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선

 

[image]
'''이름'''
백지선(白志善, Chisun Paek[1])
Jim Paek[2]
'''국적'''
대한민국[image][3], 캐나다 [image]
'''출생'''
1967년 4월 7일, 서울특별시
'''신체'''
185cm, 88kg
'''종목'''
아이스하키
'''포지션'''
수비수
'''소속'''
Oshawa Generals(1984-1987)
머스키건 럼버잭스(1987-1990)
피츠버그 펭귄스(1991-1994)
로스앤젤레스 킹스(1994)
오타와 세네터스(1994-1995)
휴스턴 애우로스(1995-1996)
미네소타 무스(1995-1996)
매니토바 무스(1996-1997)
클리블랜드 럼버잭스(1996-1998)
휴스턴 애우로스(1998-1999)
클리블랜드 럼버잭스(1999-2000)
노팅엄 팬서스(2000-2002)
Anchorage Aces(2001-2002)
노팅엄 팬서스(2002-2003)
'''지도자'''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2014~)
1. 소개
2. 선수 경력
3. 기타


1. 소개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대한민국 최초 월드 챔피언십 탑 디비전 출전권 획득을 이뤄 낸 감독이다.

2. 선수 경력


[image]
1992년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스탠리 컵을 들어올리는 모습[4]
한국계 캐나다인이며,[5]NHL 선수이자 現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1990-1991, 1991-1992년 피츠버그 펭귄스스탠리 컵 파이널에 우승했을 당시의 멤버다. 함께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는 박용수(리차드 박)와 함께 NHL의 몇 안 되는 아시아계 선수다.
2014년부터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2승 1패로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사상 최초로 월드 챔피언십 탑 디비전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뤄 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세계 상위권 국가들과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4전 전패로 끝났지만, 그 중 체코전과 핀란드전은 승리를 노려볼 수도 있었던 아쉬운 경기들이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남북 여자단일 팀 경기는 앞다투어 중계하면서도 남자팀은 차갑게 외면한 방송 3사에게 정중하게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3. 기타


  • 아이스하키 드라마 아이싱에 특별출연해서 장동건과 함께 연기한 적이 있다.
  •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국내 인라인 스케이트 붐 시절에 인라인 하키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국내에 와서 인라인 하키 기술 시연 및 동호인/선수들에게 지도한 적이 있다. 아이스+인라인 하키 용품점에 "짐 백 하키"라고 이름을 내걸고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와 손을 잡기도 하였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인라인 붐이 급속도로 꺼지며 그의 이름이 붙은 제품을 취급하던 스케이트 전문점들도 문을 닫게 되고, 결국 대한민국 내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 뉴스 기사 등을 보면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의 기본적인 한국어는 스스로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언론사와의 인터뷰 등 공적인 자리에서는 전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본인도 평소 선수들을 지도할 때에도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한다고 언급했는데, 한국어를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음에도 늦은 나이에 한국어를 배우다 보니 한국어를 많이 어려워한다고 한다.[6]
  • 큰 신뢰를 받고 있어서 정몽원 협회장과 2020년까지 같이하자는 구두 약속이 있으며, 협회에서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같이하자는 초장기 계약 연장 제의를 한 상태다.
  • 세라 머리를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추천한 장본인이다.
[1] 감독등록 한국식 이름[2] 현역시절 캐나다식 이름[3] 한국에서 출생했지만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자랐기 때문에 캐나다 국적만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 특별귀화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복수국적을 허용받았다. 자세한건 기타 항목 참조.[4] 당시 등번호는 2번이었다.[5]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6] 단, 이는 여느 한국계 외국인들도 비슷하게 겪는 고충인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지독하게 한국어를 공부하여 현지인 수준으로 따라잡는 데에 성공한 이승준 & 이동준 형제나 전태풍 등의 사례가 정말 특이한 케이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