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렛 앤더슨

 


'''브렛 앤더슨
Brett Ander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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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브렛 루이스 앤더슨
(Brett Lewis Anderson)
'''생년월일'''
1967년 9월 29일 (57세)
'''출생'''
영국 서섹스 린드필드
'''학력'''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가족'''
조디 앤더슨 (아내), 2남
'''신장'''
182cm
'''소속'''
스웨이드(Suede)
'''SNS'''
공식 트위터
1. 소개
2. 생애
3. 외모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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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영국의 록밴드 스웨이드(Suede)의 프론트맨이자 작곡가.
특유의 비음 섞인 목소리와 중성적이고 화려한 외모로 90년대 초 스웨이드와 브릿팝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스웨이드가 해체한 2003년, 전 스웨이드 멤버였던 버나드 버틀러와 The Tears를 결성하였으며 이후 네 개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였다. 2010년, 스웨이드를 재결성한 브렛은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재개하였다. 여전히 스웨이드의 프론트맨으로서 왕성히 활동 중.

2. 생애


브렛 앤더슨은 1967년 웨스트 서섹스 주의 헤이워즈 히스의 노동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예술가였으며 택시 운전사인 그의 아버지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헤이워즈 히스와 인접한 린드필드의 공영 주택 단지에서 자랐으며 린드필드 초등학교와 오스올 종합 중등 학교를 졸업했다. 청소년기에 그는 후에 스웨이드의 베이시스트가 된 맷 오스먼과 함께 더 피그스(The Pigs), 조프(Geoff)같은 개러지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브렛과 저스틴 프리쉬먼은 1989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처음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관계였다. 그 후 둘은 브렛의 친구인 맷 오스먼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로 결정하고, 비틀즈, 더 스미스 그리고 데이빗 보위의 곡들을 연주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브렛도 저스틴도 기타리스트가 될 만한 재목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들은 NME지에 구인 광고를 냈다.

'''"런던에서 결성된 밴드에서 젊은 기타리스트 구함. 스미스, 로이드 콜 앤 커머션 [1]

, 데이빗 보위, 펫 샵 보이즈 관련. 고지식한 음악 마니아는 사절. 실력보다 더 중요하게 따지는 것도 있음. 브렛에게 연락해 주세요."'''

이 광고는 19살의 버나드 버틀러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결국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게 된다. 이후 그들은 밴드명을 스웨이드라 정했고 초기에는 드러머가 없었기에, 드럼 머신을 사용했다. 실질적인 매니저였던 저스틴의 노력[2]에도 불구하고, 스웨이드는 런던의 캠던 타운의 소규모 공연에서만 활동하게 된다.
1991년 무렵에는 저스틴이 블러의 프론트맨인 데이먼 알반과 교제를 시작하는데, 이는 1990년대 초 브릿팝 씬의 균열의 시초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저스틴은 수많은 리허설에 불참하고, 브렛 앤더슨과 동거 중임에도 데이먼과의 관계를 공공연히 밝힘으로써[3] 스웨이드에서 해고되었으며 후에 엘라스티카를 결성한다. 저스틴과의 결별 이후 브렛은 코카인과 헤로인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스웨이드는 데뷔 싱글과 앨범을 각각 발표하게 된다. 1994년 2집을 끝으로 브렛은 기타리스트였던 버나드 버틀러와의 불화로 인해 결별하게 되고, 이어 새로 영입한 리차드 오크스와 함께 활동하기 시작한다. 1996년 1월 키보디스트 닐 코들링까지 영입하며 스웨이드는 현재와 같은 포맷을 형성한다. 1996년 9월 2일 발표한 3집 Coming Up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만, 브렛의 헤로인 및 코카인 등 약물 중독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브렛의 약물 중독은 1999년 4집을 발매했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브렛은 4집 활동 중 같이 헤로인을 하는 친구가 자신과 같이 약을 하다가 정신을 잃어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에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약을 끊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Coming Up 투어를 하면서 아시아를 여행하던 중 배운 명상이 약을 끊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4집 활동이 모두 끝나고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재활치료원에 입원했다. 이상 스웨이드로서의 더 자세한 행보는 Suede 문서 참조.
스웨이드 해체 후 브렛은 버나드와 화해한 뒤 The Tears를 결성하였다. 현재로선 The Tears도 해체된 상태이나, 버나드와는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4]
2010년에 스웨이드 깜짝 재결성을 한 후 2013년에 새 앨범을 냈다. 인터뷰를 보면, 전 연인 저스틴과는 화해해서 부부 동반으로 식사도 하는 사이라고 한다.[5] 하지만 당시 저스틴의 남자친구였던 데이먼 알반과는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다고.

3.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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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후반 스웨이드 시절 모습.
밴드의 초기 컨셉부터가 글램 록의 영향 아래 있었던지라 패션에 대해서도 상당히 퇴폐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중성적이고 샤프한 브렛의 외모와 적나라하게 맞아떨어진 것은 덤. 게다가 큰 키와 늘씬한 팔다리 덕분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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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 넘은 현재는 미청년에서 미중년의 모습이 되었다. 순식간에 망가지는 뭇 락스타들과 다르게 비교적 외모 관리를 잘 한 편. 브렛을 비롯하여 스웨이드 멤버들이 전반적으로 채식주의의 영향인지, 모두 젊은 시절과 비슷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배우 정우성과 매우 닮았다는 의견이 있다. 더불어 최근 모습 한정 톰 크루즈, 매튜 벨라미 와 닮았다는 의견도 종종 보인다.

4. 여담


  • 과거 마이크를 빙빙 돌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가끔은 그냥 돌리는 것으로도 모라자서, 스스로의 허벅지나 엉덩이를 (!) 빙빙 돌아가는 마이크로 세게 때리기도 했다. 직접 보시라. 덕분에 허벅지에 멍이 상당하게 들기도 했다. 요즘도 종종 공연에서 마이크를 돌리는 듯하다.
  • 무대에서 옷을 자주 찢어먹기로 유명하다. (...)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땀에 젖은 셔츠가 자주 찢어진다. 2016년 인천 펜타포트 내한 당시에도 셔츠가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그날 브렛과 스웨이드에 입덕한 여성 팬들이 그렇게 많다카더라.
  • SNS를 하지 않는다. 트위터 공식 계정이 있으나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사에서 공지사항 업로드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듯 하다. 참고로 @reallybanderson 라는 트위터 계정은 브렛 앤더슨의 계정이 아닌 사칭 패러디 계정이다. 관련 기사
  • 한때 티격태격했던 리암 갤러거와는 런던 서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트고 친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노엘 갤러거와는 여전히 서먹서먹한 상태라고.

[1] 1980년대 초반 데뷔한 소피스틱 팝 밴드. 스미스랑 성향이 유사하며 브릿팝과 챔버팝에 큰 영향을 미쳤다.[2] Suede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저스틴 부모님의 인맥을 대동하여 공연 관중을 채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3] 그녀는 스웨이드가 이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밴드 내에서는 점점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버나드는 "저스틴은 리허설에 늦게 나타나서는 할 수 있는 최악의 말을 내뱉었지 ― '''지금까지 블러가 비디오 찍는 곳에 가 있었어''' ― 라니 . 그 때가 정말 끝났을 때라고 할 수 있을거야. 아마도 저스틴이 그렇게 말한 바로 그 날 브렛이 나한테 전화해서 '저스틴을 내쫓았다.' 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라고 회상했다. 또한 브렛 역시 "만약 저스틴이 밴드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을 거야. 저스틴이 나간 건 개인적인 동기 부여도 됐고 꼬였던 연애사가 정리되기도 했으니까."라고 회상하였다. 저스틴의 탈퇴 후, 스웨이드의 성격은 바뀌었다.[4] 최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한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 되어있다.[5] 저스틴은 음악을 접고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