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한자 : 修德寺 / 로마자 : Sudeok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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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대에 말사 약 50여 개를 두었다. 수덕사는 우리나라 4대 총림(叢林) 중 덕숭총림(德崇叢林)으로 불교계에서 중요한 사찰이기도 하다.[1]
예산군에서 가장 큰 사찰이라 봐도 무방하다.
2. 역사
절에 대해 딱히 남은 기록은 없어서 수덕사를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단히 유서 깊은 곳인 듯하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6세기 백제 위덕왕 때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듯 경내에서 백제시대 와당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후기에 창건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이후 14세기 중엽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수덕사를 중수했다고도 전하는데, 이 역시도 딱히 정확한 기록은 남은 것이 없다. 다만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건립되었음이 확실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수덕사는 그럭저럭 잘 유지된 듯하다. 16세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도 수덕사 관련 기록이 나온다. 19세기 조선 말에 들어서자 사세가 약해졌지만, 고종 2년(1865)에 만공이 중창하여 사세가 크게 일어섰고 이후로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남았다.
20세기에 들어서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는 조선 총독부가 내린 사찰령으로 마곡사의 말사로 들어갔다. 광복 이후 1962년 조계종 총회는 수덕사를 마곡사의 말사에서 제7교구 본사로 승격하고, 1984년 조계종 총회는 수덕사를 총림으로 승격하여 1984년 당시 우리나라 4대 총림 중 덕숭총림(德崇叢林)이 되었다.[2]
3. 가람 및 중요 문화재
일반적인 산사의 가람배치처럼 수덕사도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고, 대웅전 양옆에는 스님들이 수도하는 승방인 백련당과 청련당이 있다. 이외에도 경내에는 명부전, 염화실 등의 건물이 있으며, 경외의 암자로는 만공이 참선도량으로 세운 정혜사(定慧寺)를 비롯해서 비구니 참선도량 견성암(見性庵), 금선대(金仙臺), 환희대(歡喜臺) 등이 있다.[3]
경내의 중요 문화재로는 저 유명한 대웅전을 비롯해서, 국가지정문화재로 보물 제1263호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보물 제1381호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이 있다.
수덕사의 시도지정문화재로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인 수덕사삼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1호 수덕사칠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2호 수덕사유물(거문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4호 수덕사소장소조불상좌상이 있다.
또한 불교문화재로는 드물게도 등록문화재 제473호로 지정된 예산 수덕사 만공탑도 있다.
3.1. 예산 수덕사 대웅전
3.1.1. 개요
수덕사 대웅전은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건축 시기가 명확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한반도 목조건축물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문화재이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은 수덕사 대웅전보다 앞선 시기에 건립됐다 보지만, 두 건물이 언제 건립되었다는 기록은 남은 것이 없고 중수 기록만 전해져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은 중수 기록과 건축양식 등을 통해 대략적으로 건립연대를 추정하여 수덕사 대웅전보다 앞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1962년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다.
3.1.2. 내용
수덕사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4칸으로 된 목조건물로 단층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4] 으로 만들어진 주심포 건물이다.[5]
수덕사 대웅전의 건립연대는 1308년으로 이는 고려 충렬왕 34년이다. 이와 같이 수덕사 대웅전의 건축 시기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일제시대인 1936-40년에 걸쳐서 대웅전을 완전 해체수리하던 중 대들보에서 건립연대를 적은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6] 물론 1308년 건립한 후 일제시대까지 한 번도 수리가 없던 것은 아니고, 조선시대에도 수차례 수리했다.
수덕사 대웅전의 외형은 아주 특별난 것은 없고 오히려 단순한 편이지만, 크게 눈에 띄는 별다른 장식 없이 단정하고 정숙하여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건물의 맞배지붕이 상당히 장중한 인상을 줘서 무게감까지도 느껴지지만, 건물의 기둥을 한반도의 특징적인 고중세 목조건축 양식인 배흘림기둥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는 무게감을 약화시키고 안정적으로 보이게끔 한다. 이에 대해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했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중에 건립 연도가 명확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절대 연도가 확실하여 한반도 건축사 연구에 중심이 되는 기준 중 하나를 제공하며, 대웅전 건물 그 자체로서도 고려 목조건축의 형태적인 아름다움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점과 같은 가치를 높이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다.수덕사 대웅전을 앞마당 아래쪽에서 정면 정관으로 올려다보면 지붕골이 아주 길고 높아서 지붕의 하중이 대단히 위압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더욱이 이 지역 백제계 건축들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은 것이 특징인바 그로 인하여 위압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저 팽팽한 팽창감의 배흘림기둥이 탄력있게, 어찌 보면 상큼하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어서 우리에게 하등의 시각적 불편이나 무리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남도답사 일번지
3.1.2.1. 수덕사 대웅전 벽화
앞서서 대웅전에 벽화가 있었다고 잠시 언급되었는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이는 현전하지 않는다.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는 발견 당시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고려시대의 불교 벽화 작품으로는 유이하게 남은 대단히 귀중한 유물이었는데,[7][8] 대웅전 해체 수리 중의 벽화 발견 당시에도 이미 작품의 여러 군데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또한 벽화 전체적으로도 그림 형상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한계로 인해 벽화는 딱히 별다른 보존 처리 없이 벽과 함께 통째로 떼어진 채로 경내에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정확한 시기도 모를 언제인가 벽화가 완전 소실되어버렸다.[9]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당시에 벽화를 촬영한 사진과 벽화를 모사해서 그린 모사도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벽화 사진은 18점이 남았는데 대웅전 해체수리의 공사감독이었던 오가와 게이기치(小川敬吉)가 찍은 것이고, 벽화 모사도는 고미술사가이자 동양화가였던 임천(林泉)이 꼼꼼하게 40개를 그린 것이다.[10] 하지만 임천이 그린 모사도 중 일부는 일본인들이 가져갔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모사도의 일부와 사진은 모두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11]
전해지는 사진과 모사도를 통해서 추측해보면,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는 벽 전면에 크게 그린 대형 벽화가 아니라 벽과 기둥, 또는 대들보 사이에 있는 여백을 채우는 소형 벽화였고, 여기에는 불상과 비천상, 공양화, 나한, 극락조 등이 묘사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공양화 그림이 특히 유명한데, 일종의 정물화로서 화려하지만 정갈한 꽃꽂이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었던 듯하다.
또한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는 고려시대의 벽화만 있던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그려진 벽화도 함께 있었다. 조선시대에 그려졌던 벽화는 다섯 부처를 그린 오불도(五佛圖)로 그림의 중앙에는 석가여래를, 석가여래의 양옆에는 보살을 그리고 양쪽 끝에는 일월광불(日月光佛)을 그렸다.[12]
비록 원본은 소실되긴 했으나 사진과 모사도와 같은 기록이 남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만약에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 원본이 현대까지 보존되었다면 부석사 조사당 벽화와 함께 현전하는 유이한 고려의 불교 벽화 작품이자 고려와 조선의 불교 벽화를 함께 볼 수 있는 대단히 드문 유물로서 당연히 국보로 지정됐을 귀중한 작품이었다.
3.1.3. 바깥고리
- 한국어 위키백과 : 예산 수덕사 대웅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예산 수덕사 대웅전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 수덕사 대웅전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예산 수덕사 대웅전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는 한국 최고의 목조 건축, 수덕사 대웅전
- 한국건축사 : 수덕사 대웅전
- 한국고중세사사전 : 수덕사 대웅전
-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사진으로보는 한국전통건축) : 대웅전
- 답사여행의 길잡이 4 - 충남 : 수덕사 대웅전
- 두산백과 : 예산 수덕사 대웅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수덕사벽화
-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회화 : 수덕사 대웅전 벽화 모사도
- 두산백과 : 수덕사 벽화
3.1.4. 국보 제49호
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3.2. 수덕사 3층석탑
수덕사 내부에 있는 화강암으로 만든 3층석탑이며, 2층 탑신이 약간 파손되어있다. 옥개와 탑신부는 각각1석으로 되어있다.
4. 여담
수덕사 불상 내에서 희귀 불경들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