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박사
1. 개요
쉬는 김에 박사학위나 받아두자고 한 것이었다.
내가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고 시간이 부족해서 실수를 좀 했다.
학자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1]
박사학위는 있지만 스스로 연구를 해낼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세부전공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박사를 받거나 적어도 박사과정 이상 해 본 사람들 사이에 나오는 말.논문은 부족합니다만 감히 실제 표절을 보더라도 25% 넘어야 하는데 5% 미만이 나오는데요.
논문은 졸작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제가 쓴 건 맞습니다.
2. 상세
문제는 이게 교수 중에도 있어서, 보통 학내정치와 마케팅(?)에 치중하는 교수들을 보면 전공 지식이 대학원생들보다 모자라는 경우가 많다. 또 정년보장을 받거나 나이가 먹어 연구열이 많이 사라진 교수의 경우에도 학계의 트렌드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대학원생들에 비해, 세부전공의 지식이나 방법론에서 최신의 연구결과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자신이 밀고 있는 주제의 기본적인 내용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좀 심하면 이미 치매나 정신질환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검증 시스템이 없어서 안 잘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학부 3~4학년만 되어도 이 사람이 진짜 학자인지 그냥 학위만 받은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논문 게재율이나 단행본 실적 혹은 강의 실력만 봐도 이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다 안다. 객관적 커트라인은 없더라도 전반적인 기준은 있다.
3. 생존법(?)
물박사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알지도 못 하는 용어를 남발하며 잘 모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적용되는 순간. 박사 학위라는 게 일단 학문적인 달성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학문적인 수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과정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심사 과정이 완벽할 수가 없기 때문에 소위 말빨로 학위가 수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이 말빨만 내세우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는 수준 이하의 결과를 가지고 그럴듯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종류든지, 실력평가(시험 등)의 과정을 통해 진짜 실력을 제대로 측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오랜 연구 과정과 논문 작성이 필요한 박사과정은 그렇게 만만하게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력보다도 편견 때문에 통과하기 힘들었다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게다가 학식이라는 것은 학위 도중에 다 쌓이는 게 아니다. 학위라는 것은 단지 '자격증' 정도에 불과한 물건일 뿐이고, 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끊임 없이 쌓아 나가야 한다. 비유하자면 학위는 운전면허이고, 실제 운전 실력은 진짜 도로에서 차를 몰고 경험을 쌓음으로써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는 등한시하고, 자리나 탐하면서 돌아다닌다면, 마치 장롱에 면허를 갖고는 있지만 실제 운전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의미가 없다.
4. 사례
- 일반적으로 신학 계통이 심하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로마에서 받은 학위가 그런 경향이 심하다. 보통, 로마 유학은 각국에서 선발되어 온 학생이므로, 그 학생의 실력 자체를 엄격히 검증하기보다는 학생 본국의 선발자들을 믿고 어느 정도 논문 양을 채우면 우선 학위를 주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로마 유학을 가기 위한 신학생, 신부들 사이 로비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 물신부들은 본당에서 희생하며 복음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학위 취득을 통해 주교 내지는 고위성직자로 나아가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게 목적이기 때문. 물론, 원로 성직자들도 바보는 아니라 상당한 검증과정을 거치지만, 이런 야망을 가진 이들이 박사학위 받기 전까지 본심 감추고 연기하는 것까지 잡아낼 수는 없다. 심지어 교단 내 신부들조차도 이탈리아 박사학위는 미국, 프랑스, 독일 학위보다 아래로 친다. 철학, 교의신학, 윤리신학 등의 분야는 독일, 프랑스 학위를 더 경쟁력 있게 본다. 애초에 로마의 박사논문들도 대다수가 독불 신학자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그레고리안 같은 예수회 대학은 그래도 학문 전통이 있어서 어느 정도 기준이 있으나 이외 우르바노, 알폰시아눔 등 유학생들 위주 대학(원)은 한국 박사보다 못하거나 한국 석사 수준의 논문에도 박사학위를 준다. 다만, 특수한 분야, 예컨대 라틴어와 이태리어가 필수인 교회법학, 라틴어와 로마사가 중심이 되는 고대교회사, 로마가 당연히 중심인 전례학의 경우는 이태리가 종주국이므로 이 정도는 예외로 본다.
- 개신교의 경우도 일부 비인가 사립대학 박사는 주요 교단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 퍽하면 문제되는 것들은 미국에 명의만 있고, 국내에서 적당히 수업만 들으면 되는 학교들이다. 다만, 개신교는 천주교처럼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라 학위를 통한 출세가 큰 의미는 없다. 명함에 박사학위 더 새겨넣는 정도. 애초 개신교측은 목회학학위와 학술신학학위를 어느 정도 구분하고 있다. 석사의 경우만 해도 목회학석사(M.Div.) 과정과 신학석사(Th.M) 과정이 구분되어 있고, 학교에 따라 박사과정 역시 구분되어 있다.
- 다만, 신학박사의 경우,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신학박사 자체를 박사로 보지 않는 풍조이다. [4] 오히려, 이 분야도 엄밀한 검증을 통해 물박사를 축출하는 것이 신학에 대한 존중.
- 신학이라 하더라도 독일 학위는 물박사로 보지 않는다. 독일의 신학과는 신구교 막론하고 독일 국립학위를 수여하기 때문. 독일 신학과는 신학박사(Dr. Theol 또는Th.D)나 철학박사(Dr.Phil 또는 Ph.D)를 수여하는데 모두 기본적으로 국가학위이며, 가톨릭학부의 신학박사는 교황청립 인정과 독일 정부 인정을 동시에 받는다.
- 프랑스는 정치의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와 종교학박사를 동시에 수여한다. 즉, 교회 내에서는 신학박사이지만, 세속 정부는 신학의 학문적 권위를 부정하므로 종교학박사라는 명의로 별도로 수여하는 것. 한국에서 자신이 불란서에서 박사를 두 개나 받았다는 경우는 대부분 이런 특수한 경우이므로 유의할 것. 물박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박사도 아니라는 점.
- 중국이나 미국의 경우 세계 순위권에 드는 대학의 박사는 쉽게 취득하기 어렵지만, 그 외 일부 대학들은 정말 물박사가 나오기 쉽다. 현재, 한국에서는 그러한 학교들을 걸러내는 차원에서 해외학교의 학력인증을 개별적으로 하고 있다.
- 독일의 경우는 자국과 미국, 일본 박사만 별도 인증 절차 없이 바로 박사로 인정한다. 그 외 국가의 박사는 박사학위 소지가 행정적으로 필요할 경우 학위취득 대학과 국가를 밝히고 확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독일 내의 저술에 박사학위를 표기할 때에도 Dr. 옆에 학위취득대학을 병기해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박사는 독일에서는 그냥 Dr.를 붙일 수는 없다. 다만, 1회성 국제심포지엄 등의 경우에는 독일이 주를 이루는 게 아니라 국제무대가 주이므로, 관례상 Dr.을 붙여준다.
- 이외에도 예체능 쪽이 물박사가 흔하다. 문대성, 김두현 등 논문 표절 사례가 잊을만 하면 튀어나오는 것도 이 때문. 이 쪽은 논문을 쓰는 능력보다는 실제 그 분야의 능력과 경력이 더 중요하다. 실제 해당 분야에서도 박사학위보다는 경력에 더 중점을 둔다.
- 일부 해외 명문대 출신 박사들은 국내 명문대, 지거국 이외 지방사립대 박사들을 물박사로 도매금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사립대 박사라 하더라도 국제학술지 논문 등으로 실력을 보여주면 진짜 박사로 대접 받을 수 있으니, 우선 실력을 키우자.
- 명예박사는 물박사가 아니다. 애초에 명예박사는 일반 박사가 아니라 명예학위에 속한다. 명예학위를 받는 사람들이 보통 관련 분야에서 공헌한 걸 생각하면 사실 명예박사가 박사보다 더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방증이다.
- 또한, 스스로를 물박사라 칭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보통 제 역할은 다 하는 사람들이다.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나는 이 학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라는 식의 겸양의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5. 기타
한국에 국한된 경우가 아니고 북미 명문대의 경우도 종종 보이므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입장이라면 주의를 요한다.
한편 물 자체를 연구하는 박사도 있는데, 물의 여러가지 성질을 연구한다. 실제 인물로 물 연구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전무식 교수[5] 와, '물, 약인가 독인가'를 저술한 중국의 리푸씽 교수가 있다.
[1] 1999년 건국대에 제출된 허태열의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 수준은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데 연세대 이종수 교수가 1996년 한국행정학보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의 6페이지 분량의 내용(심지어는 결론까지 복사했다!)을 베끼다시피해 논문을 검토한 전문가들도 혀를 찰 정도로 경악했다. 이정도 수준의 표절이면 대학 측으로 부터 학위 취소를 당해도 할 말이 없으며, 실제로 외국 대학에서는 심각한 수준의 논문 표절이 발각된 경우 학위 취소를 하기도 한다.[2] 충북지사,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을 지낸 허태열이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명받은 직후에 행정학박사 학위 표절 논란이 터지자 언론에 본인의 학위논문 표절을 인정하며 덧붙인 해명[3] 황희가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명받은 후에 본인의 박사과정 시절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작성된 연구용역 보고서를 베껴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는 의혹 및 논문 대리 번역에 대한 해명[4] 사실, 종교의 특성상 학위에 연연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일 수 있다.[5] 방송인 전현무의 큰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