 아이의 쇼기를 보며 자신보다는 츠키미츠 회장 밑에서 배우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만, 야사진 아이의 쇼기 기법이 자신과 비슷하고 아이가 부모님에 관한것을 깨닫고는 다시 자신의 제자로 삼으며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결심한다. 야사진 아이 본인 성격 자체가 건방진 성격이어서 사고를 칠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스승이 준 어떤 선물[53]을 계기로 점점 변하고 있는 중. 9권에서 야사진 아이의 부모님의 참배를 계속 다니고 있다는 것과 멘탈이 박살난 아이를 다시 회복시켜준걸 계기로 완전히 플래그가 꽂힌다.[54] 여러모로 아이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주며, 야샤진가에서 야이치라면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쇼기의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하며 부모 역할을 해주고 싶어하는 제자.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야이치는 야샤진 아이가 자길 좋아하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나 야샤진 아이가 12권에서 결국 고백과 동시에 기습키스를 시전했다!
  • 소라 긴코 : 좀처럼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무서운 사저. 너무 동경해서 감히 손을 못 대는 절벽 위의 꽃. 어릴적부터 키요타키 九단의 밑에서 쇼기를 배우며 자란 세월이 있는데다 긴코가 이래저래 좋아한다는 어필을 많이하고 있어서 이 작품의 여성 캐릭터들 중에선 가장 이성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이성으로 의식하게 되는 계기는 4권 하라주쿠에서 오사카역으로 돌아오는 내내 손을 잡고 긴코가 자신과의 추억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이성으로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하며, 5권에서도 하와이의 밤거리에서 깍지손을 끼고 데이트를 하고, 키스 직전까지 갔었다. 그렇다보니 주변에서도 야이치의 신부감으로 보고 있으며[55] 실질적인 야이치의 여자친구 후보 0순위. 그러나 긴코의 솔직하지 못한 츤데레 성향 때문에 각종 폭력과 갈굼에 질리도록 시달렸기 때문인지 "사저는 왜이리 날 싫어하는 티를 팍팍내지?"라며 나름 고민하고 있다. 특히 6권에서 이어지기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긴코가 화를 내면서 "너 같은놈 싫어!"라고 일갈한걸 실연당한 것으로 받아들여 은근히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56] 그러나 실제로 긴코는 쇼기와는 별개로 연인으로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망 역시 확실하게 있고, 실제로 용왕 타이틀이나 세간의 인식따윈 상관없이 자기랑 같이 쭉 함께하면서, 같이 강해지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야이치 본인은 쇼기를 제외하면 절벽위의 꽃과 같은 긴코와 같이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긴코와 함께 있으려면 타이틀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타이틀을 잃지 않는 것에 집착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참고로 긴코는 어린 시절부터 야이치에게 꼬리치는 소녀들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쇼기로 박살내 왔다.[57](...). 특히 2권에서 열린 마이나비 여자오픈 결승전에서 유린의 마치의 특기 전법인 동굴곰을 들고 나온 츠키요미자카 료를 그야말로 멘탈의 밑바닥까지 박살내버린 게 그 대국의 해설자로 대국장에 나온 마치를 향한 경고[58]라는 키요타키 케이카의 평도 있다.

그리고 11권에서 긴코와 키스를 나누며, 그녀가 프로기사가 되면 정식으로 연인관계가 되기로 약속했기에 현재로선 야이치의 정실부인 후보 0순위로 우뚝서게 되었다. [59]
  • 쿠구이 마치 : 어린이 명인전 준결승에서 츠키요미자카에게 패해서 분한 나머지 울고 있던걸 목격한 야이치가 "마음이 꺾이면 정말로 져버려. 내가 재미있는 쇼기를 보여줄게."라고 위로를 해준 걸 계기로 플래그를 꽂았다. 이후 대국으로 천재 야이치와 붙을 가능성이 없다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관전기자 쿠구이라는 또다른 직업을 선택해 야이치의 곁을 지키고 있다. 즉,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관전기자가 되어서 야이치가 참가한 기전만을 주구장창 따라다니다가 덤으로 타이틀 홀더까지 된 야이치의 여자친구 후보 상위권 인물.[60]

야이치 본인은 어린이 명인전을 계기로 츠키요미자카 료&칸나베 아유무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낸 쇼기 동료로 생각하며 꽤나 허물없이 지내지만, 관전기자 쿠구이 버전일 때는 은근히 놀려먹기 때문에 약간 껄끄러워 한다. 8권에서의 일 때문에 살짝 이성으로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관전기자로 데뷔한 사부님오이시 선생님의 대국 도중에 마치와 있었던 모종의 일로 아이는 쿠구이 선생님에서 쿠구이 스승님으로 호칭을 바꿨다.
  • 키요타키 케이카 : 야이치의 짝사랑 상대[61]이자 친누나 같은 사람. 다만, 케이카 쪽에선 야이치를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다[62] 오히려 긴코와 이어지기를 바라며 은근히 밀어주는 입장이라[63] 야이치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하는 중. 다만 케이카쪽도 3권에서 좋아하긴 한다고 말을 하긴 했고, 5권에서 보여준 모습을 볼 때 동생으로서는 진심으로 아까고 사랑하고 있다.[64]
  • 키요타키 코스케 : 야이치가 본격적으로 쇼기 기사를 동경하게 된 이유이자, 쇼기를 가르쳐준 스승님이자 인생 선배. 스승님의 바보 같은 행동에 이래저래 고생하는 일도 많지만, 쇼기 기사로서 정말 존경하고 있다. 7권에서 스승님이 제자인 자신에게 밀리고 순위전에서 강급 당할 위기에 처해 화를 냈을 때도 그 이유를 잘 알기에[65] 오히려 야이치가 크게 걱정할 정도다.
  • 츠키미츠 세이이치 : 야이치가 한수 버리기 각교환을 주요 전술로 사용하게 된 계기가 츠키미츠 회장을 동경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쇼기 기사로서 존경하고 있다. 나이는 키요타키와 동년배지만 여전히 순위전 A급&용왕전 1조에 랭크되어 있는 강자다.
  • 칸나베 아유무 : 동년배[66] 쇼기기사이자 연구회 동료로서 절친한 동성친구. 아유무의 중2병 언행에 맞장구를 쳐줄 수 있을만큼 친분이 두텁다. 참고로 아유무쪽에서 먼저 친하게 지내자고 적극 대쉬한 모양. 긴코 시점에서 서술된 것을 보면 또 다른 쇼기별 사람이자 야이치를 쇼기별 사람으로 각성시킨 진범. 러브 코미디 부분이 강해지면 비중이 떨어지지만, 스포츠물로서의 측면에서 보면 사실상 작품의 라이벌 포지션이라고 봐도 좋다.[67]
  • 나타기리 진 : 선배 쇼기 기사로서는 존경하고 있지만, 야이치의 프로기사 데뷔전에서 우주관광을 시켜준 인연이 있는데다 동성애 성향을 마음껏 뽐내며 야이치에게 달라붙기 때문에 매우 거북해 한다.[68]
  • 오이시 미츠루 : 선배 기사로서 존경하는 인물이자 몰이비차를 가르쳐 준 스승 겸 연구회 동료. 그래서 20살 가까이 나이차이가 있음에도 허물없이 지낼만큼 친분이 있다.
  • 로쿠로바 타마요 : 왕가슴이 신경 쓰이는 쇼기 동료. 이외엔 큰 접점이 없다. 로쿠로바 쪽도 강한 사람에게 배워서 강해지고 싶을 뿐인지라 그나마(...) 여성 캐릭터 중에선 치정싸움과는 관계가 적은 안전패. 그런데 문제는 타마요가 아이에게 찍혔다는 게...[69]
  • 츠키요미자카 료 : 어릴적 어린이 명인전 결승에서 맞붙은 인연 때문에 지금까지 쭉 친하게 지내고 있는 야이치의 오래된 지인 3인방중 한 명. 본래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달리 야이치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은 없고, 단지 언젠가 쇼기로 박살을 내주겠다는 호승심이 전부였지만, 현재는 이성으로서 끌리고 있다. 야이치를 부르는 호칭이 기본적으로 "쓰레기"인데, 야이치도 워낙 많이 들어서 평범하게 받아들인다. 앨범을 보면 야이치와 친해지면서 점차 복장이 여자다워지고, 동년배 여자들은 알만큼 호의가 있다고 한다.
  • 사이노카미 이카 : 실력은 인정하고 있지만, 오직 자신과 쇼기를 둬야 한다는 이카의 언행 때문에 상당히 거북해 한다. 오히려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수준. 그리고 이쪽 역시 로쿠로바 타마요와 다를 바가 없는 게, 히나츠루 아이와의 마이나비 여자 오픈 대국에서 야이치로 어그로를 끌었다가 제대로 찍혔고 탈탈 털렸다. 게다가 히나츠루 아이에게 털린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양인지, 산성앵화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츠키요미자카 료에게도 패했다. 참고로 이카는 과거 야이치와의 모종의 일로 인해 연맹 명의로 접근금지명령까지 받은 적도 있다.
  • 쿠누기 소타 : 역대 최초 초등학생 장려회 3단 승급자인데다 예전부터 야이치와 연구회를 해온터라 야이치와는 형 동생 하는 친한 사이. 다만, 쿠누기의 무시무시한 실력이 언젠가 자신의 목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어 경계는 하고 있다.

  • JS연(여초연) 멤버들 : 야이치를 로리콘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는 대표적 원흉들이긴 한데, 야이치는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 초등학생들 무리에 정신을 못차리며 총애한다(...). 특히 샤를로트 이조아드 때문에 히나츠루에게 걸려서 혼나고 로리콘 의혹을 무수히 받고 있음에도 미래의 신붓감으로 삼아주겠다고 농담을 하는 등 심히 글러먹었다. 다만, 미즈코시 미오가 자신에게 여류기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오자 진심으로 상담을 해주는 등 좋은 쪽 일도 한다. 그리고 샤를로트 이조아드를 세 번째 제자로 들였다!


7. 대국 스타일


''' “쿠즈류 용왕은 현재, 그 누구보다 강한 기사입니다. 제가 전력을 다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예요."'''

명인[70]

''' "애시당초 쿠즈류가 본격적으로 소프트를 연구에 도입한 것이 1년도 안된다는 것이 이상하다구요. 그 후로 그 녀석 뭘 했죠? 각교환에 혁명을 일으켰죠.[71]

계단기 뛰기를 했다 라고 생각했더니[72] 몰이비차에 싱글벙글 삼간비차라는 영문도 모르겠는 전법을 성립시키고[73] 이번엔 뭘 하나 봤더니 컴퓨터를 초월했죠.[74] 그 모든 것이 1년도 안되는 기간만에 이룬것이에요. 오키토 선생님이 수년을 걸쳐도 할 수 없을법 한 것을요. 우리같은 젊은 프로기사가 평생을 걸쳐도 할 수 없을 법한 것을 자연스럽게 해버리죠. 그 사상 최연소 용왕은 아니.. 그 마왕은"'''

▶ 후타즈즈카 미라이[75]

용왕이라 불리는 천재 주인공 포지션답게 '''천재들이 넘쳐나는 프로 쇼기계에서 독보적인 포텐셜을 보이는 천재 기사'''.[76] 초반의 야이치가 자신감이 좀 결여된 상태고[77], 타인의 재능을 띄워주는 서술이 많아 체감하기 힘들지만 야이치의 재능을 능가하는 기사는 작중 한 명도 없다. 스승인 코스케는 야이치와 처음 대국을 두었을 때, 아무리 늦어도 중학생 때는 프로기사가 될 것이며[78] 이 아이가 쇼기의 마침표[79]를 찍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 아홉살때는 츠키미츠와 아마추어 명인 야사진과의 대국 기록담당을 하면서 둘 모두 알지 못했던 23수 연속 장군을 알아채서 명인을 뛰어넘는 재목일지도 모른다는 평을 들었다. 기본적으로 어떤 스타일도 잘 구사하는 만능형 기사이며[80]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완벽한 올라운더이자, 현재 디지털 쇼기의 경지에 가장 근접한 기사.'''[81]의 상위호환 격이다. 작중 히나츠루의 특출한 수읽기 묘사때문에 묻히는 편이지만 야이치도 수읽기에 강하다.[82] 1권부터 묘사되었고 5권에서 용왕 타이틀 방어전 제4국 때 잘 드러나는데, '너무 수가 잘 읽혀서' 궁지에 몰려 있던 상황에서, 명인이 신중하게 수를 고민하는 찰나의 수분만에 기어코 외통수를 찾아낸다.[83] 자신의 실력을 기르기 위해 앉은비차파로서의 고집도 버리고 몰이비차를 배웠고 배운 뒤 바로 다음 대국에서 쓰는 등 전술의 학습력도 빠른 편이다. 이 역시 5권의 용왕전에서 여실히 드러나 1국에서는 힘겹게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다 2~3국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따라가고[84] 4국에서는 비겼으며 재경기서는 이겼고, 5~7국은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언급이 있다. 물론 본인은 앞서 서술한대로 멘탈관리에 서툴러서 많이 힘들어 했지만 야이치의 학습력을 알 수 있는 부분.
야이치가 보는 자신의 재능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야이치의 재능의 관점 차이는 작중에서도 자주 대조되는 편인데, 은근 잘 부각되지 않지만 사실 중요한 묘사가 5권에서 명인과의 승부 당시 나온 적이 있다. 야이치는 1~3국 내내 자신이 꼴사납게 패했다고 스스로 보잘것 없는 존재였다며 자학했지만, 케이카의 시점에서 봤던 1국과 3국은 야이치도 명인 못지 않게 잘 싸웠다고 묘사된다.[85] 야이치는 자신과 명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을 체감했지만, 일반인의 눈에는 그냥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로 보였던 것. 특히 야이치 자신이 역대급으로 추한 꼴을 보였다며 심하게 멘붕한 3국은, 케이카 시점에서 이전보다 강해진 야이치가 명인을 이기기 직전까지 간 아까운 승부였다고 평가된다. 명인에게 궁지에 몰리는 와중에도 야이치는 계속 강해지고 있었고, 이를 본 케이카는 이미 '''야이치의 재능은 명인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 보았으며[86], 4국째부터는 명인을 이길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들이맞았다.
초반 전술은 선수일 경우 서로걸기, 후수일 경우 한 수 버리기 각교환을 즐겨 사용한다.
  • 서로걸기는 히나츠루 아이가 잘 쓴다. 1권에서 히나츠루 아이가 야이치와의 시험 대국에서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했을 정도인데 애당초 그 시점의 아이는 야이치가 치르던 용왕전을 보고 그것을 동경해서 쇼기에 발을 들인지 3개월밖에 안 된 상태였다.
  • 한 수 버리기 각교환은 야샤진 아이의 특기다. 원래는 아이의 아버지가 생전에 야이치를 모델로 삼아 딸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그래서 여류기사로 등록된 때까지의 경력을 보면 히나츠루 아이가 야샤진 아이보다 더 짧다. 생일 기준으로 나이를 따지면 히나츠루 아이 쪽이 몇 달 먼저 태어나긴 했으나, 경력을 보면 야샤진 아이는 히나츠루 아이보다 쇼기를 본격적으로 접한 시기가 더 길다. 그래서 4권의 마이나비 여자 오픈 본선 직전 전야제에서 히나츠루 아이를 인터뷰한 기자들이 경악한 것이다.
그러다가 5권에서 명인과의 대결을 기점으로 야이치의 수읽기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게 되고, 이후부터 '''컴퓨터'''란 요소가 새로운 변수로 부각된다. 작가가 초기 구상은 5권까지였고, 불안했던 신진 기사의 정상권 등극기가 주로 펼쳐지던 전개였다. 6권부터는 신전개로 돌입하면서 야이치의 쇼기도 약간 전개에 맞게 변경되었다. 5권까지 컴퓨터 쇼기는 주류하고 거리가 먼 형세판단 정도에만 사용되다가 주요 연구주제로 다뤄지면서 컴퓨터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덕분에 한수버리기 각교환과 올라운더라는 야이치의 쇼기 특징에 컴퓨터 기반의 이질적인 쇼기 스타일이 추가되고 크게 부각되는 중.
주로 엄청난 수 읽기 능력과 빠른 습득능력 정도만으로 묘사되던 야이치의 능력은 이제 명인의 쇼기로 대표되던 구 체계를 배격하는 컴퓨터 기반의 새로운 쇼기를 누구보다 잘 구사하고 실현하는 능력으로 비춰진다. 용왕전 직전과 용왕전 당시에는 신의 한수, 쇼기의 답 등을 찾는 것을 논하다 용왕전 직후 시간 간격이 한두 달도 차이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에 추구하던 것을 싹 치워버리고 컴퓨터로 도배함을 고려하면 작가가 다소 급격히 전개를 비튼 게 체감될 정도. 아무래도 체스나 바둑 등에서 컴퓨터가 패러다임을 장악하듯 쇼기도 이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 더 이상 작가가 시류를 모른 척하기 힘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복선 자체는 5권부터 깔아두고 있었는데, 용왕전에서 명인에게 3연패를 당한 야이치가 스스로를 믿지 못한 나머지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를 상대로만 연구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당시에는 컴퓨터에 의존하는 모양새가 다소 부정적인 느낌으로 묘사됐지만, 6권부터는 이 때의 경험이 그를 괴물로 각성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식으로 언급된다.[87]
7권에서 쿠누기 소타는 야이치가 두고 있는 쇼기는 컴퓨터가 구사하는 쇼기에 가장 가깝다고 발언했다. 소타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 쇼기는 인간의 연산능력으로 수를 다 읽을 수 없으니 방어를 강화해서 수읽기를 줄이고 나머지로 쿡쿡 찌르듯이 싸우는 것이며, 위부터 아래까지 같은 사상을 공유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전술만 발전시키고 있으니 위아래가 고정된 봉건제도가 되었다고 거하게 까댄다. 명인마저도 "그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만든 것은 없다."고 비판할 정도. 반면 야이치는 적진에 뛰어들어 방대한 수읽기로 아슬아슬하게 방어선을 유지하면서 나머지를 전부 공격에 투입하며, 소타가 과거부터 야이치를 잘 따르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수읽기 자체가 컴퓨터 형식인 소타로서는 자신과 같은 세계를 보는 사람이 야이치밖에 없는 것. 심지어 6권에서 소라 긴코를 멘탈붕괴 시킨 부호로 이루어진 쿠누기 소타의 머릿속 쇼기판을 야이치는 명인과의 용왕전 즈음 시작한 컴퓨터 쇼기로 비슷하게 습득하기 시작했다.[88][89]
야이치도 스스로가 쇼기계에서 가장 수읽기가 빠르다고 단언하였고, 컴퓨터의 전술을 '신이 사용하는 마법을 인간용으로 마이너 어레인지하는 느낌으로' 연습 중이다. 이게 어지간한 상대는 '''즉사시켜버려서''' 친구이자 젊은 기대주인 칸나베 아유무 정도가 아니면 연습조차 안 될 지경이다.[90] 명인과의 대국 전까지 야이치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 아유무에게 제시할 것이 없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건만, 그것이 대국 후 완전히 바뀐 것. 대국마다 기존 정석을 완전히 깨부수면서 돌풍을 일으키는지라 고참 기사들 중에는 당혹해하다 못해 공포에 질린 사람까지 있고 그간 신나게 야이치를 씹었던 팬들도 실력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그러다가 순위전 C급 2조 최종국에서 이 대국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최고령 기사 자오 타츠오 9단[91]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92][93][94] 긴코를 찾아가 용왕이 이런 꼴이어서는 안된다며 거의 절규하듯이 울기도 했다.[95] 이에 대해 쿠누기 소타는 재능만 놓고 보면 야이치가 명인보다도 뛰어난 것 같은데 현대 쇼기가 오히려 야이치를 약하게 만들었다며, 그 사람은 정석을 배우지 않는 편이 낫다고 평가했다.
본작에서는 1~2권부터 꾸준히 컴퓨터와 인간을 비교한 바 인간이 컴퓨터에게 지는 패턴이 초반에 우세하다가 중후반에 수읽기에서 밀려 패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히나츠루 아이의 승리 패턴과 유사하다는 점도 비교대상. 아이는 '후반에 이길 수 있으니까 됐어'라는 느낌으로 초반에 좀 밀리다가 후반에 '''압도적인''' 수읽기로 역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방대한 수읽기를 하는 독특한 묘사까지 있으니 더더욱 연관성을 보인다. 야샤진 아이 역시 야이치 스타일인데다가 히나츠루의 공격을 가볍게 회피하는 대국이 작중에서 나오는 등 '쿠즈류 일문'의 공통적인 스타일이 되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참고로 야이치는 쿠구이 마치의 기풍에도 영향을 미친 적이 있다. 초등학생 명인전 준결승에서 료에게 져서 울고 있던 마치에게 재밌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료와의 결승전에서 특이한 동굴곰 전법을 써서 승리한 것이 쿠구이 마치의 이후 기풍을 정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96]
야이치가 주인공이다 보니 야이치의 시점에서 다른 기사들이나 제자들의 대국을 감탄하는 장면이 나와 부각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야이치는 재능이 전부인 쇼기계에서 '''괴물'''이라 평가받는 천재다.[97] 학습 속도, 수읽기, 컴퓨터 쇼기같은 기풍, 올라운더라 대국 스타일의 카운터도 딱히 없는 무상성 등 멘탈의 기복만 제외하면 동년배 기사들은 물론이고 다른 타이틀 홀더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이다. 당장 야이치보다 어린 프로기사는 없으며, 비슷한 나이대에서 그와 비벼볼만한 기사는 2살 위인 칸나베 아유무가 유일하다. 그러나 나중에 쿠누기 소타라는 사기 캐릭터의 등장으로 최강의 재능, 최연소 프로기사 타이틀을 물려줄 가능성도 적진 않다.
덤으로 긴코가 자신을 지구인에, 진짜 천재 프로기사들을 쇼기별 사람들에 비유했는데, 이 때 야이치를 가리킨 표현은 '''쇼기별 왕자님'''이었다. 야이치에 대한 긴코의 콩깍지를 떼고 봐도 실로 적절한 표현.
7권에 나온 레이팅은 1881점으로 4위다.(1위는 명인, 2위는 오키토 요우 제위, 3위는 칸나베 아유무)
참고로 7권 시점에서부터 '''관동 기사들이 야이치를 두려워하며 어떤 별명으로 부르고 있지만, 정작 야이치는 그게 뭔지 모른다.'''는 떡밥이 있다. 현재까지 이 별명이 뭔지는 11권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 12권에서 밝혀지는 별명은 서쪽의 마왕(西の魔王). 별명에 대한 떡밥은 6권에서 오이시 미츠루의 대사 중 "이걸 하룻밤 만에 생각한 거냐? 진짜로 ......왕이군"로 복선이 주어졌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예상대로라는 반응. 참고로 긴코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8.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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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가 된 인물은 영세용왕(永世竜王)과 영세기왕(永世棋王) 칭호를 보유하고 있는 쇼기 기사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이다.

아주 젊은 나이에 용왕 타이틀을 따내고, 일본 쇼기계 최강의 기사와의 대국에서 리버스 스윕으로 타이틀을 방어한 기록들이 위에 언급된 야이치의 행적과 똑같다. 사실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으로부터 딴 야이치의 특징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붓글씨가 서툴다.'''[99][100]
또, 와타나베는 특이하게도 만 19세인 2004년에 결혼하여 다음 해에 장남을 낳았다. 왜 일찍 결혼하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설의 전개에 한 가지 변수가 될 수도 있는 사실이다.
즉, 야이치의 모티브를 정확히 정의하자면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의 커리어+18세 명인 모리우치 토시유키(森内俊之) 九단&센자키 마나부(先崎学) 九단[101]의 유명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은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모리우치 토시유키는 한때 하부의 라이벌이었고, 2002, 2004~2007년에 명인 타이틀을 획득, 통산 5회 우승을 달성해 영세명인 자격을 획득했고, 하부는 2008년에 모리우치를 4-2로 꺾고 영세명인 자격을 획득했다.
모리우치는 2010년대 들어 철저하게 몰락해서 3할 승률인 상황에서 2011~2012년에 귀신같이 명인 타이틀을 탈취해서 3할명인&쓰레기 명인이라며 조롱당했는데 초기에 야이치가 먹던 욕과 딱 맞아 떨어진다.
그 외에 내제자는 아니지만 어린 여류기사의 스승이란 것도 모리우치 토시유키의 이야기고, 나타기리 진에게 털려서 61km를 달린 것도 모리우치 18세 명인의 이야기. 사실 야이치의 기본 모티브인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 역시 용왕전을 제외한 다른 기전에서 성적이 별로라 쓰레기 용왕이란 별명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다른 기전에서도 승수를 쌓아올리고 있어서 그나마 낫지만.[102]
센자키 마나부 九단은 키요타키 코스케의 모티브가 된 요네나가 쿠니오(米長邦雄) 영세기성의 제자인데다 같은 문하 선배이자 소라 긴코의 모티브 중 하나인 하야시바 나오코(林葉直子) 전 여류기사[103][104]에게 짓궂은 장난을 많이 당했다는 게 긴코-야이치 관계와 비슷하다.

9. 기타


  • 이 라이트 노벨이 대단하다!/캐릭터 부문 2019년 버전에서 남성부 13위를 기록했다. 여성부에서 소라 긴코가 4위를 기록한 걸 생각하면 엄청 낮은 순위지만, 이 작품 남성 캐릭터 중에선 최고 순위인걸 생각하면 상당히 선방한 것이며 팬들 사이에서도 제일 인기가 많은 남캐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 이름이 81인 것은 아마도 쇼기판이 가로 세로 9칸이라 9x9=81, 쇼기판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818단 드립은 실존하는 쇼기 기사 카토 히후미(加藤一二三) 九단의 별명 1239단에서 따왔다.
  • 눈이 나쁜건 아니지만 대국할 때는 집중하자는 의미에서 안경을 쓰는데, 이걸 넘어서는 초집중 모드에 들어가면 벗곤 한다.
  • 작중에서 자신은 용왕이니 정의로운 도전자를 사악하게 쓰러뜨리는 악역을 얼마든지 자처해주겠다며 폼을 잡곤 하는데, 이는 용왕 하면 바닷속 용궁의 임금님을 떠올리는 한국과 달리, 일본 서브컬처에서 용왕이라고 하면 드래곤 퀘스트초대 최종 보스가 압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 실제로 12권에서는 "서쪽의 마왕"이라는 몹시 RPG 최종 보스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 단행본 앞의 캐릭터 소개란에 각 캐릭터들에 대한 뒷설정이 짤막하게 나오는데 야이치에 관한 건 다음과 같다.
    • 대국 상대한테 콧털이 삐져나왔다고 지적당해서 동요해 진 적이 있다.
    • 명인을 상대로 한 용왕 방어전 때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의미에서 집 벽지를 바꿨다.
    • 초딩때 처음으로 교토여행을 가서 큰 맘 먹고 목검을 샀는데 스승님 집에 돌아온 이후 사저에게 뺏기고, 갈굼을 받았다.
    • 좋아하는 동화가 엄지공주라고 말했다가 로리콤으로 찍힌 경험이 있다(...)
    • 용왕위 획득으로 두둑한 상금을 받은 기념으로 비싼 옷을 사려고 했는데, 멋쟁이 점원에게 압도되어 그냥 유니클로로 가서 싼 옷을 샀다.
    • 이미지 체인지를 시도했다가 팬들의 욕을 한바가지 먹고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105]
    • 유명 쇼기 기사라는 간판 때문인지 최근 코팩을 하는 등 외모 가꾸기에 신경을 쓰는 중.
    • 운세를 엄청 따지는 편이라 오미쿠지를 뽑으면 대길이 나올 때까지 계속한다.

[1] 일본쇼기연맹에서 정한 승단 규정에 따라 용왕전 도전자가 되면서 四단에서 七단으로 승단했고, 용왕 타이틀을 획득하여 八단으로 승단, 5권에서 용왕 타이틀 방어 성공으로 용왕 획득 2기를 달성하여 九단으로 승단했다. 작중에서는 최연소로 九단에 승단했다.[2] 1권에서 히나츠루 아이를 연수회에 등록시키러 갔을 때 소라 긴코가 야이치에게 귓속말로 붙인 별명인데, 재미있게도 작중에서 그의 행적이나 취급을 보면 딱 맞는 별명이다.[3] 패한게 분해서 쫒아다닌 건 사저인 긴코 쪽이었다.[4] 보은(報恩)이란, 바둑이나 쇼기계에서 제자의 실력이 스승을 뛰어넘은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갚는(보은) 방법은 스승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격언에서 유래.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한국의 전설적인 바둑기사인 조훈현이창호의 관계를 들 수 있다.관련 기사[5] 코스케는 야이치가 (자신과 같은) 단순한 프로기사가 아니라 (쇼기계를 대표하는) 최정상 프로기사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자신으로서는 최정상 프로기사에게 필요한 정상에 섰을 때의 행동거지와 마음가짐을 알려줄 수 없기에, 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츠키미츠 세이이치에게 맡기려 했던 것. 그리고 작품 초반 야이치가 용왕 등극 이후 슬럼프에 빠진 이유가 급격하게 바뀐 환경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기 때문임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정확한 통찰이기도 하다.[6] 하지만 츠키미츠는 이 제안에 대해 거절하면서 야이치가 키요타키를 동경해서 쇼기계에 입문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그리고 이후 야이치가 슬럼프에서 벗어나 정상급 기사로 군림하게 되었으므로 츠키미츠의 통찰 역시 옳았다.[7] 보통 이 책에서 '''명인'''이라고 하면 그분을 가리키고 츠키미츠는 '''영세명인'''이나 '''회장'''이라고 불린다.[8] 이 때는 과거 장려회 회원으로 있을 때 기록담당으로 참관한, 아마추어 명인과 당시 명인의 기념 대국 당시 아마추어 명인이던 야샤진이라는 이름을 야이치가 까먹은 게 원인. 그래서 야샤진의 따님[7] 이걸로 아버지로부터 자기 스승으로 지정된 야이치를 갈궈댄다(...).[9] 7권에서 언급에 따르면 이때 키요타키 코스케는 기력저하로 B급으로 떨어지면서 은퇴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무렵에 막 제자가 된 긴코와 야이치가 받을 충격을 감안해서 은퇴하지 않았다.[10] 입회 극초기엔 강등점도 붙고 좀 고생했다가 금방 극복했다는 언급이 있다.[11] 장려회 3단 리그에서 최소 준우승을 기록하거나,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기록해 차점 2회를 기록하면 四단으로 승단된다. 참고로 야이치는 쇼기계에서 가장 가혹하다는 현행 3단 리그가 생긴 이후 첫 번째 중학생 통과자이다.[12] 작중에서는 4200만 엔, 실제로는 2020년 기준 4400만 엔.# 작중에서는 명인전 우승 상금이 2000만 엔이지만, 실제로는 미공개라서 정확한 상금은 알 수 없다.[13] 기전 서열 자체는 우승 상금이 가장 많은[12] 용왕전이 1위지만, 타이틀 홀더로서의 서열은 용왕과 명인이 동격(同格)이다. 이는 용왕전 창설 당시 명인전보다 격이 높은 기전의 창설에 반대한 역대 명인들의 승낙을 받기 위해 그런 식으로 절충했기 때문이다.#[14] 용왕과 명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해당 기사를 '용왕명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왕이 명인보다 서열이 높은 것은 아니다. 일단 상술했듯이, 용왕과 명인의 서열은 동격(同格)이고, 일본쇼기연맹에서 아마추어들에게 발급하는 단증에 서명할 때의 서명 순서는 오히려 명인이 용왕보다 앞서기 때문이다.(연맹 회장, 명인, 용왕 순) 게다가 용왕 타이틀은 2회 획득해야 九단에 승단할 수 있는 반면, 명인 타이틀은 1번만 획득해도 九단으로 승단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용왕은 실질적으로 명인과 동격(同格)의 대우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15] 참고로 용왕과 명인은 다른 타이틀보다 특별대우를 받는데, 예를 들어 어떤 쇼기 기사가 여러 개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타이틀 수에 맞게 N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예:소라 긴코 여류 2관) 용왕이나 명인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그냥 '용왕'과 '명인'이라고만 불린다.[14][16] A급, B급 1조, B급 2조, C급 1조, C급 2조 총 5개의 클래스로 나뉘어서 운영되고 있으며, 프로기사로 갓 데뷔하면 가장 낮은 C급 2조에 배정된다. 승급은 1년동안 치뤄지는 순위전 성적에 따라서 결정되므로 각 클래스에서 1년마다 승급을 한다고 해도 A급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4년이 소요된다. 그리고 A급 순위전에서 1위를 해야 명인 타이틀 도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명인에게 도전하기까지 최소한 5년은 걸린다. 게다가 이 5년도 말이 좋아서 5년이지, 실제로는 C급 2조부터 무패에 가까운 성적으로 순위전을 돌파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쇼기 기사들에게는 거의 꿈의 영역.[17] 그래서 현실에서의 명인전 또한 처음 프로 데뷔를 한 四단 기사는 기력이나 실력에 상관없이 순위전 C급 2조로 들어가서 순위전을 돌파해도 바로 B급 2조나 B급 1조로 올라가는 방식이 아니고 해마다 올라가도 한 단계 정도씩만 오르는, 특진 같은 게 없는 구조라 작중에도 명인전 예선 리그인 순위전은 사실상 기사들의 서열을 매기는 강등 싸움 내지는 순위 딱지 붙이기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18]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용왕전 리그의 경우는 여류기사라 해도 참가가 가능하기에 승수쌓기만 하면 타이틀에 도전해서 획득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열려 있다. 이것이 다른 기전과 용왕전의 가장 큰 차이. 당장 야이치 본인이 3단리그를 돌파한 직후 四단으로 프로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용왕전 리그 6조에서 올라와서 용왕이 된 것으로 언급된다. 이 와중에 만난 게 자신의 내제자이며, 첫번째 제자가 되는 히나츠루 아이.[19]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한상훈 당시 初단(현재는 九단)이 '''입단 11개월''' 만에 LG배 세계 대회 결승에 진출한 적도 있다.(우승은 이세돌 九단.)[20] 참고로 바둑계에서는 이창호1989년 KBS 바둑왕전에서 '''만 13세 5개월''' 때 우승을 차지한 바 있으며, 1990년 초 만 13세 6개월 때 최고위전(쇼기 용왕전같은 '타이틀전')에서 조훈현 九단을 3:2으로 꺾고 우승한 바 있다. 또한 이창호는 '''만 16세 6개월'''(쿠즈류 야이치와 같은 나이)에 제3회 동양증권배 '''세계대회'''에서도 우승(1992년 1월 27일)한 바 있다. 참고로 이 기록은 세계 최연소 세계대회 우승 기록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대기록이다.(2위는 중국 판팅위의 16세 7개월). 이외에 박영훈 九단이 2001년 二단 시절에 국내대회인 천원전에서 우승했고, 이세돌 九단은 三단일 때 세계대회인 후지쯔배에서 우승한 바 있다.[19] 이처럼 바둑계에서는 경력이 짧은 기사들이 쿠즈류 야이치처럼 기세를 타고 타이틀을 획득한 사례가 많다. 그리고 바둑은 어떤 면에서는 쇼기보다 더한 경우도 있는데, 여성 기사인 루이나이웨이 九단이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국수전 타이틀을 획득한 적도 있다. 그것도 이창호, 조훈현 사제를 격파하고.[21] 초반부 한정. 사실 이때는 용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슬럼프로 연패 중이라 그런 것이다. 제자를 들인 이후로는 정신적으로도 좀 더 성숙해지고 안정을 찾으면서 쇼기에서도 순항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세간의 소문에는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또, 이 즈음에서는 슬럼프에서 벗어난 모습 등으로 인해 용왕에 대한 여론도 어느 정도 옹호 쪽으로 돌아섰기도 했고. 그리고 5권에서 명인을 상대로 용왕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이후로는 최정상급 강자로 인정받고 있다.[22] 2부에 들어서는 오히려 너무 신경 안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명인을 상대로 용왕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이후 자신에게 '서쪽의 마왕(西の魔王)'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정도. 다른 이들과의 교류가 별로 없는 전형적인 외로운 늑대 타입인 오이시조차 6권 시점에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23] 사실 용왕 타이틀 획득 후 공식전 11연패를 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직접적인 원인은 6권에서 야이치의 독백에 의하면 용왕 타이틀을 처음 획득한 다음 해에 벌어진 첫 수 의식이었다.(1권의 시작 시점이기도 하며, 히나츠루 아이를 내제자로 두기 직전 시점이기도 하다.) 최연소 용왕이 되다 보니 간사이 연맹에 소속된 기사들이 첫 수 의식에서 야이치에게 "최연소 용왕에게서 한 수 배워보자고~" 라 하며 자신들의 최신 연구를 들이댄 것이 데미지가 되어 히나츠루 아이를 만나고 내제자로 두기 전까지 공식전 11연패로 온 것.[24] 사실 운이 좋아서 용왕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다. 작중 언급을 모아보면 용왕 타이틀 획득 당시 확실하게 안 만난 A급 기사만 따져도 명인, 츠키미츠 세이이치, 오이시 미츠루, 나타기리 진, 오키토 요우로 5명이나 된다. 이런 식으로 용왕 타이틀 획득 당시 유명한 강자와의 대국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인다.[25] 다만 용왕전의 치열함을 감안하면 신인인 야이치가 용왕 타이틀을 차지한 일은 놀라면 놀랐지, 폄하할 일이 아니다. 작중 다른 타이틀은 최소 11기(명인) 최대 24기(옥좌)를 보유한 명인조차 6기 밖에 못했을 정도로 치열한 기전이 바로 용왕전이다. 게다가 당시 갓 데뷔한 신인으로 최하위 랭크(순위전-C급2조, 용왕전-6조)인 야이치가 용왕 도전자로 결정되려면 실력은 둘째치더라도 강자들과의 연이은 대결(본선만 해도 6연전)에서 사실상 무패에 가까운 성적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실제로도 6조 우승자의 최고 성적은 4강으로 용왕은 커녕 도전자 결정전에 조차 진출한 적이 없다.[26] 다른 이유로는 용왕전을 제외한 다른 기전의 성적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는 점도 있다. 1권에서 승률 30%인 쓰레기 용왕이라고 언급되는데, 이 떄 야이치는 용왕전에서 최하위 랭크에서 시작해서 용왕 타이틀을 차지했으니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승수를 쌓았을게 분명하고, 제위전은 패배가 많기는 해도 일단 리그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이는 곧 예선을 돌파했다는 말이니 예선에서 어느 정도 승수를 쌓았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승률이 30% 라는 건 용왕 타이틀 획득 후 공식전 11연패를 뺴더라도, 용왕전과 제위전 그리고 강등점 이야기는 없는 순위전을 제외한 다른 기전에서는 1회전 탈락 수준의 형편 없는 성적을 기록 했던 걸로 보인다. 게다가 7권에서 (전년도 성적에 의해 정해지는) 순위가 38위로 낮아서 전승이 아니면 승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 있었던 점과 '''신인전 1회전 탈락''' 등의 언급을 모아보면, C급2조와 五단 이하의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딱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듯. 정리하자면 작중 언급되는 '신용'을 쌓기도 전에, 다시말해 강자로 인정 받기도 전에 덜컥 타이틀을 획득해버려 폄하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여담으로 야유무에 따르면 야이치가 자기보다 승률과 레이팅이 낮은 이유는 타이틀 보유자이기 때문에 각종 기전에서 예선이 면제되고 강자들과의 대국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27] 사저인 소라 긴코가 타이틀 홀더다.[28] 이는 히나츠루 아이의 아버지가 요리사로서 데릴사위로 들어왔다는 것과 비교하는 것으로 보인다. [29] 웃자고 하는 얘기고 애당초 어지간한 중견 기업 이상인 료칸의 '''매출'''과 개인의 '''수입'''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 없다. 당장 저 매출에서 각종 비용과 세금을 빼고 남은 최종수익(= 당기순이익)을 비교해야 하며 그것도 기업의 수익vs개인의 수입이라면 비교하는 것도 미안할 지경. 차라리 료칸의 주인의 수입과 비교한다면 또 모를까.[30] 희귀한 목재로 만든 바둑&쇼기판은 억대를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6권에서 히나츠루 아이에게 준 쇼기판이 500만 엔 정도 한다고 야이치가 언급했다..[31] 특히 6권 이후로 이런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예를 들어 본인 생각으로는 이제 슬슬 서반이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한판 붙어 볼까 하는 시점에서 상대방이 항복해오자 오히려 놀라거나 한다. 다른 사람들 생각으로는 상대방이 용왕의 맹공을 받아 도저히 더이상 둘 수 없는 상황인데 본인은 이제 좀 몸이 풀렸으니 본격적으로 해보자라는 식으로 쇼기별 왕자답게 생각에 괴리가 생겼다. 이외에도 이전에는 나타기리 8단에게 심리적으로 눌려 3연패를 할 정도로 힘을 쓰지 못했지만, 각성 이후에는 나타기리와 대국 중 재밌는 수가 생각났다며 즉석에서 생각해낸 전법을 실현하는 등 6권 이후로는 정말로 쇼기계 최정상권에 오른 값을 하고 있다. 당장 6권 이후로는 패배가 자오 9단에게 당한 1패 밖에 없을 정도고 그것도 각성 이후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가늠을 하지 못한 탓에 자오 9단에게 허를 찔린 것이다. 13권에서는 아예 기사들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프레셔를 느낀다는 묘사가 있다. 강한 기사일수록 같은 공간에 있기 힘들어 할 거라고. [32] 참고로 이에 대해 야이치는 자신은 긴코 때문에 살해협박도 당한적이 있다고 항변했다.[33] 여기서 야이치의 생각을 말하면 '''자신에게 있는 건 쇼기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렇기에 긴코 역시 야이치만 바라보다 보니 자신도 야이치를 따라 쇼기만 생각하게 되는 것.[34] 이건 히나츠루 아이가 6권에서 어머니로부터 배운 수법으로 야이치를 유혹했을 때도 나온다. 이 사건으로 야이치는 두 아이가 자립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각각 선물을 하나씩 준다. 그것이 히나츠루 아이의 쇼기반과 야샤진 아이의 쇼기말.[35] 다만 이건 사랑이라기보다는 미인 누나에 대한 동경에 가깝다. 애시당초 이 놈은 고작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귀어 본 적도 없으니 사랑에 눈을 떴다고 보긴 어렵다. 아직 중요한 것은 쇼기 정도인 소년일 뿐이다. 실제로 야이치는 6권에서 일단은 쇼기 외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정말 진지하게 케이카에게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36] 실제로 11권 긴코에게 고백할 때, 긴코 외에는 사랑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한다.[37] 로리에 하악거리지 않는다면서 장래 희망은 소아과 의사였다고 하는 인간이다. 뭐 굳이 저런 장래희망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면 어린 시절 긴코를 돌봐주던 장려회 3단 출신의 의사가 소아과 의사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하필 그 타이밍에 그 말을 하고 있으니 오해받는 것도 당연하다.[38] 특히 샤를로트 이조아드[39] 은하영웅전설양 웬리프레데리커 그린힐의 나이 차이가 이 정도다. 참고로 이 둘은 작중에서 결혼했다.[40] 이 경우 야이치 23세, 히나츠루 아이 및 야샤진 아이가 16세로 여고생 정도의 나이다. 최소한 로리콘이라고 욕먹을 정도는 아니고 2년만 지나면 혼인도 가능한 나이다. 다만 동거하긴 힘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약혼을 하거나 하면 오히려 대놓고 인정받을 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41] 긴코만 해도 2세, 야이치는 4세부터 쇼기를 시작했다. 히나츠루 아이만 해도 9세에 입문했어도 늦었다고 야이치가 한탄했을 정도였으니.[42] 참고로 당시 기준으로 최연소 기록. 2년 뒤에 소라 긴코가 경신했다.[43] 해당 사건 이후 11연패를 하고 나서 용왕이 하는 일 1권이 시작된다.[44] 작중 제위전의 원전에 해당하는 왕위전의 예선은 토너먼트지만, 본선은 리그전 형식으로 진행한다.[45] 이때는 아직 야이치가 생일이 지나지 않아 16세였다.[46] 타이틀 홀더의 경우 다른 타이틀전 예선은 면제가 되는 특권이 주어지지만, 현왕전은 일반기전이므로 얄짤없이 예선을 돌파해야 한다.[47] 상금 획득 순위 상위자 12명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기전. 일단 일본쇼기연맹이 주최하는 공식전이긴 하지만, 이벤트 대회 성격이 강하다.[48] 사춘기가 안 온 것 같기도 하다. 두 내제자의 엄마 역할이었던 케이카가 긴코가 결정적으로 뒤처진 것이 먼저 사춘기가 와서라고 할 정도였다. 제자들을 생각하는 걸 보면 이미 사춘기가 지났을 수도 있다.[49] 농담이 아니라 아빠가 제약회사에 근무한다는 학교 친구에게 자백제를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50] 게다가 아이의 집안인 히나츠루 가에서는 이미 야이치를 아이의 남편감으로 보고 있다. 그것도 이야기 시작 시점인 1권에서부터.[51] 이건 야이치가 히나츠루 아이를 여동생이나 딸로 여기기 때문이다. 야이치 본인의 입으로 작중에도 여러 번 언급됐다.(1권에서 아이가 야이치의 제자로 본격적인 쇼기 수업을 받기 위해 잠시 본가로 돌아간 시점에 야이치와 케이카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저러니 차라리 가족같이 여기지, 이성으로 여겨질 리가 만무하다.[52] 이게 왜 가능한가 하면 5권에서 반쯤 약혼을 한 것마냥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5권에서 문제의 식을 치르고 난 다음 날 아이의 어머니가 야이치를 찾아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53] 이 선물이 야샤진 아이에게 있어서는 정말 소중한 선물이다. 왜인지는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려준 보물이기 때문.[54] 야샤진 아이 역시 9권 이후 집안에서 야이치를 남편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야샤진 아이와 야이치의 관계는 쇼기연맹 회장도 은근히 밀어주고 있다.[55] 코미디 장면에서 야이치가 로리왕 대접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진지한 장면에선 긴코와 사귄단 루머가 부각되는 편이다. 정황상 아이를 제자로 받기 전부터 있던 루머이기도 했고, 긴코가 야이치에게 다가오는 여성은 대부분 쇼기로 박살을 내버리니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듯. 게다가 4권에서 하라주쿠에서 오사카역으로 돌아가는 내내 손을 잡고 다니며 사진까지 찍혔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 5권에서 기자들이 긴코는 상품 가치가 있으니 야이치와는 헤어지고 연예인같이 화제성 있는 사람이랑 사귀는 게 좋다는 식으로 언급하기도 하며, 10권에서도 긴코의 실력을 보고 놀란 장려회 회원이 긴코를 보며 쿠즈류의 여자니까 연구수든 뭐든 마음껏 배울 거라며 언급하기도 한다.[56] 이건 긴코의 차갑고 폭력적인 태도도 한몫하지만, 야이치의 둔감함도 상당 부분 차지하는데, 실제로 4~6권에서 보여준 긴코의 행보는 빈말로도 야이치를 싫어한다고 보긴 힘들다. 폭력적인 모습 역시 정당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아이나 다른 여자와 놀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일 때가 많았다. 1권에서 야이치가 자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안심했다고 말하는 부분이나 5권에서 세간에서 뭐라 하더라도, 타이틀이 함께 할 거고 같이 강해지면 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말과는 달리 싫지 않다고 생각하는 면모는 계속 드러내고 있었다.[57] 그 당시의 이야기가 케이카로부터 나오는데, 야이치가 도장에서 어떤 소녀와 사이가 좋아지나 싶으면 어느 순간에 그 소녀가 도장에서 사라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야이치도 그게 궁금하긴 했지만, 갑자기 이사라도 갔겠거니 생각했다고, 그런데 그 진실은 그 소녀를 타겟으로 삼은 긴코가 쇼기로 박살냄으로써 야이치에게 더 이상 접근하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간접적으로 협박했기 때문. 이 간접적인 협박을 이겨낸 유이한 경우가 야이치의 두 제자인 히나츠루 아이야샤진 아이 정도다. 게다가 야샤진 아이의 경우도 어찌 보면 히나츠루 아이와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인데, 야샤진 아이의 선친께서 생전에 야이치에게 자기 딸이 자라서 기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꼭 제자로 삼아달라고 부탁했다. 그것도 17세 영세명인이 간접적인 증인이 된 상황에서. 그리고 두 아이의 성격은 소라 긴코에게 있어서는 상극이다.[58]소중한 것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겠어.[59] 5권에서 야이치가 긴코의 위로를 받으면서도 타이틀에 집착을 하는 이유가 이 11권에서 밝혀지는데. 어린 시절 자기를 앞서 나가는 야이치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위해서 나갔던 대회에서 긴코가 덜컥 우승을 하면서 타이틀을 얻었고, 쇼기계 기자나 관련자들이 그녀를 천재라면서 갑자기 특별대우를 하면서 야이치 보고도 '긴코짱이라고 부르면 안 돼'라는 말을 듣고는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던 것. 즉, 긴코는 야이치를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 타이틀도 따고 사상 최초로 여성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도전하고 있고, 야이치는 긴코와 동등한 위치에 있기 위해서 용왕 타이틀을 따고 사수하고 있단 것이 된다. [60] 심지어 히나츠루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와의 영상통화에서 쿠구이 같은 집념을 품은 타입이 가장 위협적이라고 충고를 해줬다. 그래서 아이에게 를 누가 먼저 채갈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라는 충고도 해줬다.[61] 첫사랑은 아니다. 첫사랑은 유치원 때의 선생님.[62] 사실 야이치 본인도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호감을 나타내는 모습은 딱히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3권에서 케이카에게 거절당했을 때 생각보다 상처받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고, 만약 정말로 진지한 감정이었다면 6권에서 긴코와 쇼기 이외의 무언가로 이어진 관계가 되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63] 그래서 한 번은 아이의 역린을 건드려서 반성까지 한 적도 있다.[64] 사실 케이카에 대한 감정은 사랑보다는 동경에 가깝기도 하고, 오히려 긴장감 등을 보면 긴코에 대한 감정이 더 연애관계에 가깝다.[65] 호승심은 여전하지만 몸과 마음이 안따라줘서 초조해하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제자 둘 다 눈치챘기 때문.[66] 사실 아유무가 야이치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많은 형이다. 그러나 워낙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 사실상 동년배로 봐도 무관.[67] 다만 작중에서 야이치와 아유무가 대국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 왜냐하면 두사람의 위상과 실력의 차이가 크기 때문. 아유무가 3년 연속 승급을 기록하며, 상금왕전에 참가할 정도로 잘 나가는 기사이긴 하지만, 야이치는 최고위 타이틀인 용왕이며, 명인에게서 현시대 최강의 기사라는 평을 들을 정도다. 실제로 야이치의 주 대국 상대는 명인, 오키토 요우, 오이시 미츠루 등의 (순위전 A급과 타이틀 보유가 당연시 되는) S급 기사들이다.[68] 다만 동성애자는 아니고 양성애자다. .[69] 하지만 아이는 사실 사부가 타마요의 슴가에 헤롱헤롱하는 것에 격노한 것일 뿐 쇼기 쪽으로는 크게 의식하고 있진 않다. 오히려 타마요가 야샤진 아이를 꽤 의식하고 있다.[70] 5권[71] 7권의 (9사보를 생략한) 6오동계. 원래 후수의 한수버리기 각교환은 선수의 무리를 기다기리거나 천일수를 노리는 방어적인 전술이었는데, 야이치는 측면공격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됐던 9사보를 생략하고 바로 6오동계를 둠으로서 기존의 상식과는 다르게 후수가 공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괜히 '혁명'이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다.[72] 이쪽은 전술의 혁신성보다는 계단기 뛰기를 실전에서 둔다는 점이 놀라는 포인트다. 당장 계단기 뛰기로 재미를 본 야이치조차 요구하는 수읽기의 깊이가 너무 깊다며, 설령 다른 이가 쓴다고 해도 별로 무섭지 않다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작중 최고의 재능을 가진 야이치조차 인정하는 고난이도의 전술이라는 것.[73] 오이시 마코토로부터 몰이비차를 전수받은 뒤 오키토 요우에게 싱글벙글 중비차 전법이 밀리는 것을 보고 이를 보완하여 만든 신전술이다. 원래 쿠즈류 본인의 주 전술인 한 수 버리기 각교환이 상당부분 파훼되자 새로운 전술을 연구하다 나온 결과물이다.[74] 12권에서 제위전 1차전에서 컴퓨터를 통해 장기를 연구하던 오키토를 컴퓨터는 절대 구사하지 못하는 수를 둠으로써 승리했다.[75] 12권 감상전 中[76] 작중 야이치에 대해 농담이나 도발으로라도 '재능이 없다'는 말은 나온적이 없다.[77] 사실 용왕이 되고 나서 11연패 중이었으니 자신감이 좀이 아니라 심하게 결여된 상태였다. 용왕이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도전자가 아닌 타이틀 홀더라는 점에서 오는 부담감 등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이 된 상태. 거기다 이런 고민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78] 중학교 3학년 때 프로기사가 되어서 이 말은 현실이 되었다. 다만 아무리 늦어도라는 전제를 단 것을 보면 코스케는 야이치의 재능을 그 이상으로 생각했던 듯.[79] 쇼기를 완전히 해명하여 필승법을 발견할 수 있는 경지[80] 8권에서 마치의 회상에 의하면 원래 야이치는 동굴곰 파였던 듯하다... 라는 건 오해다. 후술되었다시피 야이치 본인은 뭐든 가능한 올라운더고 다만 초등학생 명인전에서 사실 그냥 마치에게 재밌는 걸 보여주겠다면서 들고 나왔던 것이 동굴곰이었을 뿐이다. 어떤 의미로는 더 무시무시한게 야이치가 이 때 재미로 보여준 동굴곰을 보고 기사 한 명의 인생관을 바꿔놓은 것이다.[81] 오키토 요우와의 제위전 제1전에서는 오히려 컴퓨터를 능가하는, 인간만이 둘 수 있는 수를 둠으로써 오키토를 꺾었다. 디지털 쇼기에서 야이치가 오키타 제위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있다는 것인데 사실 야이치 쪽이 젊은 축이라 컴퓨터에 더 익숙하다고는 하지만 더 오래 컴퓨터 쇼기를 연구해 왔을 오키타 제위보다도 컴퓨터와 쇼기 양쪽에 대해 더 높은 경지에 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82] 히나츠루 아이의 수읽기가 여러개의 머리속 쇼기판, 즉 병렬사고로 최대한 많은 패턴을 분석하는 물량 수읽기라면, 야이치의 수읽기는 그 상황에 최적화된 수를 찾아내는 인공지능의 딥러닝과 같은 수읽기라 볼 수 있다. 요컨데 더 효율적으로, 더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것.[83] 당시 야이치는 제한시간을 모두 사용해서 1분안에 다음 수를 둬야만하는 상황(일명 '1분 쇼기')이었는데, 너무 수가 잘 읽히는 나머지 아차하는 순간 수읽기에 들어가서 제한시간인 1분을 초과해 버릴 상황이었다.[84] 본인은 명인 앞에서 매우 형편없는 대국을 했다고 분하게 여기고 멘탈도 깨졌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보면 거의 종이 한 장 차이의 굉장한 대국이었다.[85] 실제로 1국은 츠키미츠 세이이치 영세명인조차도 그 상황에서 선수(先手)가 불리해질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명인이 그동안의 쇼기를 뒤집어버리는 수를 들고나와서 그렇게 된 것이고, 특히 3국은 둘 모두 1분 대국까지 갔던데다가 야이치가 시간만 있으면 분명 장군을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상황인 만큼 접전이었다.[86] 케이카는 천재도 고수도 아니지만, 오히려 스스로가 범재임을 인정하고 있기에 냉정히 볼 수 있었다고 독백한다.[87] 사실 이때 야이치의 문제는 실력 그 자체보다는 정신적인 문제로 쇼기 실력만큼은 케이카가 말한 대로 일취월장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정작 본인이 자기 실력에 확신을 두지 못하는 상황이었다.[88] 쿠누기는 처음부터 컴퓨터를 통해 쇼기를 습득했기 때문에 쇼기와 컴퓨터를 연계하는데 익숙하지만 쿠즈류 야이치의 경우 야이치 역시 컴퓨터에 익숙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명인전을 계기로 폭발하는 수읽기를 대응할 만한 게 컴퓨터밖에 없어서 컴퓨터로 연계한다는 느낌이다.[89] 그렇긴 해도 6권 이후부터 보이는 야이치의 모습만 보면 컴퓨터 쇼기보다는 야이치의 실력 그 자체가 더 강조되는데 사실 야이치의 경우 컴퓨터 쇼기를 둔다기 보다는 아예 머리 자체가 전뇌화가 되었다는 느낌으로 필요할 때마다 머리 속 데이터에서 쇼기 수법을 꺼내다 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오히려 세간의 컴퓨터를 이용하는 쇼기는 오키토 요우나 쿠누기 소타, 카라코 쇼지같은 기사들이 구사하는 편. 물론 컴퓨터도 사용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로 사용하는 편이다.[90]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야이치가 "자 이제 슬슬 몸을 풀었으니 이제부터 중반전이다!"하는 시점에서 상대방은 이미 떡실신이 된 상태다.[91] 키요타키 코스케의 스승인 사카이 쥬조 九단과 동문 사제지간이다.(사카이 九단의 사형이다. 즉, 키요타키 코스케의 사백.) 즉, 일문 항렬상 야이치와 긴코에겐 큰 할아버지 뻘, 두 명의 아이에겐 증조 할아버지가 되는 큰 어른이다.[92] 이 대국에서 자오 九단은 옛날에는 통용되지 않는 수였으나 정석의 변화에 따라 현 시점에서는 역설적으로 통하게 된 잊혀진 한 수로 야이치에게 패배를 안겨줬다. 자오 九단이 선택한 전법을 A라고 했을 때, 처음 등장했을 때는 당시의 정석으로 대처가 가능하여 사장되어버린 수였지만 이 수가 사장되어 잊혀지고 다른 수가 탄생하면서 정석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바뀌었고, 이런 변화를 반복하다보니 최초에 대처가 가능했던 A전법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하게 된 것.[93] 한편 이 대국에서 야이치는 얼마 전 관계자들 앞에서 자기 입으로 이젠 한물 갔다는 식으로 말한 망루 싸기가 순위전같은 장시간 대국, 특히 절대 져서는 안되는 대국에서는 믿음직하다고 생각해 선택했으나 패하고 말았다.[94] 참고로 자오 9단의 발언에 따르면 자오 9단 본인, 그리고 세이이치 9단조차도 비슷한 방식으로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베테랑한테 진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자오는 3분, 세이이치는 7분, 야이치는 14분 동안 버티다가 투료했는데, 자오는 그 14분이 야이치의 재능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95] 야이치 역시 승부욕이 강하긴 하지만 현 상황은 승부욕보다는 용왕 타이틀 홀더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스승인 키요타키 코스케 九단이 자책했듯 타이틀 홀더로서의 태도를 가르치지 못한 것이 야이치의 비교적 약한 멘탈과 안좋은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96] 이전에는 이 에피소드 때문에 야이치가 원래 동굴곰 파가 아니었냐는 말도 있었지만 그런 말은 작중에서 한번도 나온 적이 없고 야이치가 올라운더의 천재고 주 전술도 서로걸기나 각교환이 주로 나오므로 동굴곰 파라고 보긴 힘들다.[97] 11권에서 긴코의 담당의였던 아카시가 야이치의 재능에 대해 극약이라며, 이를 보고도 꺾이지 않고 3단까지 올라온 긴코의 정신력은 대단하다며 간접적으로 한번 언급하고, 12권 감상전에서 후타즈즈카 미라이가 대놓고 같은 세대라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야이치의 재능은 프로기사들마저도 좌절감을 느끼게 할 정도라는 것.[98] 2014년에 은퇴했다.[99] 용왕이 된 후 면허장이나 기념 부채에 붓글씨로 서명/휘호를 할 기회가 늘어났는데, 붓글씨가 서툴러서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서예가로도 활동 중인 쇼기 여류기사 이시바시 사치오(石橋幸緒)[98]의 지도를 받아 붓글씨 실력을 어느 정도 향상시켰지만, 시간이 지나자 도로 원상태가 되었다고. 덧붙여서 와타나베는 자신의 붓글씨에 대해 '''개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00] 원작에서 히나츠루 아이가 야이치의 개인 부채를 찾을 때 그걸 이리저리 숨기느라 고생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글씨가 너무 '''개성'''적이라 넷에서 또 놀림당했다는 이야기가 언급된다.[101] 참고로 센자키 九단은 용왕이 하는 일!처럼 쇼기를 메인 소재로 다루고 있는 만화 3월의 라이온의 감수를 맡고 있다.[102] 이건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이 영세용왕에 오른 후 영세기왕 칭호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은 현재 명인, 기왕, 왕장 타이틀 홀더다.[103] 원래 여류왕장 보유자로 '''퀸 왕장''' 칭호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일본쇼기연맹을 탈퇴해서 퀸 칭호를 상실했다.[104] 시온의 왕이라는 쇼기 관련 작품에서 원작을 맡았다.[105] 그래서인지 야이치는 최상단처럼 양복을 주로 입고, 사복을 입는 경우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