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고려)
1. 개요
신라 말기의 호족이자 고려 초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성을 생략해 지윤(智胤)이라고도 한다.
2. 가족
평주의 지배자였던 찰산후(察山侯)[1] 박적오(朴赤烏, 朴積古)의 손자이며 대모달읍장(大毛達邑長)[2] 박직윤(朴直胤)의 아들이다.
자식으로는 박수문, 박수경 형제와 태조 신성왕의 후비인 성무부인(聖茂夫人)을 두었다.
3. 생애
아버지 박직윤이 평산에 13개 성을 설치하고 궁예에게 귀부(歸附)한 뒤로 패서 지역(浿西地域)의 유력 호족으로 성장했다. 평산은 장보고의 청해진을 제외하면 통일신라 최대의 군진이었던 패강진의 치소가 위치했던 곳으로 박직윤 가문이 평산의 호족이라는 것은 패강진의 군사력과 행정 인프라를 흡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 때부터 왕건의 가문과 연결을 가진 사람이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협력하여 삼중대광에 오르고 자신은 물론 두 아들까지 모두 딸을 왕건에게 출가시켜 고려 왕실과의 유대를 굳혔다.
4. 성씨
사서 및 묘지명에 따르면 박지윤은 할아버지 찰산후 때부터 이미 박(朴)씨 성을 사용했고 성씨가 내려와 현재의 평산 박씨와 평주 박씨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박지윤의 거점지인 평주가 고구려의 옛 땅이었고 자기 아버지가 대놓고 대모달을 자칭한 것을 보면 박지윤은 고구려계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구려 관직을 자칭한 것치고는 성씨가 전형적인 신라계 성씨인 박씨인 점이 모순인데 박씨는 예나 지금이나 본래 중국에도 없는 성씨로[3] 모든 본관이 박혁거세의 후손인 순수한 신라계 성씨이기 때문. 옛 고구려에도 박씨 인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몇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는데 신라계 가문이지만 옛 고구려 지역의 세력가로서 현지인의 신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구려 관직을 자칭했다는 것이다. 당장 궁예나 견훤이 원신라(지금의 경상도 지역) 출신임에도 현지에서 왕을 칭하기 위해 옛 고구려나 백제의 이름을 빌린 이유와 같다. 혹은 옛 고구려 땅이라고 모두가 고구려계 주민인건 아니고 782년 신라가 남쪽 주민들을 패서로 이주시킨 사민 정책이 보이기 때문에 패서로 이주시킨 신라계 주민이 옛 고구려 지역에 연고를 두면서 문화적, 혈통적으로 고구려에 동화된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계가 맞는데 박씨는 단지 명문가의 성씨를 사칭한 것이라는 설이다. 이 시기는 호족들이 성씨를 칭하기 시작하는 시기였고 성씨가 없던 고구려계가 박씨를 자칭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 다만 실제 고구려계 가문이라면 다른 성도 많은데 굳이 박씨를 왜 자칭했는지가 의문이다. 고구려 멸망 후 수백 년이 지나며 원래 고구려에는 박씨가 없었다는 사실이 잊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 대한민국에는 평산 박씨와 평주 박씨가 같이 존재하는데 평산과 평주는 같은 곳인데다 한쪽은 자신의 아버지 박직윤, 한쪽은 자신의 아들 박수경을 시조로 하고 있어서 같은 집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