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요시로
[clearfix]
1. 개요
일본 제85, 86대 일본 내각총리대신를 역임한 정치인. 20세기 마지막 총리이자 21세기 첫 총리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 럭비 선수로 활동했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총리 퇴임 후 일본럭비협회, 일본체육협회 등 스포츠단체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4년부터는 2020 도쿄 올림픽 • 패럴림픽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나 후술하는 논란으로 인해 사퇴했다.
2. 생애
이시카와현 노미 시(구 노미 군 네야가리 정(마치))출신으로 1960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산케이신문에 입사하여 유력 정치인들과 교분을 쌓았다. 그러다 1962년 신문사에서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69년 고향 이시카와에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1975년 총리부 총무부장관에 취임하여 처음으로 관계에 진출하였다.
이후 1983년 제2차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에서 문부대신,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개조 내각에서 통상산업대신,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에서 건설대신을 역임한다. 자민당에서도 유력 파벌인 세이와카이(清和会)의 리더를 맡으며[1] 당 요직을 두루 거쳐 2000년 4월 총재가 됐고 그 해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급사하면서 85대 총리에 취임한다.[2]
하지만 총리에 취임한 후 이렇다 할 정책은 내지 못한 채,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총리직과 자민당 총재직을 넘겨주었다. 2004년엔 개헌 문제를 논의하는 자민당 신헌법 기초위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보수 우익 성향과는 별개로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회장을 역임했던 지한파 인사 중 한 명으로도 꼽힌다.
[clearfix]
2.1. 구설수
단 1년여에 그친 단명총리였던 모리 요시로의 최종 지지율은 5.7%로 '''일본 역사상 최저'''를 기록할 정도였는데[3] 모리의 지지율이 이토록 개판이었던 것은 그의 '''망언 남발'''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대표적인 망언으로 뽑히는 게 2000년에 남긴 "일본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라는 것을 국민 모두가 깨닫게 하겠다."[4] 라는 발언이다.#1 #2 일명 '신의 나라 사건'이라 불리는 이 발언에 대해 하토야마 유키오 당시 민주당 대표 등 일본의 4개 야당이 문제 삼았으며 한국과 중국에서도 반발하였다. 덕분에 중의원 해산 별명도 '''신의 나라 해산(神の国解散)'''이었다.(...)
이렇게 해산한 이후 치른 중의원 총선도 폭망했는데, 선거 유세 막판에 모리가 유세현장에서 "'''젊은 무당파층은 선거에 안 가고 집에서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라고 망언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을 듣고 자극받은 젊은 무당파층이 투표장으로 뛰쳐나오는 역풍이 불었고, 그래서 당초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사망버프로 자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자민당은 단독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233석/480석). 연립정당인 공명당 덕분에 간신히 구사일생했을 정도. 자민당이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공명당까지 합쳐야 겨우 과반수를 확보하는 일은 이 사람 내각이 아니었을 때도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이 선거를 자민당의 실질적인 패배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 이유는 '''도쿄에 선거구를 둔 장관들이 전원 낙선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0년 9월 19일엔 한국 KBS와의 단독회견에서 "독도는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땅"이라는 드립[5] 으로 한국에서도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당시 세계적으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이 사람을 갖고 다수의 병맛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기도 했다.
또 영어를 정말 못했다. 발음이 이상한 거야 폐음절이 부족한 일본어의 특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모리는 발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IT혁명을 아이티-카쿠메이가 아닌 잇카쿠메이로 발음하거나[6]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Who are you?"[7] 라고 묻자 이를 조크라 여긴 클린턴이 "I'm Man of Hillary(난 힐러리의 남편이다)."라고 대답했는데 이에 "Me, too."(...)라고 말해 클린턴을 놀라게 만들었다라는 소문도 있다. 다만 위키피디아 일본판에 의하면 당시 다카하타 아키오 마이니치 신문 논설위원이 농담조로 퍼트린 걸 유저들이 '모리 요시로라면 진짜로 그랬을 거야'(...)라고 진지하게 믿어서 퍼진 웃픈 소문이라는 설도 있다. 심지어 정치가 실언 모음집 타이틀이 되었을 정도.[8]
축구를 좋아해서 이런 일화도 있다.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AS 로마에서 뛰고 있던 나카타 히데토시를 만나 '''"왜 일본 대표팀은 방문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한테 한 번도 이기지 못하나?"'''[9] 라고 물었다. 그러자 나카타는 얼굴을 붉히며 '''"네? 있는데요(え? ありますよ)!?"'''라고 대답했다. 실제로는 한국 홈경기에서 일본이 이긴 적도 당연히 몇 번 있었다. 한일전/축구 문서 참조. 아무튼 이후 일본 축구선수들은 공식석상에서 총리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참고로 럭비도 좋아한다고.
거기다, 선거운동에 나섰다가 사람들이 적게 모이자 한다는 소리가 "모처럼 유세하러 왔더니 마을 사람들이 죄다 집에 틀어박혀 계시네요... 마치 에이즈균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생각하시는데... (섭섭합니다.)"[10] 라며 은근 서운함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 에이즈 발언으로 모리는 UN의 에이즈 총회에서 비난받았다.
비단 망언 뿐만이 아니다. 모리는 대학생 시절 성매매로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의혹도 있다. 물론 본인은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부인하였다. 산케이신문에서 일할때 시험을 보지 않고 특채로 뽑혔는데 이 때문에 취업 전에 정치 끄나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산케이 신문에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특채로 뽑아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하였다.
2001년 2월 10일, 미국 하와이의 오하프섬 앞바다에서 일본 에히메 수산고등학교의 연습용 배(에히메마루 호)가 미국 해군의 원자력 잠수함과 충돌하여 침몰, 당시 배에 탔던 학생과 교사 등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총리였던 모리는 휴가 중에 이 사건에 관한 소식을 듣고도 골프장에서 골프를 계속 친 사실이 알려져 큰 비난을 받았다.모리내각 위기관리 구설수…사고소식 듣고도 골프쳐
퇴임 직전에 총리 관저에서 자다가 누군가가 복도에서 와서 자신의 방문을 잡아당기는 소리에 깨서 "누구냐!"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소리가 사라졌다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장난을 친줄 알았으나 총리 경호원들은 누구도 총리의 방 근처에 없었다고 말해 귀신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퍼졌다고. 이 일은 아베 신조 총리가 총리 관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모리에게 들었다면서 이 일을 이야기해 세상에 알려졌다. 다른 기사에 의하면 모리가 귀신의 다리를 봤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2.2. 퇴임 후
퇴임 후에도 유력 파벌의 회장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져갔다. 무엇보다 바로 후임인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베 신조,[11] 후쿠다 야스오가 모두 모리파 멤버였다.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다나카 미에코에게 밀려서 지역구인 이시카와현 제2구를 뺏길 위기를 맞았다가 간신히 지역구 수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결국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불출마한다.
2014년 1월에 2020 도쿄 올림픽 초대 조직위원장에 취임했다. 그런데 망언 기질은 어디 가질 않는지 조직위 위원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 '''"영어는 적국의 언어였다"'''라고 발언해 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외에도 2014년 2월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 선수의 쇼트 경기를 보고 “보기 좋게 뒤집혔다. 그 애는 꼭 중요한 순간에 넘어진다” 라고 디스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프리에서 아사마 마오 선수가 트리플 악셀까지 성공시켜가며 클린으로 경기를 끝내자 모리가 먼지나게 까인건 덤.(...) 이후 2월 23일 도쿄 마라톤 행사에 무대인사를 위해 올라서자 참가한 시민들이 야유를 퍼부었다고 한다. 아사다 비난한 모리 전 총리, 일본 팬들에게 야유받아.
그러다 이런저런 사태가 겹쳐 결국 도쿄 올림픽 관련한 일련의 사태들에 책임을 진다며 2015년 10월 26일 '''삭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산케이 신문 기사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전파 상황이 심각해지자 방사능이나 정치 이슈까지도 눈감아주던 IOC마저도 개최에 대한 우려를 밝힌 상황이다. 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인 그는 '무책임한 루머가 돌고 있지만 올림픽 취소나 연기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일축한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정부에선 2010년 MB정부 당시 이 사람에게 정부훈장을 줬다.(...) 그것도 수교훈장 중 최고등급인 광화대장을 수여했다.# 당연히 과거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했었던 적이 있어서 논란이 되었다. 다만 2015년엔 '아베 담화'가 막나갈 것을 경계하면서 온건한 담화를 주문하며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빼앗았다"라는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거 보면 후임 총리들보다는 그나마 개념이 있어보이긴 하다만, 2000년대 이후 자민당 우경화 노선의 스타트를 끊은 사람이라 이런 평도 사실 묘하긴 하다.
사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일차적인 원인은 한국에서와 달리 일본 국내의 경우, 좌우를 막론하고 한일합병과 태평양 전쟁은 완전히 독립적인 사건들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태평양 전쟁과 이 시기에 벌어진 전쟁범죄들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하며 반성적인 시각을 보이던 사람이 뜬금없이 "한일합병은 법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건이었다"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을 벙찌게 하거나,[12] 혹은 그와 반대로 모리 요시로처럼 전형적인 우익사관을 보여주던 사람이 한일합병은 범죄였다고 인정하는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대만 리덩후이 전 총통 조문단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3. 선거 이력
4. 논란
4.1. 올림픽위원회 회의 중 여성 비하 발언 논란
2021년 2월 3일, 온라인으로 열린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임시평의원회에서 여성 이사 증원 문제를 언급하면서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 "여성은 경쟁의식이 강하다" "누군가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하면 자신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논란이 커지자 일단 사과는 하면서도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거부했다.# 하지만 질문 공세가 이어지자 "없는 얘기를 한 건 아니었다" "(경기 단체들이) 여성 이사를 많이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게 기억나서 말한 겁니다. (여성 이사 늘리면) 앞으로 힘들어질 거라고 한 겁니다."라며 발끈했다.#
이 발언 이후 도쿄도에 자원봉사 사퇴와 함께 항의성 전화가 폭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자원봉사 자리에서 사퇴한 인원은 900명 넘고, 성화 봉송자들까지 사퇴한 상태이다.#
휴먼 라이프 워치에서 일본의 성차별은 금메달 급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모리 요시로 사퇴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야당 여성의원들은 모리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항의표현의 의미에서 흰색 옷[14] 을 입고 본회의에 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모리의 발언이 완전하게 부적절하다며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올림픽 후원사들도 불만을 터트리는 등 파문이 가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
결국 2월 12일, 모리 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후임자로 가와부치 사부로 전 일본축구협회 회장을 지명했으나 이사회를 통한 선정 절차 없이 퇴임하는 모리 위원장이 후임자를 사실상 지명하는 방식은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제기되어 무산됐다.#.
결국 조직위는 모리 위원장의 후임을 선정하는 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고 회장 교체를 위한 정식 절차에 들어가서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 참의원이 선출했는데, 후임 하시모토 위원장 역시 성희롱 건으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5. 기타
- 아베 신조의 정치적 은사이지만 한 때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이는 아베가 2010년 즈음에 당내 요직 선거에서 모리가 미는 인물 대신 다른 사람을 뽑은 것과 더불어, 모리의 뜻과 반대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독자적으로 나가는 등의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가 총리가 되고 나서 모리에게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장이라는 요직을 맡기기도 했고, 모리의 옛 측근을 잘 배려해주면서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다. 아베가 퇴임했을 때 모리는 극우잡지 "월간 하나다"에 아베에 비판적이었던 아사히 신문을 저격하는 글을 투고하기도 하였고. 반대로 아베는 또 다른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완전 찬밥 취급해서 사이가 험악하다.
- 아즈망가 대왕을 보면 카스가 아유무의 꿈에 치요아버지가 이 사람을 닮았다는 말을 듣고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모리가 최하위 지지율을 기록한 흑역사급 총리인 것과, 만화가 발간된 시기를 (2000년대 초반)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일지도.[15]
[1] 자민당의 파벌은 통상적으로 리더의 파벌로 불린다. 당연히 모리가 회장을 맡았을 때는 '모리파'였다.(1998~2006)[2] 모리는 상학부고 오부치 총리는 문학부 영문과라 과는 다르지만 같은 와세다대학 동기다.[3] 이때 하토야마 유키오(당시 민주당 대표)가 "지지율이 소비세율(당시 5%) 수준이다"라고 비꼬았던 적도 있다. 3% 드립도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최저치는 더 낮거나 혹은 여론조사 기관마다 차이가 좀 있는듯. 참고로 한국의 경우 한국갤럽 조사 결과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4%로 역대 최저치를 찍은 바 있다.[4] 日本の国、まさに天皇を中心としている神の国であるぞということを国民の皆さんにしっかりと承知をしていただく[5] 그러나 21일 KBS1 방영 당시 해당 망언은 편집되었다.[6] 한마디로 IT가 아니라 It(잇)으로 읽어버린 것.[7] 이것도 How are you? 를 잘못 말한 것이다. 그리고 '누구세요?'라고 '''정중하게''' 물을 때는 "Who are you?"가 아니라 "Do I know you?"라고 해야 한다. (전화에서는 "Who is this?")[8] 사실 이 유머는 한국에서도 전두환이나 김영삼 유머에 등장하며, 해당 책에서도 전두환을 언급하고 있다. 한편 김영삼은 '후아유'까지는 실화다! 일부러 클린턴에게 경상도 식으로 '이게 누꼬' 하고 인사해 본 거라고.[9] 日本代表は、アウェーで韓国に勝ったことがないんだよ?[10] 選挙運動で行くと農家の皆さんが家の中に入っちゃうんです。なんかエイズが来たように思われて…)[11] 모리는 첫 선거에서 기시 노부스케에게 지원을 받았으며, 모리파 또한 과거에 아베 신조의 부친 아베 신타로가 회장을 역임했다.[12] 2000년대 초반 북한-일본간에 이례적으로 수교협상이 진행될 떄도, 북한은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합병이 무효임을 조약에 명기할 것을 주장했으나 일본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13]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14] 흰색 정장은 원래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적인 복식이다.[15] 참고로 투니버스판에서는 그냥 '김 전 대통령'이라고 번역했다. 방영 당시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중이었기에, 여기서 말하는 김 전 대통령은 YS. 미국의 경우엔 더빙판에서 빌 클린턴으로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