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암 갤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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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3b3c3c> '''본명'''
윌리엄 존 폴 갤러거
(William John Paul Gallagher)[1]
'''출생'''
1972년 9월 21일 (52세)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터맨체스터
맨체스터시 롱사이트
'''국적'''
[image] 영국
'''직업'''
가수,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탬버린 연주자
'''소속'''
오아시스 (1994~2009)
비디 아이 (2009~2014)
'''활동 기간'''
1991년~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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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3b3c3c> '''부모님'''
어머니 페기 갤러거
아버지 토마스 갤러거[56]
'''형제'''
큰형 폴 갤러거, 작은형 노엘 갤러거
'''배우자'''
펫시 켄짓 (1997~2000, 이혼)
니콜 애플턴 (2008~2014, 이혼)
'''자식'''
딸 몰리 무어리시[57]
아들 레논 프란시스 갤러거[58]
아들 진 갤러거[59]
딸 젬마[60]
'''신체'''
178cm
'''종교'''
무종교[61], 기독교[62]
'''레이블'''
에픽 레코드, 크리에이션 레코드

1. 소개
2. 생애
2.1. 데뷔 이전
2.4. 솔로 데뷔
3. 음악적 특징
4. 대한민국과 리암
5. 축구 사랑
6. 패션요정
6.1. 프리티 그린
7. 짤방
8. Discography
8.1. 정규앨범
9. 기타
9.1. 외모
9.2. 싸움꾼
9.3. 여자 및 자식 관계
9.4. 영화 관련
10. 관련 문서 및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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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기자 : 사람들이 당신의 거만한 태도에 대해 말하던데...

리암 : '''아, 그래. 그게 지금의 오아시스를 만들었잖아. 안 그래?'''

영국의 솔로가수이자 록밴드 오아시스비디 아이의 전 보컬이자 프론트맨이었다. 남성 의류 브랜드 프리티 그린의 사장이기도 하다.

2. 생애



2.1. 데뷔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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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노엘 갤러거, 폴 갤러거, 리암 갤러거, 어머니 페기 갤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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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둘째 형과 함께 있는 리암. 둘 다 별로 변하지 않았다.
1972년 맨체스터 버니지에서 아일랜드 계통의 부모 페기 갤러거와 토마스 갤러거의 삼 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2]
아버지인 토마스 갤러거는 알코올 중독자에 가족에게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폭력가장이었는데, 대부분 형 폴과 노엘이 당했지만 리암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그가 10살 때 페기 갤러거는 세 아이를 데리고 남편을 떠난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만나고 오아시스 데뷔 이후에도 본 듯 하지만 사이는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형인 노엘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대답을 회피하거나 지금은 괜찮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은 반면 리암은 아버지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쌍욕을 퍼부으면서 절대 용서할 마음이 없다고 대답한다.[3]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갤러거 형제들의 성장과정은 순탄치 않았는데, 리암은 로컬샵에서 자주 자전거를 훔치곤 했고, 15살 때 싸움을 벌여 퇴학을 당한다. 형제들끼리도 자주 싸웠는데, 특히 연년생인 폴과 노엘, 같은 방을 썼던 노엘과 리암이 많이 싸웠다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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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후반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며 스톤 로지즈, 더 후, 킹크스, 더 잼, 티렉스, 비틀즈 등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5] 1991년 더 레인(The Rain)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보컬 인생을 시작했다. 더 레인에는 원래 본헤드와 귁시, 토니 맥캐롤, 그리고 크리스 휴턴(보컬리스트)이 있었다. 그러다가 본헤드가 보컬을 리암 갤러거로 교체하면서 리암의 제안으로 밴드의 이름을 오아시스로 바꾸며 역시 리암의 제안으로 노엘이 기타리스트로 가입한다. 1993년 어느 날,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2집 앨범 Loveless 발매 이후로 멸망 위기에 처해있던 인디 록 레이블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사장 앨런 맥기에게 발굴되어 크리에이션 레코드와 계약을 맺는다.

2.2.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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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리암의 리즈시절
오아시스 해체 후 비디아이 활동 당시의 리암(2010)
솔로 활동 당시의 리암(2017)
자세한 것은 오아시스 문서 참조.

2.3. 비디 아이


2009년 8월 28일, 오아시스에서 노엘 갤러거가 탈퇴한 이후, 9월 5일 리암 갤러거는 前 오아시스 멤버들과 밴드를 계속할 것을 발표하였다. 자세한 것은 비디 아이 문서 참조.
2014년 10월 25일 자신의 트위터로 비디아이가 해체함을 알렸다.

2.4. 솔로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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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트위터에 새해 인사와 함께 올린 사진.
비디 아이 해체 이후에는 대중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 조용히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방송 출연도 거의 하지 않아 근황을 알기 어렵다. 그나마 트위터 업데이트가 활발해진 것이 위안. 거의 하루에 1트윗 꼴이다.
15년 3월 14일 오후 11시 55분, 노엘 갤러거의 공연 입장권으로 보이는 것과 함께 셀카를 찍어 올렸다. # 이걸 본 사람들은 '얘네 화해 하는 것 보다 남북통일이 더 빠를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도의 반응(...) 결국 노엘이 리암에게 티켓을 준 적이 없다고 밝히며, 단순한 장난 트윗으로 밝혀졌다.
2015년에 솔로 앨범을 낼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으나 NME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리암의 솔로 앨범을 기대하던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으나 아이리쉬 술집(...)에서 미발표곡을 혼자 기타치며 노래하는 동영상이 올라오며 그나마 위로를... 동영상 댓글의 절반 이상은 '리암 갤러거가 노래해주고 있는데 조용히 듣지 못할 망정 떠드는 놈들은 뭐냐', '저 XX가 되도 않는 드럼쳐서 직캠 퀄리티 망쳤네'등의 내용이 차지하고 있다. [6]


솔로 공연은 하고있지 않으나 2014년 더 후의 무대에 가끔씩 게스트로 나왔다. My Generation을 부르는데 굉장히 좋은 상태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휴식기에도 목관리를 소홀히 하고있지 않은듯. 참고로 이 노래는 오아시스 시절에도 부른 적 있다.

2015년 6월 TFI Friday에서도 더 후와 함께 My Generation을 부르며 정말 오랜만에 방송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때 무대에는 초창기 오아시스 멤버 본헤드와 오아시스 6집과 7집 드럼 세션에 참가한 잭 스타키[7]가 함께 올랐다.
이혼 재산분할 소송에서 재산의 절반인 550만유로(약 70억원)을 전 부인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덤으로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킨 죄로 벌금 80만유로(약 10억원)까지 지불하게 되었다.
이후 트위터에 벨리즈에 휴가를 간 사진이 올라왔다. 하도 팬들이 살아있냐고 울어대서 벨리즈로 말장난(...)을 쳤다가 리암어인줄 알고 팬들이 휴가를 간 줄 모르고 계속 울어대자 그냥 인증샷을 올렸다
2016년 2월 28일, 트위터에 I'm coming이라는 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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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4일에 트위터에 형 노엘의 옆모습 사진을 올려놓고 '''감자(Potato)'''라고 적어놓았다. 7월 9일에도 이 같은 장난을 반복했다. https://twitter.com/liamgallagher/status/735108824915415041
2017년 다시 음악계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솔로 데뷔 앨범 발매를 위해 워너 뮤직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 오아시스의 전성기를 다룬 영화인 슈퍼소닉 (2016) 의 감독 맷 화이트크로스 (Mat Whitecross) 가 잠깐 들어봤는데 마치 벨벳 언더그라운드같은 풍이었다고 하며 # 리암 본인도 길고 웅장한 기타솔로같은건 없을거라고 하였다. 팬들은 오아시스의 Songbird나 비디 아이의 For Anyone같은 곡이 나올것으로 예상 중. 리암 본인은 이번 앨범이 본격적으로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미공개 곡을 공개하는 느낌에 가깝다고 한다. 앨범 제목은 '''As You Were'''.
2017년 6월 4일에 맨체스터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One Love Manchester라는 공연[8]에 급하게 참여하여 노래를 불렀다. 특히, 마지막에 콜드플레이와 함께 부르는 Live Forever는 공연의 하이라이트. 리암이 크리스 마틴과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 현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놀란듯 하다.
6월 24일에는 글래스톤베리 무대에 섰다. 라이브에서도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팬들이라면 필청. 마지막 곡으로는 오아시스 해체 이후 처음으로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불렀다!!![9]
2017년 10월 6일, 드디어 리암의 첫 솔로앨범 <As you were>이 발매되었다! 로큰롤의 틀을 유지하면서 싸이키델릭함과 어쿠스틱함이 돋보이는 앨범이고 무엇보다 리암의 목소리가 전성기 시절로 돌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밑에 Discography 항목 참고.
2017년 5월 맨체스터를 시작으로 활발한 월드투어를 진행중이다. 오아시스 멤버 중 최초로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8년 NME 어워드에서 올해의 Godlike Genius로 선정되었다.
2019년 2월 말에 솔로 투어에서 부를 오아시스 노래를 추천받을 때 블러가 나오자 단단히 삐졌다(...) #
2017년부터 팬들이 걱정할 정도로 지난 수년 간과는 다르게 라이브를 엄청나게 뛰고 있다.
2019년 6월 7일, 새 싱글 <Shockwave>가 공개되었으며, 전반적으로 초기 오아시스 시절의 정통 브릿팝으로 회귀한 느낌의 곡[10]이며 대중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11]
2019년 9월 20일, 정규 2집인 <Why Me? Why Not.>이 공개되었다.
최근에는 오아시스 시절에는 절대 하지 않았던 '''MTV Unplugged'''공연을 하였다! 인이어의 영향을 덜 받아서인지 몰라도 이 공연에서의 리암의 보컬이 솔로 데뷔이후 역대 최고였다는 평가가 많은데다가, 어쿠스틱 공연이나 녹음을 그토록 꺼리던 리암이 드디어 언플러그드 공연으로 그 첫발을 내디디면서 20년이 넘도록 기다려온 팬들의 염원도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셋리스트 중에서도 오랜만에 오아시스 시절의 명곡 '''Stand By Me''', '''Cast No Shadow''', '''Sad Song'''[12]을 열창했는데, 이게 팬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는지 유튜브에 스튜디오 녹음본으로도 올라왔다. 확실히 밴드 시절과는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 변화된 모습을 리암이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듯 하다.
게다가 2019년부터 오아시스의 결성 멤버 중 한명인 기타리스트 본헤드가 리암의 공연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팬들의 대부분은 이전보다 밴드의 사운드가 훨씬 풍성해졌다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3. 음악적 특징


비록 평소 하는 짓은 망나니같아 보이지만 '''영국에서 가장 개성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고''' 작곡 천재인 형에게 묻히지만 '''좋은 노래도 쓸 줄 아는 재능있는 뮤지션이다.'''[13][14] 오아시스를 국민적 스타로 만든 데에는 노엘의 작곡실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만일 리암의 보컬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는게 중론.
노엘의 천재성에 묻히는 부분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에서 오웬 모리스가 말하길, 리암이 노엘이 작곡을 하고 기타를 치며 한번 부르면 리암이 곧바로 그 노래를 해석하여 바로 음원으로 낼 정도의 클래스로 불러 줄 정도로 곡 해석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오아시스의 노래들이다.

3.1. 보컬


리암의 보컬은 오아시스 데뷔 이후 30년이 다되가는 현재까지 이를동안 상당히 많이 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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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에 의지한 채 목을 쭉 뺀 상태에서 뒷짐지고 노래 부르는 특유의 자세가 유명하다[15]. 멋있어 보인다고 함부로 따라하지 말자. 이 자세는 부르는 사람의 목에 엄청난 압박을 주어 목 관리가 생명인 보컬로서는 '''최악의 자세'''이다.[16] 실제로 많은 팬들이 곧잘 이 자세를 시도하지만, 곧이어 엄청난 목의 압박을 느끼고는 그만두곤 한다. 리암이 이 자세로 노래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 좀 더 파워풀한 목소리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데뷔 초창기에는 마이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부르기도 했지만 곧 손을 뗀 자세로 정착되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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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스코트(1995)
메인로드(1996)
지멕스(1997)
시간이 지날수록 목과 몸을 점점 더 쭉 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최근에는 본인도 힘든지 예전에 비하면 덜 빼는 편이다.
오아시스의 필수 구성요소로 흔히 '''노엘의 곡과 리암의 보컬'''을 꼽을 정도[18]로 리암의 보컬은 밴드의 음악색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어떤 노래를 부르든 자기만의 스타일로 바꿔버린다. 한 예로, 더 잼의 Carnation을 커버한 적이 있는데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냥 자기 노래로 만들어버렸다. 해당 영상 그리고 비틀즈의 Within You Without You마저도 자기 색깔로 덮어버렸다. 이 커버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발매 40주년 기념으로 이루어진 이벤트이다. 해당 영상[19]
의외로 일렉트로니카 장르와도 인연이 있는데, 데스 인 베이거스Scorpio RisingThe ProdigyShoot Down에 각각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프로디지의 리엄 하울릿과는 동서지간.
리암 보컬의 힘을 잘 알 수 있는 예로 오아시스의 곡들 중 유일하게 디지털 싱글로만 공개된 Lord Don't Slow Me Down을 들 수 있는데, 원곡인 노엘 버전과 미공개된 리암 버전을 비교해보자.
또 리암의 보컬이 돋보이는 오아시스의 곡은 Listen up.특히 이 곡에서 one fine day gonna live you all behind 부분은 오아시스 전체곡 중에서도 리암의 보컬이 가장 돋보이는 킬링파트 중 하나다. 서로 라이브로 부른 리암 버전노엘 버전을 비교해보면 확실하게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만 목소리가 회복된 리암 본인도 2017년 현재는 리슨업을 전성기 시절처럼 소화하긴 힘들어보인다.
실제로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는 같은 밴드 멤버였던 본헤드로부터 '''천사'''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유니크했다. 프로듀서 마크 코일[20]은 녹음실에서 리암의 노래를 듣고 '''존 레논이 살아 돌아왔다'''는 평을 했다. 당시 목소리를 알 수 있는 초창기 Live Forever 데모
이와 같은 천부적인 목소리는 대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는데, 그 예로 리암의 유명한 별명나이팅게일[21]은 오아시스 인디 시절 소공연장에서 울려퍼지는 리암의 목소리에 감동한 관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맨체스터에서 온 나이팅게일'은 오아시스 데뷔 후에도 오랜 기간 리암을 지칭하는 별명이었으나, Definitely Maybe(What's the story) Morning Glory?가 나오고 오아시스가 범국가적인 히트를 치면서 리암도 '''Mr. Wonderwall''', '''Mr. Mad fer it'''[22]로 불리게 되었다.
처음 그의 독특한 창법은 섹스 피스톨즈의 자니 로튼을 따라한다는 말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하여 지금은 고유의 창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존 레논과 자니 로튼의 멋진 결합"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데뷔 이후 맑고 시원하게 내지르는 특유의 보컬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술담배와 개인적인 취향의 영향으로 허스키한 톤으로 변화한 점은 있지만 지금도 그 스타일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리암은 Live Forever의 후렴부까지 전부 소화할 정도로 폭넓은 음역대를 갖고 있었으나, 지속적인 락앤롤 생활과 더불어 술담배에 자세 크리까지 겹쳐 6집 시기에 이르러서는 허스키를 넘어선 그야말로 듣기 괴로운 소리를 내게 될 정도로 보컬이 크게 망가진 적도 있었다.[23] 때문에 언제부턴가 리암은 고음 파트를 부르지 않게 됐고, 라이브에서는 노엘이 대신 그 부분을 부르곤 했다.[24][25] 노엘은 리암이 고음 파트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 "일단 리암이 고음을 부르려하질 않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라이브를 보면 일부러 낮춰 부르는 듯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리암의 음역대는 some might say에서 볼 수 있듯 A4 혹은 B4정도는 올라갔었고, 목이 망가졌다 회복한 현재는 최고 A4, 라이브에서 주로 G4까지는 부를 수 있다.

과거엔 이렇게 팔세토를 쓸 줄 알았으나 노엘에 의하면 리암 본인이 남자답지 못한 노래 방식이라고 꺼려했다고 한다.

리암의 목소리 변화 (1994-2017)
한때 일부 팬들 사이에선 "리암의 목소리는 이미 맛이 갔다"며 사형선고까지 내린 적도 있었으나, 비디 아이의 앨범 작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금주를 선언, 최근의 잇따른 라이브에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복원하는데 성공했음을 인증한다.''' 리암은 인터뷰를 통해 크리스마스나 연말 정도를 빼면 앞으로 20년 동안 금주를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고[26], 애완견이나 아내와 같이 조깅을 하거나, 건강을 위해 비스킷, 연어 따위를 먹는다고 말하는 등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건강과 목 컨디션에 신경을 쓰는 모양.
사실 오아시스 앨범녹음과 7집 투어 전에도 리암이 약을 끊고 짧은 금주를 하는 등 목소리 관리를 해왔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좋아진 목소리를 투어 동안 큰 변동 없이[27] 유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리암에게 목소리를 되찾은 비결을 묻는 질문에, 리암은 처음으로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난 그동안 제대로 당하고 있었던 거야!" 그가 상처받은 목소리로 말한다. "난 내 목소리가 그렇게 쓰레기 같았던 줄은 몰랐지만, 지금 설명해줄게. 난 예전엔 인-이어 모니터를 썼었고, 그게 날 밴드로부터 고립시켰어.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노엘이 기타 볼륨을 900까지 올렸기 때문이야. x나 시끄러웠지."

2011/04/02, NME

위의 인이어와 관련된 발언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 2019년에 리암이 선보인 MTV Unplugged 라이브에서는 인이어와 같은 장치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인지 평소보다도 목 상태가 훨씬 좋았다.
비디 아이에 이르러 그의 보컬 스타일은 조금씩 바뀌게 되는데, 몇 몇 곡에서 약간 목에 힘을 빼고 편하게 부르려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B사이드 곡인 World Outside My Room[28]에서는 오아시스 시절의 Married With Children 때보다 한 단계 더 힘을 뺀 부드러운 보컬로, 포럼이나 팬카페 등에서는 처음에는 다들 리암이 불렀는지를 의심하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인터넷 상에서 리암의 목소리 변화의 원인을 술, 담배, 약물로 단정짓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술, 담배, 약물의 영향이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겠지만 술, 담배, 약물만으로 목소리가 맛이 갔으면 리암처럼 다시 회복될 수 없다고 한다. 리암의 목소리 변화는 술, 담배, 약물같은 Rock'n'Roll 라이프보다 리암이 스스로 보컬 스타일을 바꾼것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리고 리암의 보컬 스타일상 목 관리를 했냐 안했냐가 목소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보컬 컨디션이 최상일 때 녹음을 하는 스튜디오 레코딩과 연이은 공연·장거리 이동으로 피로에 쩔어있을 투어 말미의 라이브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정말 딴판. 라이브 공연도 컨디션이 좋을 투어 초반이나 공연전에 충분한 휴식기간이 있었을 경우 완벽한 라이브를 보여주지만 너무 빡빡하게 일정이 잡혀있거나 많이 지쳐있을 투어 후반에는 듣기 안좋을 정도의 라이브를 보여준다.
리암은 2017년 인터뷰에서 하시모토 갑상선염을 진단 받은게 9년전이라고 한 적이 있다. 참고로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자가면역성 원인으로 발생하는데, 면역세포가 갑상선에 다수 침착하여 염증을 일으켜 갑상선을 파괴하는 질환이라 특히나 가수에게는 치명적인 병으로 작용한다. 추가로 수많은 증상 중 머리카락은 건조하고 윤기가 없으며 잘 빠지고 눈썹의 외촉이 특히 잘 빠진다는 증상이 있는데, 비디아이 때의 리암과 오아시스 때의 리암을 비교해보면 굉장히 잘 맞아 떨어진다.(..) 게다가 하시모토 병으로 인한 관절염도 왔다고 말한 바가 있다.
때문에 내한 당시에도 후두염 통증 때문에 의사 요청까지 했으며, 형 노엘 갤러거가 리암은 숙취로 인해 불참했었다고 주장한 공연도 똑같이 휴식을 취해야한다고 진단받은 것이였다고 한다.
리암은 3집 시기를 거치면서 그냥 목상태가 안좋아진 것을 넘어서 목소리톤 자체가 한 단계 내려앉았다고 할 수 있다. 커리어 극초반 위에서 '천사의 목소리'와 같다는 칭찬을 들은 리암 갤러거는 명백한 테너톤, 또는 최고음이 높은 하이 바리톤이었는데[29], 커리어 중반 이후의 리암은 범위가 그리 넓지 않은 바리톤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1집 시기 비교적 평범하게 불렀던 고음들을 부를 수 없게 되었던가, 아니면 전보다도 더 목에 부담을 주며 부를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런 창법은 목에 대한 부담을 가속시킬 수밖에...

2014년경 The Who와 함께 My Generation을 불렀는데 아끼고 아낀 목이었는지 훌륭한 라이브를 보여줬다. 댓글 반응도 대부분 ‘드디어 리암이 돌아왔다’라는 평. 흥미로운 점은 노래부르는 리암 갤러거의 표정을 클로즈업할 때, 데뷔 초 리암 갤러거의 표정과 단 하나도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리암은 40살이 되어도 20살인 것처럼 노래할거라는 노엘 갤러거의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
솔로 데뷔를 한 후에 라이브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많이 좋아진 편이다. 다만 전성기 시절 수준의 보컬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듯. 리암 특유의 파워풀한 성대를 갈면서 나오는 특유의 보컬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30] 당장 리암 목소리의 전성기인 90년대 라이브 곡을 듣고 똑같은 곡을 2017년버전으로 들어보자.확실하게 차이가 느껴진다. 또한 콧소리가 좀 들리는 경향이 생겼는데 해외 팬들 사이에서 이게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이 있는모양. 그래도 Live Forever와 Some Might Say를 소화해낼수 있는 보컬 상태가 된다![31] 그런데 2017년 12월 20일에 한 Some Might Say 라이브에서는 이러한 콧소리 없이 코러스 부분을 깔끔하게 소화하기도 했다! [32]
2020년 현재의 리암의 목소리에선 더 이상 90년대와 같은 목소리가 돌아오길 바라기에는 너무 많은 강을 건너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는데 목소리가 똑같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리암이 지난 몇 년간 처럼 그 시절의 목소리를 어떻게든 다시 내보려고 억지 부리지 않고, 이제는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현재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선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결과가 점점 드러나면서 팬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건 꽤 고무적인 일이다.
2020년 하반기에 싱글 All You're Dreaming Of의 프로모션 라이브에서 거의 제2의 전성기라고 봐도 무방할 목소리를 들려주었다.링크 리암 노래 중에서는 음역대가 꽤 높게 올라가는 곡인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애가 저정도 높이의 음을 라이브에서 깔끔하게 소화하는게 도대체 몇년만이냐"는 반응이다. 그리고 11월 27일에는 BBC Radio 2에서 18년만에 Hello를 라이브로 다시 불렀는데, 그야말로 90년대로 돌아간 듯한 라이브 실력을 보여줘서 많은 팬들을 놀래켰다. Hello 라이브 확실히 목소리가 관리만 잘 되면 최상의 라이브를 보여줄 수 있는 듯 하다.

3.2. 작곡


형과 비교되어 노래는 잘하는데 작곡실력은 별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오아시스의 히트곡 중 Songbird와 I'm Outta Time은 리암이 만든 곡이다. 참고로 둘 다 싱글컷 되었고 Born on a Different Cloud와 더불어서 노엘에게 유례없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사실 노엘이 리암의 '작곡 능력'을 깐 적은 생각보다 드문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 B사이드로 머물긴 했지만 의외로 좋은 곡들이 많다. 리암 갤러거가 작곡을 못한다기보다는 노엘 갤러거가 천재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굳이 두 사람을 비교해보자면, 멜로딕하면서 귀에 익숙한 곡 전개가 특징인 노엘에 비해, 리암의 곡은 부분 부분의 멜로디는 잘 뽑아내지만 형에 비하면 전개를 잘 못하는 편. 아니면 좋은 멜로디 구간을 하나 만들어놔서 곡 끝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Guess God Thinks I'm Abel에서는 아예 반복만 하다가 중간에 끊어버린다. 써놓은 곡들을 보면 의외로 3분 이내의 짧고 맑고 예쁜 곡을 쓰는 것에 재능이 있는 듯 하다.
리암의 작곡 스타일에 대해서 겜 아처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략) 리암은 곡을 만들어도 훨씬 변화가능성이 많다고 할까. 그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어떤 사운드가 맞는지 틀린지 잘 알아. 훌륭한 프로듀서이기도 하지. 누군가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 알아차리거든. 물론 그런 역할은 노엘이 훨씬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하지. 리암은 노엘보다는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관심이 있는 편이야." (2008.9 NME Dig Out Your Soul 특집 인터뷰)

스톤 로지즈의 기타리스트인 존 스콰이어가 1996년에 결성했던 록밴드 더 시호시즈(The Seahorses)의 곡 중 97년 무렵에 발표된 Love Me and Leave Me는 리암 갤러거와 존 스콰이어가 공동으로 작곡한 곡이다. 다른 밴드의 곡인데다 공동 작곡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무렵에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고, 2000년 오아시스의 4집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의 수록곡 Little James로 처음 단독 작곡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본인도 직접 작곡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본업은 언제까지나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 노래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미 헨드릭스가 되기보다는 존 레논이 되고 싶다는 노엘 갤러거와는 상반된다. 작곡은 거의 취미생활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솔로 데뷔를 하면서 예전에 비해 작곡에 많은 신경을 쏟고 있다고 한다.

3.2.1. 오아시스


'''작곡한 곡 일람'''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 Little James
Heathen Chemistry
  • Songbird
  • Born On A Different Cloud
  • Better Man
Don't Believe the Truth
Dig Out Your Soul
  • I'm Outta Time
  • Ain't Got Nothin
  • Soldier On
  • Boy with the Blues (Deluxe Boxset 보너스 트랙/iTunes exclusive EP 수록)
  • I Believe in All (Deluxe Boxset 보너스 트랙/iTunes exclusive EP 수록/Japan Limitid Edition, Korea Tour Edition B-side)

3.2.2. 비디 아이


비디 아이에서는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작곡에 나선다. 물론 여지없이 혹평도 있고 멜로디 반복도 계속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일취월장 했다는 평. '''정말로 확실히 나아졌다.'''
'''작곡한 곡 일람'''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곡)
  • Beatles and Stones
  • Bring The Light
  • For Anyone
  • Wigwam
  • The Morning Son
  • Man Of Misery ( /싱글 Millionaire의 B-side/iTunes 보너스 트랙)
BE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사/작곡)
  • Flick Of The Finger (겜 아처와 공동 작곡[33])
  • Soul Love
  • Don't Brother Me[34]
  • Shine A Light
  • Start Anew

3.2.3. 솔로 앨범


솔로 활동을 하면서 작곡 실력이 월등히 좋아지고, 여러 색깔의 작곡을 하였다. 또한 앨범에서 어쿠스틱 기타로 2곡을 녹음 하기도 하였다. 첫 앨범은 메타크리틱 71점으로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3.2.3.1. 1집 As You Were

  • Wall of Glass [Greg Kurstin, Andrew Wyatt, Andrew Sidney Fox, Michael Tighe와 공동 작곡]
  • Bold
  • Greedy Soul
  • For What It's Worth [Simon Aldred와 공동 작곡]
  • When I'm in Need [Iain Archer와 공동 작곡]
  • You Better Run
  • I Get By
  • Come Back to Me [Kurstin, Wyatt와 공동 작곡]
  • Universal Gleam
  • I've All I Need
  • Doesn't Have to Be That Way [Kurstin, Wyatt와 공동 작곡]
  • All My People / All Mankind
  • I Never Wanna Be Like You

3.2.3.2. 2집 Why Me? Why Not.

  • Shockwave
  • One of Us
  • Once
  • Now That I’ve Found You [Simon Aldred와 공동 작곡]
  • Halo [Greg Kurstin, Andrew Wyatt와 공동 작곡]
  • Why Me? Why Not. [Simon Aldred와 공동 작곡]
  • Be Still [Greg Kurstin, Andrew Wyatt와 공동 작곡]
  • Alright Now [Damon Duell McMahon, Andrew Wyatt와 공동 작곡]
  • Meadow [Greg Kurstin, Andrew Wyatt와 공동 작곡]
  • The River
  • Gone [Michael Oliver Tighe, Andrew Wyatt와 공동 작곡]
  • Invisible Sun [Andrew Wyatt와 공동 작곡]
  • Misunderstood [Simon Aldred와 공동 작곡]
  • Glimmer [Michael Oliver Tighe, Andrew Wyatt, Constantin Veis와 공동 작곡]

3.3. 덕후


형 노엘과 함께 자타공인 비틀즈. 60년대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며 특히 '''존 레논'''과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존 레논 코스프레 까지 하고 다녔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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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를 하던 당시 리암.
오아시스의 멤버인 앤디의 말로 따르면 집 전체가 비틀즈 하우스라고 하며 [35]자신의 첫째 아들 이름을 레논 갤러거로 지었다... 섹스하고 싶은 사람 1위로 존 레논을 뽑기도 했다. (참고로 2위는 을 뽑았다.) 닐 영도 좋아한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앨범을 뽑는 인터뷰에서도 뽑았던 것들이 비 지스(Bee Gees), 조지 해리슨[36], 킹크스 등 6~70년대에 활동했던 밴드나 뮤지션들이 대부분. 그리고 대표적인 모드 밴드 더 후더 잼을 선호하는 모습이나 프리티 그린의 스타일을 보건대 모드족 스타일과 음악도 좋아하는 듯 하다. 하지만 80-90년대 밴드인 더 라스(The La's)도 좋아한다고 밝혔다.
잘 알려졌다시피 섹스 피스톨즈스톤 로지즈의 팬이기도 하다. 그가 16살 때, 처음 밴드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바로 스톤 로지즈의 공연을 보고 난 이후라고. 맨체스터같은 우중충한 도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스톤 로지스의 노래를 들으면 맑은 날이란 느낌이 들었으며 마치 그들의 노래가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출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그들의 데뷔 앨범이며 노래 뿐만 아니라 그들의 태도, 자신감 등까지 배웠다고. 10분 42초부터 스톤 로지즈 재결합 발표 이후로는 전형적인 밴드 덕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카사비안에 대해 호평을 하고, 레이디 가가를 좋아한다고 하거나 인터뷰 중 악틱 몽키즈의 곡인 Cornerstone에 대한 감상을 짧게 언급하는 등 요즘 곡이라 해서 모두 기피하지는 않는 듯. 최근에는 요즘 나온 밴드들 중에서는 컬츠[37]를 좋아한다고 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심심하면 라디오헤드를 까기도.[38] 리암이 라디오헤드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39] 근래 들어선 노엘과 톰 요크가 엮이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는데 기사에 대한 반응 중 다수가 갤러거 형제와 톰 요크를 비교하는 것.
2011 비디 아이 내한 당시 오프닝 밴드로 섰던 국카스텐좋아했다 카더라.

4. 대한민국과 리암


자국인 영국을 포함한 유럽과 미국 등의 서부 사회 국가들에 프론트맨인 리암의 인기가 독보적이였던 것과 다르게,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감성적인 보컬 톤을 지닌 노엘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그룹 해체 후 각자 솔로 아티스트와 비디아이의 일원으로 내한 왔을 때 노엘은 몇 분만에 티켓을 매진시키고 하루 더 공연을 추가하여 또 매진시켰지만, 비디아이 공연에는 빈 자리가 보일 정도[40]. 하지만 그 동안의 오아시스 콘서트에서도 리암은 정말 인기가 많았다. 콘서트 때 '''리-암! 리-암!'''하고 부르짖는 서역 남덕들의 목소리는 가히 소덕들을 뛰어넘을 위압감을 주었다.
리암 본인도 일본과 더불어 대한민국 관객을 굉장히 사랑하는 록스타 중 하나이다. 물론 오아시스 활동 시절, 첫 내한이었던 2006년만 해도 '대한민국에 온 소감은 어떻냐'는 질문에 '좋아요' 한 마디로 무심하게 대응하던 리암이었으나, 2011년 9월 3일 비디 아이 첫 내한 공연 이후 이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공연 기획사인 나인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입을 통해 전해졌는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리암이 2009년도 4월 내한공연 당시 유튜브에 올라왔던 한국 지하철 원더월 떼창 동영상을 보고 감명을 받아, '''대한민국 관객들을 정말로 '내 사람들(My kinda people)'이라고 여기게 되었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 내한 공연을 오고 싶어한다고 한다.
이후로는 모두가 알다시피 2009년 4월 오아시스 단독 내한공연과 7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공연, 그리고 11년 9월 비디 아이 단독 내한공연을 거치면서 각각 트위터와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 관객들에 대한 애정을 가득 드러낸 바 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에피소드는 각각 이쪽이쪽을 참고할 것.
참고로 비디 아이 내한 당시 대한민국 관광차 이태원동을 돌아다녔으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다들 비슷하게 닮은 사람이려니 하고 지나쳐 갔다고...
역시 비디 아이 내한 때, 공연 마지막에 "다음 목요일에 보자"고 인사를 했다. 물론 다음주 공연 예정같은 건 없었기에 다들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리암 식 인사로 치부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사정을 알고 보니 리암은 정말로 다음 목요일에 대한민국에서 다시 공연을 한다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Far East 투어의 마지막 공연인 대만 공연이 그 다음 목요일에 열리는데 투어 매니저가 대만과 대한민국을 착각해서 잘못 알려준 모양이라고. 거기다 그 마지막 공연에선 대한민국 팬들을 위해 스페셜 앵콜로 일본 공연에서 부르지 않는 곡을 서비스할 예정이었다고. 사정을 물어본 사람에게 콜라까지 사 주었다고 한다.
이름의 이니셜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종종 LG와 연관지어지기도 한다. 2000년대 초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앨범 시기에 뉴욕[41]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할때 LG의 광고판을 가리키며 "이것 봐 내 이름이 온 세상에 깔렸잖아 ㅋㅋㅋㅋ"라고 한 적도 있다.
2012년 싸이강남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비디스타일이라는 패러디 영상이 만들어졌는데 당시 배우자였던 니콜 애플턴과 함께 감상했다. 니콜이 트위터에 올렸다. LOVED IT! 이라고 했다고.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2013년 프리티 그린 Ask Liam 인터뷰에서 강남스타일을 두고 "Absolute Classic"이며, 신곡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동영상(0:52부터)
2017년 8월 21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리브 포에버 롱 (LIVE FOREVER LONG)'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내한했다. 관련기사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에서 밀려드는 팬들로 인해 안전펜스가 무너지는 등 안전관리에 문제를 드러냈다. 일부 기사에서는 리암이 화가 났고 고함을 쳤다고 했는데 전혀 사실 무근이다. 리암은 전혀 고함치거나 기분나빠하지 않았으며 팬들의 안전에 걱정되어 조심하라고 하고 친절하게 팬 서비스를 했다. 관련기사 [42]
강남구에 있는 강남스타일 동상 앞에서 말춤을 추고갔다(…).#
본 공연 당시에는 오프닝 곡으로 강남스타일을 트는 기행을 선보였다고 한다. 참고로 투어의 다른 공연에서는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의 첫 트랙인 Fuckin' in the Bushes를 틀었다. 초반 Rock 'n' Roll Star, Morning Glory, Wall Of Glass 3연타는 굉장히 흥했으나, 중반부 곡들이 미발표곡이라 익숙하지 않은 트랙이 많아 예전 밴드 시절만큼 호응이 좋지는 못했다. 오아시스 팬들이 많은 것 같다며 부른 노래가 3집의 Be Here Now여서 제창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안습요소. 일본 서머소닉과 거의 같은 셋리스트였다. 솔로 라이브에선 처음으로 비디아이 2집 수록곡인 Soul Love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곤 이 곡을 한국에서 연주하길 기대했지만 일이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5. 축구 사랑


형 못지 않게 굉장히 열성적인 맨체스터 시티 FC 팬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증오한다. 인터뷰에서 싫어하는 것 10개를 묻자 '''맨유 x 10'''이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
리암은 데뷔 전 올드 트래포드(맨유 홈 구장) 근처에서 세차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맨유에 대한 '''증오 행위'''로 해고되었다. 에릭 칸토나의 차를 긁고 폴 인스BMW를 쇠수세미로 문질렀으며 라이언 긱스에게 물 한 바가지를 퍼부었다. 에릭 칸토나는 이 때 오아시스 1집 데모 테입을 받았다고.
리암은 iPhone 유저지만 트위터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본인이 기분이 완전 좋을 때나 그 날의 공연이 엄청나게 흥했을 때, 혹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을 언급할 때가 아니면 평소에는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리암의 트위터도 맨체스터 시티 FC 혹은 맨체스터 더비 경기가 흥할 때는 인증샷을 올리기도 하는 등 깨알같이 업데이트되곤 한다.
BBC 풋볼 포커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마리오 발로텔리가 유스 선수에게 다트를 던진 일에 "다트를 던지는 것이야말로 남자다운 행동이지"라고 말하며 그를 옹호했다는 식의 내용이 축구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나, 원문을 보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은 이러하다. 관련 동영상(이탈리아어 자막 버전)

"What a geezer. I mean, all that throwing darts at people. That's not cool - a water balloon would have done. You know what I mean? But I like characters. If the world was full of f***ing Gary Neville's man, it would be bobbins, wouldn't it? He just looks like an estate agent"

"이상한 녀석이야. 사람들한테 다트를 던지고 그런 건 쿨하지 않지. 물풍선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난 개성있는 사람들이 좋아. 세상이 빌어먹을 게리 네빌같은 녀석들로만 가득차 있다면 쓰레기같지 않겠어? 걘 복덕방 사장처럼 생겼잖아."

맨시티 광팬답게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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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5일
스토크 시티와의 FA컵 결승전에서
2012년 4월 30일
맨체스터 시티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꺾고 1위 탈환을 한 날
2018년 2월 20일에 아이들과의 대담에서도 여전한 팬심을 모습을 보인다.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그의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어라고 밝힌 것은 덤.
인터뷰에서 한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소속이었던 카가와 신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맨시티를 상대로 골을 넣으면 죽이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 유벤투스 FC의 자선 축구경기에 참여하였는데 OME급의 트래핑을 보여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의 모습을 본 팬들의 반응은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안 했길래 저렇게 배가 나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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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된 후 인터뷰. 경기 상황은 모르겠고 본인 상황은 '''심장마비 걸리기 일보 직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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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뜨거운 축구 사랑과는 별개로 축구를 못하는 듯 하다. 젊은 시절에 술 취해서 친구들과 공원을 뛰어다닌 경험 뿐이라고...
새로 나온 맨시티 유니폼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맨시티의 유니폼 디자인의 책임자는 중국 우한으로 가는 다음 비행편에 태워 보내야 한다.'''며 격분해 했다.

자신의 뮤비에 맨유의 레전드인 에릭 칸토나를 등장시켰다...링크

6. 패션요정


음악만큼이나 패션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며, 그런 만큼 베스트와 워스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엄청난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 4집 시절의 존 레논 코스프레는 이미 유명하고, 5~6집 시절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한창때 외모와 맞물려 그야말로 좋은 포스를 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암 갤러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특유의 자세와 8자 걸음걸이와 더불어 아래와 같이 '''사시사철 입는 야상[43]이브 생로랑 호피무늬 슈즈''' 뿐.
[image] [44]
그 때문인지 몰라도 국내에 오아시스 팬이 급증하면서 거리에서 이 패션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물론 야상은 보편적인 패션 아이템이기 때문에 야상을 입는다고 해서 무조건 팬인 것은 아니지만, '''그럴 날씨가 아님에도''' 야상을 굳이 턱까지 잠궈 입고 여기에 호피무늬 슈즈를 갖춰 입는다면, 그 사람은 99.99%...
헤어스타일도 기복이 크다. 그냥 평범하게 짧은 머리, 반삭 수준으로 깎은 머리, 후기의 존 레논처럼 기른 머리, 잘 다듬은 머리, 샤기컷, 아무렇게나 방치한 머리 등. 여기에 수염까지 기르면(...). 현재는 주기적으로 반삭을 하는 중.[45]
현재는 대부분 야상을 입고 다닌다. 한여름에도 역시 야상 차림이며, 야상 말고 옷을 입는날은 희귀할 지경.
2019년 6월 29일 트위터에서 팬이 리암에게

Liam surely can't wear a parka today it's gonna be 33deg?

리암은 오늘 확실히 파카 못입어 오늘 33도까지 올라간다는걸?

라는 글에

Watch me

두고 봐

라고 올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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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체크무늬 파카를 입고갔다... 팬들은 그래도 체크무늬인게 어디라는 반응. 대부분 어두운 색 아니면 초록색 야상만 입고다니다 보니...
9월 2일 현재 연인관계인 데비와 결혼 발표가 나자 팬들은 과연 리암이 결혼식날 야상을 입을지말지 얘기하고 있다...
이정도로 리암의 야상 사랑은 엄청난데, 아예 야상(parka)의 대명사급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리고 본인도 이러한 이미지에 만족하는듯. 솔로 2집 시절 인터뷰에 의하면 아예 야상을 보관하는 컨테이너 창고(?)가 2~3개 정도 따로 있다고 한다.

6.1. 프리티 그린


[image] [image]
2008년 7월, 남성 패션 브랜드 프리티 그린(Pretty Green)을 런칭했다.
로고의 모티브는 비틀즈의 러버 소울과 롤링스톤즈 Between The Buttons 로 추정되는 60년대 사이키델릭 스타일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며, 브랜드의 이름은 역시나 모드 덕후답게 록밴드 더 잼#s-4동명의 곡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패션 디자이너 닉 홀랜드[46]와의 동업으로부터 시작된 이 브랜드(NYLON, 2010/05)에서는 리암이 모든 옷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47], 클래식 남성복 라인인 블랙레이블(Black Label)에선 직접 모델로 서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60년대 모드 스타일을 추구하며, 비틀즈, 스톤즈, 더 킹크스, 스몰 페이시스 등이 활동했던 시대, 특히 주로 1967~69년에 걸쳐 활동한 밴드들의 패션과 그 분위기에서 모티브를 얻는다고 한다. 한 예로 프리티 그린은 모드족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더 잼#s-4 출신의 폴 웰러와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에는 더 후와 손잡고 영화 콰드로피니아 40주년에 발맞추어 매장 내 전시회와 더불어 콜라보레이션 파카를 출시하기도 했다.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와 로저 돌트리가 이 브랜드를 상당히 좋아한다고. 그 외에도 리암은 인터뷰를 통해 조지 해리슨, 브라이언 존스, 폴 웰러, 스티브 매퀸, 스톤 로지스, 섹스 피스톨즈의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자사 로고 바리에이션 티셔츠를 만들어 팔기도 하며, 이 티셔츠는 이집트에서 공수한 최고급 목화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원단에 신경쓰는 만큼, 가격대도 엄청나 팬들에게 욕을 먹는다. 가장 저렴한 티셔츠 한 벌이 £35. 35파운드면 한화로 5만 원이 넘으니... 참고로 현지 반응이 이렇다. 그래서 어쩌면 할인이 있는날 물량이 빠르게 빠지는 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노동계층이 사기에는 너무 머나먼 브랜드임은 사실이다. 다만 자기사업에서 자기가 비싸게 팔겠다는데 욕하는 것도 말이 안되긴 한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야상(Parka)도 판다. 위에서 리암이 입고 있는 야상이 대표적인 것인데, 문제는 가격대가 가장 싼 것이 '''£150.''' 이것은 비교적 저렴한 캐주얼 라인인 그린레이블 기준으로, 블랙레이블로 넘어가면 300~400대는 우습게 넘기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디자인은 깔끔하고 준수한 편.
프리티 그린은 초기의 우려와는 달리 2010년에는 이태리의 전통적인 패션시상식 20th Anniversary Drapers Awards에서 Polo Ralph Lauren & Tommy Hilfiger, Paul Smith, Boss Orange, Richard Ralph 등 쟁쟁한 후보를 재치고 '올해의 남성복 상(Menswear Brand of the Year)'을 수상하였다. 나름대로 독립된 의류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까다로운 원단 사용 및 고가 마케팅의 영향으로 현지에서는 대체로 고급 의류 브랜드라는 인상이 강하다. 실제로 영국 뮤지션 및 축구 선수들 중에서 프리티 그린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 종종 나타나며, 특히 록밴드 비디 아이의 멤버들이 이 브랜드의 의상을 많이 입곤 했다.
패션 브랜드 레드오션 가운데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프리티그린은 품질과 디자인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브랜드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덴마크의 황태자비 마리(Crown Princess Mary of Denmark)까지 직접 프리티 그린 샵을 찾아왔을 정도다.
프리티그린은 2011년 'Global Fashion Awards', 'National Business Awards' 두 시상식 모두 노미네이트 되어 그 수상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사실 저 두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도 신생 브랜드로서는 대단한 영광이다. 최근 유럽 언론에서는 이같은 프리티그린의 성공사례를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11년에 WGSN Global Fashion Awards에서 Best Breakthrough International Brand(가장 떠오르는 국제 패션 브랜드) 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패션 디자인과는 그 어떤 연관도 없었던 사람이 만든 패션 브랜드가 2년만에 거둔 성과치고는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롤링 스톤 인터뷰
2012년 첫 해외 스토어를 도쿄 아오야마에 열었다. 관련 링크
2020년 현재, 리암 갤러거는 프리티그린의 사장이 아니고, 2019년 4월 JD 스포츠에게 인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7. 짤방


핏줄은 못 속인다는 말이 있듯, 처럼 신박한 독설 짤방이 매우 많다.
오아시스(밴드)/짤방/리암 갤러거 참조.

8. Discography


  • Wall Of Glass (Single; 2017. 6. 1)
  • Chinatown (Single; 2017. 6. 30)
  • For What It's Worth (Single; 2017. 8. 10)
  • Greedy Soul (Single; 2017. 9. 27)
  • As You Were (Album; 2017. 10. 6)
  • Shockwave (Single; 2019. 6. 7)
  • The River (Single; 2019. 7. 5)
  • Once (Single; 2019. 7. 25)
  • One of Us (Single; 2019. 8. 16)
  • Why Me? Why Not. (Album; 2019. 9. 20)
  • All You're Dreaming Of (Single; 2020. 11. 26)

8.1. 정규앨범




8.2. 1집 As You Were


[image]
솔로 데뷔앨범 타이틀은 ''As You Were''이며, 2017년 10월 6일 발매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8.3. 2집 Why Me? Wh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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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0일에 발매된 리암 갤러거의 두번째 정규 앨범이다.

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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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시이다. 측면을 바라볼 때는 잘 티가 나지 않지만 정면에선 확연히 티가 난다. Live Forever의 미국판 뮤비 참고.

  • 맨체스터 악센트가 매우 심하다. 어느정도냐면 말할때 맨체스터 억양(mancunian)이 심해서 한국 팬들이 그의 말을 잘 못알아 들을 뿐더러 영어권 중에서도 잘 못 알아 듣는 사람이 있을 정도(...).[48] 이 때문에 팬들은 리암이 리암어(Liamese)를 사용한다는 개드립을 치기도 한다. 그래서 리암의 인터뷰 영상에는 영어 자막이 붙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래할 때나 자신이 마음 먹으면 포쉬 억양을 소화할 수 있다.
  • 말끝마다 D'You Know What I Mean?을 붙이는 버릇이 있다. 맨체스터 억양이 심해 상대방이 잘 못 알아들어 붙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된다. 심할 땐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끝에 듀나민이 붙는다.
  • 걸음걸이 또한 매우 특이한걸로 유명하다. 팔자걸음으로 걸으면서 상체는 뒤로 뺀체 팔을 크게 흔들면서 걷는다. 일명 스웨거(swagger). 그의 걸음걸이는 The Masterplan 뮤비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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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상하게 걷는게 리암.
  •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고 있다. 이름은 시드낸시. 동물 보호센터에 어미와 함께 구조된 시드를 리암이 입양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입양한 것이 낸시. 시드와 낸시의 이름은 섹스 피스톨즈시드 비셔스와 그의 여자친구였던 낸시 스펑겐에게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 브렉시트에 대해서 "브렉시트가 잘 이해가 안된다. 정말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나? 내가 확실하게 아는건 데이비드 캐머런이 애초에 그 건을 들고 와서 자기 불알이 감전되길 원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유럽 가는걸 좋아한다. 그 자유가 마음에 든다. 난 사람들, 특히 런던 바깥의 삶이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브렉시트랑 무슨 관련인가? 나한테는 빌어먹을 헛소리처럼 보인다."는 코멘트를 했다. 참고로 노엘도 브렉시트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했지만 정작 투표에는 참여를 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리암은 노엘이 자기 주장만 하고 투표는 하지 않는 X새끼라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
  • 2020년 스포티파이로 카디비WAP을 들었다는 사실이 팬들에게 발각되었는데 일단 본인은 자기가 들은 게 아니라 애들이 자기 계정으로 들은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 2003년 Channel 4가 조사한 '최악의 영국인'(100 Worst Britons)에서 11위를 차지했다.[49]

9.1.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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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혈질+막 나가는 행동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얌전한 사진을 보면 매우 잘생겼다. 20대 초반 그가 데뷔했을 때 영국에서는 천사같은 목소리를 가진 미소년이 밴드를 한다며 유명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25세였던 오아시스 3집 시기가 미모의 최전성기였으며, 20대 후반에는 존 레논 코스프레 등 웬만한 사람은 어울리기 힘든 스타일링도 잘 소화해냈다. 4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 꾸준한 관리로 미중년 외모를 자랑한다. 그의 잘생긴 외모는 오아시스 초기에 수많은 여성 팬을 모으는 데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오아시스 다큐멘터리 <슈퍼소닉>에서는 한 여성팬이 ''리암은 너무 잘생겼어요. 그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라고 할 정도. 그리고 20대 때는 과 별로 닮지 않았었지만 나이가 들 수록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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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리암 본인도 본인이 잘생겼다는 걸 매우 잘 알고있다.

9.2. 싸움꾼


"노엘의 동생이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그 애가 그룹의 프론트맨을 하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얘기가 늘상 떠돌아 다녔다. 그때는 훨씬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는데. 마음이 약해 불평 한마디 못할 정도였고, 무척 연약해 보였다... '''오아시스의 성공으로 리암은 껍질을 깨고 나온 것 같다.'''" ㅡ 인스파이럴 카페츠의 보컬 클린트 분(Clint Boon), 1997년에 오아시스 매니지먼트 회사의 요구로 방영이 금지된 TV 다큐멘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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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매거진 선정 싸움꾼 Top 10 리스트 중 '''1위(...)'''
그 외 각종 짤방 및 문제 발언에 대해서는 이쪽으로.
기본적으로는 록밴드의 프런트맨이나 뮤지션보다는 '''싸움꾼''' 이미지가 강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엘은 가끔 인터뷰나 쇼 프로에서 욕과 독설을 퍼붓거나 비꼬는 것뿐이지만, 리암은 직접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사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든 어김없이 큼직하게 헤드라인으로 뽑곤 하는 영국 언론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행이 과장이 되면 됐을지 몰라도 절대로 평범하지는 않다(...).
우선 어린시절부터 양아치였다.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들끼리 모여서 담배 피다가 옆 학교에서 온 애들한테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고 음악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이해하겠는가? 이런 불같은 성격 때문인지 보통 싸움이 걸려오거나 먼저 거는 경향이 강하다.
오아시스의 전성기 시절에는 비행기에서 빵(스콘)을 자기만 안 준다고 스튜어디스에게 윽박질러대어 캐세이패시픽항공에서 영구 탑승 금지를 당할 정도로 툭하면 말썽을 부리고, 그들이 페리를 타고 첫 네덜란드 공연에 가던 중 노엘을 제외한 멤버들이 카지노에서 룰렛의 공을 집어들며 난투하는 사건이 일어나 네덜란드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도 있었다. 그리곤 감빵행 및 강제추방(...)[50] 또한 2009년 방한때 리암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릴리 앨런과 퍼스트 클래스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하지만, 크게 회자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오아시스는 30년이면 잊혀질 밴드다. 노엘은 재능있는 친구지만. 그도 노래를 할 줄 아는데 왜 굳이 리암을 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리암은 쓸모없다.'는 식의 발언에, MTV에 출연해 '내가 아직 비틀즈와 조지 해리슨을 좋아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이 젖꼭지같은 늙은이 같으니라고.''' 그가 나보고 웃긴 녀석이라고 했지? 그가 나에 대해 뭘 아는데? 그냥 신문만 보고 다 아는 듯이 나불대는 거 그게 진짜 병신같은 짓이라고.'[51]라고 하고 잡지에서는 '''네 머리통으로 골프를 치겠다'''라고 하기도 했다. 어느 라디오에서는 조지 해리슨 뿐만 아니라 믹 재거도 거론하며 현피 신청까지 했다. 이후 한참이 지나고 '그땐 화가 나서 그랬고, 조지는 좋은 작곡가며 난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뿐만아니라 친형인 노엘에게 딸인 아나이스가 친자식이 아닌 바람펴서 낳은 애라는 식에 막말을 해버려 큰 싸움이 나기도 했다[52]. 이렇듯 대단한 성격이니 어떤 식으로든 까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터이다.
오아시스 활동을 할 때, 스튜디오에서 노엘이 작업하는 줄 모르고 약쟁이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이 때 누군가 소화기로 노엘의 기타를 망가뜨려서 빡친 나머지 노엘이 리암에게 퍼부었고, 리암도 미친듯이 화를 내 결국 꼭지가 돌아 크게 싸우게 된다. 결국 싸우다 '''제대로 빡친 노엘이 크리켓 배트로 리암의 머리통을 후려갈겨''' 끝나긴 했지만. 본헤드 말로는 노엘이 그렇게 화를 낸 건 처음 봤다고. 합류한 지 2주 된 앨런은 밴드가 해체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리암의 싸움에 대해선 독설을 제외하곤 과장된 면이 조금 많은데, 정작 그의 행동으로 직접적인 상해를 입힌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상대를 겁주기 위한 협박성이기 때문. '''싸움꾼이라는 평판은 이것이 언론을 통해 지나치게 회자되고 웃음거리가 된 결과이다.''' 거침없는 성격에 직설적인 발언과 행동은 자극적인 소재를 원하는 언론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떡밥거리. 때문에 2019년 현재조차도 그의 호불호에 관련된 사소한 발언 하나 하나는 언제나 영국의 음악 매체 및 연예 가십성 황색언론의 좋은 소잿거리가 되곤 한다. 최근엔 리암의 거친 언행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이 많이 나온다.

9.3. 여자 및 자식 관계


오아시스가 데뷔를 하면서 사교계에 리암에 대한 소문이 빠르게 퍼지며 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대시를 시작했고, 리암 본인도 크게 거부하지 않으며(...) 플레이보이 생활을 했다. 데뷔 이후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레코딩 당시까지 모델 겸 배우 카담바와 사귀었지만 2집 활동 이후 결별했고, 당시 유명 여자 MC 폴라 예이츠 의 대시를 받지만 리암은 그녀를 싫어하여 그녀를 피하려고 장롱에까지 숨었다고. 참고로 예이츠는 가수 겸 영화배우 밥 겔도프와 결혼한 유부녀였다(...). 예이츠는 2000년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한편 리사 무리쉬라는 여자는 모델과 밴드 활동을 하며 연예계에서 패션업계 종사자와 락스타 영화배우들을 연결시켜주는 중간관계같은 사람이었는데, 맨체스터에서 오아시스가 점점 인지도를 키울 때 오아시스와 안면을 트고 오아시스와 여러 유명인사들을 연결해주었다. 이렇게 연결된 사람이 리암의 첫 부인 팻시 켄짓.[53] 이 와중 잠깐 케이트 모스와 사귀기도 했다. 이후 리암은 팻시와 사랑에 빠지고, 1997년 4월 7일 결혼한다. 하지만 1998년 1월, 가수 리사 무어리시와 사이에서 딸을 낳는다. 이 사실은 팻시도 알았던 듯 하나 묵인한 듯. 팻시와 리사가 리암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팻시는 1999년 9월 아들 레논 프란시스 갤러거를 낳는다. 아들이 태어난 이후 가정에 충실하는가 싶었으나... 둘 모두 사소한 외도를 하며 사이는 쫑날 대로 다 쫑나고 4집 활동 중이던 2000년, 팻시는 짐을 싸서 나가 새 연인과 동거한다.
그리고 별거하며 리암은 걸그룹 올세인츠의 멤버 니콜 애플턴과 만나게 된다. 니콜도 리암과 만나기 이전에는 상당히 유명한 스캔들 메이커였는데, 가장 유명한 남자는 로비 윌리엄스. 니콜은 2002년 아들인 진 갤러거를 낳는다. 니콜을 떠올리며 쓴 노래가 리암이 작곡한 곡 중 높은 평가를 받는 Songbird. 둘의 전적이 전적인지라 둘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의심스러웠지만, 놀랍게도 적어도 약 10년간 리암은 착실히 정착하여 2008년 2월 정식으로 결혼하며 잘 살았다. 그러나 2010년부터 리암의 바람기가 다시 발동을 하며 2010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 이후 여기자 리자 고바니와 외도 관계를 가지며 2013년 1월 딸 젬마를 출산했다. 이후 비디 아이의 매니저였던 데비 귀더와 교제를 시작하고 2014년 4월 니콜과 이혼한다. 2019년 현재까지도 데비와 동거하며 함께 조깅도 하고 나름 잘 지내는 듯 하지만, 니콜과의 안정적인 결혼 생활이 불륜으로 끝이 난 것에 충격을 받은 팬들은 여전히 불안해 하는 듯. 그러나 리암이 데비에게 청혼했다고 한다! 결혼은 2020년 여름에 한다는 것 같다.
여자 관계와는 별개로 아이들과는 잘 지내는 듯 하다. 리암의 인스타그램은 오직 자식 3명만 팔로우하고 있다(2020.09 현재 오아시스의 기타리스트였던 폴 본헤드 아서스 또한 팔로우하고있다). 몰리가 성인이 되고부터는 가족 다같이 휴가를 가고 있다. 아들 레논이 모델로서 첫 캣워크를 가지자 손수 트윗까지 올려주기도 했으며 두 형제끼리도 자주 만나며 잘 지내는 듯. 몰리 또한 두 형제들과 자주 교류 중.
진은 기타와 드럼을 치고 최근 밴드를 꾸렸다. 목소리가 리암의 전성기와 정말 비슷하다.
레논과 아나이스는 어렸을 적 갤러거 형제가 사이가 좋을 적 교류를 가졌었고 아나이스는 몰리와도 만난 적이 있다.
혼외자식인 몰리는 현재 모델로 활동 중이다. 양육권은 리사가 갖고 리암은 양육비를 주며 가끔 얼굴을 보던 사이였으나 리사와 사이가 틀어지고 이후는 못 봤으나 몰리가 성인이 되고 2018년부터 교류를 가지고 있다. 몰리의 어머니 리사 무어리시는 몰리를 낳고 후에 피트 도허티와의 사이에 아들 아스틸을 낳는다. 몰리는 독립전까지 이부 동생과 엄마와 같이 살았다. 이 관계 때문에 리암은 몰리가 어릴 적 몰리를 보러 리사네 집에 왔다가 집 앞에서 피트와 싸운 적도 있다.

9.4. 영화 관련


2010년 5월 7일 비틀즈와 관련된 영화를 제작할 것을 밝혔고, 그 해 칸 영화제에서 공식적인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영화 프로듀싱까지 하는거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앤드루 이튼이라는 공동 제작자와 함께한다. 영화를 위해서 1 Production이라는 회사까지 설립했다고.
영화의 이름은 '''The Longest Cocktail Party'''로 애플 레코드 홍보부 부장으로 일했던 Richard DiLello의 동명의 회고록이 원작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비틀즈가 직접적으로 출연하는 영화는 아니고, 비틀즈와 관련된 '애플 레코드'의 이야기가 영화의 핵심이다. 자세한 내용(내셔널 지 기사)
대본은 영국 Channel 4의 시트콤 Peep Show의 각본을 썼던 제시 암스트롱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7~80년대, 일명 매드체스터라고도 불린 맨체스터의 음악 신에 대해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 24 Hour Party People을 감독한 마이클 윈터바텀이 이 영화의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출연 배우는 현재 미정.
그런데 본인 말로는 조니 뎁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는 했다. 두 사람이 친구 사이[54]라고는 하지만 과연...
사샤 바론 코헨이 리암갤러거를 모티브를 한 캐릭터를 맡은적이 있다.###
2019년 6월 7일에 리암의 다큐맨터리가 개봉한다.(!) 영어 제목은 'As It Was'. 한국에서는 엔케이컨텐츠에서 수입해서 '리암 갤러거'라는 제목으로 2020년 3월 12일에 개봉했다. 러닝 타임은 약 85분정도.

10. 관련 문서 및 외부 링크


  • 브릿팝
  • 노엘 갤러거
  • 오아시스
  • 비디 아이
  • 프리티 그린
  • 리암 트위터
  • 캐세이패시픽항공[55]
  • 리암 갤러거 마이너 갤러리
  • 공식 사이트

[1] 절대로 William이라 쓰지 않고 Liam이라고 쓴다. 심지어 공문서에서도 꿋꿋하게 Liam이라고 적는다. 참고로 리암이란 이름은 William의 아일랜드식 변형인 Uilliam의 애칭이다. 갤러거란 성과 함께 그의 뿌리를 나타내주는 좋은 지표.[2] 본인은 스스로를 완벽한 잉글리시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국적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인터뷰 질문에 나는 잉글랜드인이라. 라고 답하는가 하면 트위터에서 러시아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을 응원한 적이 있었는데 한 팬이 'Irish blood, English heart"라고 하자 아일랜드인인건 내 부모님이고 나는 잉글랜드인이다 라고 화내기도(...)[3] 아버지와 리암이 통화를 한 녹음본이 당시 언론을 통해 공개가 된 적이 있었는데, 통화 내용을 보면 아버지가 안부를 묻지만 대충 대답하고 공연에 갈려고 했는데 표가 없다고 말하자 리암은 '''안오는게 좋아. 호텔 로비에서 나한테 걸리기만 한다면 니 X같은 다리를 부셔버릴거니깐'''이라고 욕하면서 끊는다.[4] 참고로 폴은 페기 여사와 더불어 노엘과 리암 모두와 교류하는 유일한 가족이다. 노엘의 솔로 투어에서 디제잉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주로 리암과 동행하며 동생의 공연 사진을 찍고 있다. 조카들(몰리, 레논, 진)의 사진도 종종 올라온다.[5] 여기에도 재미있는 뒷담이 있는데, 영화 슈퍼소닉에서 말하길 학교다닐때만 하더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였고 심지어 밴드하는 애들은 약쟁이(당시 힙스터들의 이미지가 겹쳐진듯 하다)나 이상한 애들로 보고 욕하거나(...)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도중 어떤 학생이 와 '''망치로 리암의 머리를 후려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이후로 갑자기 음악이 좋아졌다고(...) 여담이지만 노엘 자신은 알리바이가 있다며 안그랬다고 했는데, 후에 말하길 " 당연히 잘해야지. 머리에 음악을 박아넣어 줬으니까 "라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6] 참고로 부른 노래는 솔로 앨범에 수록될 Bold라는 노래이다. 솔로 투어 전에는 It's Alright Now로 예측되었던 곡.[7] 링고 스타의 아들. 오아시스에서 객원 멤버로 드럼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더 후에서 1996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참고로 이전 서술에는 정식 멤버라는 언급이 있었는데, 실제로 객원 멤버 시절 다른 멤버들이 정식 가입을 권했으나 본인이 거절했다고.[8] 콜드플레이, 저스틴 비버, 로비 윌리엄스, 케이티 페리, 마일리 사이러스, 퍼렐 윌리엄스, 그리고 테러 현장에 있었던 아리아나 그란데 등 현재 가장 잘나가는 아티스트들을 대거 초청한 큰 공연이었다.[9] 2017년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서 불렀다고 한다.[10] 1집이 5, 60년대 로큰롤의 색체가 있다면 이번 앨범은 스투지스와 섹스피스톨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11] 여담으로 이 곡은 지난 수년간 리암 혹은 비디아이의 곡들 보다 음이 높은 편에 속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브에서 막힘없이 끝까지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암이 목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부분.[12] 오아시스 1집 일본반에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던 곡. 참고로 오아시스 시절에는 노엘이 불렀던 곡이고, 팬들 사이에서는 리암이 불렀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의견이 꽤 많았던 곡인데, 리암이 기어이 팬들의 소원을 이루어주었다.[13] 서로를 쓰래기라 부르며 맨날 까대는 노엘조차도 리암의 작곡실력에 대해선 별 코멘트나 비난을 안했다.[14] 이게 뮤지션의 가장 근본적인 중요한 점이다. 제 아무리 유명한 밴드의 멤버라도 그 밴드의 인기가 오로지 자신의 재능으로 그 위치에 올라갔다 생각해서 밴드 탈퇴 후 개인 솔로/밴드 활동할 때 예전같은 인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암이 단순히 노래만 잘부르는 보컬리스트였다면 비디 아이나 솔로활동을 할 엄두조차도 못냇을 것.[15] 재밌게도 1985년 우리나라 밴드 들국화의 라이브를 보면 전인권 씨가 리암 갤러거 처럼 뒷짐을 지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https://youtu.be/hJtvvsKWo2E[16] 여담이지만 리암도 이 폼이 목에 무리를 줬는지 1집과 2집 사이 라이브 콘서트에서 자주 쉬거나 노래를 뛰어넘기도 했다고 한다. 그대신 노엘이대신 부르기 시작했고, 2집에 와서는 don't look back in anger등의 노래도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서브보컬로 거듭났다.[17] 유튜브를 뒤져보면 마이크를 스탠드에서 아예 빼서 손으로 잡고 노래를 부르는 정말 희귀한 영상도 있기는 하다. ##[18] 형인 노엘이 작곡에 천재성을 보인다면, 리암은 보컬 그 자체에 천재성을 보였다. 즉, 노래를 자기 노래로 만들 수 있는 일명 곡 해석 능력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는데 그 일화로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 녹음 당시 노래를 한번만 듣고도 끝까지 열창할 수 있어서 하루에 한 곡씩 녹음하는 신기를 보여줬다고 한다.[19] 참고로 이 커버 버전의 경우, Within You Without You의 멜로디에 Tomorrow Never Knows의 퍼커션을 얹었다. 이 형식은 the LOVE show/album을 프로듀싱한 자일스 마틴(Giles Martin)에게서 따왔다.[20] 오아시스 1집 Definitely Maybe의 프로듀서[21]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아니라 안데르센 동화에 등장하는 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심지어 죽어가는 황제까지 살렸다는 새다. 서양에서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에게 나이팅게일 같다는 비유를 쓴다.[22] Mad fer it은 환장하다,미쳐있다란 뜻을 가진 영국의 속어 중 하나이나 리암이 자주 사용함으로써 오아시스를 대표하는 유행어가 되었다.[23] 얼마나 망가졌었는지는 하단의 리암의 목소리 변화 영상 중 2006년 부분 참조. 참고로 2005년 맨체스터 라이브 영상을 보면 전성기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한 목상태를 보여주었는데, 그 목소리가 1년 사이에 다 망가졌다.[24]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물론 리암의 보컬이 시간이 갈수록 달라진 이유도 있지만, 본인 또한 자신의 일명 '예쁘고 고운 목소리'를 크게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거칠고 그르렁대는 스타일을 추구했던 점도 있다.[25] 실제로 96년 우트헤르트에서 한 라이브 공연에서 Some Might Say의 후렴 부분과, Live Forever에서 2절 후렴을 부르다 음이탈이 나버리는 동생을 대신하여 상대적으로 고음이 쉽게 가능했던 형인 노엘이 대신 부른다. [26] 역시나 완전히 끊은 건 아닌 듯. 술을 먹는 것이 해외 팬에 의해 목격되었다고... 다만 라이브를 하거나 음악작업을 할 때는 확실하게 금주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27] 물론 투어 중반 리암이 감기에 걸렸을 때는 노래 한곡 부르고 기침하는 등 감기의 여파로 잠시 거칠어지긴 했다. 그러나 그 감기에 걸린 목소리마저도 오아시스 후기 때보다 좋았다...[28] 이 곡은 싱글 Four Letter Word의 B-side로 수록되었는데, 차라리 다음 정식앨범에 넣지 왜 B-side에 좋은 곡을 넣어버리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그러고 싶어서"'''라고 답한 리암 갤러거. 신인이래봤자 결국 갤러거는 갤러거다.[29] 노엘은 쉰이 넘은 현재까지도 테너이다.[30] 애초에 이런 창법이 리암의 목소리를 갉아먹는 주 원인중 하나였지만.[31] 6~7집 시절때는 이들 곡의 소화가 거의 불가능했다.[32] 참고로 리암 갤러거가 2017년 12월에 전문적인 목 관리를 받고 있음을 인증했었다. 그 영향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아직 Rock'n Roll Star의 후렴구는 소화가 힘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들어서는 대부분의 후렴구를 깔끔하게 소화해내고 있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호흡이 딸리는 모양.[33] 2004년에 'Velvet Building'이란 이름으로 겜과 함께 만든 데모가 다시 쓰였다. 가사는 겜과 앤디가 이후 이 곡을 다시 작업할 때 공동으로 작사한 것이다.[34] 리암은 Shortlist 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이 형제에 대한 곡이며, 노엘(our kid)에 관한 곡이라고 밝혔다. 그러다 나중에는 폴 갤러거(큰형)의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둥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35] 바만 비틀즈 바인 것이 아니다. 그의 집 전체가 비틀즈 하우스다. 예전에 그가 연습실에 소더비 경매 카탈로그를 갖고 와서는, "내가 존 레논 욕조를 사야 될까? 6천 파운드라는데?"라고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그걸 산 것 같지는 않다.[36] 후술하겠지만 90년대 오아시스가 한창 잘나갈 때 조지 해리슨이 "오아시스는 30년 후면 잊혀질 밴드이고 리암은 쓸모없는 놈이다"라며 오아시스와 리암을 디스했는데, 이에 리암은 발끈했는지 "내가 싱어송라이터로써의 비틀즈와 조지 해리슨은 아직 좋아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젖꼭지 같다(...)'''"고 맞디스하였다.[37] 영국의 The Cult가 아니다. 미국 뉴욕의 혼성 듀오[38] 참고로 '''2011년까지도 OK Computer를 안 들어봤다고 한다'''.[39] 노엘이 라디오헤드를 비판하는 것과는 좀 다른 맥락이다. 노엘은 라디오헤드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음악의 방향성이나 톰 요크의 폐쇄적인 태도가 싫다는 입장인 반면, 리암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싫어한다고 하는 거니까..[40] 원래 예정되었던 5월 공연이 토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연기된 탓도 있다. 처음 5월 공연의 예매율은 양호했다[41]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의 앨범 커버가 뉴욕 사진이다.[42] 사실 리암은 오아시스 데뷔부터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많이 겪었기 때문에 본인한테는 나름 익숙한(?) 광경이었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 몸에 배어있다.[43] 사실 야상은 60년대에 모드족들이 입기 시작하면서 록음악에서는 굉장히 오래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드족에 있어서 가장 흔한 클리셰는 "스키니 진에, 닥터마틴(혹은 클락스) 부츠에, 프레드페리 셔츠에 야상"일 정도니까. 그리고 알다시피 오아시스는 멤버 모두가 60년대 음악 빠이기 때문에, 말 다했다.[44] 심지어 이 야상 점퍼를 2009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때도 입었는데, 그 삼복 더위 속에서 공연을 쉴새없이 달리는 와중에도 한번도, '''단 한번도''' 벗지 않았다. 정말 단 한번도 벗지 않았다. 이미 등 전체가 땀으로 흥건했는데도 벗지 않았다. 흠좀무.[45] 하지만 최근 트위터에 반삭을 너무 오래한것 같다며 다시 2000년 초반 당시의 장발로 기르고 있다고 한다! [46] '홀랜드 에스콰이어'의 디자이너. 홀랜드 에스콰이어는 피트 도허티, 레이저라이트 등 수많은 록스타들의 단골 브랜드라고.[47] 물론 직접 디자인하지는 않고, 본인이 어떤 옷이나 스타일을 제시하면 디자이너가 그를 토대로 다시 디자인한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전속 디자이너 팻 솔터와 필릭스 블로에게 대부분 일임되어 있다.[48] 사실 영국은 각 지역마다 지역색이 워낙 강하고 방언도 독특해서 악센트를 못알아 듣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전 리버풀 부주장인 제이미 캐러거는 리버풀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같은 영국인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스코트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트레인스포팅이라는 영화는 사람들이 스코트랜드 사투리를 못알아들을까봐 미국 개봉시 몇몇 부분을 더빙했어야 했다.[49] 같은 직종에서는 엘튼 존이 55위, 믹 재거가 83위였다. 참고로 1위는 토니 블레어 총리.[50] 이 후 Wibbling Rivalry란 인터뷰에서 난 이 행동(페리 난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리암이 말 하자, "여객선에서 쫓겨난게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면 가서 웨스트햄이나 응원하고 '내' 밴드에서 꺼져 버려. 여객선에서 쫓겨나는 게 락앤롤인줄 알지?"라며 노엘은 불같이 화를 낸다.[51] http://www.mtv.com/news/1425554/oasis-liam-hurls-nipple-at-beatles-harrison/[52] 실제로 이 루머가 있긴 했으나, 아나이스가 자라면서 '''금발 여자 노엘'''이 되며 깔끔하게 사라졌다[53] 당시 영국 최고의 섹시 아이콘. 리암이 학창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54] 조니 뎁이 오아시스 3집 수록곡 Fade In-Out에서 기타를 친 인연이 있다.[55] 리암 갤러거는 이 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어 이 회사의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다. 이유는 1998년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있던 중 폭언한 사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