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츠키급 구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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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睦月型駆逐艦'''
1. 제원
2. 개요
3. 무츠키급 구축함 목록
4. 매체에서의 등장


1. 제원


건조 시작
1924년 5월 21일
진수 시작
1925년 7월 23일
취역 시작
1926년 3월 25일
생산 기간
1924년 ~ 1926년
취역 기간
1926년 ~ 1944년
완성
12척
침몰
12척
제원
전장
102미터
전폭
9.16미터
흘수
2.96미터
기준 배수랑
1,315톤
만재 배수량
1,445톤[1]
순항 거리
14노트로 최대 3,600해리까지 항해가능
속력
38,500 마력으로 최대 37노트
함포
120mm 45구경장 단장 함포 x 4문
어뢰
610mm 3연장 어뢰발사관 x 2문

2.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구축함 계보 '''무츠키급 구축함(睦月型駆逐艦)'''.
미네카제로 시작하는 1차대전 후~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이전의 1등 구축함(1000톤 이상 구축함) 계보의 마지막 구축함으로, 1923년부터 계획이 세워져있었고 초기 계획에 따라서는 1400톤급 구축함을 24척까지 건조를 예상했었으나 최종적인 결정은 1400톤급 16척(카미카제 후기형 4척+무츠키급 12척) 1700톤급 5척(후부키급)으로 결정되면서 12척이 결정되어 예산안이 집행되었다. 카미카제급의 후기형과 크게 차이나는 부분은 별로 없는데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수뢰전 능력으로 무츠키급은 610mm 어뢰를 건조 시부터 장착하였고, 산소어뢰가 개발된뒤에는 더 강한 대함 전투력을 발휘할수 있었다. 이 때문에인지 무장외에는 다른 점이 거의 없었던 카미카제급이 30년대 후반부터 2선급으로 물러나서 다른 임무를 맡았던 것에 비해서 무츠키급은 구식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선급 임무를 맡고 있었다. 배치 초기에는 모든 함선이 각각 21,22,30번 구축함대에 배치되었다.
준공 당시에는 일본 해군의 확장에 따라서 부여할 이름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어서 함명은 따로없이 그냥 함번만 부여했었다. 무츠키부터 제 19호로 시작하여 제 27호까지는 홀수번이 할당되었고 제 28호부터는 연속해서 제34호까지 할당되었다. 하지만 런던 군축 조약으로 주력함들이 줄어들게되고 보조함들의 숫자도 자연스레 줄게 되면서 이름이 못붙일 걱정이 사라지자 1928년 8월 1일에 일괄적으로 함명을 새로 부여하였다. 새로 붙은 함명들은 1~9번함까지는 1~9월까지의 각 음력 월에 대한 시적인 명칭을 붙였고(즉 무츠키는 1월이고 8월은 없고 8번함 나가츠키와 9번함 키쿠즈키는 9월이다.)나머지 세척은 달의 상태에 따라서(각각 초승달(三日月), 보름달(望月), 저녁달(夕月)) 이름을 붙였다. 특이한 점으로는 보일러는 당시 일본이 국산화에 성공했던 함본식 4기로 통일되었는데 터빈은 함본식이 아닌 다른 터빈을 장착한 함선이 있다. 3번함 야요이(弥生)의 경우에는 Metropolitan-Vickers(영국)사의 터빈을 가지고 와서 장착했고 8번함 나가츠키는 Escher Wyss & Cie(스위스)의 터빈을 장착했다.
건조이후에 어뢰발사기에 대한 덮개가 보강되었다. 또 제4함대사건으로 인해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함급이었고 이후 함급 전체가 보강공사를 받았다. 태평양 전쟁이 터진 이후에는 운용중인 함선들에 대해서 본국 귀환시에 대공 기총을 증강하였는데 44년즈음에 이르러서는 주포 두개와 어뢰발사관 하나를 떼고 대신 25mm 대공기관총을 다수 장착하기도 하였다.
태평양전쟁이 터진 이후 다양한 작전에 참여했다. 개전직후 웨이크섬 공략작전에서 키사라기가 침몰했다. 이후 남방작전 등에 동원되었는데 전황이 격화되면서 소모가 계속되었다. 특히 도쿄 익스프레스에 다수가 동원되었고 그 탓에 솔로몬해역 근방에서 동형함 6척이 침몰했다.1944년12월12일 9차 다호 작전[2]에서 우즈키와 유즈키가 나란히 침몰하면서 모든 동급 함선이 침몰하였다.

3. 무츠키급 구축함 목록


  • 무츠키(睦月, 음력 1월) - 사세보 조병창 건조.1926년 3월 25일 취역. 1942년 8월 25일, 헨더슨 비행장에서 이륙한 엔터프라이즈 소속 SBD 돈틀리스 8대의 폭격으로 화재가 발생한 수송선 긴류마루를 구원하던 중 미 육군 B-17의 폭격을 받아 산타 이사벨 섬 앞바다에 침몰했다. 네임쉽이 침몰하면서 무츠키급은 우즈키급으로 명칭이 개정되었다.
  • 키사라기(如月, 음력 2월) - 마이즈루 조병창 건조. 1925년 12월 21일 취역. 1941년 12월 11일, 웨이크 섬 남쪽에서 F4F 와일드캣의 100파운드 폭탄을 맞고 어뢰(또는 폭뢰)가 유폭해 두동강 나 폭침했다.
  • 야요이(弥生, 음력 3월) - 우라가 선거(우라가 도크) 건조. 1926년 8월 28일 취역. 1942년 9월 11일 노르만비 섬 동쪽에서 B-17과 B-25의 공습으로 항행불능이 되었다가 몇시간후 침몰했다.
  • 우즈키(卯月, 음력 4월) - 이시카와지마 조선소 건조. 1926년 9월 14일 취역. 1944년 12월 12일 올모크 만에서 어뢰정(...)과 교전해 격침되었다.
  • 사츠키(皐月, 음력 5월) - 후지나가타 조선소 건조. 1925년 11월 11일 취역. 1944년 9월 21일 마닐라 만에서 미 항모 함재기의 공습으로 격침되었다. 생존자는 육지에서 출동한 대발동정에게 구조되었다.
  • 미나즈키(水無月, 음력 6월) - 우라가 선거 건조. 1927년 3월 22일 취역. 1944년 6월 6일 필리핀 다바오 남동 해상에서 가토급 잠수함 SS-257 하더의 뇌격으로 격침되었다.
  • 후미즈키(文月, 음력 7월) - 후지나가타 조선소 건조. 1926년 7월 3일 취역. 1944년 2월 18일, 전날 트럭 섬에서 미 함재기의 공습으로 항행불능이 되었고 다음날인 18일에 침몰했다.
  • 나가츠키(長月, 음력 9월) - 이시카와지마 조선소 건조. 1927년 4월 30일 취역.1943년 7월 6일 자정 쯤 콜롬방가라 섬으로의 증원작전 중 좌초했다. 이후 미군기의 공습으로 대파되었고, 방치되었다.
  • 키쿠즈키(菊月, 음력 9월) - 마이즈루 조병창 건조, 1926년 11월 20일 취역. 1942년 5월 4일 툴라기 공략작전 중 미 함재기의 공습으로 해안에 좌초. 다음날인 5일 다시 공습을 받아 침몰했다.
  • 미카즈키(三日月, 초승달) - 사세보 조병창 건조. 1927년 5월 5일 취역. 1943년 7월 27일, 글로스터 곶에 좌초됐고 다음날 미 육군기의 폭격으로 침몰했다.
  • 모치즈키(望月, 보름달) - 우라가 선거 건조. 1927년 10월 31일 취역. 1943년 10월 25일 뉴 브리튼 섬 동쪽에서 미 해병항공대의 공습으로 침몰했다.
  • 유즈키(夕月, 저녁달) - 후지나가타 조선소 건조. 1927년 7월 25일 취역. 1944년 12월 13일 시부얀 해에서 F4U 콜세어의 폭격으로 항행불능이 되어 구축함 키리가 포격처분했다. 유즈키를 끝으로 무츠키급 구축함은 모두 침몰.
참고로 음력 8월은 하즈키(葉月), 10월은 칸나즈키(神無月), 11월은 시모츠키(霜月), 12월은 시하스(師走)이다.

4. 매체에서의 등장


  • 벽람항로에 무츠키급이 여럿 등장한다. 공통점은 전부 유치원생 복장을 한 로리캐라는 것. 레어도는 전부 최하급이며 왠지 나가츠키후미즈키만 R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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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 썬더일본 해군 트리 첫 번째 구축함으로 등장한다. BR은 3.7이다. 미국의 클렘슨과 함께 대공능력이 사실상 없는 양대 구축함으로 급폭기와 뇌격기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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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en.wikipedia.org/wiki/Mutsuki-class_destroyer[2] 레이테 섬 전력 증강을 위한 수송 작전. 연합군에서는 오르모크만 전투라고 불린다. 10월부터 12월까지 총 10차례에 걸쳐서 작전이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