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방류
1. 개요
보수방류(保守傍流)는 일본 자민당의 파벌 중 하나이며, 상반되는 계파로 보수본류가 있다. 2000년대 모리 요시로 이후 자민당 출신 총리는 대부분 보수방류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아베 신조도 보수방류 출신 총리였다.
2. 성향
내셔널리즘, 역사수정주의, 자주외교, 사회보수주의, 주변국 경시 외교가 특징이다. 정치성향은 강경 우파이며, 일부는 극우로 분류된다.[1] 이들의 이론상 목표는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시키고 전쟁이 가능한[2] 일본을 만드는 방향의 평화헌법 개헌이다.[3]
3. 역사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부터 이어진 군사 포기와 경제중시 정책, 그리고 미군정이 만든 평화헌법은 기시 노부스케를 중심으로 하는 구 일본 제국의 수뇌부 출신들에게는 엄청난 치욕이었다.
그래서 때마침 한국전쟁이 터지자 요시다와 보수본류 세력은 한국전쟁에서 UN군 지원 정도의 역할만 하고 전쟁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경제 회복에 힘쓰자는 주장을 했고, 반대로 반공 타령하며 살아남은 보수방류 세력은 이 기회를 이용해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다시 재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때 기시파는 요시다파에 밀려 독립하게 되었지만, 1953년 기시가 다시 정계에 복귀하고 1957년에는 총리도 되면서 다시 요시다 수정 노선이 떠오르나 했지만,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일어난 안보투쟁 여파로 기시가 실각하면서 보수방류는 꽤 오랜 기간 비주류로 지내야 했다.
1984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집권하고 보수방류가 다시 개헌을 밀어 붙였지만 보수본류와 리버럴~진보 야당의 반발로 좌절하고 만다. 그러다 1990년대에 록히드 사건와 리쿠르트 사건으로 보수본류 정권이 몰락하고 정권까지 야당에 내주는 위기에 몰리자 보수방류에 다시 기회가 오는데, 한동안은 보수본류인 오부치 게이조가 다시 정권을 잡아 이들을 억누르나 싶었지만 오부치 총리가 뇌경색으로 급사하면서, 2000년대 모리 요시로 총리 시대부터는 지금까지 자민당 주류 계파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모시 요시로 자체는 인기가 좋았던 인물은 아니었고 2000년 총선도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지만[4]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꽤 인기를 끌면서 장기 집권하며 주류가 되었다.[5]
[1] 보수방류 파벌 중에서도 아소 다로를 중심으로 한 지공회가 있고, 호소다 히로유키를 중심으로 한 청화회가 있는데, 청화회가 지공회보다 더 강경한 우파적 입장을 띈다. 그런데 이 청화회 중에서도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한 창생일본(創生日本)이라는 사조직이 있는데, 이들이 자민당 내 극우파로 분류된다.[2] 자주권 회복이라는 교묘한 프로파간다를 쓰고 있다.[3] 호사카 유지 교수는 저서에서, 현대 보수방류파들은 우리가 망한건 세계최강국 미국과 전쟁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론 개헌해서 전쟁 가능한 국가를 만들되 미국과 같은 편에서 전쟁한다면(...) 우리가 망할 일은 없다라는 인식으로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4] 이것도 공명당과의 연합 때문이지 공명당과 연합하지 않았으면 정권 상실까지 했을 레벨이었다.[5] 사실 고이즈미도 개인적인 성향은 개혁적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소속은 보수 방류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