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성

 


<colbgcolor=#F282B4><colcolor=#FFFFFF> '''김환성
金煥城 | Kim Hwan Sung'''
'''출생'''
1981년 2월 14일
전라남도 (現 광주광역시)
'''사망'''
2000년 6월 15일 (향년 19세)
서울특별시
'''장례미사'''
2000년 6월 17일
대치2동성당
'''국적'''

'''신체'''
175cm, 58kg, O형
'''가족'''
아버지 김용원, 어머니 윤혜자[1]
누나 김현지[2]
'''학력'''
대곡초등학교 (졸업)
휘문중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 / 재학 중 사망,명예졸업)
'''종교'''
가톨릭(세례명: 안토니오)[3]
'''소속 그룹'''
NRG
'''데뷔'''
1996년 깨비깨비 정규 1집 〈깨비깨비〉
1997년 NRG 정규 1집 New Radiancy Group
'''별명'''
은성무, 동성무, 다이아성무
1. 개요
2. 사망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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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정규 2집 Race 시절의 김환성.
보이그룹 NRG의 전 멤버이며, 막내, 서브보컬을 맡았었다.[4] 주로 고음 부분을 맡아 불렀다.
미국 시카고 유학 준비 중 우연히 참가한 오디션에 붙고 연예계에 발을 들여 혼성 그룹 깨비깨비의 멤버로 야심차게 데뷔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데니 안, 손호영, 와 함께 4인조 혼성그룹을 준비하게 되었다.[5] 이후 천명훈의 추천을 통해 오디션을 보고 NRG의 멤버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데뷔 초기에는 팀 내에서 서브보컬을 맡았으나, 3집 때 메인 보컬 이성진의 탈퇴로 잠시 메인보컬을 맡았다.
부드러운 미성과 랩 실력, 머리띠가 잘 어울리는 남자 아이돌 1위로 누나 팬들이 많았으며, 농담으로 홍콩에서 직수입해왔다는 말로 팬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조용하지만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성격으로 연예계에서도 소문이 매우 좋아 아이돌계에서도 소문난 마당발로 통했다. 특히 H.O.T.[6], 젝스키스[7], 신화[8], 심지어는 선배 이현도[9] 등과 친분이 깊었으며 S.E.S.바다는 김환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중환자실에서 그의 곁을 지킨 유일한 여자 연예인이라고 한다.[10] 그의 영결식에도 이들을 비롯해 많은 연예인들이 참석했다.[11][12] 하지만 멤버들의 경험담을 종합해 보면 성격이 매우 남자답고 마초적이었던 듯하다. 눈물도 많지 않고 우는 사람은 씩씩하지 못하다 생각했다고. 또한 막내이면서도 남을 잘 챙기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어리버리한 노유민을 전담으로 ~~쓰다듬고 안아주고 부둥부둥~~ 챙기곤 했다.
그래도 막내답게 애교도 곧잘 부렸다고 한다. 표정 변화가 큰 편이 아니라서 말하지 않으면 무뚝뚝한 인상을 주기 쉽지만 003으로 활동할 때 이성진에게 하도 전화를 많이 해서 벨소리만 들리면 천명훈이 "또 환성이야?"라고 했을 정도로 멤버들에 대한 애착도 컸다고 한다.
2% 부족할 때를 좋아해서 2% 부족할 때를 마시거나 들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고 피카츄도 좋아해서 선물로 받은 피카츄 인형을 끌어안고 피카츄 성대모사를 하거나 피카츄 슬리퍼를 신고 다니기도 했다.#1. #2. #3. #4.
인기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다른 멤버들과 출연했을 당시 곱상한 외모를 잘 살린 여장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이제니를 짝사랑해서 그녀를 쟁취할 욕심에 여장까지 했지만 홍경인과 엮이게 되는 안습한 역할이었다.[13]
음악 방송 1위를 향한 열망이 가장 커서 소원을 물어보면 항상 '''음악 방송 1위'''라고 답했다. 데뷔곡 <할 수 있어>로 1위 후보에 올랐지만 IMF 사태 때문에 그 주에 순위 방송이 폐지되는 바람에(...) 더 열망이 컸던 모양. 그래서 NRG가 5집 'Hit Song'으로 처음으로 1등을 하자 이성진이 한을 풀 듯이 울먹이면서 ''''하늘에 있는 환성이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14]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안토니오. 장례도 천주교식으로 치뤘고 현재도 팬들이 묵주와 성모상 등을 용미리 공원에 놓고 가고 있다.[15][16]

2. 사망


2000년 6월 6일 노유민에게 "목이 아프다"며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해 노유민이 병원으로 데려간다. 이때 이성진은 무슨 사내 자식이 감기로 입원까지 하냐며 장난을 치는 등 별일 아닌 듯했지만 멤버들 누구도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 강남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3일 뒤에 호전되었다. 입원했다는 소식에 놀란 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음성 메시지로 좋아하는 것, 최근에 관심있는 것 등 일상적인 얘기를 남겼지만[17] 당일 밤 급격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또한 체내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바이러스성 세균의 침투로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어 인공 폐를 설치하는 응급 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로 연명했지만 오히려 폐와 뇌 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가족의 동의 하에 호흡기를 떼어냈고[18], 결국 '''6월 15일 새벽 0시 5분 경에 생을 마감했다.'''# # 이후 2003년 중국의 SARS조류 인플루엔자 창궐로 인해 관련 의혹이 뒤늦게 제기되기도 하였으나,시신은 이미 화장된 뒤인데다 특별히 채취되어 있는 검체도 없었기 때문에 의혹으로만 끝나 공식적으로 그의 사인은 '''상세 불명의 급성 바이러스성 호흡기 증후군'''으로 기록되었다.[19]
만 19세에 사망한 그의 장례식은 천주교식으로 치러졌으며, 멤버들과 친구, 팬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하여 파주 용미리의 추모의 집[20]에 안치되었다.
NRG는 이 일을 계기로 탈퇴했던 이성진천명훈이 재합류해서 중국에서 추모 콘서트 <For Antonio>를 열고 1년 후 추모 앨범 4집을 발표한다. 그리고 1주기 추모식과 영상회를 거쳐[21] 현재까지도 중국 팬들이 그의 가족을 초대하여 그를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며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용미리 추모의 집에는 팬들이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2% 부족할 때피카츄 인형을 놓고 가면서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여느 연예인 사망 사건 가운데서도 워낙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대부분의 방송사 연예 프로그램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었지만 SBS 한밤의 TV연예에서는 1분 분량의 단신으로 보도되었다.

3. 여담


  • 팬들 뿐만 아니라 당시 타 가수의 팬이었던 사람들조차 잘생겼다고 인정하던 미모였다. 어머니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웃 사람을 만나 얘기하는데 "아드님이 정말 잘생겼더라고요."란 말에 정작 김환성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은 잘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돌아와 집에 있던 김환성의 얼굴을 들여다보시고선 "눈은 예쁘네."라고 하셨다고...
    어디 한 번 예쁜지 볼까?

  • 단국대학교 선배인 추자현에 의하면 술을 전혀 못 하고 쉽게 지치는 면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생전 대학에 합격하거나 차를 샀을 때 그녀에게 자랑하기도 했다고.
  • 학교에서 성실한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엔 엎드려 잤지만, 수업은 졸지 않고 듣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교사들조차 "저 아이를 보아라. 연예인이지만 수업을 성실하게 듣지 않느냐?"라고 비교했을 정도였다고.
  • NRG 멤버들이 스타일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멤버로 그를 지목하기도 했다.
  • 길고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샤이니온유와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머리가 짧았을 때를 보면 온유 느낌도 조금 나는데, 온유보다는 좀 더 선이 굵고 남자답게 생겼다. 한편으로는 슈퍼주니어예성과 눈빛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22] 스트레이 키즈현진과 닮았다는 글들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현재까지도 계속 살아있었다면 해당 인물들과 엮일 일이 있었을 것이다.
  • 1세대 아이돌들과 두루두루 친했지만 그중에서도 강타를 좋아해서 입원했을 때 강타를 애타게 보고 싶어 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강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고...[23] 그래서인지 강타NRG에게 추모 앨범 4집의 타이틀 곡 <비(悲)>를 작사, 작곡해주었고, 이후로도 6집 수록곡 <어깨동무>를 작사, 작곡하여 주기도 했다.
  • 2001년 NRG 콘서트와 2003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불렀을 당시 그의 파트를 스크린을 통해 생전 활동 영상으로 재현하기도 했다.#
  • 2004년 8월 10일에 진행되었던 Mnet 'Showking M' 해운대 특집 녹화에 NRG도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천명훈노유민의 경희대학교 교수 간담회로 취소된 바 있었는데 녹화를 마친 뒤 다음날 동방신기원티드가 잇단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팬들은 '환성 오빠가 지켜준 거야'라며 안도했다고 한다.
  • 아이큐가 무려 155였다고 한다.
  • 자신의 보물 1호를 집에 있는 게임기 전부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게임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생전에 멤버들과 연예인 스타크래프트 대회에 출전해 우승한 경력이 있다.
  • 유독 H.O.T.와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H.O.T. 팬들이 흔드는 하얀 풍선이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쌍꺼풀 없는 눈이라고 말했다.
  • 당시 아이돌 팬클럽 가운데 최강의 막장성을 자랑했던 동방신기의 팬들로부터 그가 성병으로 사망했다는 고인 드립이 난무하기도 했다.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일뿐더러 타 가수들을 깎아내리면서까지 동방신기를 추켜세웠던 일부 극성 팬들의 만행이었지만 웃고 넘기기에는 매우 과격한 발언.[24]
  • 깨비깨비로 데뷔하기 전, 가수가 되겠다는 말에 아버지가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 가수 에반이 김환성의 고등학교 후배이다.
  • '단국대학교를 빛낸 사람들' 90위에 올랐다.
  •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차를 샀다.
  • S.E.S.유진과 스캔들이 퍼지기도 했다.[25] 서로 소속사 간의 피드백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사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김환성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펑펑 울었다고 한다.#
  • NRG의 멤버들이 지금까지도 가장 그리워하고 항상 같이 한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선다고 한다. 이성진은 중간에 NRG를 못 하게 되었어도 다시 하자고 했을 때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을 성격이라고 하면서 그리워했고, 노유민은 김환성의 기일 및 생일이 되면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게재하고 있으며, 천명훈은 비디오스타에 출연해 NRG의 재결합이 김환성의 선물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 사망 전 의식이 있었을 당시, 의사들이 자신의 감염에 대한 진단을 몰래 듣고 친누나에게 누나, 나 죽는 거야?라고 물으며 절망했다고 한다.

[1]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김환성의 담임 선생님이 된 적도 있다고.[2] 현재 두 아이가 있으나, 김환성이 요절할 당시 김현지 본인은 미혼이었기 때문에 김환성은 안타깝게도 살아 생전에 조카들을 보지 못하고 떠난 셈이 되었다.[3] 생전에는 대치2동 성당을 다녔다. 장례 미사도 이곳에서 치렀고, 세례도 이곳에서 받았다고...[4] 3집 한정 메인보컬.[5] 팀을 준비하다가 가 SM에 캐스팅이 돼서 먼저 나가고, 김환성도 깨비깨비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천명훈이 낚아채 가는 바람에(...) 데니손호영은 한동안 패닉이었다고 한다.[6] 훗날 문희준이 순결한 15에서 밝히길 생전에 그와 스키장도 같이 갈 정도로 친했다고 한다.[7] 3집 Thanks To를 통해 은지원강성훈을 언급했으며, 강성훈은 그의 솔로 앨범에서 보고 싶은 친구 환성이라 언급한 바 있다.[8] 가망이 없다는 담당 주치의의 진단을 들은 이민우가 멱살을 잡으면서 '''"환성이 살려내!"'''라며 절규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존재하며, 신혜성도 빈소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9] 그의 사망 당일, 예정에 잡혀 있던 서세원쇼 토크박스 왕중왕전 녹화에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자신의 팬 카페를 통한 해명 글에서도 "환성이는 제게 동생과도 다름없었습니다."라며 그에 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10] 후에 S.E.S.의 멤버들과 함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도 김환성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그를 향한 그리움을 드러냈다.#[11] 이 때문에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H.O.T., 신화 멤버들을 보기 위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무개념 팬들을 이민우가 내쫓았다는 일화도 있다. 1주기 추모식에도 이런 무개념 팬들이 출몰하는 바람에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12] 또한 그의 사망 선고가 내려진 뒤 시신을 중환자실에서 영안실로 옮겨가던 길에도 S.E.S., 태사자, 이현도, 이지훈, 터보, 김현정, 이정현, 베이비복스, 룰라, 이동건, 엄정화, 류시원, 박지윤, 스티브 유 등 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그의 두터운 인맥을 짐작하게 하기도 했다.[13] 유튜브에 남자셋 여자셋 524회를 검색하면 김환성이 출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14] 여담으로 NRG의 1위 당시 음악 방송의 진행자는 이성진과 '''정다빈'''이었다.[15] 천명훈이 3일 만에 직접 작사•작곡한 추모곡의 제목 역시 그의 세례명을 본따서 작명했다. 중국 추모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르자 만 명이 동시에 흐느꼈다고 밝혔으며 도입부에 그가 '''세상을 떠나기 5일 전에''' 남긴 음성 메시지가 담겨 있다.#[16] 또 다른 추모곡으로는 천명훈이 작사한 4집 수록곡 <Goodbye My Friend>가 있는데 이 곡 역시 뮤직비디오에 김환성의 생전 육성이 수록되어 있다.#[17] 이 음성 메시지는 후에 <Antonio (하늘로 보내는 편지)> 도입부에 삽입된다.#[18] 기사에 따르면 인공호흡기를 떼기 전 이미 '''뇌사'''했다고 한다.[19] 2000년 중국에서 활동 중 사랑니 발치를 위해서 치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김환성을 담당한 치과의사가 '''깜빡하고''' 도구에 소독을 하지 못한 채로 진료하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20] 서울시립용미리 제2공원 추모의 집, 2층 20호실.[21] 2003년에는 NRG 5집 'Hit Song' 쇼케이스를 겸했다.[22] 예성의 세례명 역시 안토니오이다.[23] 의식을 잃은 김환성의 곁에 울면서 앉아있던 이성진이 뒤늦게 온 강타를 보고 슬프게 웃으면서 "우리 환성이는 좋겠네. 보고 싶다던 사람 와서. 아프니까 보고 싶었던 사람도 오고. 환성인 그래도 좋을 거야. 널 볼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24] 가수 김진표의 아내도 과거 한 사이트에서 김환성을 비롯한 연예인들을 비난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25] 이를 의식한 NRG 팬들이 S.E.S.의 무대에서 NRG를 외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