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

 



[image]
'''유네스코''' '''세계유산'''
''UNESCO World Heritage''
이름
한국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봉정사
영어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Bongjeongsa
국가·
위치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시
등재
유형

문화유산
등재
연도

2018년
등재
기준

(iii)[1]
지정
번호

1562
[image]
▲ 봉정사 극락전
1. 개요
2. 가람
2.1. 안동 봉정사 극락전
2.1.1. 비판
2.1.2. 바깥고리
2.1.3. 국보 제15호
2.2. 안동 봉정사 대웅전
2.2.1. 바깥고리
2.2.2. 국보 제311호
3. 여담

한자 : 鳳停寺 / 로마자 : Bongjeongsa
홈페이지
[clearfix]

1. 개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에 있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사찰.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의성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로 작고 아담한 절이지만, 산사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특히 한국에 남아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고려시대 지어진 국보 제15호 극락전으로 유명하며, 오래된 절인 만큼 이 외에도 국보 제311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등이다.#

2. 가람


사실 극락전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결코 극락전이 중심건물은 아니다. 절의 중심은 엄연히 대웅전이며, 봉정사 대웅전도 국보 제311호로 지정될 만큼 문화재로서 가치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건축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극락전보다 못할 것이 없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 외에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했던 '영산암' 등 딸린 암자도 있다.

2.1. 안동 봉정사 극락전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15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
安東 鳳停寺 極樂殿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봉정사 (태장리)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수량/면적'''
1동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고려시대 후기
[image]
봉정사 극락전의 내부. 건물의 구조가 잘 보인다.

1980년대 대한뉴스에 방영 된 모습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이후 지금까지 서 있는 건물이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목재를 층층이 쌓아 만든 구조가 명쾌하게 보이는 한국 건축의 구조미를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는다. 국보 제15호.
오래되었으리란 추측은 있었으나 확실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건물을 해체수리하던 중 마룻바닥 부재 안을 파서 넣은 한지에 쓴 상량문(上樑文)을 발견하였다. 이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옥개(屋蓋)를 크게 수리하였으며, 조선 인조 3년(1625)에 중수(重修)하였다.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한 후 대략 100∼150년이 지나야 옥개를 크게 수리하므로 약 12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볼 근거가 생긴 것이다. 이는 13년 늦게 1376년에 중수된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봉정사 극락전이 앞서 건립되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므로, 무량수전과 엎치락 뒤치락 한다. 일반적으로는 봉정사 극락전을 가장 오래됐다고 하지만.
참고로 현재까지 창건연대가 정확히 밝혀진 것으로는 고려 충렬왕 34년(1308)인 수덕사 대웅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2.1.1. 비판


[image]
1972년과 2000년 이후에 해체수리를 했음에도, 검증도 안 된 방법을 쓰거나 부실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관련 기사
그리고 복원전 모습과 지금 모습을 보면 과연 같은 건물인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주남철(75) 고려대 명예교수는 극락전에서 잘못 복원된 부분을 5가지 요소로 집약했다. 정면의 띠살창호와 전면 툇마루, 내부 우물마루, 동서쪽 측면의 창호와 바람을 막는 풍판, 단청이 그것인데, 이런 건물의 부분 요소들이 고려시대 원형인지, 후대 변형된 것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모두 제거해버려 원형을 더욱 알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풍판이나 정면 띠살창은 함께 맞물린 여러 부재들의 흔적이나 접합된 결구 상태 등으로 미뤄 12~13세기 절의 원형을 간직했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해체 복원을 강행한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60년대 극락전의 본래 모습을 묻고 70년대 작위적으로 복원한 중국풍의 모습을 원형처럼 고착시켰다고 비판했다.출처
거기다가 진한 화학안료로 단청을 새로 입혀버려서 오래된 느낌이 전혀 안 난다.(...) 비슷한 연배라는 부석사 무량수전과 비교하면 처참할 정도이다. 빨리 이 사실이 알려져 공론화 되어 본 모습을 찾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image]
[image]
옛 모습 사진들

2.1.2. 바깥고리



2.1.3. 국보 제15호


봉정사(鳳停寺)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능인대사(能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극락전 중수상량문>등 발견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7세기 후반 능인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2.2. 안동 봉정사 대웅전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311호'''
'''안동 봉정사 대웅전'''
安東 鳳停寺 大雄殿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태장리)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수량/면적'''
1동
'''지정연도'''
2009년 6월 30일
'''제작시기'''
조선시대 초기
[image]
봉정사 대웅전은 비록 유명세로는 극락전에 다소 못 미치지만, 봉정사 대웅전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건물이다.
봉정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전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며,[2] 건물 내부에는 석가모니 본존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특히 대웅전에는 건설 당시의 단청이 아직도 남아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당시 불교 건축물 장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봉정사 대웅전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6월 30일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국보 제311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2.2.1. 바깥고리



2.2.2. 국보 제311호


봉정사(鳳停寺)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능인대사(能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극락전 중수상량문>등 발견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7세기 후반 능인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쪽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3. 여담


2018년 5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권고 목록인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7개의 사찰 중 4개의 사찰만이 '등재 권고'를 받았으나 안동 봉정사는 당시 제외되었다. 제외 사유로는 역사적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았고, 특히 다른 4개 사찰에 비해 규모가 작아 제외되었다고 문화재청이 밝혔다.(링크) 하지만 봉정사가 가지는 가치가 크고, 특히 의상의 화엄종이 제창된 영주 부석사와 함께 중요한 역사적,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수덕사 대웅전을 포함하여 다포식 건축물의 특징을 가진 봉정사 극락전이 있으므로 문화재청에서 다시 등재 신청을 할 가능성이 크다.
문화재청의 노력과 설득을 거쳐 결국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한국의 산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봉정사를 주제로 한 가곡이 탄생했다. 봉정사에 대한 감흥을 담은 시에 작곡가 성용원이 노래를 붙여 소프라노 김지현이 불렀다. 봉정사

낙동강 휘감아 도는 천등산 기슭에

살포시 내려앉은 봉황을 찾아 나선다.

강파른 솔 숲길 따라 한걸음 오르니

고색창연한 만세루

허공에 달린 목어가 눈인사를 건넨다.

대웅전 팔작지붕 용마루

청기와 한 장 햇살에 반짝이고

천년의 신비 배흘림기둥에 서서

국화차 향기에 취하니 가슴에 꽃비가 내리네.

낙동강 휘감아 도는 하회마을을 지나

천등산 기슭에 내려앉은 봉황을 찾아 나선다.

강파른 솔 숲길 따라 한걸음 한걸음 오르니

가슴에 꽃비가 가슴에 꽃비가 가슴에 꽃비가 내린다.

(서영순 작시 봉정사)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배경이 되는 절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영산암이 주 배경으로 나온다.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 대웅전을 해체 조사하면서 발견된 문서에서 1435년에 대웅전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