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령군
富寧郡 / Puryŏng County
1. 개요
함경북도의 군. 면적 790㎢.
군명의 유래는 부거(富居 : 현 부거역 인근)와 이 지역에 설치되었던 6진 중 하나인 영북진(寧北鎭)에서 하나씩 딴 것.
청진시(수성, 송평, 나남 일대는 제외)도 원래 이 부령군의 땅이었다. 1910년 부령군 전체가 청진부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당시 청진부의 영역을 개항장 일대로 축소시키고, 잔여지역을 다시 부령군으로 분리시켰다.
일제 시대에는 거의 1,900㎢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게 큰 군이었다. 현 서울특별시의 3배, 경기도 전체의 1/5 정도에 이르는 면적. 심지어 그 때는 바다에 접해 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1952년에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여기 잘리고 저기 잘리고 하면서 크기가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크게 줄어든 것. 그나마도 청진시 부령구역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가 현재로 굳어진 것이다. 거의 7년 주기로 왔다갔다했다.
바다에 접해 있던 청암면, 연천면, 부거면, 삼해면, 관해면을 '''모조리''' 청진시 청암구역에 넘겨 주면서, 크기가 매우 크게 줄어들었다.[1] 이 때문에 군 면적의 절반 이상이 결딴났으며, 그나마 남은 3개의 면 중 서상면의 절반이 또다시 무산군에 이관되는 바람에 현재의 부령군은 그다지 별볼일 없는 군으로 전락해 버렸다. 행정구역도 1읍 3구 5리로 타 군에 비해서 매우 초라한 수준. 비슷한 크기의 김책시는 22동 22리인 것을 감안해 보면... 청진시가 청진직할시로 승격될 당시 함께 편입된 적도 있다. 아래 사항에 설명되어 있지만, 군역의 상당수가 청진시에 이관된 것으로 보아 통일 이후 청진시[2] 와 엮여 광역시로 승격될 수도 있다(청진광역시 부령군).
여담으로 6.25 전쟁 당시 수도기계화보병사단과 여기까지 진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해당 사단이 진격한 곳이 부령역과 부거역을 잇는 선까지였다.[3] 여하간 그야말로 통일을 눈앞에 두었는데(실제로 중국과 직결되는 남양역까지 불과 130km) 중국군의 공세 때문에 장진호 전투 개시와 함께 후퇴해야 했던 뼈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는 곳. 그리고 제3보병사단소속 진백골연대도 이들과 같이 전투를 벌였으나 후퇴 과정에서 6중대가 연대의 후퇴를 돕기위해서 지연전을 펼치다가 끝내 전멸당하고 말았다.
2. 기후
기후대는 냉대기후에 속하고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9.1℃로 위도(북위 42도)에 비해선[4] 꽤 추운 편이지만 그래도 인접한 회령시보다는 3℃ 정도 무산군보다는 4℃ 정도 더 높다. 과거 육진 지역 중에서는 가장 따뜻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부령군이 회령시나 무산군보다 더 따뜻한 이유는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 동쪽에 있어서 두 산맥이 북서풍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다만 동해의 영향을 받는 청진시보다는 추운 편이다.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21.1℃로 주변 지역들과 비슷하다. 연교차가 30.2℃로 꽤 큰 편이지만 그래도 회령시나 온성군 등과 비교하면 작은 편이다. 연 평균기온은 6.7℃로 과거 육진 지역 중에서는 가장 높은 편이다. 강수량은 620mm로 매우 적지만 주변 지역에 비해선 약 50mm정도 많은 편이다.
3. 인근 행정구역
■ 함경북도 소속
4. 교통편
5. 북한 기준 행정구역
1읍 3구 5리로 이루어져 있다.
6.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image]
- 부령면(富寧面)
- 관해면(觀海面)
- 부거면(富巨面)
- 삼해면(三海面)
- 서상면(西上面)
- 석막면(石幕面)
- 연천면(連川面)
- 청암면(靑巖面)
6.1. 행정 구역의 변화
기록 순서는 구 시/군 - 구 읍/면 - 현재의 읍/동/리/로동자구 (구 동/리) 순서.
- 부령군에서 남은 행정구역
- 부령면
- 부령읍 (송동리 일대)
- 고무산로동자구 (유평동)
- 최현리 (백사동, 최현동)
- 형제리 (다갈동, 허통동, 형제동)
- 서상면
- 고무산로동자구 (무릉동)
- 무수로동자구 (무수동, 차령동)
- 창평리 (양현동, 창평동)
- 석막면
- 석막로동자구 (수원동, 옥련동)
- 금강리 (금강동, 장흥동)
- 사하리 (사하동, 황만동)
- 부령면
- 부령군에서 타 군으로 이관된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