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 탈보트
[clearfix]
1. 소개
전 한화 이글스의 투수. 2012 시즌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고, 한국 무대를 떠나있다가 2015년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복귀했던 투수이다. 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투수
언론에서는 '미치 탈보트'라는 이름으로 많이 언급한다.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미치 탤벗이 맞는 것으로 보이지만, KBO에 등록할 때 탈보트라는 표기로 등록이 되어서 이쪽을 더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실제로 마구마구에서도 메이저 시절의 '탤벗'과 삼성의 '탈보트'가 같은 인물임에도 다른 이름 표기로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이후 패치를 통해 양쪽 모두 '탈보트'로 통일되었다.
1.1. 스카우팅 리포트
스터프는 대체로 싱킹 무브먼트가 있는 볼을 던지며 그라운드볼 유도에 적합한 투수로서 투심/싱킹/컷패스트볼 구속이 평균 89mph, 최대 93mph 전후로 형성되는 모습을 보인다. 전에 활동한 덕 매티스가 볼질로 고생했던 것과 달리 제구만 되면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로, 그라운드볼 피쳐에 눈독을 들이는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들의 성향이 드러난 계약이다. 일단 표본은 적지만 2011년 마이너에서는 볼넷 비율이 9이닝당 2개 꼴인데 비해 삼진은 8.5개로 훌륭한 커맨드를 보여 줬다는 점에 기대를 걸어 볼 수 있겠다.
다만 반드시 탈보트의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일단 2011년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래도 시즌 후반에는 선발로서 나름 준수한 피칭을 했다는 점이 삼성 팬에게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 평균 5이닝 정도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투구수는 꽤 많은 편이며, 볼넷이 적은 편이지만 그만큼 삼진 또한 적었다. 6이닝 이상 던진 날에는 그라운드볼 개수가 10개 안팎을 넘나들지만, 그렇지 못한 날에는 플라이볼 개수가 급증하는 모습또한 보여준다. 즉, 안 긁히는 날에는 빵빵 얻어맞는 기질이 있다. 속구의 구속은 저스틴 저마노보단 빨라도 딱히 빠른 편은 아니다. 때문에 한국프로야구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위닝샷인 싱커성 공과 체인지업, 그리고 제구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 한국프로야구에 복귀한 2015년에 보여준 제일 큰 약점은 멘탈. 긁히기만 하면 타자를 압도하는 구위와 제구력을 보여주면서도 실책이나 보크 등의 돌발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멘탈이 흔들리면서 볼질이나 연속타를 허용하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다만 갈수록 팀이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단련됐는지 후반기에는 많이 나아졌다.
2. 선수 생활
2.1. 미국 시절
2002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지명되었으나 계약을 늦게 해 2003년부터 휴스턴 마이너리그 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6년 7월 12일, 오브리 허프의 트레이드 대상으로 벤 조브리스트와 함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로 이적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조릴라가 된 벤 조브리스트와 달리 정착하지 못했고 2008년 9월 15일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는데 그쳤다.
2009년 12월 켈리 쇼팩을 상대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트레이드되었다. 2010년에는 10승을 올리기도 했지만 결국 클리블랜드에서도 선발 로테이션에 살아남는데 실패하여 레이스-인디언스 트레이드는 루즈-루즈 딜이 되고 말았다. 2011년 7월 31일 우발도 히메네즈가 이적해오며 히메네즈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로스터에서 지명할당된 뒤 데려가는 팀도 나타나지 않아 마이너로 내려갔고 시즌 막판 다시 올라오긴 했지만 10월 20일자로 방출되었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image]
2.2.1. 2012년
2.3. 이후
탈보트는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마이애미 말린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팔꿈치 부상 때문에 마이애미에서 재활하다가 도중에 방출됐고 이후 뉴욕 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으나 1경기만 등판하고 다시 방출됐다. 2014년에는 독립리그팀인 롱아일랜드 덕스에서 활동하다가 대만 라미고 몽키스에 입단했다. 그동안 팔꿈치가 많이 나아졌는지 라미고에서는 에이스로 활동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4. 한화 이글스 시절
2014년 12월 5일 오후 한화 이글스와 계약금 21만 달러, 연봉 39만 달러, 총액 60만 달러의 조건으로 정식 계약에 합의하면서 3년 만에 크보로 복귀했으며 파란 유니폼이 아닌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탈보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임의탈퇴를 해제해 주었다고 한다.
계약 당시 탈보트가 한화 관계자에게 '''"한화의 수비는 좋아졌냐"'''며 정면으로 돌직구를 날려버렸다. 그라운드볼 유형 투수고 한국프로야구 무대를 경험해 봤기 때문에 당연한 질문이라 하겠으나, 문제는 기사 중간 '''한화의 호수비 장면만을 미리 편집해 동영상으로 보여 줬다'''는 대목에서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를 익히 알고 있던 네티즌들이 빵 터진 것. '외노자에게 사기치지 마ㅋㅋㅋㅋ'하는 분위기다.
허나 정작 시즌 들어와서는 탈보트가 사기치고 한화에 입단한 형세가 되었다. 등판하는 경기마다 실점을 이어가며 한화의 불펜진에 부담을 주는 먹튀가 되어가는 중으로, 나머지 두 명의 외국인 선수인 유먼, 모건과 함께 방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대다수다. 외국인 선수 세 명이 전부 먹튀인데도 한화가 중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는게 되려 신기할 정도.
그러나 시즌 극초반에 좋은 모습을 보이다 4일 휴식 후 등판을 연속으로 하고 난 뒤 성적이 내리막을 찍은 것을 보면 무리한 선발 등판이 문제가 있는것으로 보이는 바, 감독-코치진의 실책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부상이나 개인사정이 아닌 순전히 실력이 후달리는 외국인 선수가 2군으로 내려가는 건 방출행으로 이어지는 일이 꽤 되기에 탈보트도 방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졌다. 허나 감독이 방출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고, 서산에 잠시 있다가 1군으로 다시 콜업됐다. 헌데 서산에 다녀오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예전 실력이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그동안은 탈보트의 쌍둥이가 던진 것" 이라는 주장도 나올 지경. 기사를 보면 2군 가기 전과 후가 완전 딴 사람이다.
2.4.1. 2015년
'''한화 이글스에서 4년만에 나온 10승 투수'''[2]
2.5. 이후
[image]
2016년 6월에 라미고 몽키스로 재입단하게 된다.
16년 성적은 2승 5패, 자책 5.07. 대만 리그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 하는 것은 아직 부상의 여파가 남아있는 듯 하다.
2017년 미국의 독립 리그인 애틀랜틱 리그에 있는 팀인 Sugar Land Skeeters[3] 에 입단했다. 21경기 110이닝 동안 던지면서 9승 3패 자책 3.03 을 기록했다. 리그 수준은 A 에서 AA 수준이다.[4] 이제 부상의 여파는 극복한 듯 하다.
이젠 나이 때문에 메이저는 못 갈 테지만 마이너 계약은 다시 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아시아로 다시 진출할 수 있을 것인가.[5] 2018년 5월 24일 2010~2011년에 뛰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이후 2019년도엔 다시 슈가랜드로 갔다. 18년도의 독립리그 및 마이너 성적은 괜찮았으나 나이 어린 선수들을 제칠 정도는 아니라서 퇴출된 것으로 보인다. 19년도 독립리그 성적은 여러 모로 스탯이 안 좋아졌고 4점대로 급락했다. 그러나 19년 6월 5일 다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AAA 계약을 했다.
이쯤 되면 그냥 투잡을 전문으로 뛴다고 봐야겠다.[6]
2.6. 연도별 성적
3. 여담
흔히 "몰몬교"로 알려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자라고 한다.[8]
2012년 7월, 딸 케이시가 태어났다.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 먼저 지었는데, 2011년 초 스프링캠프 도중 꿈에서 아내가 케이시란 이름의 딸을 낳아 그대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딸이 태어난 후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딸을 언급하면서 딸바보임을 인증했다. 2015년 5월 28일과 6월 3일에 탈보트가 호투로 선발 투수가 됐을 때도 엄마와 함께 응원하러 찾아와 직관하였고, 5월 28일에는 아빠의 승리투수 인터뷰 후 달려가 안기는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귀엽다는 반응을 받았다.
탈보트의 부인은 저스틴 저마노의 부인과 친한 사이라고 한다.
정대훈의 엄마라 카더라...
지금은 탈보트 하면 보통 야구선수 미치 탈보트를 말하지만 미치 탈보트가 한국에 오기 전에는 탈보트 하면 영국의 사진학자인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가 유명했다.[9] 칼로우 타입의 개발자로 그쪽 업계에선 꽤 유명한 사람이지만 한 세기 전의 사람이라 그런지(생몰년도 1801 ~ 1877) 국내에서는 사진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미치 탈보트와는 별 관련없다.
KBO에서 뛴 기간이 2시즌 밖에 되지 않는데도 '''통산 보크가 무려 8개나 된다.''' 이 숫자는 KBO 전체를 통틀어봐도 4위에 해당되는 숫자이며 시즌당 평균 보크로는 독보적인 1위이다.
[1] 후술하겠지만 이 발언은 왜곡된 측면이 없지 않다.[2] 용병으로 한정한다면 2007년 11승을 거둔 세드릭 바워스 이후로 8년만이며 4년 전에는 류현진이었다.[3] 해당 팀은 원래 독립리그 팀이었으너 2021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산하 트리플 A 팀으로 배치되었다. 마이너리그는 이런 식으로 독립리그 팀과 계약을 맺어서 새로 마이너리그 팀으로 편성하거나, 마이너리그 팀이 계약을 해지당해서 독립리그에 가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4] 독립 리그는 조건이 상당히 열악하기에 마이너 수준은커녕 생활비도 못 받을 정도라서, 보통 상위 리그 진출을 희망하는 선수들이 희망 고문을 당하는 곳이다.[5] 사실 탈보트가 한화 시절 전후인 14년과 16년엔 독립 리그에서 뛰다가 라미고와 계약하고 대만에 갔었다. 16년도에 라미고에서 워낙 죽을 쒀서 그런지 17년엔 꽤 좋은 성적인데도 부르는 곳이 없어서 계속 독립 리그에서만 뛰었다.[6] 이런 걸 보면 퇴출이 아니라 타 리그 진출 모색하느라 일부러 프리 신분으로 남아 있었던 걸 수도 있고 계약 조건 문제일 수도 있는데, 슈가랜드에서 못해 버려서 없었던 일로... 19년 슈가랜드 최종 era 3.93. 인디언스에선 다시 잘 던지고 있다.[7] 볼넷은 85개로 리그 전체 2위[8] 유타 주는 주민 대부분이 몰몬교신자들이다.[9] 탈보트가 처음 삼성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포털사이트에 탈보트를 치면 윌리엄 탈보트가 먼저 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