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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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의 아버지. 본관은 남평 문씨이다.
함경남도 흥남 남평 문씨 집성촌 솔안마을 출신이다. 일제 시대 말기 조선총독부 예하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사무소 농업계 계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북한 땅에 소련군이 들어온 이후 함경남도 함주군청 농무과 과장으로 근무했다. 그의 아들 문재인의 자서전에 따르면, 소련 군정기와 북한 정부 시절, 당국에 의해 매우 '''시달렸다'''라고 하며, 결국 흥남 철수 때 미군을 따라 남한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경남 거제를 거쳐 부산에 정착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함흥평야에서 생산된 쌀이 수탈되어 흥남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던 시기에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농업계 계장으로 재임하였기에 친일 논란이 있다. 하지만 고의성이나 적극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2. 생애
1920년 10월 4일, 일제강점기 조선 최대의 공업도시였던 함경남도 함주군 운전면 운성리 솔안마을(현 함흥시 흥남구역)의 남평 문씨 집성촌에서 아버지 문정기(文廷夔)와 어머니 신안 주씨 사이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시기 공무원으로 패전하기 직전 흥남읍사무소 농업계 계장으로 근무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삼팔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정 하에서 함주군청 농무과 과장으로 전임, 1948년 9월 9일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북한 정부를 수립하여 북한 소속이 되었으나 대한민국으로 피신했다.[3]
진주 강씨[4] 강한옥과 결혼하였으며, 6.25 전쟁이 발발한 뒤 흥남 철수 때 미군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 호[5] 를 타고 거제도에 도착, 시간이 지나 장남인 문재인이 태어났고,[6] 경상남도 부산 영도구로 이주하였다. 이후 별다른 행적은 남기지 않고 1978년 사망하였다. 사인은 심정지였다. 이때 장남 문재인이 26세였다.
3. 동명이인
- 문용형(文蓉亨)은 리영(李英, 1889~1960)이라는 북한 초기의 정치가가 1910년대 중반 시절 일제 강점기 경기도 제물포에서 잠시 사용한 가명이었다.
- 문용형(文龍炯)은 리승엽(李承燁, 1905~1954)이라는 북한 초기의 친일 공산주의 계파 정치가가 1930년대 후반 시절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함흥에서 잠시 사용한 가명이다.
[1] 충선공파-의안공파-이곡-관북파 32세 형(炯) 항렬.[2] 진주 강씨.[3] 이 때 공산당에게 많이 시달려서 이후로는 공무원이 아니라 노무자를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노가다를 했다는 얘기로, 포로수용소 건설공사에서 건설 일을 했다고 한다. 아내인 강한옥은 모자를 팔았다고.[4]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image][5] 자서전에서는 LST 온양호를 탔다고 되어 있으나, 이후 방송에서는 메리디스 빅토리 호를 탔다고 했다. 나중에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메리디스 빅토리 호라고 했다.[6] 그래서 고향이 경상남도 거제시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