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N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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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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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가수. 보이그룹 NRG의 멤버이며, '''리더, 메인보컬'''을 맡고 있다. [4]
1996년 천명훈과 함께 '하모하모'로 데뷔[5] 한 이후, 1세대 아이돌 열풍에 힘입어서 이듬해 NRG로 다시 데뷔하여 활동하게 된다.
1977년 생으로 현역 아이돌 가운데 god의 박준형 다음가는 최연장자임은 물론이고 1세대 아이돌 그룹 리더인 H.O.T.의 문희준과 젝스키스의 은지원보다도 1살 더 위다. 사실 남성 아이돌은 대부분 늦어도 최대 20세에 데뷔하는 경우가 많은데 NRG의 전신이었던 하모하모가 아이돌이 아니라 댄스 듀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놀라운 점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팀 내에서 리드보컬 포지션으로 활약했다.[6] 목소리 자체가 상당히 독특한 미성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랩 파트의 비중이 있었던 천명훈, 노유민과 달리 거의 모든 곡에 랩 파트가 전무하다고 봐야할 정도로 뚝심있는 보컬이었던 셈.[7] 또한 라이브 역시 숨을 헐떡이곤 했던 노유민, 음이 상대적으로 불안했던 김환성과는 달리 상당히 안정적으로 소화했다.[8] 특히 음역대가 높아서 다른 멤버들이 고음을 AR로 대신할 때 그대로 불러버릴 때가 많았다.[9]
큰형이지만 정작 외모는 귀염상인데다가 팀 내에서 가장 체구가 아담하다는 반전이 있다.[10] 개인 예능 활동을 할 때도 최연장자이건만 놀려먹기 좋은, 구박받는 장난꾸러기 꼬마 이미지가 강했다.[11] 그렇지만 의외로 운동신경이 좋아서 격하기로 악명높은 NRG의 춤도 가장 세게 췄다. 특히 백덤블링을 잘해서 <할 수 있어> 간주 덤블링 구간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한 번 돌 때 연속으로 계속 돌기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빈번하게 돌곤 했다.[12]
2. 개인 활동 이력
2.1. NRG 탈퇴 ~ 재합류 시기
Mnet '핫라인스쿨'의 VJ로 활동하였다. 최초의 아이돌 출신 케이블 VJ였던 셈.[13] 탈퇴한 후에도 멤버들과는 자주 전화하면서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였는데, 김환성의 사망 당일 방송에서 마지막 멘트 중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2000년 9월 뮤직뱅크에서 천명훈이 작곡한 김환성의 추모곡 'Antonio'를 부르며 NRG로 복귀하였다.
2.2. 예능 활동
멤버들 중에서 말을 가장 재치있게 잘했기 때문에 NRG가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할 때도 혼자 말을 많이 했다. 리더 기질이 강했기 때문에 인터뷰, 수상 소감, 멤버 소개, 단체 예능 등등 말하는 것과 결정을 내리는 것 모두 그의 몫이었다고 한다. 천명훈이 음악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이성진은 대외활동에 집중한 리더였던 셈.
이 특성을 살려 NRG 재합류 이후 2001년부터 개인 예능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활동은 '인기 아이돌이 불러주는 곳이 많아 활발하게 활동한다'기보다는 ''''해체 위기에 몰린 비주류 아이돌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활동한다.''''는 표현이 어울렸는데, 다른 연예인들의 방송 펑크를 다 채우고 다니면서 스케줄이 들어오는대로 전부 다 승인하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14] 원래 성격은 A형 성격이라고 하며, NRG 내에서는 리더답게 과묵하고 어른스러운 성격이었다고 한다. 혼낼 땐 잘 혼내고 칭찬할 땐 잘 칭찬한다. 문성훈 왈, 이성진이 한 번 정색하고 화를 내면 정말 무섭다고 한다. 주접 컨셉도 사실은 본 성격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15] 사석에서는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코너 애정만세를 통해 발굴한 '주접쟁이' 컨셉으로 각종 예능에 자주 출연했다. 당시 그의 독보적인 인기에 힘입어 NRG 팬클럽인 '천재일우'와 별개로 'EROS'라는 개인 팬클럽을 창설하기도 하였으며, 전성기의 정점이었던 2002년에는 개그맨 순위 3위에 랭크되었을 정도. 영화 긴급조치 19호에서도 소속사 사장님 김태형과 함께 본인 역할로 출연했다. 여기서 이성진은 그렇게 방송에서 주접을 떨었음에도 불구하고 개그맨이 아닌 가수로 분류되었다는 현실에 좌절하는 캐릭터.
KBS 2TV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는 2회, 8회, 9회에서는 일반 게스트로 출연했다가 패널 5명, 오구동성 공공의 답, 선택! 지워야 산다 체제로 개편된 20회부터 44회까지 고정게스트로 출연했다. 여담으로 33회부터 44회까지는 같은 멤버인 노유민이 고정게스트로 합류하면서 함께 출연했다.
SBS X맨을 찾아라에서도 자주 출연했던 게스트 중 한 명. 특히 X맨에선 같은 아이돌 출신인 S.E.S의 바다와 코믹한 러브라인으로 엮여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때 개인 CF 섭외가 쏟아졌지만 모두 승낙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NRG 멤버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면 안된다는 김태형 사장의 만류 때문이었다고.
5집이 크게 성공한 이후로는 예능 출연을 줄이고 본 성격대로 주접 컨셉도 버렸지만 이 시기의 영향이 컸기 때문인지 여전히 까불거리는 주접쟁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2.3. 암흑기
2006년 6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왼쪽 어깨의 변형 밎 통증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치고 뮤지컬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 3월, 사기와 도박죄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후 법원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나 갚지 않아 그해 12월 법정구속되었다. 그리고 최종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벌금 500만 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때의 심한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인해 인생을 놓아버렸고, 하루에 2~3시간, 많아도 4시간 밖에 잠들지 못하면서 하루의 15시간 이상을 제정신으로 있지 못하고 술로 보냈다고 한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생기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두려워하여 극단적인 충동이 들 정도로 정신건강이 피폐해졌다.
2014년 5월 30일에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사기 혐의로도 또다시 피소되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16]
어느날 눈을 떠보니 자살 신고를 받아 출동한 경찰이 앞에 있었다. 적어도 남한테 피해주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편해했다는 것에 또다시 죄책감이 들었다고. 이 일로 다시 살아보자고 결심하게 되었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가게를 내고 사람들과도 점차 만나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신건강을 점점 회복하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려놓게 되었고, 잘못했을 때는 도망치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말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2.4. 이후
2017년 10월, NRG 20주년 앨범 발표를 통해서야 방송 활동을 재개하였다.[17] KBS와 MBC에서의 출연 규제도 이와 동시에 해제되어 뮤직뱅크와 쇼! 음악중심에도 출연하였다. 다만 어디까지나 NRG로써 필요한 방송활동에만 출연하고 개인 방송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18]
3. 개인 활동 작품
3.1. 드라마
3.2. 영화
4. 수상 경력
5. 여담
- 성격과 예능 이미지 때문에 외모가 가려진 케이스. 특히 2001년 4집 후속곡 '삶은...계란' 활동 당시의 금발머리가[22]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매우 좋다.# 19주년 팬미팅에서도 한 팬이 금발로 염색해주지 않겠냐며 물어봤지만 그때처럼 예쁘지 않을 것 같다며 사양했다. 그래도 이후에 금발로 염색했다. 2집 수록곡 'Messenger' 뮤비 촬영 스틸컷
- 천명훈과 처음 만난 날, 병을 깨가며 싸웠다고 한다. 자신이 분명 형인데도 천명훈이 대들어서 홧김에 술병을 들어 깨자 천명훈이 바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고.[23] 그 뒤로도 둘이 싸울 때마다 노유민과 문성훈은 자신들에게 잘해주는 쪽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고 한다. 천명훈과는 하모하모 데뷔 이전부터 알던 사이여서 '우리의 인연이 이리도 길던가.' 하고 생각한단다.
- 팬들을 잘 챙긴다. 대전에서 올라온 한 팬의 후기에 의하면 추운 겨울날 NRG 숙소 앞에서 선물을 들고서 NRG 멤버들을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는데, 문득 따뜻한 느낌이 들어 일어나보니 겉옷이 덮어져 있었고 '미안. 선물한 과자는 애들이랑 같이 먹었어. 맛있더라. 집에 들여보낼 수는 없었고 대신 이렇게라도 해야겠다 해서.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 집에서 걱정하시겠어. 파카는 경비실에 맡기면 돼. 대전에서도 콘서트 할 거야. 그때 보자. 꼭 올 거지?'라고 적힌 이성진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일화가 와전이 되어 천명훈이 한 일로 알려졌다. 사실 팬들조차 잘 모르는 일화다. #[24]
또한 이성진이 한 프로그램에서 MC를 맡다가 그만두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MC를 보는 날 이성진의 팬들이 찾아왔었다. 이에 경호원이 소리를 지르는 팬들을 밀치고 과격하게 제지하자 이성진이 불같이 화를 내며 "내 팬분들 함부로 대하지 마라. 이제 내가 MC 그만둔다고 팬들한테도 막 대하는 거냐. 그렇게 단물만 빨아먹고 버린다는 식의 행동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 2006년, 신지와 여의도에 '신성'이라는 고깃집을 운영한 바 있으나 군 생활과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폐업하였고[26] 2011년 포장마차 사업을 거쳐 2013년부터는 대구에서 게장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6년 10월부터는 울산혁신도시에서 숯불닭갈비 가게를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고 있었으나 2019년 8월에 해당 건물 전체가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 자기 이름을 3인칭화해서 부르거나 두 손을 말아쥐고 얼굴을 가리거나 목을 앞으로 쭉 빼거나 입술을 내미는 버릇이 있다.
- 컴맹이다. 팬이 선물해준 컴퓨터를 쓰는 법을 몰라서 가족들이 더 자주 쓰기도 했다고.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성화 주자로 문성훈과 함께 뛰기도 했다.
[1] 중학생 시절 부친상을 당했다. 목욕탕에서 커피 우유를 같이 마셨던 기억이 유일한 추억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는데,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도 친구와 만나느라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큰 후회라고.
이후 어머니도 암으로 고생하면서 데뷔 전까지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실제 꿈이 야구선수였으나 학창 시절 단돈 3만원이 없어 꿈을 접었어야 했을 정도였다고.[2] 깔끔한 성격에서 비롯된 별명이다.[3] 이성진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인스타그램이 있었으나, 대부분 천재일우들은 이성진이 SNS를 안 할 것 같다고 예상을 했다. 20주년 컴백을 3주 남기고 2017년 10월 7일에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4] 본인은 1세대 아이돌 중에선 가장 노래를 못 부른다고 주장하나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잘 부른다. 심지어 미성이다. 또 오랫동안 활동을 안하다가 2017년에 3인조로 재결합해서 "20th 세기 Night" 곡으로 컴백했는데 여전한 가창력을 보였다.[5] 하모하모는 부산 사투리로 "그래, 그래"라는 뜻이라고 방송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6] 나머지 멤버들이 랩퍼로 참여한 2집 후속곡인 <Messenger>에서도 이성진만 혼자 후렴 노래 파트를 불렀다.[7] 하물며 강타도 H.O.T. 시절 랩을 한 곡이 의외로 많다. 전사의 후예, 투지, NBK 등등...[8] 이성진이 빠졌던 3집 당시, 팬들 사이에선 메인보컬 이성진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3집 메인보컬은 김환성이 되었다.[9] 원래는 음치였다고 한다. 노력으로 극복한 케이스.[10] 이성진이 활동중인 야구단 유니폼의 바지길이를 보고 노유민이 초등학교 6학년 생 바지라며 놀리기도 했다.[11] 통신사 CF 'Ting' 광고에서 10살 차이가 나는 장근석과 동급생으로 나온다.[12]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할 수 있어> 안무 연습 중에 착지를 잘못하는 바람에 왼쪽 손목이 부러지고 척추를 다치는 일을 겪었다. 이 때문에 <할 수 있어> 활동 중반부의 공연 영상을 보면 왼손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손이 부러졌을 때 동생들은 다 같이 비웃었는데(...) 다음 날 깁스를 하고 와서 벙쪘다고. 병원에서 뼈를 맞출 때는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다가 구토를 해버렸다고 한다.[13] 이후 태사자의 김형준도 2001년부터 1년여간 Mnet VJ로 활동한 바 있다.[14] 별명이 '''하이에나'''였다고...[15] 실제 '애정만세'에 함께 출연했던 성시경은 이성진의 평소 모습은 이렇지 않다며 칭찬하기도 했다.[16] 도박을 하면서 사채 빚을 쓰게 되었고, 사채는 불법인지라 사채업자들이 사기죄로 고소한 것이라고 한다.[17] 팬미팅 자리에서 자신 때문에 NRG 활동이 중단된 것 같다며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실제로도 NRG 멤버들 단톡방에서 동생들이 욕을 많이 한다고 한다(...).[18] 2018년 이후로는 방송활동이 없으며, 본인도 원치 않는다고 한다.[19] 극 중 안연홍의 동생으로 등장한다.[20] 여기에서의 유행어는 '미치고 팔짝뛰겠네'.[21] 개봉일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일어났다.(...)#[22] 팬들 사이에선 일명 레몬 머리라고 불리곤 한다.[23] 물론 병으로 누굴 다치게 할 생각은 아니었고 그저 천명훈이 하도 깝죽대고 대들어서(...) 그런것이다.[24] 20세기 미소년에서 주최한 콘서트에서 천명훈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며 처음 듣는 얘기라고 밝혔다. 심지어 이 콘서트에 참석했던 천재일우 조차 처음 듣는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다.[25] 당시엔 인이어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모하모의 데뷔 무대였는데, 천명훈은 이성진의 실수에 '무슨 노래를 저따구로...'라고 생각했다고...[26] 이때 온갖 찌라시성 루머에 휩싸였는데 그 때문인지 라디오 스타에서 "엄마가 두 번 다시 동업하거나 사업하면 죽여버린댔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27] 참고로 재미삼아 팀은 이름 대신 닉네임을 쓰는데, 이성진의 닉네임은 'Short'. 현재는 닉네임을 쓰지 않는다.
이후 어머니도 암으로 고생하면서 데뷔 전까지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 실제 꿈이 야구선수였으나 학창 시절 단돈 3만원이 없어 꿈을 접었어야 했을 정도였다고.[2] 깔끔한 성격에서 비롯된 별명이다.[3] 이성진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인스타그램이 있었으나, 대부분 천재일우들은 이성진이 SNS를 안 할 것 같다고 예상을 했다. 20주년 컴백을 3주 남기고 2017년 10월 7일에 인스타그램을 개설했다.[4] 본인은 1세대 아이돌 중에선 가장 노래를 못 부른다고 주장하나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잘 부른다. 심지어 미성이다. 또 오랫동안 활동을 안하다가 2017년에 3인조로 재결합해서 "20th 세기 Night" 곡으로 컴백했는데 여전한 가창력을 보였다.[5] 하모하모는 부산 사투리로 "그래, 그래"라는 뜻이라고 방송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6] 나머지 멤버들이 랩퍼로 참여한 2집 후속곡인 <Messenger>에서도 이성진만 혼자 후렴 노래 파트를 불렀다.[7] 하물며 강타도 H.O.T. 시절 랩을 한 곡이 의외로 많다. 전사의 후예, 투지, NBK 등등...[8] 이성진이 빠졌던 3집 당시, 팬들 사이에선 메인보컬 이성진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3집 메인보컬은 김환성이 되었다.[9] 원래는 음치였다고 한다. 노력으로 극복한 케이스.[10] 이성진이 활동중인 야구단 유니폼의 바지길이를 보고 노유민이 초등학교 6학년 생 바지라며 놀리기도 했다.[11] 통신사 CF 'Ting' 광고에서 10살 차이가 나는 장근석과 동급생으로 나온다.[12]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할 수 있어> 안무 연습 중에 착지를 잘못하는 바람에 왼쪽 손목이 부러지고 척추를 다치는 일을 겪었다. 이 때문에 <할 수 있어> 활동 중반부의 공연 영상을 보면 왼손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손이 부러졌을 때 동생들은 다 같이 비웃었는데(...) 다음 날 깁스를 하고 와서 벙쪘다고. 병원에서 뼈를 맞출 때는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다가 구토를 해버렸다고 한다.[13] 이후 태사자의 김형준도 2001년부터 1년여간 Mnet VJ로 활동한 바 있다.[14] 별명이 '''하이에나'''였다고...[15] 실제 '애정만세'에 함께 출연했던 성시경은 이성진의 평소 모습은 이렇지 않다며 칭찬하기도 했다.[16] 도박을 하면서 사채 빚을 쓰게 되었고, 사채는 불법인지라 사채업자들이 사기죄로 고소한 것이라고 한다.[17] 팬미팅 자리에서 자신 때문에 NRG 활동이 중단된 것 같다며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실제로도 NRG 멤버들 단톡방에서 동생들이 욕을 많이 한다고 한다(...).[18] 2018년 이후로는 방송활동이 없으며, 본인도 원치 않는다고 한다.[19] 극 중 안연홍의 동생으로 등장한다.[20] 여기에서의 유행어는 '미치고 팔짝뛰겠네'.[21] 개봉일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일어났다.(...)#[22] 팬들 사이에선 일명 레몬 머리라고 불리곤 한다.[23] 물론 병으로 누굴 다치게 할 생각은 아니었고 그저 천명훈이 하도 깝죽대고 대들어서(...) 그런것이다.[24] 20세기 미소년에서 주최한 콘서트에서 천명훈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며 처음 듣는 얘기라고 밝혔다. 심지어 이 콘서트에 참석했던 천재일우 조차 처음 듣는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다.[25] 당시엔 인이어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모하모의 데뷔 무대였는데, 천명훈은 이성진의 실수에 '무슨 노래를 저따구로...'라고 생각했다고...[26] 이때 온갖 찌라시성 루머에 휩싸였는데 그 때문인지 라디오 스타에서 "엄마가 두 번 다시 동업하거나 사업하면 죽여버린댔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27] 참고로 재미삼아 팀은 이름 대신 닉네임을 쓰는데, 이성진의 닉네임은 'Short'. 현재는 닉네임을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