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년

 



1. 개요
2. 역사
2.1. 서양
2.2. 동양
3. 서브컬처
4. 그 외
4.1. 관련 문서
5. 목록


1. 개요


'''미소년'''()은 얼굴이나 외모가 곱상하고 아름다운 소년을 뜻하는 단어이다.

2. 역사


그리스에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소년과 사귀어라' [1]는 말이 있다든가, 그리스 신화에서도 제우스지상의 인간 미소년을 보고 반해서 납치한 뒤 자신의 옆에 두고 을 따르는 일을 시켰다던가 중국 고사에도 황후나 황제가 미소년을 데려다가 부비부비하고 놀았다는 내용[2] 등이 있는 걸 보면, 단순히 미소녀의 반대 개념으로 현대에 와서 창조된 것은 아니고 한참 전부터 있었던 듯하다.
사실 미소년은 역사적으로 왕후장상들의 필수요소에 가깝다. 동서를 막론하고 수많은 군주들은 미소년을 탐했다. 중국의 황제들[3], 아랍의 술탄들도 모두 미소년을 탐하던 군주가 있으며 포로 중에 미소년은 각지의 군주로 보내졌으며 수청을 거부하다 처형당한 미소년도 상당할 정도이다.
또한 고자 혹은 환관과 연계되기도 한다. 거세된 노예지중해권에서 많이 거래되는 편이었다. 또한 중국에서도 위에서는 황제의 후궁에 손을 댈 수 없는 황자들이, 밑에서는 해적들이 배 위에 여자를 들이면 안 된다는 미신 때문에 성욕을 푸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

2.1. 서양


고대 그리스에서는 미소년과의 동성연애가 곧 유행이자 '''권장할 만한 일'''이었다. 플라톤을 비롯한 저명한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알렉산드로스 3세와 같은 군주들도 즐겼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이 당시에는, 가장 고귀한 사랑은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며, 그 다음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고, 그 다음이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이었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미소년이되 '''가녀린 샌님이 아니라 성격이 용맹하고 남성적이며 건강한 미소년'''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를 묘사한 화폭을 보면 알 수 있듯 하얗고 어여쁜 미소년을 좋아했다. 그러나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 소크라테스는 미소년을 멀리 하라고 하였다.
그리스 신화를 봐도, 남신들이 미소년과 연애를 하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아폴론의 경우에도 미소년인 히아킨토스를 총애하여 데리고 다니기도 하였고, # 여자 밝히기로는 악명이 높은 제우스도 미소년 가니메데올림푸스로 데려와 결에 두고 술 따르게 하는 것을 즐겼다. 또한 '남색 대상의 미소년'을 뜻하는 캐터마이트(catamite)라는 영단어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와서 영어 사전에 당당히 적혀있다. 이렇게 성인남성과 미소년이 사귀는 경우 성인남성은 미소년에게 최대한 많은 지식과 지혜를 전수하며 미소년은 이를 겸허히 배우려 노력할 것을 적극 권장받았다.
고대 그리스 시기의 동성애 문화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다면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를 읽어보면 좋다. 건전한 관심이라면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히겠지만, 음흉한 관심이라면 금세 쿨쿨 자게 될지도 모른다.
로마 시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약간 멀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당대의 연설가로 명망이 높았던 대(大) 카토가 '''"미소년 노예가 땅값보다 비싸니 개탄할 일이네"'''라고 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았다. 이후에 그리스도교공인됨에 따라 미소년과의 동성애는 된서리를 맞아 근대까지 터부시되었지만, 여전히 귀족들이나 부유층들 사이에서는 빈번히 일어났었다. 특히 근현대 유럽의 상류층 귀족사회의 자제들은 기숙학교라는, 남성간의 동성연애가 유행하기 딱 좋은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일화도 많았다.[4]

2.2. 동양


중국 남북조시대의 악명 높은 황후였던 가남풍은 백성들 중에서도 미소년들을 골라 뽑아서는 한밤중에 보쌈해와서 데리고 노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일을 치른 후에는 간통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미소년을 죽여서는 시체를 상자에 담아서 버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밤 일을 잘하면 귀중품 하나 주고 돌려보내기도 한다 카더라. 특히 명나라청나라 시기에 이르러서는 미소년을 상대로 하는 남색이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성행하게 되었다. 당시 어지간한 사대부나 고위층치고 되려 남색을 즐기지 못하면 풍류를 제대로 즐길 줄 모른다고 까일 정도였는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당시에 출간된 소설이나 극본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관련 문헌이 극히 부족하기는 하지만, 미소년을 상대로 한 남색 행위가 일어났음을 짐작케하는 기록이 종종 발견된다. 신라에는 귀족 가문의 미소년들을 치장하고 받들어 모시는 화랑제도와[5], 고려 시대에 미소년들을 뽑아 왕을 시중들게 하였던 자제위 등 미소년과 관련된 제도가 존재했었다. 신라의 진성여왕의 경우에는 아름다운 소년들을 끌어들여 음란한 행위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목종충선왕, 공민왕 등의 몇몇 왕들도 실제로도 곁에 아름답고 젊은 남성들을 두고는 남색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성리학적 질서가 자리잡아 사회 풍조가 엄격해진 조선 시대에도, 남자들로 이루어진 광대무리인 남사당패 중에서도 외모가 아름다운 소년들을 여장시켜 공연을 할때 여자 역할을 대신하게 하거나 돈을 받고 몸을 팔도록 했다고도 한다.[6] 한국의 고유어 가운데에 남색의 대상이 되는 미소년을 뜻하는 ""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으니, 그 역사가 실로 유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능화가 남긴 조선해어화사의 기록을 보면 조선 후기까지만해도 미소년을 상대로 남색을 하는 일이 남성들 사이에서 굉장히 성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도 이러할진대 일본은 말이 필요없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다녀간 통신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부유한 일본의 무사들은 미소년을 애인으로 두었는데, 이들은 외모가 아름답거니와 그 치장도 몹시 화려해서 '어지간한 여성보다 더 아름다울 지경'이었다고 한다. 한편 사무라이들은 애인으로 사귀던 미소년들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사귀기라도 하면 질투를 하다가 치정살인까지 일어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이런 기록은 당시에 일본을 찾았던 서양계 선교사들의 기록에서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으니, 당대의 큰 유행이라 볼 수 있다. 영화 고하토에도 나오는 내용.
이처럼 일본에서 미소년과의 남색을 하는 풍속을 와카슈도, 즉 '중도(衆道)'라고 부르는데 당시 일본의 상류계층에서는 오히려 이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게 취급당할 정도였다.[7] 중도는 고대의 헤이안시대로 부터 근대의 에도 막부 시대까지 유행하였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 사회에 급격한 개혁이 이루어질 때 즈음에 구시대의 악습이라 하여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점차 사라져갔다.
한편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선 사회적으로 동성애가 금기시 되지만 희한하게도 미소년들이 여장을 하고 춤을 추며 성매매를 해서 입에 풀칠하는 경우가 상당하며 인권침해 문제로 말이 많지만 대개 높으신 분들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지라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중이다. 사실 이슬람권에서 동성애가 공공연하게 배척받기 시작한 건 19세기 이후로 서구제국주의의 영향과 이슬람교의 보수화의 영향 때문이고 19세기 이전에는 미소년들과 연애하는 고위직들이 은근히 많았다.

3. 서브컬처


영화계에서는 1970년대에 등장한 비에른 안드레센이 있었고,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아역으로 나온 두 소년들도 미모로 인해 꽤 회자되기도 했다.
미소년은 여덕의 주식(主食)이지만 미청년이나 미중년을 좋아하는 여덕들도 상당하다. 여성의 미소년 수요는 현대에 확립되었다. 전통적인 주요 소비자들은 중년 남자들이었다. 조달하는 방법은 납치하거나 생활고에 시달린 부모들이 내다판 걸 사오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여장남자, 또는 가슴이 납작한 미소녀를 그려놓고 미소년이라고 우기는 예가 늘고 있다.
페이트 제로에서는 르뤼에 이본 이탈리아어판 표지는 미소년의 피부로 만들었다고 한다. 페이트 제로의 주인공인 세이버소녀이지만 남성스러운 이미지의 상당한 미소년 상이라는 설정이 있다.
요즘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절대 다수의 주인공은 미소년이지만 더 잘 생기고 키가 큰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평범한 외모'라는 설정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얼굴은 주인공이 더 잘생겼다는 것이 개그다. 안경을 쓰면 평범한 얼굴인데 안경만 벗으면 미소년, 미소녀인데 얼굴에 살짝 주근깨가 있어서 평범한 얼굴이라는 설정과 판박이다.

4. 그 외


구글 등 이미지 검색 사이트에 '미소녀' 키워드를 검색하면 실사 미소녀는 단 하나도 안 나오고 모조리 2D짤만 나오는 것과 반대로 '미소년' 키워드로 검색하면 실사만 나온다. 물론 그렇다고 나온 결과물이 다 미소년인 건 아니지만(보정 떡칠 사기로 유명한 일본 미소년이라던가) 같은 뉘앙스의 키워드인데 결과가 정반대로 나오니 꽤나 흥미롭다.

4.1. 관련 문서




5. 목록


  • 현재 미소년으로 주목받고 있는 실존 인물들(과거에 주목 받은 사람들이나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제외.)

[1] "여자와의 사랑은 번식이라는 본능에서 나오는 불순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번식이 불가능한 미소년과의 사랑이야말로 본능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다"라는 플라톤의 주장이 있었다.[2] 대표적인 예로 사자성어 여도지죄(餘桃之罪)를 낳은 미자하.[3] 대표적인 예로 한무제. 평소에 총애하던(동성애적으로) 부하가 궁형을 당하자 오히려 좋아했다는 야사가 있다.[4] 영국의 유명한 문학가였던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추문에 휩싸여 몰락했던 것을 보더라도 당시 영국 사회 내에서는 겉으로는 터부시되더라도 이런 일이 흔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나폴레옹 또한 브리엔(유년 사관학교)에 재학하며 기숙하던 당시 이런 분위기를 거부하여 미움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5] 하지만 신라의 화랑이 동성애와 관련이 있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특히 당시 한반도의 남성은 지금의 여성이 널리 치장하는 것과 같이 치장했기 때문에.[6] 왕의 남자의 초반부에 공길양반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장면은 이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7] 일례로 서민출신으로써 권력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연히 중도라는 것도 모르고 미소년 취향도 아니었다. 이에 사람들은 히데요시를 '역시 출신이 천해서 풍류도 모른다.'라고 깠다.[8] 주로 음색이 곱고 청소년 연기에 특출난 성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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