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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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圓哲
1920년 ~ 1999년
1920년 만주 연길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고향은 함경북도 부령이다. 용정에서 영신소학교와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 재학시 여운형의 '백의민족의 북진과 장래'라는 강연을 들었고 학교 선배이자 만주군 장교인 정일권으로부터 군관에 지원하라는 강연을 듣게 된다. 그 영향인지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 제1기로 졸업하면서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주로 팔로군 작전에 종사하던 중, 1945년 8월초 당시 만주군 헌병대문용채로부터 일본이 곧 패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휴가를 내지만 휴가가 연기되는 바람에 실패하고 팔로군 공격 작전을 수행하고 이어 소련군 진격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결국 무장 해제를 당하고 신의주, 황해도 신막을 거쳐 서울로 들어왔다.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했으나 여운형이 이끄는 조선건국동맹의 만주군 조직책에 포섭되어 월북했다. 김일성을 만난 후 월북한 만주군 출신들과 함께 조선인민군 창설에 간여했다. 그 외 공작원 양성 기관인 진남포학원 교수, 평양사범학교 교원, 김일성대학 인민체육 교수 등을 했는데 예비검속[1]으로 1년 3개월 수감되기도 하고 전찻길을 까는 노역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결국 1948년 중앙경위대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이재기·최창륜 등과 함께 월남하였다.#
1949년 육군 소령으로 임관한 뒤 초대 전사감, 연대장, 육군본부 전투과장 등을 지내면서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적극 가담하여 치안국 정보과장으로 있으면서 주한미군쿠데타 세력 간의 불화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김종필과의 알력으로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함경도 출신 만주군 인맥이 대거 숙청당했다.
이후 중앙정보부 대남전력 교수, 6.25참전동지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1999년 사망했다.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등재되었다.
만주군관학교 신입생 통과의례로 신입생 박정희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1] 豫備檢束. 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어떤 상황에 대비해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