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량
1. 개요
고려의 문신. 자는 대천(代天).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해 당대에 북송이나 요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는 반드시 박인량을 거쳐서 나올 정도였다.
2. 생애
죽주 또는 평주 출신으로, 오늘날의 죽산 박씨 또는 평산 박씨가 된다. 이자연의 문생으로 문종 5년(1051) 과거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역임한다.
문종 30년(1076) 우부승선에 임명되는데 곧 예부시랑으로 관직을 옮긴다. 문종 33년(1079) 송나라에서 의원을 보내 문종을 치료한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이듬해 1080년 호부상서 유홍과 함께 송나라에 간다. 그런데 잘 가다가 절강에서 폭풍을 만나 배가 전복되고, 배에 싣고 가던 조공품은 대부분이 바다에 가라앉는다. 결국 빈손으로 도착한 꼴이 된 박인량 일행은 유홍이 신종 앞에서 스스로를 탄핵한 끝에 책임을 불문에 붙이겠다는 칙서를 받음으로 없던 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한편 이 때 박인량과 일행 김근(金覲)이 지은 편지, 문서, 시 등이 송나라에 전해져 찬사를 들었으며, 이는 『소화집(小華集)』이라는 책으로 간행된다.
문종 37년(1083) 시강학사로 있으면서 동지공거로 중서시랑 최석과 과거를 주관했다. 선종 4년(1087) 한림학사승지, 선종 6년(1089)에는 동지추밀원사에 임명된다. 상서우복야 참지정사로 있다가 숙종 원년(1096)[1] 에 죽었으며, 문열(文烈)의 시호를 받는다.
3. 문장
- 진정표(陳情表)
>普天之下, 旣莫非王土王臣, 尺地之餘, 何必曰我疆我理?
>넓은 천하에 이미 왕의 땅, 왕의 신하 아닌 것 없는데, 남은 땅 수 척을 어찌 자기 영토요 자기가 다스리겠다고 하십니까?
>
>歸汶陽之舊田, 撫綏弊邑, 回長沙之拙袖, 抃舞昌辰.
> 문양[2] 의 옛 땅을 돌려줬듯 우리나라를 어루만지고 편안케 하면, 땅이 작은 우리나라에서도[3] 태평성대에 손뼉을 치며 춤출 것입니다.
문종 29년(1075) 요나라에 보낸 외교 문서로 고려사 박인량 열전에 실려있다. 당시 거란은 압록강 남쪽에 성을 쌓으며 고려와 국경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이를 비판하는 글이다.
>넓은 천하에 이미 왕의 땅, 왕의 신하 아닌 것 없는데, 남은 땅 수 척을 어찌 자기 영토요 자기가 다스리겠다고 하십니까?
>
>歸汶陽之舊田, 撫綏弊邑, 回長沙之拙袖, 抃舞昌辰.
> 문양[2] 의 옛 땅을 돌려줬듯 우리나라를 어루만지고 편안케 하면, 땅이 작은 우리나라에서도[3] 태평성대에 손뼉을 치며 춤출 것입니다.
문종 29년(1075) 요나라에 보낸 외교 문서로 고려사 박인량 열전에 실려있다. 당시 거란은 압록강 남쪽에 성을 쌓으며 고려와 국경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이를 비판하는 글이다.
요나라에 들어가 압록강 유역의 시장인 각장(榷場)을 폐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문서.
문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 금산사에서 지은 시
>巉巖怪石疊成山, 上有蓮房水四環. 깎아지른 바위와 괴이한 돌들이 포개어 산을 이루고, 산 위에는 사찰 물이 사방을 두르네
>塔影倒江蟠浪底, 磬聲搖月落雲間. 탑 그림자 강에 거꾸로 비쳐 물결 속에 일렁이고, 경쇠 치는 소리에 달 흔들려 구름 사이로 떨어지네
>門前客棹洪波急, 竹下僧棊白日閑. 문 앞 손님의 노에는 큰 파도가 급한데, 대나무 아래 바둑 두는 스님들 대낮에도 한가하구나
>一奉皇華堪惜別, 更留詩句約重還. 한 번 중국 사신을 받드니 헤어짐을 감당하기 난감해, 다시 시구를 남겨 돌아올 것을 맹세하노라
>塔影倒江蟠浪底, 磬聲搖月落雲間. 탑 그림자 강에 거꾸로 비쳐 물결 속에 일렁이고, 경쇠 치는 소리에 달 흔들려 구름 사이로 떨어지네
>門前客棹洪波急, 竹下僧棊白日閑. 문 앞 손님의 노에는 큰 파도가 급한데, 대나무 아래 바둑 두는 스님들 대낮에도 한가하구나
>一奉皇華堪惜別, 更留詩句約重還. 한 번 중국 사신을 받드니 헤어짐을 감당하기 난감해, 다시 시구를 남겨 돌아올 것을 맹세하노라
- 절강의 오자서 사당에서 지은 시
>掛眼東門憤未消, 碧江千古起波濤. 동문에 눈을 빼 걸어둔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푸른 강은 오랜 세월 파도를 일으키네
>今人不識前賢志, 但問潮頭幾尺高. 요즘 사람들은 앞 현인의 뜻을 알지 못한 채, 다만 파도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나 묻는구나
정황상 북송에 다녀온 1079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보한집에 따르면 박인량이 강가의 오자서 사당에서 이 시를 지어 조문하자 이승뿐 아니라 저승까지도 감동해 풍랑이 잠잠해졌다고 한다.
>今人不識前賢志, 但問潮頭幾尺高. 요즘 사람들은 앞 현인의 뜻을 알지 못한 채, 다만 파도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나 묻는구나
정황상 북송에 다녀온 1079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보한집에 따르면 박인량이 강가의 오자서 사당에서 이 시를 지어 조문하자 이승뿐 아니라 저승까지도 감동해 풍랑이 잠잠해졌다고 한다.
4. 가족관계
- 6대조: 박직윤
- 5대조: 박지윤
- 4대조: 박수경
- 증조부: 박승위
- 조부: 박복종 또는 박종
- 부: 박충후
- 본인: 박인량
- 부: 박충후
- 조부: 박복종 또는 박종
- 증조부: 박승위
- 4대조: 박수경
- 5대조: 박지윤
- 본인: 박인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