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진부

 

未珍夫
1. 개요
2. 상세
3. 필사본 화랑세기에서


1. 개요


진흥왕 시대에 활약한 신라장군.

2. 상세


장수왕 이래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반도 중부[1] 551년에 공격할 때[2] 참전한 9명의 장수 중 한 명이다.[3] 이 때 점령한 10군은 한강 상류지역 강원도함경도 남부 일대로 본다.

3. 필사본 화랑세기에서



'''신라의 풍월주(風月主)'''
박창화가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화랑세기의 기록
초대 위화랑

'''2대 미진부공 미진부'''

3대 모랑
위서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화랑이 창설될 때 부제(副弟, 화랑의 2인자)였다가 위화랑한테서 물려받아 2대 풍월주가 됐다거나, 원화였던 남모의 연인으로, 남모가 죽은 후 그 어떠한 여자도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법흥왕의 후궁이었던 묘도부인과 결혼하여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로 유명해진 미실과 동생 미생의 아버지로 나오는 등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첫 미 자가 성씨로 보일 수있는데, 성은 아니다. 일단은 한자가 美와 未로 다르지만, 어차피 xx부라는 신라 상대 인명들이 대부분 그렇듯 미진부(未珍夫)는 신라어 고유어 음차표기일 테니 그건 상관없는 듯 하다.
[1] 죽령 이북, 고현(高峴) 이내의 10군[2] 백제는 한강 하류를, 신라는 한강 상류로 치고 올라가 차지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후 한강 상하류 모두 신라가 차지해 성왕(백제)이 분노해 관산성 전투로 이어진다.[3] 대각간 구진, 각간 비태(比台), 잡찬 탐지(耽知)ㆍ비서(非西), 파진찬 거칠부ㆍ서력부(西力夫)ㆍ노부(奴夫), 대아찬 비차부, 아찬 미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