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제1차 대오스만 전쟁

 


제1차 오스만 전쟁
'''시기'''
서기 1421년 ~ 1423년
'''장소'''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트라키아
'''교전국'''
[image] '''동로마 제국'''
[image] 베네치아 공화국
[image] 세르비아 왕국
[image] 왈라키아 공국
[image] 제노바 공화국
[image] '''오스만'''
'''지휘관'''
[image] 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
[image]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
[image] 테오도로스 팔레올로고스◎
[image] '''콘스탄티노스 드라가시스 팔레올로고스'''
[image] 아드리아노스†
[image] 이바니아
[image] 돈 프란시스코 데 톨레도
[image] 토마스 팔레올로고스
[image] 대(大) 무스타파†
[image] 주스티니아니
[image] '''무라트 2세'''
[image] 투라한 베이
[image] 팔리오테스†
'''병력'''
총원: 24,000명
제국군: 9,000명
불가리아군: 12,000명
제노바군:3,000명
총원: 16,000명
오스만군: 13,000명
그리스군: 3,000명
'''피해'''
14,300명
9,000명
'''결과'''
오스만의 패배, 동로마 제국의 중부 그리스라리사 탈환.
'''영향'''
향후 8년간의 휴전과 공물 면제.
베네치아 공화국에게 테살로니카 할양.
1. 개요
2. 오스만 내전
3. 제19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3.1. 67화
4. 제1차 대오스만 전쟁 개전
5. 중부 그리스 전역
6. 아테네 공성전
7. 이스트모스 전투
8. 오스만군의 철군과 휴전협상


1. 개요


소설 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의 오스만 내전 및 모레아의 첫 번째 대오스만 전쟁에 대해 다루는 문서. 대략적으로 1421년 말부터 1423년에 해당하는 시기를 담고 있다.

2. 오스만 내전


요안니스의 행동 하에 보수파 인사들은 하나둘씩 실각당한 뒤 유폐당한다. 셀림브리아에서 통치를 하고 있어야 할 테오도로스가 수도에서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시도한 건에 대해 구속당한 인물들은 입을 모아 반란의 획책이라며 비난을 하지만, 이에 테오도로스는 비웃기만 한다. 수석비서관 소 스프란체스와 재상 노타라스는 체포당하지는 않았지만, 테오도로스의 협박 하에 새 황제 요안니스 8세에게 강제로 충성하게 되면서 힘을 잃는다.
소피야에게서 서신을 전달받고 2주일이 지난 뒤, 주인공은 아드리아노스는 물론 타지에 파견가있던 니키포로스와 데미클레오테스 등을 불러들여 회의에 들어간다. 수도에 주재중이던 베네치아 상단에게서 정보를 얻은 소피야의 서신에 따르면, 본국에 요안니스 8세를 중심으로 해서 모레아에 적대적인 정권이 수립되었고 이로 인해 내전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도시인 네에파트레와 보도니차[1] 등의 도시가 오스만 쪽으로 붙을지 말지에 대해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공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흑사병이 도래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강경한 조치를 취해 중부 그리스 도시들 및 베네치아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거기에다가 요안니스가 독단적으로 대 무스타파를 오스만의 새 술탄으로 추대하면서 베네치아와 왈라키아의 지원, 거기에 오스만 치하에 있던 불가리아인들 또한 합세해 1만 2천 명 이상의 군세가 오스만을 침공했다는 사실 또한 접한다. 대 무스타파의 봉기 소식을 접한 무라트는 오스만의 분열을 원치 않는 가신들의 압도적인 지지 하에 한 달만에 보병 6천 명, 예니체리 1천 명, 시파히 800명을 모았고, 우선 불가리아인들을 철저히 응징한 뒤 무스타파도 단 한 번의 회전으로 완전히 박살내고 목을 따는 등 압도적인 전과를 낸 뒤, 여세를 몰아 콘스탄티노플 공성에 들어간다.
결국 자신이 크게 틀린 선택을 했음을 깨달은 요안니스는, 어떻게든 수도를 지켜내기 위해 염치를 불문하고 주인공에게 도와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다.

3. 제19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3.1. 67화


처음부터 대 무스타파가 패배할 것을 직감했던 주인공은 8천 명에 달하는 오스만의 군세가 불가리아 및 무스타파의 군세를 격파하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는 소식을 접해들고, 이어서 오스만군이 강행군으로 지쳤을 것이라 억측한 테오도로스의 닥돌(...)과 그에 응당하게 이어진 무라트의 역습으로 수도와 셀림브리아를 지킬 2천 명의 군세가 전멸하고 테오도로스 본인마저 실종되었다는 결과가 들려오자 좌절한다. 또한, 그는 무라트가 추가적으로 동원령을 내려 모집한 병력까지 합쳤을 때 총 1만 3천에 달하는 병력을 모레아가 쥐어짜내 만든 최대 전력인 6천 명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고통받는다.
결국 요안니스 8세의 간절한 요청을 접한 주인공은 모레아의 모든 군사력을 집결시켜 오스만의 제국에 대한 공세를 막아내러 나서고, 동시에 오스만과의 압도적인 국력차를 단번에 극복할 만한 히든 카드를 준비한다. 미리 유폐당한 마누일 2세에게 서신을 보내 히든 카드의 세팅에 들어간 주인공은 토마스의 지원군 파견 제안을 마다하고 북상하고, 수도를 포위하면서 주변의 마을 및 소도시들을 약탈하기만 하던 오스만군은 포위 54일차에 5~6천에 달하는 규모의 모레아군의 북진 소식을 접하고 바로 포위를 풀고 중부 그리스로 향한다. 그렇게 포위를 빠르게 풀고 주인공과 싸우기 위해 콘스탄티노플 앞을 떠나가면서, 무라트는 제국의 사람들을 비웃는 한 마디의 말[2]을 남긴다.

4. 제1차 대오스만 전쟁 개전


주인공과 무라트의 충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양측의 의도를 종합해 라리사 인근이 전장이 될 것으로 꼽았지만, 이 예상과는 다르게 주인공은 보급로의 확보와 정확한 지리정보의 습득, 그리고 중부 그리스 자치령들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진군 경로를 바꿔가면서 행군을 늦춘다. 6천 명에 달하는 군세로 흔들리는 도시들의 충성을 불완전하게나마 회복하며 주인공은 콘스탄티노플 포위 이후 1달이 지난 1421년 12월 네에파트레에 입성하고, 다른 의도가 있음이 다분하게 느껴지는 가혹한 징발을 강행한다. 징발의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휘관들에게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이 농성이 아니라 유인을 통한 섬멸이고 이를 위해 적군에게 일부러 성문을 열어줄 것임을 확실히 했고, 다름이 아니라 성문을 시민들이 직접 열게 만든 뒤 적들을 시가지로 끌어들여 그리스의 불로 화공을 시도할 것임을 알려준다. 이는 후녀디 야노시가 지휘한 베오그라드 전투의 전개를 응용한 것으로, 작중에서 주인공이 현대인의 (당대 기준) 미래 지식을 이용한 몇 안되는 장면.
그렇게 한 달 동안이나 가혹한 징발이 이어지자 마침내 네에파트레 시민들은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이에 당황하는 아드리아노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끈기있게 오스만군이 도달하기를 기다린다. 산맥들 사이에 위치한 요충지로 베네치아의 힘이 닿지 않는 육로를 통한 보급을 위해서라면 꼭 점유해야 할 네에파트라의 중요성을 주인공은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고, 실제로 적군이 도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지만 주인공은 적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예니체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경악한다. 결국 주인공은 무라트가 휘하 예니체리만을 데리고 후방의 도시들과 접촉했을 경우 도시들이 배신하면서 벌어질 일에 대해 깨닫게 되고, 자신의 짧은 판단에 자책한다.

5. 중부 그리스 전역


중부 그리스를 탈환하고 아테네를 위협한다는 무라트 2세의 계획을 뒤늦게 파악한 주인공은 즉시 회군을 시작하고, 휘하 병력 중 믿을 만한 부관 1명과 300명의 결사대를 차출해 네에파트레의 화공을 계획대로 실행 가능하게 판을 짜둔 뒤 도시를 떠난다. 그로부터 정확히 1주일 뒤, 예니체리 부대에 대한 추격을 개시한 모레아군은 그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주인공은 이들 사이에서 무라트의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통해 후방으로 향한 예니체리 자체가 기만책이었음을 깨닫는다. 한편, 네에파트레 근교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 사이에 꼭꼭 숨어있던 무라트는 주인공의 회군 소식에 웃음을 띠며, 막사에서 나와 도시의 성문이 시민들에 의해 저절로 열리는 광경을 목격한다.
무라트가 네에파트레로 바로 향하지 않고 진군을 늦추는 행동을 보인 진짜 이유는 주인공이 일부러 오스만군을 끌어들이기 위해 느리게 북상한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었고, 그는 주인공에게 정치적인 압박을 가하기 위해 아직 완전한 충성을 바치고 있지 않은 중부 그리스의 도시들을 직접 본인이 갈 것도 없이 밀정들을 보내는 것만으로 흔들어 다수의 도시를 회유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후 네에파트레로 향한 그는 지루한 공성전을 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본인의 깃발과 예니체리를 이용해 이미 장악한 중부 그리스로 그들을 보내어 모레아군에 대항해 최대한 지연전을 펼쳐 주인공을 네에파트레에서 멀리 끌어낸 뒤 빈집털이를 시전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와 동시에, 주인공이 시가전을 원해서 일부러 가혹한 징발을 일삼았다는 점을 간파한 무라트는 이를 역으로 이용해 네에파트레의 무혈점령 소식을 들은 모레아 치하의 나머지 중부 그리스 도시들의 충성을 받아낸 뒤 모레아군 본대를 격파한다는 계책 또한 준비한다.
네에파트레가 무라트에게 성문을 열어주는 동안, 하루 동안 예니체리와 대치하고 있던 주인공은 자신에게 향한 가불기의 피해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고민에 잠긴다. 결국 그는 무라트 2세가 그토록 쉽게 예니체리를 미끼로 내던질 수 있던 이유가 소피야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밀정을 운용했기 때문이었음을 파악하고, 화공 한 방에 모든 것을 건다. 한편 네에파트레에선 300명의 결사대가 주인공이 노렸던 적군의 전멸까지는 아니어도 오스만군에 노예병을 위주로 한 4천 명의 병력 피해를 입히는 데에 성공했고, 결국 오스만군의 공세가 시작되자 무라트는 에디르네에 서신을 보내 동원 병력을 전부 소집한다.
그렇게 네에파트레에서 화공이 절반의 성공만을 거둔 시점에, 아테네로 철군을 시작한 지 1주일째 예니체리들에게 괴롭힘당한 모레아군은 피로도가 빠르게 누적되었다. 유대인 밀정에게서 주인공은 화공의 결과를 전해듣고, 이를 실패라 단정짓는다. 하지만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오스만군 본대의 발이 묶인 걸 기회로 삼아 주인공은 예니체리와 회전을 벌여 승리한 뒤 철군할 방법을 찾고, 스스로 라틴 기사 100명을 이끌고 패주하는 척을 해서 예니체리를 직접 유인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경보병에 해당하는 예니체리의 공격쯤은 판금 갑옷을 입은 하마기사들을 이끌고 가면 가볍게 씹을 수 있다. 판단한 주인공은 이바니아가 남은 기사들을 이끌어 예니체리의 대열을 잘게 쪼개고 아드리아노스가 나머지 병력 전부를 투입해 파편화된 진형을 각개격파할 것을 명하고, 무라트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건다.
주인공의 목숨을 건 노력 끝에 예니체리가 유인당하고, 주인공은 비장한 태도로 100명의 하마기사들과 함께 전장에 나선다. 난전 과정에서 중상을 입으면서까지 수십 명의 예니체리를 베고, 끝내 예니체리들의 대장까지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한 주인공은 살아남고, 난전에서 살아남은 또 다른 생존자이자 주인공을 사촌으로 부르는 것이 허락된 아라곤 출신의 기사 돈 프란시스코와 함께 구조된다.
1대 30에 달하는 압도적인 전력차의 싸움에서 적의 정예병인 예니체리들을 완전히 패주시키는 데에 성공한 주인공의 기적적인 승리는 모레아군 전체를 흥분시켰고, 네에파트레로 인해 내려간 병사들의 충성심 또한 완전히 회복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회전 한 번으로 단 200여 명의 사상자만을 낸 채 3천 명의 예니체리 중 2천 명 정도에 달하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주인공이었지만, 아드리아노스는 그가 곧바로 추격을 개시해 남은 예니체리까지 전멸시키지 않은 점에 대해 아쉬워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예니체리를 전멸시키든 그러지 못하든 아테네로 제대로 철군하는 데에 실패하면 오스만의 승리라는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고 이를 일축한다. 한편, 에디르네에서 출발했을 동원 병력을 기다리며 네에파트레의 뒷수습을 하던 무라트 2세는 3천 명의 예니체리가 단 1백 명의 하마기사를 상대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고 패퇴했다는 충격적인 급보를 받아들고, 그와 동시에 난전 이후 주인공이 죽었다는 오보 또한 전해듣는다. 하지만 이 소식에 대해서 무라트는 그닥 신뢰하지 않고, 이후 들어온 여러 소식들을 조합해 주인공이 베네치아를 움직이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꾸몄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후 모레아군을 패퇴시키기 위한 후속병력이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옴과 동시에, 부관에게 원정에 사용할 새로운 무기인 대포[3]가 도착했는지 물어보며 주인공에게 주어진 유예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의해 끝났다고 독백한다.
주인공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직감한 무라트 2세는 새로 합류한 5천 명의 병력을 포함해 노예병 3천, 시파히 2천, 예니체리 1천으로 이뤄진 총 6천의 오스만군 본대를 이끌고 맹렬한 추격을 개시하고, 네에파트레 인근을 벗어나 중부 그리스 깊숙히 진근했을 무렵 주인공과의 싸움에서 패주한 예니체리 1천과 합류한다. 잔존 예니체리들이 합류한 뒤 중부 그리스의 유력자들이 파견한 병력 3천 명이 합류하면서 무라트의 휘하엔 다시 1만에 육박하는 대군이 모이며 본래의 병력 규모를 회복하는 데에 성공하고, 이윽고 중부 그리스군의 그리스인 장교들을 불러들여 주인공과의 전투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설명을 듣고 나서 계속 모레아군을 뒤쫓던 무라트였지만, 그들과의 거리가 점차 좁혀지면서 싸울 의지를 잃은 탈영병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주인공이 진짜로 죽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 탈영병들 자체가 주인공의 속임수였고, 중부 그리스의 유력자인 팔리오테스와 밀약을 나눈 주인공의 야습으로 시파히들이 반파되고 일반병들도 크게 상한다. 휘하 병력 1만 중 3천이 죽어나간 상황에 무라트는 크게 분노하고, 동시에 팔리오테스가 뒤에서 일을 꾸몄음을 확신한다.
야습을 통해 오스만군에 큰 피해를 준 모레아군은 아테네로 무사히 입성하고, 아테네가 넘어갔을 경우 포르토드라코 외항을 통해 오스만군이 보급을 할 것임을 걱정한 주인공은 아테네에서 오스만군을 최대한 묶어놓고 그 사이 모레아에 있는 소피야와 데미클레오테스, 그리고 수도에 있을 조력자가 노력해줘 제때에 오스만에게 변고를 일으켜주길 기원한다. 동시에 그는 중상을 입은 몸을 추스리면서, 긴 회복기에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오스만군에 이때까지 9천 명의 피해를 입혔지만 2300명의 피해를 입은 모레아군 또한 농성 태세 및 병력 재정비에 들어간다.

6. 아테네 공성전


모레아군이 아테네로 입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무라트는 조립식 대포의 부품들을 덮은 밀포대를 실어놓은 수레로 시선이 향하고, 병사들에게 포대자루를 치우게 한다. 공성전을 위해 총 16문의 대포를 동원한 무라트는 아테네로 향해 도시의 전경을 둘러보고, 아테네 주변에 대포의 운용을 어렵게 만드는 언덕들이 지나치게 많은 데에 인상을 찌푸린다. 결국 그는 포격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곳이 북쪽 성벽뿐만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전투가 공성전 대신 시가전이 되게 하는 데에 있어서 포격으로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마저 주인공을 낚기 위한 미끼로 삼는다.
전장 너비가 좁아 소수 대 다수 전투에 유리한 이스트모스 지협 대신 일부러 공성전에 유리하고 심지어 포격마저 제대로 활용하기 힘든 아테네를 전장으로 삼은 주인공에 대해 무라트는 혹시 그가 대포의 존재마저 예견했는지 염려하고,[4] 그가 시간을 끄는 이유를 토마스가 다스리는 이피로스의 준동을 통한 샌드위치 시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라트는 주인공이 샌드위치를 시도하게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일부러 큼지막한 미끼인 대포를 전진배치해 그의 눈길을 끈 뒤 함정을 이용해 모레아군을 격멸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특히나 저번 야습에서 시파히에게 큰 피해를 입힌 라틴 기사대 전력에 주목하며, 그들을 붕괴시키기 위해 고심한다.
한편, 모레아로 향하기 전 레콩키스타에서 활약했던 프란시스코는 전쟁에서 쌓은 노련한 경험을 토대로 진형을 짠 오스만군의 실상을 꿰뚫어보고, 세 갈래로 나뉜 적군 중 숫적으로 다수인 중군은 대부분 경보병이라는 점과 예니체리가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것, 좌익 후방에서 시파히가 대기중이라는 것과 대포를 조립하기 위한 수레들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를 제대로 파악한다. 하지만 그는 대포에 대한 사전지식이 별로 없었기에 수레의 자세한 용도까진 파악하지 못했고, 그저 무라트가 조이기를 시전해 진지 공사를 위한 자재들을 실어나르는 중일 것이라고 판단하고는 진지 구축 이전에 기사들을 이끌고 적병을 단숨에 박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지 공사 자체가 대포의 배치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고, 결국 아테네의 북쪽 성벽 일부가 포격으로 허무하게 무너진다. 성벽을 무너뜨릴 공성수단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레아군에게 공성전을 포기하고 회전을 실시할 여유를 주는 오스만군의 모습에 결국 프란시스코는 주인공을 찾아가지만, 중상으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뇌하다가 아드리아노스가 그의 탈출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프란시스코 일행이 주인공의 상태를 확인한 지 1주일만에 주인공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프란시스코에게 오스만군의 대포 운용에 대해 전해듣는다. 오스만군이 대포 부품을 현지에서 조립해서 완성했을 거라는 주인공의 말을 프란시스코와 이바니아는 바로 이해하고, 거기에 주인공은 오스만군이 목책을 속임수용으로 세웠을 것이라는 것과 대포가 실제로 조립된 곳은 천막 안일 것이라는 점까지 간파한다. 대포를 분해한 뒤 현지에서 조립하는 전략에 있어서 필수적인 강력한 행정력, 즉 국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절절히 실감한 주인공은 즉시 코린토스로의 퇴각 준비를 시작하고, 이바니아는 퇴각 준비는 전부 마쳐놓은 상태임을 막힘없이 보고한다. 하지만 아드리아노스의 행방에 대한 질문에 이바니아와 프란시스코는 입이라도 맞춘 듯 침묵을 지키고, 결국 주인공은 그가 희생을 택했음을 직감한다. 그의 희생에 작은 보답이나마 해주기 위해 주인공은 아드리아노스와 독대해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고, 오스만이 그 국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베네치아와 제노바 양쪽을 이용하고자 했다는 것과 이를 위해 지연전을 펼친 것, 그리고 지연전의 이유를 숨기고 이피로스의 참전 시기를 무라트 2세가 모르게 만든 것, 마지막으로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 제노바를 먼저 참전시켜 이피로스군과 합류시킨 뒤 제노바의 움직임을 경계한 라이벌 베네치아가 견제를 위해 함대를 기동하는 것을 본 무라트가 '십자군의 도래'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까지 개전 시점에서 주인공이 모두 의도했음이 나온다. 이 말을 들은 아드리아노스는 결전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1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유인책을 시도해 모레아군 본대의 탈출을 도운 뒤 장렬하게 전사, 프란시스코는 그의 유지를 이어 400명의 기사대를 이끌고 이피로스로 패주하는 척 하면서 시파히들의 본대 추격을 막아 끝내 모레아군은 최후의 전장인 이스트모스 지협으로 향한다.
본대를 추격하려다가 방향을 바꿔 기사대에게로 향한 시파히들은 끝내 기사들이 이피로스로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보고를 접한 무라트 2세는 또다시 표정이 굳어진다. 주인공이 기사대를 이끌고 십자군과 순조롭게 합류했을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던 무라트는 주인공이 출정 당시부터 의도했던 낚시에 그대로 걸려든다. 결국 무라트는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움직임으로 인한 제해권의 공백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이틀 뒤에 도착할 소아시아 방면 함대를 이용해 폭탄 드랍을 시도하기로 결정하며, 모레아군 본대가 대응을 못하도록 이스트모스 지협에 묶어놓기 위해 투라한 베이를 파견한다.

7. 이스트모스 전투


주인공이 아테네에서 철수한 지 1주일이 지나고, 강행군 끝에 드디어 모레아군은 병사들이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에 놓인다. 주인공은 코린토스로 안전하게 철수해 전쟁을 승전으로 이끈다는 일념 하에 쉬지 않고 행군을 계속해왔고, 놀랍게도 10명도 되지 않는 낙오자만을 남긴 채 코린토스의 성벽이 보이는 지점까지 도착한다. 하지만 코린토스 및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북동쪽 입구인 이스트모스 지협에 이미 오스만군이 도착해있는 것을 보고 모레아군은 희망이 아닌 절망에 빠지고, 오스만의 함대가 쉽게 펠로폰네소스를 한 바퀴 돌아 이스트모스에 도착한 광경에 주인공은 오스만과 베네치아가 서로 국익을 위해 손을 잡았을 경우를 의심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단서들을 조합해 일시적인 동맹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스만 해군이 제때 도착한 것이 제해권의 공백 때문이란 것을 쉽게 눈치챈다.
지협이 비좁음을 이용해 모레아군에 대한 포위섬멸을 노리는 무라트의 의도를 주인공은 바로 알아챘고, 이번엔 자신이 주인공을 위해 희생하겠다면서 전장으로 향하는 이바니아의 손을 잡아채면서 '''"더 이상은 버리지 않겠다."''', '''"지금 열리지 않을 길이라면 차라리 여기서 멈춰서겠다."'''라는 두 마디의 대사를 연이어 날리고는 상륙한 오스만군과의 회전을 각오한다. 적측 지휘관인 팔리오테스는 원래 선조 대부터 제국을 위해 오랫동안 봉사했지만 폐인이 되어가는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제국을 배신한 인물로, 어떻게든 무라트의 눈에 잘 들기 위해 잘 싸우려 노력한다. 하지만 무라트는 지난 야전 당시 박쥐같은 모습을 보여준 팔리오테스를 애초부터 버림패로 사용할 생각이었고, 팔리오테스 휘하의 군대는 우선 숙련도 높은 모레아군 창병대에게 모루가 완전히 갈려나간 뒤 이바니아 휘하의 기사대로 인해 본대고 예비대고 할 것 없이 싸그리 괴멸, 끝내 팔리오테스 본인마저 이바니아와의 일기토 끝에 전사하면서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
전세가 모레아군의 압승으로 끝난 모습을 보고 주인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뿔나팔 소리에 상황은 급변한다. 극적으로 나타난 시파히들의 모습을 가장 먼저 눈치챈 주인공은 넋을 잃고 바라본 뒤, 정신을 바로 차리고는 패주하는 적들을 더이상 쫓지 말고 서풍이 불어오는 동안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낼 것을 휘하 병력에게 명한다. 시파히들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루멜리아 출신의 한 시파히에게 항복 권유 서신을 맡겨 주인공에게로 보낸 뒤 진형을 재정비중인 모레아군에게로 서서히 다가온다. 최후통첩 사절로 찾아온 시파히가 유창한 그리스어로 주인공에게 항복을 요구하지만, 주인공은 시파히들이 그의 항복 여부와는 상관없이 공격을 개시할 것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코웃음을 주변의 병사들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각오하고 임전 태세에 들어가있음을 본 주인공은 자기 마음속의 불꽃을 활활 불태우며, 서풍을 타고 서쪽 해안가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함선들이라는 변수를 지켜본다.
주인공의 투지에 사절은 투라한에게로 돌아가고, 이윽고 주인공은 마지막 기회가 될 조력자의 등판을 알아챈다. 그는 마누일 2세가 주인공의 요청이 들어올 것을 미리 알고 모든 것을 안배해놨음에 감사해하며, 조력자 토마스를 통해 무라트의 목에 올가미를 걸 기회를 잡는다. 다름아닌 제노바의 개입으로 인해 이피로스군과 제노바인 용병이 이스트모스에 상륙했고, 거기에 맞춰서 소 무스타파와 토후들의 봉기로 오스만이 내전에 돌입한 것. 결국 투라한은 휘하 시파히들에게 전투를 피하라고 명령하고, 모레아군은 토마스 및 용병대장 주스티아니의 군세와 합류한다. 한편, 주인공이 토마스에게 미리 언질을 준 대로 안드로니코스가 다스리는 테살로니카에는 베네치아군이 주둔할 수 있도록 물자가 추가로 공급되었고, 이를 통해 오스만이 육로와 해로 양쪽에서 모레아를 주축으로 한 포위망으로 인해 아나톨리아의 내전세력 진압을 실시하는 게 크게 어려워지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렇게 주인공은 제노바의 영향력이 다소 강해질 수 있음을 미리 숙지하고, 무라트가 정복활동을 실시하는 시기를 크게 미뤄 그동안 모레아의 국력을 최대한 키워놓을 기회를 만들어낸다.

8. 오스만군의 철군과 휴전협상


원래라면 오스만군이 당장 회군을 실시해야 하는 게 옳은 수준이었지만, 무라트는 자신이 지금까지 치러온 수많은 희생 때문에라도 회전 한 번으로 모레아군을 격멸하길 원했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남하해서 시파히들과 합류하는 것을 택한다. 소 무스타파를 중심으로 카라만, 칸다르, 라마잔, 아이딘 등등 대부분의 토후들이 집결해 오스만 본국에 대항하러 궐기했다는 소식에, 끝내 1주일만에 무라트는 주인공과 회담을 갖는다.
최초로 대면한 둘은 중부 그리스로 인해 오스만 내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모레아를 격파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복속시키기라도 해야 한다는 점과, 모레아 또한 병력이 극심한 소모를 겪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므로 최대한 빨리 오스만군을 철수시킨 뒤 전후복구를 실시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양쪽 모두 동의하고 있었고, 이해관계가 일치했기에 합의조건을 빠르게 도출해낸다. 주인공은 차후 모레아를 오스만군이 침공하는 시기를 크게 늦추면서 동시에 내정 상황 개선이 빠르게 이뤄져 군 복구 또한 빨리 진행되기를 원했고, 따라서 크게 3가지에 달하는 요구를 봉신 서약의 조건으로 요구했다.

1. '''중부 그리스의 양도''' : 말 그대로, 1421년의 일련의 원정으로 주인공이 실질적인 모레아의 영향력 하에 둔 중부 그리스를 주인공이 통째로 봉토로 넘겨받는 것. 본토 수복의 교두보라는 전략적 가치가 있을뿐더러, 저개발 지역인 모레아 본토[5]

에 비해 오랜 전통을 가진 도시들이 많아 세수와 인력 확보에 용이한 중부 그리스는 주인공이 이전부터 계속해서 노리던 지역이었다.

2. '''8년간의 공물 면제''' : 중부 그리스는 모레아-오스만 양국간의 전쟁으로 인해 상당히 황폐해진 상태였고, 중부 그리스를 재건하고 군대 재건에도 쓰일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오스만에게로 들어가는 공물을 완전히 면제해달라는 조항. 물론, 이렇게 해서 추가적으로 모이는 자금은 중부 그리스와 군대를 재건하는 쪽에 투입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행정 및 사법개혁을 통해 모레아의 전체적인 체질 개선을 하는 데에 들어갈 추가적인 자금으로도 쓰일 수 있다.

3. '''라리사 일대의 할양''' : 라리사는 테살리아 지방의 중심지로, 피니오스 강이 관통하는 테살리아 평야의 중심도시이다. 사실상 이 라리사만 챙긴다면 테살리아 평야를 전부 장악 가능하고, 테살리아 평야는 그리스에서 몇 안되는 넓은 면적의 평야에 토질도 아주 비옥해 농업, 특히 밀 생산력이 높을뿐더러 마케도니아 제국 시절부터 군마로 사용되는 준마들의 생산지로 유명해 여기만 장악한다면 기사들을 포함한 중기병 전력을 다수 증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1번과 2번은 당연히 받아내야 하는 거고, 승전의 대가로 진짜 얻어내고 싶은 건 3번이라는 것.

무라트는 1번에 대해서는 씁 어쩔 수 없지 하는 태도로 순순히 인정해주고, 2번에 대해선 들어주는 대신 소아시아 반란의 진압에 주인공이 종군해 충성심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는 대신 자신이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아야 함을 이유로 들어 동생인 토마스를 종군시키고, 거기에 제노바 용병들을 알선시켜주며 토마스의 부재 기간 동안 자신이 이피로스의 섭정에 앉아 만약 토마스가 종군 과정에서 변을 당할 시 가장 가까운 혈육이 영지를 상속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철두철미하게 정해 무라트를 완전히 입 다물게 만든다. 하지만 무라트는 3번에 대해서만큼은 주인공이 테살리아 평야 일대에 진입한 점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완전히 폭발하고 말고, 주인공을 밟아놓으려 하지만 그가 베네치아 함대가 테살로니카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면서 분위기는 다시 역전된다. 그렇게 주인공은 무라트에게 소아시아 전체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라리사를 버리라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시전한다.
결국 무라트는 주인공이 오스만을 위협할 수 있는 진짜배기 숙적이자 제국의 최후의 불꽃임을 인정하고, 속으로는 위협적인 숙적의 등장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알라에게 맹세컨대 주인공이라는 불꽃을 반드시 꺼뜨릴 것임을 약속하고, 그가 알라가 오스만에게 안배한 마지막 시련이므로 8년이라는 주어진 유예기간 동안 최대한 준비해둘 것을 요구하면서 라리사를 순순히 넘겨준다. 그렇게 둘은 협상을 종료하고, 주인공은 무라트의 여유를 보며 이유모를 불안감을 느끼고는 이내 자신의 각오를 되새긴다.
"술탄이시여, 언젠가 다시 찾아뵙겠나이다." 라는 말로 무라트를 멈춰세운 주인공은, '''"비록 지금은 지키기 위해 찾아왔지만, 다음은 되찾기 위해 찾아뵐 것입니다."''' 라는 말을 하고 협상 테이블에 자신의 칼을 내려놓으며 후일 벌어질 전쟁을 예비한다. 그가 떠나간 자리를 계속해서 바라보며, 무라트는 자신의 칼집을 움켜쥔 채 한동안 가만히 서있는다.
진지를 해체하고 전면적인 철수를 시작하는 오스만군을 바라보며 모레아군은 정말로 전쟁이 끝났다고 체감하게 되었고, 분위기가 점차 절망에서 환희로 바뀌어가더니 결국 성모가 보우하사 기적이 일어났다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축제 분위기에 들어간다. 한편, 정말로 테살로니카를 베네치아에게 넘겨줘야 하냐는 토마스의 말에 주인공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말하며, 베네치아를 달래기 위해선 미끼로 테살로니카를 던져줘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주인공이 노리던 것은 따로 있었으니, 다름이 아니라 베네치아와 마찬가지로 테살로니카에 대해 눈독을 들이던 오스만이 베네치아를 압박하게 만들어 테살로니카의 방위비를 떡상시키면서, 이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동맹인 모레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결국, 테살로니카라는 미끼마저 주인공에게는 최소 몇 년 뒤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큰그림이었던 셈.

[1] 작중에선 보스니차로 표현되지만, 보도니차가 맞다.[2] '''"미련한 자들아, 성문을 굳게 닫고 결코 열지 말아라. 그대들이 성문 안의 지배자가 되었으니 성문 밖의 모든 것은 내가 지배하겠다."'''[3] 정확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금속 포탄을 사용하는 대포가 아닌, 둥글게 연마한 바위를 사용하는 사석포에 해당한다. 금속 포탄을 사용하는 대포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작중 시점에서 2세기 정도 뒤인 30년 전쟁 무렵.[4] 주인공은 세계사를 어느 정도 배운 현대인이기 때문에, 15세기 초 오스만이 대포를 운용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정도의 지식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태다. 오히려 대포의 등장 가능성을 무시하는 게 안일한 생각인 셈.[5] 정확히는 아르카디아 및 라코니아 지방. 아카이아 지방의 경우, 라틴계 영주들이 베네치아의 협력 하에 다스리면서 여러 항구도시들을 비롯해 상당한 수준의 개발을 해놓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