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급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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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ato Class Submarine'''
'''대서양에 유보트가 있다면, 태평양에는 가토급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운영된 미 해군의 주력 수상함형(形) 재래식 잠수함. 가히 미 해군의 숨은 일꾼으로서 통상파괴전, 함대 요격, 초계, 정찰, 구조, 물자 지원, 특수전 등 다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일본 해군이 패배하게 만드는 주범이자 미국을 지켜준 잠수함. 전간기 동안 각종 실패를 교훈삼아 살몬급 잠수함의 건조 이후부터 개념을 확실히 잡아 설계해내 성능, 신뢰성이 우수한 걸작 잠수함으로 손꼽히며 총 77척이라는 많은 수가 건조되어 실전배치, 활약을 했다.
대략 누구의 인물 때문에 이름만 보고 일본 해군 잠수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Gato는 두툽상어과의 일종을 뜻하며 정확한 발음도 가토보다는 "개토"에 가깝다.[3] 참고로 일본인의 성씨인 가토(加藤)는 'Katou'로 표기한다.[4]
소폭 개량형으로 발라오급 잠수함과 텐치급 잠수함이 있다.
2. 제원
3. 설계과정
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함대형 잠수함(Fleet Submarine)'''의 설계를 얻어내기 위해서 전간기 동안 미 해군이 투자해 온 노력과 삽질은 그야말로 장대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 해군에선 S급 잠수함을 운영하면서 이들 잠수함의 성능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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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잠수함 1번함 S-1(SS-105). 최대속도 시험항해 중이다.[31] - 1920년 4월 20일 매사추세츠 주 프로빈스타운 앞바다에서 촬영
S급 잠수함의 실패 이후 미국은 비교적 소형의 잠수함에 대한 건조기술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이에 장거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순양잠수함 계획을 짜게 되어 훨씬 크기를 키운 V보트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그에 따라 바라쿠다급 잠수함과, 아예 작정하고 크기를 확 키워보자는 생각에 1차대전기 U보트의 설계를 확장시켜 만든 아르고노트급 기뢰부설 잠수함과 나왈급 잠수함을 건조하기에 이르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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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쿠다급 잠수함 1번함 SS-163(취역 당시엔 V-1, SF-4로 불림) 바라쿠다(Barracuda).[32] - 1934년 7월경 알래스카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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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왈급 잠수함 1번함 SS-167(취역 당시에는 V-5, SC-1으로 불림) 나왈(Narwhal).[33] - 1929년 12월 17일 포츠머스 해군기지에서 촬영
그나마 바라쿠다급의 경우 S급보다 개미 눈곱만큼이라도 낫다는 평은 들었으나 아르고노트급 기뢰부설 잠수함과 나왈급 잠수함은 취역 이후 안 좋은 쪽으로 미 해군 기록을 새로이 쓰고 있었고, S급과 이전 V보트들에게서 나왔던 각종 문제점들을 종합해 본 결과를 토대로 시험 목적의 잠수함들을 건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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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샬롯급 잠수함 SS-170 카샬롯(Cachalot). 최후의 V보트 프로젝트 함종으로서 이전의 똥망작들에 대한 반성이 많이 반영되었고 설계상 이후 미 해군의 함대형 잠수함들의 아버지라 불려도 부족함은 없으나 시험함 성격상 및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재해 본격적인 실전에서 활약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 1934년 7월 9일 포츠머스 해군 기지에서 촬영
시험 목적의 잠수함들인 카샬롯, 포퍼즈급 등을 건조하게 되면서 생기게 된 노하우는 살몬급에서 조금씩 그 결실을 맺기 시작했으며 이보다 모든 면에서 성능이 강화된 사르고급 잠수함, 탬버급 잠수함을 건조한 이후 미국 특유의 함대형 잠수함 선체 설계는 주욱 이어져 와 후계 함종인 탬버급 잠수함의 설계에 적극적으로 채용이 되었는데, 가토급 잠수함의 기본 설계는 이 탬버급 잠수함을 기반으로 한다. 정확히는 탬버급 잠수함의 3차 개량형에 속하는 잠수함이자 2차 개량형인 거(Gar)급 잠수함의 개량형으로서 계획되었다. 초기에는 가토급 1번함인 가토부터 6번함 가드피쉬까지 탬버급 잠수함과 동일 함종으로 구분하기도 했으나 이후 가토급이라는 독립적인 함종으로 분리되었다.
이 당시 미 해군에선 국제 정세의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껴 해군 전력의 대규모 증강계획인 2대양 함대정비계획을 시작했다. 본디 65척의 건조가 결정되었으나 1941년 형식의 함선 2척이 추가 건조되었다. 이후 1942년도에도 4척이 추가 계획되었으며 가토급은 최종적으로 전부 1941년형, 1942년형 이외에도 전시 긴급 추가 예산이 집행되어 총 77척에 이르는 많은 양의 잠수함이 건조되었다.
가토급 잠수함의 건조를 담당한 주요 회사와 조선소는 코네티컷 주의 그로튼에 위치한 일렉트릭 보트(Electric Boat Shipbuilding Company, 현 제너럴 다이나믹스 일렉트릭 보트)사와 메인 주의 씨베이 섬에 위치한 포츠머스 해군 조선소(Portsmouth Navel Shipyard), 캘리포니아 주의 발레요에 위치한 메어아일랜드 해군 조선소(Mare Island Navel Shipyard) 및 위스콘신 주의 매니토웍에 위치한 매니토웍 조선소(Manitowoc Shipbuilding Company)이다.[34]
3.1. 선체설계[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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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의 선체는 사르고급 잠수함의 기본 레이아웃을 바탕으로 하되 승계 함정인 탬버급 잠수함보다 선체 길이를 1.5m 잡아 늘여 선체가 소폭 커졌으며 기존 탬버급의 경우 기관실 1개소에 주기관 4기를 설치한 형태이나 기관실을 2개소로 분리하고 각 기관실 당 기관을 2기를 배치하며 전방/후방 기관실 사이에 벌크헤드를 더 추가해 전체적으로 탬버급보다 좀 더 수압을 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주 압력선체는 총 8개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전방 어뢰실, 장교 거주구/전방 배터리 구획, 전투정보실/무전실/주요 화기 탄약고/펌프실, 승무원 거주구/후방 배터리 구획, 전방/후방 엔진 구획, 모터실, 후방 어뢰실로 나뉜다. 독일의 '''U보트들과 비교해 평균적으로 2~3배에 달하는 배수량과 덩치'''는 승조원들의 거주성 향상과 장거리 항해능력 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데 성공했으며 잠항심도는 14.3mm로 두께가 강화된 압력선체를 바탕으로 기존 탬버급의 시험잠항 심도인 75m에서 증대된 91m까지의 잠항을 보장하나 실전에서는 시험 최대잠항심도인 91m[36] 를 넘은 152.4m까지 잠항을 한 기록이 남아있다.
전체적인 선체 설계는 미국 함대형 잠수함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복각식 설계가 기본 베이스에 내압선체 내부에 트림 탱크, 내압 위생 탱크 등의 탱크가 별도로 존재해 U보트나 영국 잠수함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부분복각식 선체 설계의 영향도 소폭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복각식 선체는 내압선체 외부에 모든 탱크들이 설치되어 있기에 가토급을 포함한 미국 함대형 잠수함들은 완전한 의미의 복각식 선체설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가토급 잠수함은 외관상으로 볼때 내압선체가 외부로 노출되어있는 설계가 아니며 내압선체를 주 밸러스트 탱크들이 거의 완벽하게 감싸고 있는 형태를 지니면서 동시에 부분복각식 설계를 소폭 적용해 내압식 탱크를 보유하여 잠수함의 전체적인 크기를 키우지 않고 탱크들의 여유공간을 어느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코닝타워 역시도 별개의 압력 선체로 구분되어 설계되어 있는데, 다른 잠수함과 달리 가토급을 포함한 미국 함대형 잠수함들은 별도의 코닝타워 압력선체를 설계에 적용해 코닝타워에 손상을 입어 침수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설계를 꾀했으며 코닝타워 내에 거의 모든 전투체계를 우겨넣어 효율적인 전투를 가능하게 했으며 잠수함이 침몰할 시 이곳을 통해서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코닝 타워 내에는 레이더, 소나 콘솔, 공격/관측 잠망경, 타기, TDC, 플로터 등의 장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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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러스트 탱크의 경우 주 밸러스트 탱크 10개, 연료 밸러스트 탱크 6개소가 존재하며 선수 방향과 후미에 주 밸러스트 탱크 1기씩, 선체 양 측면에 8개의 주 밸러스트 탱크와 연료 밸러스트 탱크 6개가 배치되어 있다. 뱃머리에 부력 탱크, 2A-2B와 2C-2D 주 밸러스트 탱크 사이에 네거티브 밸러스트 탱크가 존재하며 선체 중앙부에 Safety Tank가 추가되었다. 연료탱크는 측면에 위치한 밸러스트 탱크보다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연료 밸러스트 탱크를 이용한 함의 균형을 잡을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네거티브 탱크는 해수를 충수시켜서 추가 중량을 확보하고 세이프티 탱크는 그냥 공기를 채운채로 내버려둬 양의 부력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섬프는 윤활유 계통에서 순환이 끝난 윤활유가 모이는 역할을 한다. 섬프 탱크라고도 하는데, 계통을 따라 한바퀴 돈 윤활유가 흘러내려 모인다. 그리고 섬프에서 모이면 다시 계통을 따라 돌고 증발하며 이후 섬프의 윤활유 유준을 보고 윤활유를 보충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청수는 승조원들의 식수, 씻을 물 등을 제공하며 어뢰발사관에 충수와 어뢰 세척을 목적으로 한 청수를 담는 보상탱크가 따로 존재한다. 총 3곳이 존재하는데, 가토급은 전방 어뢰실에 2곳, 후방 어뢰실에 1곳이 존재한다. 일단 청수를 저장했다가 어뢰 발사 시 발사관 내에 충수를 실시하고 어뢰 발사 이후에는 어뢰발사관 내에 들어찬 해수를 보상탱크 내로 배수하고 이후 보상탱크를 완전히 비운 다음 다시 청수를 채우는 식으로 사용한다.
배터리 증류수 탱크 역시 따로 존재하는데, 이론상으로는 본래 절대 증발을 하지 않지만 현실은 지속적으로 증발하기 때문에 이 배터리 증류수 탱크 역시 존재한다. 총 용적은 1,208갤런.
내압 위생 탱크는 오물 탱크다. 즉 똥통. 물론 내압식의 설계이기에 가토급 잠수함은 잠수시에도 승조원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으며 화장실 배관을 잠그고 압축공기를 불어넣어주면 그대로 오물이 선체 외부로 배출된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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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수집 탱크는 복수기에서 증발했던 물이 모이는 역할을 하며 팽창탱크는 보일러나 냉각수에서 온도가 올라 끓어오르게 되기에 버퍼 역할을 한다. 청정 연료유 탱크는 해수와 접촉하지 않는 연료유를 저장하는 탱크로 생각하면 편하다. 물론 나중가면 연료 및 무장 소모 등으로 중량보상을 위해 해수를 채우게 되기에 큰 의미는 없다. 또한 연료탱크 용적이 기존 탬버급의 93,993갤런에서 97,140갤런으로 확장되어 최장 75일간 10노트의 속력으로 2만 km를 항해하며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잠수 완료시간은 확장된 선체를 이용해 밸러스트 탱크의 확장 및 개량및 기관, 어뢰 등의 중량물 배치를 하여 매우 안정된 잠항능력을 바탕으로 유압 구동으로 조작되는 잠항타를 채용하고 혹독한 승무원 훈련을 통해 부상 상태에서 완전 잠항하는데에 최단시간 30~35초를 기록하였으며 부상 상태에서 잠망경 심도까지 잠수하는데에 약 45~50초가 소요되어 2천 4백톤급의 배수량을 가진 잠수함 치고는 상당히 빠른 잠수 완료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기록들은 어디까지나 승무원의 훈련 강화와 각종 꼼수[38] 들을 통해 시간을 줄여 그 덩치급에서 빨랐단 소리였지 압도적으로 빠른 수준은 아니었고 U보트의 잠항속도와 비교했을때 상당히 느린 편이고, 평균적으로는 완전히 물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55초에서 65초정도의 잠수완료시간을 가졌다.
가토급 잠수함의 꽤 괜찮은 잠수완료시간의 비결로는 성능 좋은 밸러스트 탱크와 효율적인 배치, 중량물 분배의 영향도 있으나 자유충수구역 배수구를 덩치에 비해 훤히 뚫어놓은 것도 한 몫 한다. 당시 대부분의 잠수함들이 자유충수구역 배수구를 하나하나 뚫어놓았던 데에 비해 가토급은 선수부에만 단일 배수구로 뚫어놓았고 주요 배수구는 일직선으로 훤히 뚫어버리는 꼼수를 부려놨는데, 이는 밸러스트 탱크에 빠른 시간내에 충수가 가능하게 해주며 여분의 공기가 빠르게 빠져나갈수 있게 도움을 주어 빠른 잠수가 가능케 했다. 이렇게 일직선으로 뚫어버린 충수구의 설계는 이후의 잠수함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런 배수구의 설계는 가토급이 최초로 도입한 것은 절대 아니고, 이미 예전부터 일본이나 영국 등에서도 도입을 했던 것들이라 당시 기준으로도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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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타 역시 유압 구동식을 사용해 선회능력이 매우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좌/우로 최대 38도까지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 전방의 잠타는 유압으로 폴딩이 가능해 전개 및 수납이 가능했다. 이유는 입/출항 및 잠수함 모함 옆에 계류하기 위해서였는데, 입/출항시 홋줄작업 도중 전방 잠타가 전개된 상태에서 부두시설이나 다른 선박들과 충돌할 경우 파손되는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39]
잠수함이 침몰할 시 승무원들이 비상탈출을 하기 위한 고려도 되었는데, 전방/후방 출입해치 근처에 구조 부이가 1개씩 총 2개가 설치되었고 잠수함이 손상을 입고 침몰하기 시작하면 이 부이가 풀리면서 물 위로 떠오르며, 동시에 승조원들이 해치를 열고 탈출하면 구조부이와 잠수함을 연결하고 있는 부이 와이어를 잡고 물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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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교의 기본적 형태는 V-보트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시가형 코닝타워가 채택되었다. 이 시가형 코닝타워는 수중저항을 극도로 줄여 수중에서 기동성을 노리기 위한 다소 진보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크고 불편한데다 잠수완료시간이 늦어지는 원인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지나치게 시대를 뛰어넘은 설계다'''라는 평을 받아 이후 개수를 받게 된다.
3.2. 추진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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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엔진은 제너럴 모터스 사의 16-278 V-16 엔진 혹은 페어뱅크스-모르스 사의 38D 8-1/8 10실린더 2행정 대향 피스톤 엔진을 채택했다.
이 디젤엔진들은 컴팩트하게 정리되어 정비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설계를 적용해 정비하기 편했고 엔진 자체의 신뢰성도 매우 높았다. 또 다른 특징은 '''디젤엔진이 발전용으로만 이용되는 전기추진'''이라는 점이었다.
동시기 대부분의 잠수함이 디젤-전기 복합추진, 즉 수상에서는 디젤엔진으로 스크류를 돌리지만 수중에서는 전기 모터로 스크류를 돌리는 방식인 반면 가토급의 경우 스크류는 전기 모터로만 돌리고 수상 항해시 고속 모터 4기로 항해하고 잠수시에는 저속 모터 2기로 전환하며 디젤 엔진은 순전히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역할만 했다.
이 추진방식은 오로지 전기 모터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출력이 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최대 수상 항해속도 20.25노트, 수중 항해속도 9노트를 발휘해 큰 문제는 없었다. 사실 두가지 추진체계를 이용하느라 기어박스 등의 추진체계가 복잡해져 실질적인 용적이 커질 필요도 없고 관리나 정비도 편리해지는데다 동시에 소음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초창기, 이 두 종류 엔진의 생산 물량이 부족해 일부 함정들은 구식의 후벤-오웬스-웬슬러 사의 디젤엔진을 장착하기도 했다. 이 엔진은 본디 독일 MAN 사의 기술지원을 받아 만든 엔진이나 이미 태평양 전쟁 기준으로 구식화된 엔진이었고 출력이 낮으며 정비하기 까다로웠던데다 진동과 소음이 심해 악평을 얻었다. H.O.R제 엔진을 장착한 가토급들은 이후 오버홀을 거치며 신형 엔진으로 교체된다.
배터리는 사르고급 잠수함부터 사용해오던 126셀의 UVA-47 납 배터리를 사용하여 수중에서 2노트로 잠항할 시 48시간을 잠수할 수 있었다. UVA-47 배터리는 일명 사르고 배터리라 불리면서 도입 이후 미 해군에서 기존의 ULS-37, UHS-39B 배터리보다 내구력, 신뢰성 등에서 많은 개선이 있었기에 호평을 받았고 1950년대까지 미 해군 디젤 잠수함의 배터리로 사용되었다.
3.3. 전자장비 및 부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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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장비의 수준 역시 높았는데, 선체 하부에 QB, QC/JK 소나를 설치하고 전방 갑판 위에 JP 수중청음기를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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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B, QC/JK소나 콘솔은 앞서 설명했듯 코닝타워에 설치되어 있으며 음탐을 담당하는 승조원이 2인 1조로 운영했다. JP 수중청음기 콘솔은 전방 어뢰실에 배치되어 있었다. JK소나와 QC소나는 서로 통합되어있는데, JK소나는 액티브 모드와 패시브 모드를 사용할 수 있었고 QC소나는 액티브 핑을 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공격 시 QB소나는 표적을 추적하고 JP 수중청음기는 표적 이외의 적함을 탐지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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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뢰 사격 통제컴퓨터인 TDC(Torpedo Data Computer)를 설치하여 소나와 레이더, 공격 잠망경과 연동되어 있었으며 이들에게서 제공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격까지의 걸리는 시간의 단축과 명중률 상승을 동시에 성공시켰다. 아직 무유도 어뢰밖에 쓸 수 없었던 시대에는 적의 예상 경로를 향해 함체를 돌려야 해서 반응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었는데, 전간기 중의 기술 발전으로 TDC의 사격제원을 입력받은 어뢰는 '''직선 경로에서 벗어나 휘어지면서''' 어뢰를 유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었기에 직접 함체를 돌려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이런 기술적인 발전은 가토급 잠수함의 반응 속도를 엄청나게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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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SJ 수상 수색레이더를 장착해 탐색 능력을 높였다. 거기에 조수장비를 설치해 조수능력이 강화되고 2개의 샤워실과 세탁기가 설치되거나 '''에어컨디셔너''', 냉장고 등을 설치하는 등 거주성이 좋아졌다. 에어컨이 별거냐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극히 더운 태평양 지역에서 작전할때는 매우 유용했는데, 태평양 해역에서는 잠항하면 '''잠수함의 실내온도는 40도가 넘게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 승무원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상당했고 함내 온도 상승으로 인해 생기는 응결수 때문에 잠수함 내의 각종 전자장비와 설비들이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컸던 것. 이것을 어느정도 억제함과 동시에 승무원에게 '''그나마''' 쾌적한 작전환경을 제공하여 얻어지는 작전의 효율성 상승효과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는 어느정도 쓸만한 정도까지의 응결수 억제를 하는데에 그쳤었지, 실제로 승무원들에게 매우 쾌적한 수준까지의 함 내의 온도와 습도 조절을 해내거나 이산화탄소 등을 줄여주는 수준까진 해내지 못 했다. 하지만 '''없는 것 보단 나은데다가''' 동시기 일본 해군은 이 에어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냉각팬 소음 문제 등으로 제대로 작동시킬 수가 없어 문자 그대로 잠수함 내부가 '''찜통'''이 되곤 했다.
또한 에어컨에서 발생하는 응출수는 잠수함에서 공급받기 어려운 민물 이용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한다. 가토급에 설치된 샤워실과 세탁기에 필요한 물은 주로 응출수가 이용되었다. 이 덕분에 가토급의 거주성과 복지 수준은 전후 구 일본군 잠수함 승조원이나 독일군 U보트 승조원들이 가토급에 승선한 뒤 '''호텔'''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양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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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미 해군 잠수함들은 헤드셋 형태의 음력전화기를 거의 전 구획에 설치하고 있었다. 기존의 함내방송/전성관을 통한 함내통신수단의 경우, 가까운 거리의 경우에는 큰 불편함은 없으나 거리가 멀어질 경우 그만큼 소리도 잘 안들리고 승조원들도 큰소리로 외쳐야 하거나 아예 전령수를 보내서 보고를 하는 등 신속하고 정확한 보고 및 전파가 힘들다고 판단해 아예 잠수함 내의 모든 구획에 음력전화망 라인을 가설했다. 음력전화기는 잠수함이 완전히 동력을 잃고 정전이 일어나도 A사이즈 건전지를 이용하기에 라인만 살아있다면 사용 가능한데다 설령 끊긴다 하더라도 전기 직별 승조원들이 새로 가설할 수 있었으며 부가적으로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소음 자체를 많이 줄이기에 음탐을 맡는 승조원들은 소음 방해없이 좀 더 원할하게 소나를 다룰 수 있었다.[42]
3.4. 무장체계
주요 무장인 어뢰발사관은 탬버급과 같은 선수 6문, 선미 4문 총 10문을 장비했으며 어뢰탑재량 24발, 기뢰탑재량 40기로 탬버급과 동일하며 사용 어뢰는 Mark.14 어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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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14 어뢰. 태평양 전쟁 초중반에 미국 잠수함 함대의 골칫거리이었다.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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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급 잠수함 25번함 SS-236 실버사이즈(Silversides)의 3인치 50구경장 Mark.17 덱건. 일본 해군의 피켓 보트를 향해 사격 중인 장면이다. 이 덱건은 기존 수상함에 장착되던 Mark.10 함포의 잠수함용으로 개량된 물건이나 매우 약한 화력 때문에 승조원들에게 악평을 얻었다. - '''1942년 10월 14일 촬영'''
덱건은 기본 사양으로 3인치 50구경장 Mark.17 덱건을 채택하였다. 이 덱건은 전체 무게 4.2톤, 360도 전방향 회전이 가능하며 양용포를 기반으로 만들었기에 부앙각은 최저 -15도, 최대 85도이다. 강선은 26조 우선에 분당 발사속도 최대 15~20발을 기록했으며 5.9kg의 철갑탄, 고폭탄, 대공포탄, 조명탄을 초속 823m의 속력으로 고각 2.0도 기준 2,740m, 4.3도 기준 4,150m, 43도 기준 13,350m 까지 쏴 날릴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수중저항 감소를 위하여 코닝타워 후방에 설치되었으며 포탄은 무전실 아랫층의 탄약고에서 보관하는데, 갑판으로 포탄을 올려주는 탄약 이송 스커틀(이송관)이 설치되어 일일히 포탄을 직접 갑판까지 도수운반해서 장전할 필요 없이 그대로 스커틀을 통해 밀어내 올라온 포탄을 꺼내 사격할 수 있게 배려되었다. 탄약 이송 스커틀의 위치는 승조원 식당구획의 천장에 위치해있다. 스커틀은 해당 잠수함이 장착한 덱건의 포탄 구경에 따라 3인치, 4인치, 5인치 모델로 구분되어 잠수함에 설치된다.
또한 근접해오는 소형 선박이나 항공기에 대한 대응을 위해 기본으로 50구경의 M2 중기관총 2정과 30구경장 M1917 기관총이나 M1919 기관총이 2정 설치되었다.
가토급의 무장능력은 동시기 일본의 이호급 잠수함들이나 독일의 U보트와는 비교를 거부하는 중무장으로서 '''이러고도 여유가 남아서 차후에 추가무장을 장착'''하고 돌아다녔다.
4. 개량 및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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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은 가토급 잠수함을 건조할 시 추가 무장을 장착하거나 건조 중 자체적인 개량을 하지 않도록 규정했는데 추가 개량등으로 인해서 잠수함의 인도 및 실전배치일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일선의 경험 및 건의에 따라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장비나 시설물들은 과감하게 철거를 하거나 오히려 추가 무장을 장착하는 등의 개량이 상당히 많이 실시되었다.
4.1. 코닝타워 개량
코닝타워의 경우 디자인의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졌고 조선소들및 년도에 따라 디자인의 차이가 있는데, Mod. 2A부터 Mod.3A, Mod.4A마다 디자인들이 각기 다 다르고, 각 함마다 승조원들의 요구사항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세부적인 형상까지 놓고 보면 통일성 자체가 존재하질 않았다. 덱건이나 대공포, 기관포 등의 주요 탄환을 바로 꺼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코닝타워의 전-후방에는 준비탄 적재함[44] 이 설치되어 있으며 나머지 포탄 및 소화기들은 무전실 바로 아랫층의 탄약고에서 보관하는데, M2 중기관총이나 M1917, M1919같은 거치식 기관총의 경우 급히 꺼내쓰기 위해서 코닝타워 내의 전투실에 따로 비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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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닝타워의 세부 구조도 전훈에 의해 지속해서 개량이 되었다. 이때도 잠망경 지지대나 견시대의 디자인, 예비탄 적재함 갯수와 위치, 레이더 역탐 안테나, 점프 케이블 마스트 등 승조원들의 요구에 따라 각자 다 다르다. 이런 일련의 개량으로 코닝타워의 충수 시간을 단축해내어 잠수완료시간 감소를 달성했으며 추가 무장이 장착 가능해져 수상전투시의 화력이 매우 강화되었다.
4.1.1. 별도 개조사항(세부 바리에이션)
4.2. 레이더 개량
전쟁 중에 레이더 역시 개수를 받아 잠수함 전용의 신형 SD 대공 경고 레이더가 추가 탑재되었고, 잠망경처럼 물 밖으로 레이더만 내놓고 경계임무를 하거나 적을 찾아낼 수 있도록 했다. 레이더의 위치도 수시로 바뀌었는데, 잠망경 마스트 뒤에 따로 레이더 마스트를 설치해 여기에 SD레이더를 붙여놓는 경우도 있었고 1945년기에 신형 SV 대공 수색 레이더를 장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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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무장 개량/개조
덱건은 취역 초엔 탬버급이나 그 이전 함급과 마찬가지로 3인치 50 구경장 덱건을 장비하고 취역했으나 이 덱건은 눈물 나는 화력과 성능 때문에 '''콩알탄''' 혹은 '''장난감 대포''' 같은 비하적인 별명이 붙었고 결국 구식 S급 잠수함 등에 탑재되어있던 4인치 덱건으로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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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4인치 덱건도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책으로 장착한 것 뿐이었고 비좁은 잠수함의 갑판 위에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으며 상당한 구식이었으므로 차후 훨씬 개량되고 조작이 편해진 5인치 25구경장 덱건으로 교체된다. 평균적으로는 1문 장착이 기본이나 '''함장 이하 승조원들의 전훈 및 취향'''에 따라 2문까지 탑재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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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덱건의 설치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본래 설치 위치인 함교 후방에 설치한 경우도 있지만 적을 추격하기 위해서 덱건을 함교 바로 앞에 설치하여 신속하게 포격을 하기 위한 배려를 하기도 했으며 전쟁 기간 중 적 항공기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40밀리 보포스포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5인치 덱건 2문과 40밀리 보포스포를 앞뒤로 장착해버려 사실상 일본군의 해방함(호위함)과도 맞짱 떠볼법한 무장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전쟁 말기에는 '''5인치 로켓탄'''을 단 잠수함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개량들은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 수상함 및 수송선단 전력이 씨가 말라버려 많이 쓰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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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총도 애초엔 12.7밀리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및 7.62밀리 M1917 혹은 M1919 브라우닝 기관총을 탑재했는데 이것도 점차 스위스 엘리콘사의 FF 20밀리 기관포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섭섭했던지 추가 기관총을 탑재하는 사례도 많았다. 특히나 기관총은 딱히 정해진 장착수량이 없고 규정이 느슨해서 장착 수량이 함장 취향에 따라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았고 심할경우 빨리 꺼내서 거치하기 위해 코닝타워나 해치 주위에 시건장치를 따로 만들어놓고 필요할 때 꺼내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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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례들처럼 일부 무장들이 개량된 가토급들은 잠수포함 등의 별명이 붙는 경우도 허다했고 웬만한 일본 해군 수상함보다 더 좋은 대공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4.3.1. 무장 배치구성
4.4. 외부선체 개량
또항 잠수완료시간 개선을 위해 외부선체의 자유충수구역 배수구를 추가로 더 뚫는 개량도 실시되었는데, 흘수선을 따라 일렬로 배치된 형태의 배수구는 해군 조선소, 함의 측면 벌지를 따라 곡선으로 뚫려있는 배수구는 일렉트릭 보트에서 개조된 형식이다. 배수구 외에도 기존 밸러스트 탱크 밸브 역시 개량되어 충수시간이 단축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잠수완료시간 55초에서 최단 30초까지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46]
4.5. 항법장비 추가
4.6. 잠망경의 개량
4.7. FM 소나
4.8. 디코이[47]
1942년경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병기 연구소에서 대잠훈련 목적의 음향발생장비를 연구하던 도중 용도가 변경되어 미해군 잠수함의 적 음탐 회피 및 소나 교란용 디코이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43년경 2차대전 미국 잠수함 최초의 디코이인 NAC 디코이가 개발되어 구식 S급 잠수함을 통해 운영평가가 이루어져 1944년 초에 실전배치되었다.
NAC 디코이는 3인치 구경의 디코이로서 기포와 소음을 발생시켜 음탐을 방해하며 근 30분간 작동했으며 특히 수심이 낮은 해역에서 적 음탐 교란에 효과를 보였고 주로 후방 어뢰실에 있는 공압식의 3인치 신호탄 캐니스터를 이용해 발사하며 내부장전이 가능하고 수심 120m에서도 원할하게 작동해 주었다. 1944년 6월부터 4천여기가 넘는 NAC 디코이가 생산되어 가토급을 포함한 미국 잠수함에 탑재되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는데, 지속시간이 길지 않으며 자력 항주가 되지 않아서 능동소나에는 비교적 무력한 편이었기에 개량형으로 NAD-3 디코이가 개발되었다.
NAD-3 디코이는 3인치 구경의 디코이로서 기능은 NAC와 유사하나 약 3노트의 속력으로 근 35분간 자력 항주를 실시한다. 1944년 10월부터 미 해군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전쟁 말까지 미국 잠수함들의 디코이로 활용되었다.
지속적인 개량으로 구경대가 6인치로 증가한 NAD-6 디코이가 1945년 초에 배치되었고 1945년 5월경에 10인치 구경으로 증가한 NAD-10 디코이가 배치되었으며 1944년 10월에 개발완료된 NAE 디코이는 노이즈메이커로서 큰 소음과 기포를 발생시키며 동시에 고주파의 소나 핑을 송신해 일시적인 소나의 무력화를 꾀했다.
이들은 구경이 커진 만큼 기존의 3인치 캐니스터로 사출은 불가능했으며 신형 캐니스터 개발이 돌연 취소되어 주로 후방 어뢰발사관에 장전해 사출하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이 2기 모두 NAD-3 디코이보다 항주기능이 상승했으며 NAD-10 디코이는 저속 3.75노트, 고속 7노트로 항주하며 저속모드시 1시간을 항주, 고속에서 1분간 항주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신형 디코이는 어뢰발사관을 통해 사출하기 때문에 운영가능 심도가 잠망경 심도로 제한되었고 매우 늦게 등장해 일선에서 효과를 볼 일은 적었으며 초기형 디코이답게 청음기에 대한 교란효과는 있었으나 능동소나에 대한 교란효과는 극히 미미했고 실제 미해군에서 운영평가도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열악한 일본 소나의 분해능 문제 덕분에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을 얻었다.
가토급 잠수함 기준으로 총 76발의 각종 디코이들이 탑재되었고 실전기록으로 유진 플럭키 소령이 지휘하는 가토급 잠수함 바브가 1945년 6월 29일 일본군 구축함의 추격을 회피하기 위해 NAC 디코이 5발을 사출해 공격을 회피한 기록이 남아있다.[48]
5. 문제점
가토급은 의외로 문제점이 많이 묻히는 잠수함이기도 하다.
우선 큰 덩치로 인해 타국의 1천톤급 이하의 잠수함과 비교했을때 떨어지는 기동력과 잠수시간이 문제였다. 태평양에서 주로 활동하는 환경 특성상 긴 항속거리와 큰 선체를 가지지 않으면 전체적인 초계작전에 지장이 있을 우려가 매우 커 선체의 대형화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요소였다.
잠수시간이 느린 이유 중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선체 크기 자체에서 오는 부력 때문인데, 가토급은 당시 기준으로도 제법 큼직큼직한 대형 잠수함이기에 그 크기에 따라 부력도 상당했다. 즉 이런 큰 잠수함을 잠수를 하게 하려면 그만큼 밸러스트 탱크에 들어가야 할 해수의 양도 필연적으로 늘어난다는 이야기고 이에 따라 밸러스트 탱크 의 용적도 커지는데, 이 때문에 그만큼 해수가 충수완료되는 시간이 늦는다는 것이다.
물론 가토급 자체의 부력유지능력은 동급 잠수함들 중에서도 매우 안정적이라 잠수완료시간은 훈련으로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완전히 물속으로 사라지는데에 35초가 소요되어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매우 민첩한 수준이었다.[49] 하지만 이 35여초의 기록은 어디까지나 꾸준한 개량과 훈련강화와 각종 꼼수들을 이용해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낸 결과물이지 초기 가토급의 잠수완료시간은 55초에서 65초 정도로 정말 턱없이 느리고, 1천톤급 이하의 독일 VIIC형 유보트의 경우 평균 25초의 잠수완료시간을 가져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다만 독일 잠수함의 잠수완료시간이 빨랐던 것은 전쟁에 돌입하는 시점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잠수함이 상대적으로 소형으로 최소한의 대양작전능력만을 가졌던 700톤급의 VII형 이었기 때문이고[50] 작전반경이 북대서양 전역으로 확대 되면서 독일 잠수함대의 신형 잠수함들도 대형화 되면서 잠수완료시간은 크게 나아질 게 없게 된다.
속력은 매우 빨라 최고속력으로 이동하는 수송선단과 순항속력으로 이동하는 함대를 충분히 추격할 수 있었으며 타국 잠수함들과 비교해서 결코 느리지 않으며 평균적으로 고속인 편에 속하며 선회력은 잠수시 최고속력에서 반경 137m가량으로 덩치를 감안하면 매우 날렵한 선회력을 자랑하나 '''역시 둔했고''' 수치상으로는 좋아보여도 실제 승조원들은 '''"징그럽게 타력이 안 먹는다"'''며 깠다.
두번째로, 잠항심도가 깊지 않았다. 가토급의 시험항해 최대 잠항기록인 90m는 폭뢰공격에 대해 생존율이 턱없이 낮은 심도였다. 물론 이 수치는 타국의 잠수함과 비교해서 크게 뒤떨어지는 수치는 아닌게 230m까지 잠수한 유보트를 제외하면 타국의 잠수함들의 테스트된 잠항 심도는 가토급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 일본의 잠수함들의 잠항 심도는 말할 필요가 없고, 영국의 잠수함들의 테스트 잠항 심도도 U급과 V급은 전부 90m 수준이었다.[51] 실제 최대 기록은 퍼퍼의 152.4m 잠항 기록이 최대였으며 이는 설계상 최대 잠항 심도인 135m를 넘긴 수치이다. 즉, 잠항 심도가 깊은건 아니지만 동시대 잠수함들과 비교하면 중간 이상은 가는 셈이다.
하지만 시험잠항 당시 90m를 잠수했던 잠수함이 왜 120m까지 잠수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고 152m까지 내려가고도 버티느냐 라는 의문점을 가질 수 있는데, 이유는 안전상의 문제와 '''확정된 안전심도'''라는 기준 자체가 당시 각국 잠수함들마다 상이하게 달랐다는 것이다.
가토급은 설계 이전부터 이전 함급인 거급 잠수함의 시험잠항기록인 75m에서 늘어난 90m로 '''선체에 아무 이상이 없는''' 수준의 압력선체 강도를 미 해군 함선국 등에서 작전요구성능으로서 요구받았고, 이에 따라 초도함인 가토급의 첫 시험잠항 당시 90m까지 잠수한 후 선체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더 이상 잠수해볼 생각 자체를 하질 않았다.[52]
이유는 단순한데, 설계 목적을 달성했으면 그 이상의 과욕을 부르다가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당장 초도함인 가토의 진수식이 1941년 8월 20일인데, 이미 유럽은 전쟁 중이고 미국도 언제 전쟁에 휘말릴지 알수 없던데다 경제 대공황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어 예산은 한계가 있는데 시험 중에 선체 한계를 넘어 압착으로 인해 함선이 손상을 입거나 심할경우 아예 손실할수도 있는 상황이니 인명피해는 고사하고 부담이 컸었던 상황이다. 즉 가토급은 실제 선체 한계를 최대까지 시험해보질 않고 요구성능만 충족시키고 그대로 취역한 것인데, 이게 어떤의미에서는 장점으로 승화된다.
또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굳이 잠수하지 않고도 압착심도를 알아낼 방법이 존재하나 당시에 그런게 있을턱이 만무하고 실제 압력선체의 한계를 알아보려면 직접 잠수해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누가 이런 일에 제대로 자원하겠는가? 실제로도 선체한계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시험잠항을 시도했다가 사고를 당하고 해군에 함선이 인도되는 날짜가 늘어나거나, 심하면 영영 잠수함까지 잃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기에 '''2차대전 시기의 잠수함들은 정확한 압착심도를 알기 힘들다.'''
하지만 저런 이유들을 따져놓고서라도 실제 가토급의 압착심도는 최소 152m 정도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1943년 10월 9일, 가토급 잠수함 57번함인 SS-268 퍼퍼(Puffer)가 마카사르 해협 1°-08'N 119°-31'E 해역에서 152.4m 잠항을 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잠수가능 심도가 아주 뒤떨어지지는 않는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전 함급들보다 압력선체 두께가 14.3mm로 강화되고 실제 압착심도가 더 깊을 거로 추정해도, 실전에서는 90m가 어떻건 152m가 어떻건 폭뢰에 의해 피해를 보는 건 매한가지인지라 미 해군에서는 가토급의 잠항심도에서도 불만족을 표했고 결국 가토급 자체의 개량을 가하기보단 압력선체 두께가 22mm로 강화되고 강도가 좋아진 HTS 강재를 통해 시험잠항심도 120m, 그걸 넘은 187m를 잠항했고, 예상 압착심도가 270m인 발라오급 잠수함을 건조하며 해결을 보려 했다.
함교구조물도 문제가 있었는데, 아무리 빨리 잠항해도 큰 함교구조물 때문에 함저에 충돌해 손상을 입거나 부상한 상태에서도 함교에 집중 공격을 당할 수 있었다. 애당초 선체는 대부분이 물에 잠겨있기 때문에 명중탄을 내기가 어렵고, 상대적으로 명중탄을 내기 쉬운곳이 함교구조물이기에 실전에서도 가토급의 손상 기록을 보면, 꽤 많은 확률로 함교에 데미지를 입은 사례가 꽤 많았다.
그나마 가토급은 U보트랑은 달리 코닝타워 내의 전투실은 함체의 압력선체와는 별개의 압력선체로 구분되어 설계되어 있었기에 코닝 타워의 피격으로 침수가 진행되더라도 코닝 타워와 전정실 사이의 해치를 닫아 폐쇄하는 것만으로 침수를 억제할수는 있지만, 문제는 앞서 설명했듯이 당시 미국 잠수함들은 코닝타워 내에 전투체계가 대부분 집중되어 있었고 '''여기에 한방 제대로 맞으면 순식간에 전투력이 급감하고 지휘체계가 마비된다.''' 또한 후방에 공기순환 벤트 트렁크가 존재했기에 코닝타워가 피격당하면 이 벤트가 손상되어 기관, 배터리 충전 등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높았고 실제로도 이 벤트의 파손비율도 꽤 높았다. 물론 이런 설계는 다른 나라 잠수함들도 마찬가지인지라 문제라면 문제지만 수중저항 등의 문제 때문에 달리 방법도 없으니 가토급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압선체 내부로 들어간 구조를 가진 1번 밸러스트 탱크, 7번 밸러스트 탱크의 문제도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큰 문제는 없으나 폭뢰에 의해 피해를 입고 손상을 입을 경우 함수/함미 어뢰발사관 바닥으로 응력이 순식간에 집중되어 엄청난 양의 침수가 발생하는 문제가 전쟁 중 발견되었다. 이 문제는 가토급뿐만 아니라 가토급의 설계를 그대로 채용한 발라오급 잠수함 역시도 이 문제점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 문제는 전쟁 중에는 가토/발라오급 둘 다 이렇다 할 개선은 되지 못했으며 밸러스트 탱크와 트림 탱크 위치가 새로 설계된 텐치급 잠수함에 가서야 해결되었다.
또한 가토급을 포함한 초창기 미해군 잠수함들의 시가형 코닝타워의 경우 타기를 포함한 각종 조타설비들, 즉 조타실이 추가로 설치되어 있었다. 사실 초창기 가토급의 타기는 총 3곳인데, 바로 압력 선체 내의 전정실에 하나, 코닝타워 내에 한곳 더, 그리고 노천함교 한 곳의 다소 해괴해보이기까지 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를 가진 이유는 수상함과 유사한 설계를 적용해 수상항해시에도 이를 적용해보겠다는 과도기적 목적이 강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페어워터와 현창(윈도우)의 설치목적은 함교에서 조타수가 직접 조타륜을 잡고 항해를 하는것과 동시에 견시수들이 파도에 젖지 말라고 설치한 일종의 배려였으나 '''이게 실전에서 방해가 됐다.'''[55]
아무리 파도로 인한 불편함 개선을 위해서라곤 하지만 파도가 치나 안치나 현창 자체가 작은 편이라 시야 자체가 좁은 것은 고사하고 페이웨어 시설물 크기 자체가 상당했기 때문에 견시수와 당직사관도 불편한데다, '''이곳은 압력선체 내부가 아니라 바깥이고 잠수하면 물에 잠기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다.''' 이게 웬 대수냐 하겠지만, 실제로 전쟁 초기 미해군 함대형 잠수함에서 근무한 잠수함의 조타수들은 덥고 습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누적되어서 '''여기에서 조타기를 잡는것을 정말 싫어했다.''' "차라리 아예 밖을 못본다 하더라도 음력전화기나 직접 음성으로 조타 지시 받으면서 코닝타워 내부나 주 압력선체의 전정실 내에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조타기 잡는게 훨씬 낫지 여긴 진짜 짠내나고 덥다"는 것. 물론 이건 굳이 조타수 뿐만 아니라 견시수와 당직사관도 마찬가지.
무엇보다도 '''폭뢰공격을 받으면 현창은 모조리 깨져나가고 함교구조물에 손상을 입어''' 부상을 하고 해치를 열어보면 함교는 유리와 함교구조물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일선 승조원들의 불만을 샀다. 물론 '''함교의 조타 설비들이 박살이 나버리는 것은 덤'''.
결국 실전을 몇 번 경험한 함장과 승무원들의 적극적 건의와 괜스레 늘어나기만 하는 정비요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치'''라는 이유하에 전방의 페어워터를 삭제하고 코닝 타워의 단순화 및 축소, 기존 함교의 조타실 철거로 대처했으나 함교 체적의 전체적인 축소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잠망경/레이더 마스트의 크기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U보트랑은 달리 사각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한편 H.O.R 엔진을 임시로 채택한 잠수함들은 정숙성이 굉장히 떨어져서 쉽게 탐지당했으며, 엔진 자체도 구식 설계인 데다 정비성까지 떨어지고 쉽게 고장이 났기 때문에 H.O.R을 빗대어 미 해군 잠수함 승조원들은 '''Whore'''라고 부르며 가차 없는 악평을 가했다. 이 문제의 경우 신형 엔진들이 생산 완료가 될 경우 작전 종료 후 복귀 시에 오버홀 작업을 거치며 엔진을 뜯어다 새로 갈아버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전쟁 말기즈음되면 평균적인 무장의 수준을 넘어, 어찌보면 과하다시피한 무장들을 장착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수중저항을 만들어내 수중에서는 속력 등이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도 생겼다. 하지만 당장 승무원들은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원인은 '''전쟁 말기즈음 되면 제대로 된 화력을 가진 일본 해군 군함들이 씨가 말라버리는 상황'''이었고 전쟁 말기 표적의 대다수는 피켓 임무를 수행하는 소형 보트나 어선, 목재 범선 등의 무장이 매우 빈약한 선박들이 주가 되다보니 잠항성능의 감소를 감안하더라도 화력 강화를 하게 된 경우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가토급이 제대로 된 대잠전력을 상대해본 적이 별로 없었고 타국 잠수함 대비 손실률이 높지 않아 상당히 묻히게 된다. 잠항성능의 경우 주적인 일본군의 해대형 잠수함들이 긴급잠항 81초, 순잠형 잠수함들이 최단 70초에 최장 '''91'''초[56] 라는 문제 있는 잠항능력을 기록하며 상대가 가진 단점이 워낙 독보적인데다가 잠수완료시간이 늦는다고 해도 '''레이더''' 덕분에 적을 탐지하자마자 잠수해버려 긴급잠항의 단점은 어느정도[57] 줄었고 덩치를 감안하면 제법 민첩한 수준인데다가 잠항심도 역시 기존의 잠항심도보다 더 깊게 잠항할 수 있고 일본군의 대다수의 잠수함들과 비슷하거나 훨씬 더 깊게 내려갈 수 있어서 실전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거기에 일본군 대잠 전력은 전쟁 기간동안 수도 없는 허위 격침보고와 장대한 삽질로 가토급을 포함한 미 해군 잠수함대에 타격을 주기 힘들어 기존의 단점들은 '''더 묻혔다.''' 일본 해군의 한심한 대잠 전력 덕분에 활약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지경.
만약 일본 해군이 '''대서양 전쟁 후기, 한때 대서양의 늑대라고 불렸던 U보트를 동네 똥개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미 해군이나 영국 해군 수준의 대잠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면 가토급의 손실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영국이나 미 해군 수준의 대잠능력을 당시의 가잠함 수준의 잠수함 기술만 가지고 극복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58] .
'''무엇보다 가토급 잠수함이 가지고 있는 최악의 문제점은 다름아닌 어뢰 스캔들이다. 이는 가토급만이 가진 문제는 아니고, 미국 잠수함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였으며 잠수함 자체의 기계적 결함이나 성능 부족 등의 문제는 문제같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매우 심각했다.'''[59]
6. 실전
7. 전후활동과 GUPPY 개량
2차대전 종전 후 대다수의 가토급들은 퇴역 후 훈련함이나 사격연습용 표적함으로 임무가 전환되거나 해체되었다. 일부 함선은 실험 잠수함으로 개장되어 미사일 등의 신기술 테스트베드가 되기도 했으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기에 접어들자 일부 가토급 잠수함들은 구피(GUPPY - Greater Underwater Propulsion Power Program)프로젝트에 따라 개량되고 기관총 및 덱건이 철거되는 등 수중저항을 일으킬 만한 요소들을 제거한 뒤 미사일 발사 잠수함, 급유 잠수함 등으로 개조되었다.
이 구피 프로젝트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포된 독일 XXI형 유보트 U-2513, U-3008의 테스트 결과에 영향을 받아 수중항해속도 강화, 잠항시간 증대, 배터리 지속시간 증대, 스노클 설치, 사격통제 시스템의 개량을 위한 프로젝트로 1947년부터 총 3척의 가토급 잠수함이 해당 프로젝트에 동원되어 개량되었고 그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총 17척이 개량을 받았다.
구피1은 이들 21형 U보트의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개량된 프로토타입으로서 아직 잠망경 스노클 마스트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레이더만 수납이 되었으며 축전기 셀을 일렉트릭 보트 모델로 개량되며 축전기는 80기가 증가했다. 스노클 관련으로 무게 증가가 없었기 때문에 속력 자체는 여타 구피 개장형들보다 가장 빨랐으며 구피2형은 함수 아래에 독일 U보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말발굽 배열식 어레이 소나가 추가되었으며 축전지와 스노클이 훨씬 증설되며 별도의 음탐실이 설치된다. 구피1A형의 경우 이탈리아 등의 타국에 수출하기 위한 염가형으로서 개장되었으나 여타 구피 개량형들이 하도 비싸다보니 미 해군에서도 즐겨 사용하게된다. 구피3은 수동 측거 소나를 장착하고 함교의 구조물을 늘리며 소나의 성능을 개량해 70년대 당시의 전황에 맞는 작전능력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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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요철형 함교는 철거되고 수중저항을 줄인 세일(Sail)형 함교가 새로 설치되었는데, 스노클 및 레이더, 잠망경 등의 장비들을 함교 내에 완전 수납을 할수 있게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후방 마스트 수납부가 존재하는것이 특징이나 일렉트릭 보트사의 개량형은 후방이 각이 져 있으며 해군 공창 개량형은 대체적으로 유선형으로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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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척의 잠수함은 레굴러스 미사일 발사 플랫폼으로 개장되었는데, 레굴러스 순항미사일은 함교 후방에 미사일 보관 캐니스터와 발사기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이후 이 캐니스터는 UDT나 네이비 씰 등의 특수부대들이 해안침투작전을 수행하거나 수송작전을 수행할 때에도 용이하게 사용된다.
냉전기에 접어들며 가토급 잠수함들에는 임무가 구분되는 형태로 개장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헌터-킬러, 즉 현대의 의미로 치면 공격 잠수함의 임무를 띈 잠수함들이 등장하게 된다. 원인은 구 소련이 나치 독일의 XXI형 유보트를 역설계하여 만들어낸 위스키급 잠수함의 존재 때문이었는데, 전쟁 발발 시 이들 잠수함을 조기에 발견, 격멸하기 위한 임무가 부여되어 수중잠항능력과 소나의 성능을 강화시킨 7척의 가토급들을 투입하기 시작한다. 헌터 킬러 잠수함들은 기존처럼 청음기를 돌리는 것이 아닌 원통형 소나를 장착했는데, 이는 독일 U보트가 본의 아니게 미국에게 준 선물.
주요 개량점은 선수부에 소나를 설치함과 동시에 전방 어뢰발사관 2문과 전방 디젤엔진 철거 등이 있다. 하지만 텐치급의 후계함인 바라쿠다급 디젤잠수함의 등장으로 인해 제법 빠르게 퇴역하게 되나 이들에게 가해진 개량들은 이후 잠수함 설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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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레이더 피켓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잠수함들도 등장. 그 근원은 2차 세계대전기 레이더 피켓을 이용한 조기경보체계의 유용함에 눈을 뜨게 되었으나 이를 수행하는 구축함들의 손실률이 매우 높았던 것에 있다. 이걸 잠수함에 적용하여 적이 공격해 올 경우 잠항하여 회피해 보자는 생각에서 나오게 된 것. 이에 따라 6척의 가토급들이 개조되었으며 초기에는 원/상사 침실을 개조하여 CIC를 임의로 설치했으며 두번째 개장 때는 SV-2 레이더와 SR-2 레이더를 장착하고 후방 어뢰실 앞의 배터리실과 창고에 CIC를 설치, 후기에는 아예 1,2번 엔진을 제거해버리고 거기에 CIC를 설치했다. 하지만 미 해군 내에서는 운용 평가결과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엔진 제거의 영향 때문에 후기 개량형들의 속도가 너무 느려 함대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 이 때문에 1958년기에 항공 통제장비들을 철거하게 된다.
유류 수송을 위해서 개장된 가토급도 있으며 목적은 상륙지점 등의 거점에 유류 수송 및 화물 수송을 하기 위한 것으로 1척이 개조되었다. 주로 외부 선체에 연료탱크를 설치한것이 개량의 특이점. 하지만 이 역시 1회정도 테스트 후 바로 포기하게 되는데, 첫 실험에서 타 선박에 대한 급유작업이 12시간이 걸려버려 미 해군에서는 이건 안되겠다 싶어 한방에 포기하고 만다.
어찌보면 돈많은 미 해군의 삽질처럼 보이지만, 구피 개량형 가토급들은 본격적인 원자력 잠수함의 등장 전까지 공백을 메워줄 '''땜빵'''의 성향이 강했으며 남아도는 함정들을 이용해 각종 실험적인 요소들을 마구마구 집어넣어 테스트를 해보고 실험결과를 반영해 차후 미 해군 잠수함의 기술 발전 및 전략/전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장 캐니스터 사용 수송임무는 UDT나 SEAL등의 특수부대를 수중 잠입시키는 데에 잘만 사용되는 중이고 원통형 소나나 순항미사일 발사 개념은 굳이 더 설명이 필요할까?
일부 잠수함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30번함 SSK-241 배셔(Bashaw)는 1964년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여 총 3회의 순찰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가토급 잠수함 중 일부 함선들은 해외에 팔려가거나 공여되어 제2의 함생을 살았는데, 그리스 해군, 이탈리아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 브라질 해군, 터키 해군에 도입되었다.
잭과 라폰은 각각 암피르피티, 포세이돈으로 개명되어 그리스 해군에 도입되었으며 바브는 이탈리아 해군에 양도되어 엔리코 타쫄리로 개명 후 활동했으며 데이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개명되었다. 또한 밍고는 일본 해상자위대에 도입되어 쿠로시오로 개명되어 활동했고 무스컬런지와 패들은 브라질 해군에 도입, 휴마니타와 리아츄엘로로 개명. 귀타로와 해머헤드는 터키 해군 소속으로 프리베제와 세르베로 개명되어 제2의 함생을 살다 퇴역, 해체되거나 표적함으로서 함생을 마쳤다.
대만 해군에는 2010년대인 지금까지도 2척이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실질적으로는 훈련용으로 전환된 상태지만.
현재 보존되어있는 가토급 잠수함은 총 6척으로, 코드, 드럼, 실버사이즈, 카발라, 코비아, 크로커이다.
8. 유명한 자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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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함 SS-215 그라울러(Growler)'''
1941년 11월 2일 진수, 1942년 3월 20일 실전배치. 총 격침수 10척. 태평양전쟁 초창기부터 일본 해군과 치열한 혈투를 벌이며 폭뢰공격과 충각공격 등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싸워 전공을 세운, 파란만장한 함생을 살아간 잠수함. 결국 1944년 11월 8일 일본 시라츠유급 구축함 시구레, 대잠 해방함 치부리와 제2해방함 CD-19의 폭뢰공격으로 침몰했다. 하지만 침몰하기 전까지 근처 잠수함들에게 전장 상황과 표적을 알려주고[60] 가라앉아버려 침몰하면서까지 일본 해군을 괴롭힌 잠수함. 이보다 1년 전에는 초대 함장 하워드 길모어 소령이 배터리 충전 중에 기습을 당해 부상을 입었는데 자신을 함내로 옮기다가 잠항이 늦어진다는 우려에 '''자신을 밖에 내버려두고 잠항할 것을 명령'''하고 끝내 실종되었던 일이 있다. 그 희생정신을 기려 명예 훈장을 추서받았다. 현재 뉴욕시 허드슨 강쪽 선착장에 USS Intrepid 항공모함 박물관과 함께 전시되어있는 SSG-577 그라울러는 바로 이 함의 이름을 따서 냉전시대에 운용된 그레이백급 순항미사일 잠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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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함 SS-218 알바코어(Albacore)'''
1942년 2월 17일 진수 후 1942년 6월 1일 실전 배치. 총 격침수 10척. 필리핀 해 해전에서 항공모함 다이호를 침몰시킨 주인공. 이 외에도 텐류급 경순양함 텐류, 후부키급 구축함 사자나미와 아사시오급 구축함 오오시오를 침몰시켜 유명해진 잠수함. 이후 1944년 11월 7일 훗카이도 인근 해안에서 기뢰에 의해 침몰한다. 그런데 당시 근방에 일본군 기뢰부설함이 활동중이었기에 이 함선을 노리다 가라앉은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일본 회사 dwango가 I-58를 탐사한 업체와 연합하여 훗카이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알바코어를 탐사 진행 중이며, 2020년 8월 26일 니코니코동화를 통해 생중계 예정.[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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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함 SS-220 바브(Barb)'''
1942년 2월 4일 진수, 1942년 7월 8일 실전 배치. 총 20척 격침의 상위권에 속하는 에이스이자 '''미국 잠수함들 중 최고의 임팩트 파이터. 남들은 전쟁하는데 자기 혼자서 액션영화 찍은 잠수함.''' 특이사항으로 경항공모함 운요를 격침시킨 전과가 있으며 일본군 수송선 4척을 하루만에 격침시키고 추가로 1척을 손상을 입혀 가장 빠른 시간내에 최대의 피해를 입히기도 했으며 기뢰와 대잠 장애물이 쫙 깔린 항구에 잡입해서 수송선 1척을 격침시키고 돌아오거나 한바탕 수송선단을 헤집어놓고 최고속도를 넘은 23노트의 속력으로 부상한 상태로 도망치는 등의 일화를 만들었으며 사할린 섬 주둔 일본군에게 덱건과 로켓탄 사격을 가하거나 '''앞서 전술한 일본 본토 상륙후 특수전 임무를 수행한 주인공.''' 함장인 유진 B. 플럭키 소령 이하 승조원들이 일본 본토에 상륙해 철도에 폭탄을 설치하고 수송을 하고 있던 열차를 터트려 파괴한 전과가 그것. 1946년 퇴역후 1954년에 이탈리아 해군에 양도되어 엔리코 타쫄리로 개명 후 이탈리아 해군에서 제2의 함생을 살다 1972년 퇴역 후 해체.[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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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번함 SS-236 실버사이즈(Silversides)'''
1941년 8월 26일 진수, 1941년 12월 15일 실전 배치. 가토급들 중 '''1위'''에 빛나는 27척의 격침수량을 기록한 톱 에이스. 1946년 4월 17일 퇴역후 현재 미시간 주의 머스키건 실버사이즈 잠수함 박물관에서 박물관 함선으로 보존 전시 중. 주소 Beach Lake Road (1346 Bluff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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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번함 SS-244 카발라(Cavalla)'''
1943년 11월 14일 진수, 1944년 2월 29일 실전 배치. 비록 4척을 격침시켜 소소해보이지만 그 격침전과 중 한 척이 일본 해군 역전의 항공모함 '''쇼카쿠다.''' 필리핀 해 해전 참고. 구축함 시모즈키 격침 전과도 같이 가지고 있다. 1946년 퇴역 후 현재 텍사스 주 갤버스턴의 씨울프 공원에서 박물관 함선으로 보존 처리중. 관심있는 위키러들은 가볼수 있으면 가 보자. 주소 Pelican Island via Seawolf Parkway (51st St.) 성인기준 관람료 4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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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번함 SS-249 플래셔(Flasher)'''
1943년 6월 20일 진수, 1943년 9월 25일 실전 배치. 총 격침톤수 10만 6667톤 기록으로 '''연합국 잠수함 중 단연 1위의 격침기록 소유 잠수함.'''[63] [64] 1946년 3월 16일 예비역 전환 후 1959년 6월 1일 제적되어 1963년 6월 8일 해체되었고 현재 함교만이 코네티컷 주의 그로튼에서 기념물로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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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번함 SS-257 하더(Harder)'''
1942년 8월 19일 진수, 1942년 12월 2일 실전 배치. 이 잠수함도 총 격침수 18척의 당당한 에이스. 특이사항으로 이카즈치, 하야나미, 미나즈키, 타니카제, 마츠와 같은 구축함을 많이 사냥한 '''구축함 킬러'''로 악명을 떨치던 잠수함. 구축함뿐만 아니라 대잠 해방함 등도 어줍잖게 덤비다가 이 잠수함에게 격침당하거나 관광당했고 하도 심하게 당해서 한때 일본군의 대잠초계전력에 큰 구멍이 생겼을 정도로 맹활약한 잠수함. 안타깝게도 일본 수송선단 히-71을 공격하기 위해 다른 잠수함들과 울프팩 작전을 하던 도중 1944년 8월 24일 남중국해에서 일본 제2해방함(호위 대잠함) CD-22의 폭뢰 공격으로 수중에서 부력을 회복하지 못해 침몰, 함장 포함 승무원 전원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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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번함 SS-269 래셔(Rasher)'''
1942년 12월 20일 진수, 1943년 6월 8일 실전 배치. 총 18척 격침에 격침톤수 10만 231톤의 무시무시한 기록을 달성했으며 경항공모함 다이요의 최후를 장식한 잠수함이기도 하다. 1946년 퇴역 후 1971년 스크랩 처리.
9. 자매함 목록 및 전과
가토급 잠수함/자매함 목록 및 전과 문서 참고.
10. 여담
웬만한 미국 잠수함들도 거의 그랬지만, 가토급 잠수함 역시도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함 내에 있었다.''' 아이스크림 제조기의 위치는 승조원 침실구획 및 후방 배터리 구획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는 잠수함대 사령관 록우드 제독의 특별조치였는데, 열악한 잠수함 근무환경을 참작하여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거주성과 근무환경을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다. 심지어 이 아이스크림 제조기가 없거나 고장난 배들에게는 출항금지명령까지 내릴 정도.
퇴역 후 다른 해군 전투함과 마찬가지로 각종 신무기의 테스트 및 훈련용 표적함으로 쓰이다가 최종적으로 6척이 남아 미국 전역에 전시되어 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 SS-244 USS 카발라(Cavalla): 텍사스 갤버스턴(Galveston)의 시울프 공원(Seawolf Park)[65] 에 전시되어 있다.
- SS-245 USS 코비아(Cobia): 위스콘신 해양 박물관(Wisconsin Maritime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 SS-228 USS 드럼(Drum): 앨라배마 모빌(Mobile)에 있는, 전함 기념 공원(Battleship Memorial Park)[66] 에 전시되어 있다. 원래는 정박된 형태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1998년 허리케인 때문에 손상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수리 후 지상으로 끌어올려서 전시되고 있다.
- SS-224 USS 코드(Cod): 오하이오 클리블랜드(Cleveland)의 North Coast Harbor에 전시되어 있다. 해안에 정박된 형태로 전시되어 있고, 관람을 위한 아무런 개조 없이 원형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이 때문에 관람을 하려면 관람객이 해치로 들어가서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한다.
- SS-246 USS 크로커(Croaker): 뉴욕 주 버팔로에 있는 Buffalo and Erie County Naval & Military Park에 전시되어 있다.
- SS-236 USS 실버사이즈(Silversides): 미시간 Muskegon에 있는 Great Lakes Naval Memorial &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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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번함 SS-238 와후(Wahoo)는 학살 혐의[69] 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더들리 모튼 중령이 지휘하는 와후는 1월 26일 수송선 부요 마루 및 기타 2척의 선박을 어뢰공격으로 격침시켰는데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한 승조원들을 덱건과 기관총을 동원해 전원 살해하였다. 당시 부장이던 리처드 H. 오케인 대위는 유조선에서 탈출한 승무원들에게 정선명령을 내렸지만 이에 따르지 않아 발포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 일로 와후는 전공을 세워도 명예훈장만은 주어질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오케인 대위는 이후 결국 명예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학살당한 사람들 중에는 당시 부요 마루[70] 에 타고있던 1,126명 의 승선인원 중 87명의 일본 승조원 외에 인도군 제16 펀잡 연대 2대대 소속의 포로 195명도 있었고 이들 역시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오케인 대위의 정선명령을 따르지 않아 총격을 명령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보트에 타고 있던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에서 이는 명백히 살해의도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으며 또한 사격명령을 내린 사람이 리처드 오케인 대위가 아닌 함장 더들리 모튼 소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일은 현재까지도 정확한 당시 상황을 알 수가 없는데, 와후는 1943년 10월 11일 일본군의 대잠 작전에 의해 침몰해 함장 포함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기에 이후 당사자들에게 정확한 증언을 들을 수가 없었으며 주범으로 추정되는 부장인 리처드 오케인 대위는 1943년 7월 경, 발라오급 잠수함 탱(Tang)의 함장으로 부임한 이후 이 일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건조 과정에서 일화가 있는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예산 집행 이후 미 해군에서는 일렉트릭 보트 사와 메어 아일랜드, 포츠머스 해군 조선소에서 대규모의 가토급 잠수함 건조발주를 실시했으나, 만들어야 되는 배는 많은데 이미 대규모 조선소들은 문자 그대로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해군 당국은 상당한 골머리를 앓게 된다.
이때 한 젊은 해군 장교가 '''"우리 삼촌이 오대호에 대규모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를 활용을 해 달라"'''고 해군 함선국에 신고를 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받아들여졌으나 실제로 해군에서 인원을 파견해 본 결과, 협의 끝에 매우 빠른 시간 내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곧바로 강재 절단 및 가토급 잠수함의 건조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조선소가 바로 매니토웍 조선소(Manitowoc Shipbuilding Company)였다.[71] 이 조선소에서만 총 14척의 가토급 잠수함이 건조되었으며, 완공된 잠수함들은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대서양으로 향하고 다시 태평양 함대에 배속이 되었다. 당시에는 매니토웍 조선소에서는 군함, 특히 잠수함을 건조해본 사례가 없었지만 일렉트릭 보트 사의 설계를 이용하였고 곧 경험 문제는 금방 해결된다. 조선소 측도 일거리가 생기고 해군 측에서도 함선의 수요량과 수리수요를 충족한 윈윈의 사례.
11. 평가
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미 해군 잠수함들이 이런 빛나는 활약을 하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해군의 높으신 분들이 잠수함대에 대한 관심이 지극했다.
당장 체스터 니미츠 제독부터 일찍이 잠수함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이는 니미츠 제독의 '''아들'''인 체스터 니미츠 주니어가 '''가토급 잠수함 44번함 해도(Haddo)의 함장을 맡았던 것'''도 있지만 자신도 잠수함대 건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잠수함에 디젤엔진을 적용시키기도 하고 잠수함 승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하면서 니미츠는 다른 연합군 장성들과는 달리 2차 대전 발발 직전에도 잠수함에 대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생각을 가졌으며, 태평양 함대 사령관 취임식 역시 사르고급 잠수함인 그레일링의 갑판에서 이루어졌다.
니미츠 본인이 잠수함 부대 출신이라 원하기도 했지만, 니미츠의 잠수함대 애호와는 별개로 취임식을 거행할 만한 대형 수상함정이 전무했다는 사정도 있고, 무엇보다도 취임식을 치른 진주만의 잠수함 도크는 연료 저장시설과 함께 진주만에서 타격을 입지 않은 한손에 꼽히는 해군 시설 중 하나였다. 물론 잠수함 부대의 사기진작 목적도 있었다. 참고로 취임식을 치뤘던 진주만 잠수함 도크는 니미츠가 초급장교 시절에 건설 감독을 맡았던 시설이다.
이런 바탕에 잠수함대 사령관으로 찰스 록우드라는 희대의 잠수함 덕후까지 등장하면서 아이스크림 제조기 외에도 작전 중에도 충분히 신선한 식재료를 보급해주었으며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상당한 휴가와 숙박을 할 호텔, 고급 휴양지를 제공하며 좋은 대우를 해 주었다. 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미국 잠수함대는 이런 빠방한 뒷배경을 바탕으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작전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잠수함의 사용 용도에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통상파괴전을 주 목적으로 하던 독일의 U보트나 잠수함 자체를 어뢰정의 파생형 취급을 하던 일본 해군 잠수함들과는 다르게 가토급 잠수함들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려 상부의 큰 제한 없이 마음껏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즉, 발상부터가 남달랐다는 이야기. 이를 바탕으로 추락하거나 불시착한 파일럿이나 침몰한 선박의 승조원 구조부터 각 섬의 게릴라들에 대한 물자 지원, 스파이 잠입, 해역 감시 등의 임무에 적시적소에 배치되어 매우 효율적인 작전이 가능했다. 거기에 함장들과 승조원들의 적극성까지 더해져 타국 잠수함들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지상 포격지원이나 포로 구출작전, 사보타주 등의 대담한 작전들이 수행되었고 이 역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군의 통신을 감청하면서 조기에 적절한 해역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도 이유가 크다.''' 록우드 제독은 통신 감청이 잠수함 작전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정보가 없었다면 보다 많은 잠수함이 필요했을 것이며 넓은 태평양 지역을 커버하지 못했을 것이고 적의 기뢰원에 대한 정보가 완벽했기 때문에 적이 부설한 기뢰원은 이걸 부설한 일본군보다 빠르게 숙지했으며 일본 군함은 좁은 수로를 항해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포착과 공격이 쉬웠다고 발언했다. 실제로도 미 해군이 2차대전기 투입했던 총 298척의 잠수함들은 태평양 전역의 규모상으로도, 미 해군이라는 집단의 규모를 고려하더라도 보유척수가 매우 적은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통신 감청 및 암호 해독으로 일본 해군과 수송선단의 이동 루트 등을 제법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며, 이에 따라 적의 규모에 맞게 적절하게 잠수함들을 투입해 교전을 벌일 수 있었기에 가토급 잠수함을 포함한 미 해군 잠수함대는 타국 잠수함들에 비해 상당히 여유있는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일본 해군의 대잠 역량이 한심했던 것도 한술 더 떴는데, 일찍이 설명했듯 가토급 잠수함은 그리 깊이 잠항할 수 있는 잠수함도 아니었거니와 잠항해봐야 들어갈 곳이 뻔했다는 단점이 명확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소나인 93식 소나는 황기 2493년, 즉 1933년도에 실전배치된 소나였고 당시 기준으로서는 상당히 양호한 성능을 가진 소나였으나 이미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에는 오래된 구식 소나였기에 정숙성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미 해군 잠수함들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었고, 개량형인 3식 소나 역시도 성능 자체는 양호했으나 실전배치는 1943년이었기에 개발이 너무 늦었던데다 극히 일부 함선들에나 탑재를 했을 정도였다.
거기에 일본의 주요 대잠작전을 담당하게 될 구축함들 중 일부 함정들은 소나조차도 탑재하질 못했고 미 잠수함의 잠망경을 포착할 경우 이를 들이받으려 돌진하거나 예상 위치에 폭뢰를 투하하는 것 외에는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이 돌진 와중에 어뢰를 맞으면서 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다수였고 심지어 아예 포착조차도 못하고 피해를 입은 사례가 많았다.
항공전력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가토급 잠수함은 못해도 1기의 레이더, 평균 2기의 레이더와 레이더 역탐지를 위한 역탐을 장착했기 때문에 대잠초계 임무를 수행중인 항공기들을 선제포착하고 미리 잠수를 해버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항공전력 역시도 미 해군 잠수함대에 그리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가토급 잠수함은 통상파괴전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던 U보트들보다도 더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고 우수한 범용성과 높은 전투력으로 일본군에게 다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일본을 굶겨 '''끝끝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무엇보다, 현대 미 해군 잠수함들이 하는 임무의 기반을 가토급 잠수함이 상당수 다져놓은지라 가토급 잠수함에 대한 평가는 현재 매우 드높으며 이들이 이룩한 전략/전술, 기술적 성과는 고평가가 아깝지 않다.'''
12. 등장매체
- 제2차 세계대전 해상전 게임 네이비필드에서 미 해군 잠수함 트리의 5차 잠수함으로 등장. 우월한 어뢰발사관을 이용한 전후방 화력구사가 가능하나 미국 잠수함트리 특유의 어뢰불발율은 그저 안습. 하지만 이전 잠수함들보다 확실히 살만해져 숨통이 트인다는게 평.
-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해상전 슈팅/전략 게임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인 배틀스테이션 퍼시픽에서 등장. 우월한 어뢰 화력을 발휘해 기본 함종인 나왈급 잠수함의 싸다구를 후린다.
- 잠수함 시뮬레이션의 대부 '사일런트 헌터'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인 '울브즈 오브 더 퍼시픽'에서도 등장. 겁나게 세다. 살몬급이나 탬버급이랑은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강력한 무장과 풍부한 연료, 배터리, 산소량과 더불어 수상 레이더의 특권 덕분에 천국을 맛볼 수가 있다.
- 스티븐 시걸 주연의 영화 언더 시즈에서 미주리의 핵탄두를 빼돌리기 위해 스트라닉스의 부하들이 타고 오는 잠수함으로 등장. 인공기가 그려져 있는데, 북한의 소행으로 꾸미기 위한 속셈. 결국 주인공인 케이스 라이백과 동료들이 미주리의 3번 16인치 주포 사격을 가해 이 잠수함을 가라앉혀버린다. 출연한 잠수함은 17번함 SS-228 드럼(Drum).
- 잠수함 공포영화 빌로우(Below)에서 주인공 잠수함이자 귀신들린 잠수함 타이거 샤크(Tiger Shark)로도 등장한다. 해당 출연 잠수함은 25번함 SS-236 실버사이즈(Silversides).
- 모바일 게임 전함소녀에서 알바코어와 바브가 5성급 잠수함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게임 특성상 잠수함은 잘 쓰이지 않아 관상용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알바코어는 다이호를 어뢰로 유폭사시킨거 때문에 암살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바브는 철도를 폭발시킨 일화 때문에 시한폭탄을 들고 있다.
- 모바일 게임 워쉽배틀:2차세계대전에서 성능이 괜찮은 잠수함으로 나온다.
- 모바일 게임 벽람항로에서 데이스와 알바코어, 카발라가 등장한다.
- 청의 6호의 원작자로 유명한 오자와 사토루의 만화 서브마린 707에서 초대 707로 등장한다. 일본이 미군으로부터 공여받은 가토급을 개조해 사용한다는 설정. 발라오급이나 텐치급에 가깝다는 설도 있다.
13. 외부링크
- https://en.m.wikipedia.org/wiki/Gato-class_submarine
- http://www.uboat.net/allies/warships/class.html?ID=146&navy=USS
- http://www.navsource.org/archives/08/04idx.htm
- http://www.navweaps.com/Weapons/WNUS_3-50_mk10-22.htm
- https://www.maritime.org/doc/fleetsub/index.htm
14. 관련문서
[1] 해당 항목은 http://www.maritime.org/doc/fleetsub의 자료들을 참고하였음.[2]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247 페이지[3] 사실 한글의 한계로 인해 정확한 발음을 적는건 어려운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영국과 미국 발음 모두 ‘가토’와 ‘개토’ 사이의 발음이다.[4] 통용 표기법을 적용해 '카토'로 쓰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카토 메구미 같은 경우.[5] 해당 제원은 2차 세계대전기 기준으로서 GUPPY 개장의 성능은 아님.[6]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7]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8]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9]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10]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11]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12]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305-311 페이지[13]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14]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15]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305-311 페이지[16]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305-311 페이지[17]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305-311 페이지[18]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305-311 페이지[19]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305-311 페이지[20] SS-244 카발라가 쇼카쿠를 어뢰로 날려버린 뒤 120m 심도까지 잠수하여 100발이 넘게 쏟아지는 폭뢰를 회피하고 귀환한 사례가 있다.[21] 제원에 나와있는 승조원 수는 작전에 필요한 최소인원만을 기준으로 하며 실제로는 비편제 인원까지 근무시키거나 임무나 함장의 지휘방침에 따라 추가 병력을 더 태우는 등 승조원 수는 유동적으로 변한다.[22]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305-311 페이지[23]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305-311 페이지[24] 9번함 SS-220 바브(Barb)만이 장착하고 있었던 무장.[25] 독일 해군의 암호생성/해독기인 에니그마와 유사한 암호생성/해독장비.[26] Safford, L.F. (1943) History of Invention And Development of the Mark II ECM (Electric Cipher Machine) This available from NARA. SRH-360 in RG 0457: NSA/CSS Finding Aid A1, 9020 US Navy Records Relating to Cryptology 1918- 1950 Stack 190 Begin Loc 36/12/04 Location 1-19.[27] Catalogue of Naval Electronic Equipment-April 1946- NavShips 900,116.[28]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247 페이지[29]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285-384페이지[30]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285-384페이지[31] S급 잠수함은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 해군에서 건조하여 운영한 잠수함이었으나 성능이나 설계 면에서 절대로 좋은 소리가 나올 수가 없었을 정도로 한심한 성능을 자랑했는데, 수중저항을 줄이기 위한 설계는 좋았고 수중속도는 빠른 편이었으나 수상속력이 느렸고 배수량 1,062톤이라는 상당한 소형 잠수함임에도 불구하고 잠수완료시간이 느린 편이었으며 탑재 가능한 어뢰 발수가 적고 전투력 역시도 빈약했던데다 정숙성이 낮았으며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에는 함령 15년을 넘긴 상당한 구식 잠수함이었던데다 항속거리가 길지 않아 광활한 태평양에서 작전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렇기에 대전 초반기 동안 S급 잠수함들은 대부분 연안이나 해협에서 매복작전을 주로 수행했고 적을 직접 찾아 돌아다니는 작전은 수행할 수 없었다.[32] S급의 실패 이후 미 해군의 설계실험 목적으로 굉장히 유니크한 설계를 가지고 있으나, 전방/후방 기관실 배치라는 안좋은 쪽으로 유니크한 기관배치와 구상선수 설치라는 기괴한 구조를 가지진 괴작으로 탄생해버렸으며 실제 운영시에도 수상항해를 하든 잠항을 하든 불안정한 안정성과 바닥을 치는 정숙성 등의 단점이 너무 많아 실전에 도저히 투입시킬 수 없다는 악평을 받았다.[33] 순양잠수함 계획에 따라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U보트의 설계를 참고로 압도적으로 덩치를 키우고 어뢰탑재량과 화력을 끌어올리며 항속거리를 증가시켰으나 역으로 엄청나게 커진 덩치는 미 해군 잠수함 설계 역사상 최악의 잠수성능을 기록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했다.[34] Jack K. Bauer, Stephen S. Roberts, Register of Ships of the U.S. Navy, 1775-1990: Major Combatants. Westpoint, Conneticut:Greenwood Press. 271-273 페이지[35] 해당 항목은 http://www.maritime.org/doc/fleetsub의 자료들을 참고하였음.[36] Commander John D. Alden, U.S Navy: A Design and Construction History. Naval Institute Press. 101페이지[37] 다만 실제 승조원들은 오물배출 작업을 극히 싫어했는데, 오물을 배출할 경우 잠수함 내에 똥냄새가 진동을 하기 때문이었다.[38] 대표적인 꼼수로, 함교에서 견시수와 당직사관이 철수하고 함 내로 들어갈때 일일히 사다리 밟아서 내려가는것이 아닌 해치 입구에 있는 로프만 잡고 해치 안으로 뛰어내리거나, 해치를 다 닫기도 전에 충수를 실시하고, 남아도는 잉여 병력들을 함수 방향으로 뛰어가게 하거나 해치를 그냥 닫아만 둔 상태에서 잠수를 해버리는 것 등이 있다. 물론 저런 긴급잠항 훈련 도중 다친 사례도 제법 되었고, 보통 당시 잠수함들의 해치는 2가지의 잠금장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충수가 진행되면서 잠수를 시작하게 되면 해치에 묶여 있는 로프를 잡아당겨서 해치를 대충 닫아둔다. 이럴 경우 1차 잠금장치가 잠기는 소리를 내면서 해치가 닫히는데, 이상태에서는 완전히 폐쇄가 되질 않기에 잠수가 완료되면 해수가 줄줄 새어나오게 된다. 이 상태에서 승조원들이 2차 잠금 핸들을 돌려서 확실하게 폐쇄를 해주면서 긴급잠항이 완료된다. 이런 다소 무식하기까지한 훈련들은 각국 해군에서 자주 시행했던 훈련들이라 크게 새로울 것은 없는 것. 여담으로 긴급잠항 시 어떻게 뛰어내리는지는 영화 "패티코트 대작전"의 후반부에 아주 잘 나와있다. 함장이 로프를 잡고 해치 안으로 뛰어내리는 동시에 해치에 묶인 로프를 붙잡아 해치를 닫으면서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볼 수 있다.[39] 일례로, U보트의 경우 전방 잠타가 흘수선하에 있어서 보이질 않는 문제와 더불어 폴딩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제로도 전방 잠타의 파손 사례가 매우 많았고 일본 역시 미국과 비슷한 개념으로 아예 잠타를 외부선체 안으로 완전히 밀어넣는 구조를 채택했다.[40] 크리스마스 트리 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빨간불, 녹색불이 들어오는 것이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41] 원리는 간단한데, 해치나 밸브에 스위치를 심어두는 것이다. 해치나 밸브 등이 닫히면 전류가 통해서 스위치가 작동하여 녹등이 켜지고, 개방될 경우 전류가 차단되면서 적등이 켜지는 것이다.[42] 흔히 하는 착각으로 사람의 음성이 적함의 소나에도 잡혀서 들킬수도 있다는 착각을 자주 하는데, 선체가 소음을 1차적으로 걸러내기에 '''안들린다.''' 하지만 아군 음탐사들에게 소음으로 방해를 줄 여지가 많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잠수함 내에서 큰소리를 내는건 그리 좋은 행위는 아니다.[43] 맞아도 불발되는것은 물론이고 적정수심보다 더 깊게 항주해 버리거나 심지어 '''부메랑마냥 자기를 발사한 배를 때리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일본군의 산소어뢰가 활약중이였기 때문에 더 비교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어뢰 스캔들 문서로 가서 보면 나온다.[44] 물론 준비탄 말고도 M1 톰슨 기관단총 등의 소화기들을 넣어놓는 경우도 많았다.[45] http://www.navweaps.com/Weapons/WNUS_5-25_mk10.php[46] Commander John D. Alden, U.S Navy: A Design and Construction History. Naval Institute Press. 88 페이지[47] Norman Freedman, U.S. Submarines through 1945: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Annapolis, Mariland: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247 페이지[48] Rear Admiral Eugine B. Fluckey, 자서전 Thunder Below! 360~361 페이지[49] 잠망경 심도까지 잠수 기준으로 독일 잠수함 중 1,200톤급이 약 45초, 1,600톤급이 약 60초.[50] 독일 잠수함대의 문제점은 1차대전 당시의 유럽 근해에서 잠수함전을 치뤘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형 잠수함 위주로 함대를 구성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유럽권역 위주의 잠수함대의 구성은 전쟁이 장기화되고 대양작전능력이 필요하게 되자 바로 곤경에 처하게 된다. 당장 미국 동부 근해까지 작전반경을 확보할 수 있는 U보트는 IX급에 한정되어 있었고 중부대서양에서는 작전조차도 버거운 나머지 보급전용 잠수함에 의지해야 했던 상황이었다.[51] 설계상 잠항 심도는 157.5m이나 실전에서 확인된 바는 없다.[52] 물론 소련이나 일본의 사정보단 훨씬 낫다. 소련의 데카브리스트급 잠수함이나 프라브다급 잠수함, 카츄샤급 잠수함, 일본의 일부 순잠형, 해대형의 경우 실제로 작전요구성능대로 잠수를 했다가 '''응결수가 맺어서 떨어지는줄 알았는데 이 응결수(물론 응결수가 아니라 해수다.)에서 짠맛이 난다'''던가, 심하면 접합부에서 누수가 관찰되고 압력선체 강판이 이탈되는 사고가 벌어지고 용접 불량 등으로 인해서 용접선이 수압 때문에 누락이 되어버리거나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리벳이 뜯겨져나가는 등의 문제가 생긴 것인데, 일본과 소련에서 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한 이유는 용접 기술 부족의 원인이 크다.[53] 원인은 앞서 말했듯이 공기 순환 벤트가 작살나버리고 부상 이후 디젤엔진을 돌려야 하는것 때문에 예열중인 상태인데다 각종 펌프들도 돌아가고, 전원변환기도 돌아가는 등 워낙 돌아가는게 많은데다 압력선체의 손상으로 인해 압력차로 온도가 올라갔으며 침수로 인한 압력 상승에 따른 함내 공기의 단열압축 현상 때문에 함내온도가 극심하게 치솟은것으로 추정된다.[54] 라이프(LIFE)지 태평양 해저전[55] 이 설계는 굳이 미국 잠수함뿐만 아니라 일본 잠수함이나 소련 잠수함에서도 자주 볼수 있는데, 일본 역시도 미국과 같은 생각을 하고 이 설계를 적용했었고 소련의 경우에는 '''"페어워터 없어도 파도 좀 맞아주고 말지" 라는 말이 아무래도 안 통했기에'''(북극해다...) 꽤 많은 소련 잠수함들이 페어워터를 설치했다.[56] 이 실험결과는 전후 미 해군에서 노획한 일본 잠수함에 대한 시험운항 결과이다. 다만 센토쿠급이 긴급잠항 60초에 순잠 을형역시도 최대한 단축할 경우 37초까지도 가능했다.[57] 실제로는 레이더 전파의 역탐지 문제 등으로 인해서 비정기적으로 레이더를 X회 정도 회전시켜 주변을 감시하고 레이더를 꺼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에 실제로도 조기에 레이더로 일본 항공기를 탐지하지 못해 위치가 발각되거나 공격을 받는 사례가 제법 많았다.[58] 실제로도 독일의 잠수함 개발 방향은 단순히 잠항심도나 잠항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있지 않았고 슈노켈이나 발터기관, 수중항주 위주의 선체 등 가잠함이라는 제약을 극복하는 데 집중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59] 2차 대전 당시 어뢰에 문제를 안겪은 해군이 오히려 드문편이지만 이건 워낙 유명하고 심각하다보니.[60] 이 교신을 바탕으로 발라오급 잠수함 SS-365 하드헤드가 표적인 특무수송선 만에이 마루를 격침시킨다.[61] https://blog.goo.ne.jp/laplonge/e/5ead09c960364cbe9dddd5f1b041b33e[62] 해체 소식을 뒤늦게 들은 유진 플럭키 제독과 바브의 승조원들은 '해체된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돈을 투자해서라도 사왔을 것이다' 라면서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한다.[63] 영국 해군의 1위는 U급 잠수함 10번함 HMS 업홀더(Upholder)의 9만 3천 31톤, 소련 해군의 1위는 S급 잠수함 13번함 S-13의 4만 4천 138톤이다.[64] 참고로 단함 격침톤수 1위는 발라오급 잠수함의 SS-311 아처피쉬가 일본군 항공모함 시나노를 잡아서 갖고 있는 70,000여 톤이며,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65] 사르고급 잠수함인 USS Seawolf (SS-197)도 전시되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현존하는 시울프급과는 관계 없다.[66] 메인 전시물이 BB-60 앨라배마함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67] 아래에 소개될 이들은 자기보다 커다란 배들을 사냥하여 태평양의 일본해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잠수함답게 해군수훈십자장(Navy Cross)도 다수 수훈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잠수함 지휘관들은 아주 크고 전략적이게 중요한 함선을 격침시켰을 때 해군수훈십자장을 수여받곤 했는데 예를들면 항공모함 다이호나 시나노를 격침시킨 잠수함 함장들이 해군수훈십자장을 수여받았다. 길모어 소령은 해군수훈십자장 2회 복수수훈, 플럭키 소령은 4회 복수수훈, 딜레이 소령은 4회 복수수훈 했다. 즉 이들은 모두 이미 잠수함대에서 맹활약하던 에이스들이다.[68] 후부키급 구축함 이카즈치호를 격침시킨뒤 올린 보고에서 '''Expended four torpedoes and one Jap destroyer!'''(어뢰 4발과 쪽발이 구축함 한척을 소모했습니다!)라는 보고를 올린것으로도 유명하다.[69] 사실 이런 구명정에 탑승하고 있거나 표류하고 있는 일본군에 대한 공격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고 잠수함대 사령관인 록우드 제독이 회고하기도 했다. 참고.[70] 당시 이런 포로수송을 담당하던 일본 포로수송선에 대해 연합군은 '''지옥선(Hell Ship)'''이라고 불렀다. 왜인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71] 실제로 매니토웍 조선소의 대표이사가 그 해군 장교의 진짜 삼촌이었다. 매니토웍 조선소는 1968년경 폐쇄하고 다른 조선소로 이전되어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