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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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英淑
1932년 5월 28일 ~ 2013년 5월 17일
대한민국의 전 사회운동가, 정치인이다.
1932년 평양부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월남한 뒤 광주시에 정착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YWCA에서 여성운동, 시민운동,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1967년 진보적인 신학자였던 안병무와 결혼하였다.
안병무가 한신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구속되자 거리에서 구속자 가족 시위를 시작하였다. 1986년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였다.
1988년 2월 문동환, 임채정, 이해찬, 김학민[1] 등 재야민주화운동가 98명이 결성한 평화민주통일연구회(약칭 평민연)에 참여하였다. 평민연은 지분 50%를 보장받고 평화민주당에 집단입당하였으며, 박영숙은 평민연의 대표로 부총재가 되었다.[2] 김대중이 제13대 대통령 선거 패배로 총재직을 사퇴한 상태였기 때문에 평화민주당 총재권한대행으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고 본인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1년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국회의원으로서 가족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등에 노력하였다.
2002년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2년 2월, 안철수재단 이사장에 선임되었다.
2013년 5월 17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1] 제5대 국회의원 김윤식의 아들. 한길사에서 근무하다가 1983년 학민사를 창립하였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정의당 강성모 후보에 밀려 낙선한 뒤 출판사 대표로 돌아갔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2] 공천과 당직의 절반을 보장한다는 조건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13대 총선에서 평민연 출신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20여명이 공천을 받는데 그쳤다. 이후 평민연은 독자적인 실천을 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사라졌으며, 참여인사들은 김대중 총재의 1인 지도체제에 개별적으로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