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인민위원회

 


'''북조선인민위원회'''
'''北朝鮮人民委員會'''
[im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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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2][3]'''
'''국장[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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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2월 16일 ~ 1948년 9월 9일'''
'''성립 이전'''
'''성립 이후'''
'''소련군정 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애국가[5]
'''위치'''
38선 이북의 한반도 부분
'''수도'''
평양
'''정치체제'''
일당제 사회주의
'''위원장'''
김일성
'''공용어'''
한국어
'''민족'''
한국인
'''통화'''
조선 엔, 소련 군표(1946~1947)
북한 원(1947~1948)
1. 개요
2. 상세
2.1. 역사
2.2. 구성
3.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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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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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위원회는 소련군정이 끝나자,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로동당에 의해 건설된 중앙정권기관으로, 사실상 정부로서 운영되었다. 현재 북한 정부의 전신이라 보면 된다.[6]

2. 상세



2.1. 역사


1946년 2월 8일, 조선로동당이 개최한 '북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에 의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수립이 결정되었다. 다음날인 2월 9일 소련의 통제 하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설치되었다. 2월 15일에는 소련군정#군정청이 공식적으로 종식된다. 그러나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설립 의도는 소련이 북한에 사회주의 위성국을 세우려는 의도였고 김일성은 소련의 지시대로 행동한다. 1947년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개칭되었다. 1946년 3월 8일부터 지주의 토지를 몰수, 분배하였고, 주요 산업들을 국유화시켜 사회주의 정책을 폈다. 북한의 토지 개혁은 의외로 중국이나 북베트남보다 덜 과격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사회주의만의 정부 수립에 밑거름이 되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위원회가 수립되자, 그 이후부터 남북간 접촉이 두절되었고, 남북분단이 점점 현실화되어갔다. 또 미국-소련간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동년 11월 3일, 인민위원회 선거를 했다. 1948년 2월 8일에는 사실상 북한의 군대인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1948년 7월에는 태극기안익태애국가를 폐지하고 독자적인 국기국가를 가지게 된다. 1948년 8월 15일에는 남한미군정이 끝나면서 소련군이 철수했다. 1948년 8월 25일에는 최고회의 선거를 하였으며, 그해 9월 9일, 김일성수상으로한 북한이 수립되면서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계승된다.

2.2. 구성


중앙인민위원회와 북조선인민회의가 의회로 있었다. 북조선인민회의가 입법부였고, 중앙인민위원회가 행정부였다. 중앙인민위원회 외에도 각 자치단체별로 (도·시·군·구) 지역인민위원회가 있었다.

3. 관련 인물




[1] 북한도 처음엔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했으나 1948년 7월 10일 이후에는 인공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 태극기는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2] 당시 소련국기도 준 국기 수준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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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필요] [3] 또한 이런 깃발도 쓰였던 모양[출처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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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48년 7월부터 쓰였고, 그 이전에는 이러한 국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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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한도 처음엔 안익태애국가를 사용했다. 그러나 1948년 7월 이후 자신들만의 국가를 제정한다.[6] 이 때문에 '남북 분단의 책임은 북측이 더 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가장 뚜렷하게 낼 수 있는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