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왕

 


'''백제 제7대 건길지'''
'''沙伴王 | 사반왕'''
'''시호'''
사반왕(沙伴王)
'''성씨'''
부여(扶餘)
''''''
사반(沙伴) / 사비(沙沸) · 사이(沙伊)[1]
'''부왕'''
구수왕(仇首王)
'''생몰년도'''
음력
? ~ ?
'''재위 기간'''
음력
234년 (약 12개월 미만)
1. 개요
2. 생애
3. 삼국사기 기록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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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의 제7대 국왕이자 건길지.
즉위 직후 폐위당한 것으로 보인다. 발해성왕, 신라애장왕, 고려헌종, 조선단종의 대선배급 이력을 가진 왕이기도 하다.
이름인 사반(沙伴) / 사비(沙沸)에서 사(沙)는 고유어 '''새(로운 것)'''을 표기할 때 자주 쓰던 글자이고, 반(伴)과 비(沸)는 상고한어에서 각각 *par[2], *pɯd[3]로 발음되었던 점을 생각하면 고유어로 '''새벌'''이라고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벌은 인명보다는 지명에 적합한 명칭인 것이 특이한 점.

2. 생애


구수왕장남으로 234년에 즉위했으나[4] 나이가 어리고 정사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금방 작은할아버지인 고이왕에 의해 폐위당했는데 사실 정확한 재위 기간은 불명확하나 거의 즉위 직후에 폐위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아예 왕 취급을 해주지 않으며 사반왕을 위한 별도의 단락도 없이 이 대목에서만 나온 후 구수왕에서 고이왕으로 바로 넘어간다.
온조(溫祚)계 왕족 출신이며 초고왕계 세력에 속해 있는데 사반왕 대에 이르러 초고왕계 세력이 몰락했고 이로 인해 고이왕이 즉위한 것으로 보는 학설이 있다. 제대로 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서 고이왕이 즉위한 이후 사반왕이 언제 승하했는지는 불명.
삼국유사》에는 이설로 239년 사망하고 고이왕이 뒤이어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사비왕(沙沸王) 【사이왕(沙伊王)이라고도 한다.】구수왕(仇首王)이 돌아가시자 대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너무 어려서 정사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 폐위시키고 고이왕(古爾王)을 왕으로 삼았는데, 혹은 경초(景初) 3년 기미[5]

(서기 239년)에 왕이 세상을 떠나자 고이왕이 왕위에 올랐다고도 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 남부여ㆍ전백제ㆍ북부여'''

고이왕은 일단 기록상으로는 당시 정권을 잡던 왕족의 먼 방계 출신에 불과했는데 그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정치적 세력의 교체로 이해되고 있다.

3. 삼국사기 기록


왕 순서에서 사반왕이 아예 없다. 구수왕 다음 기록이 고이왕 기록으로 삼국사기에서 사반왕을 보려면 고이왕본기의 첫 부분을 찾아야 한다.

'''一年 고이왕이 즉위하다'''

고이왕(古尒王)은 개루왕의 둘째 아들이다. 구수왕이 재위 21년에 사망하자, 그의 맏아들 '''사반'''이 왕위를 이었으나 나이가 어려 정사를 잘 처리하지 못하였으므로 초고왕의 동복(同腹) 아우 고이가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고이왕'''

위 항목에서 나오는 사반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사반왕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덕분에 재위 기간이 짧은 백제의 여러 왕들 나무위키 문서에서 사반왕보다는 낫다는 식의 구절이 적혀 있다.
다만 재위 기간이 짧기는 해도 후손은 남겼다. 신찬성씨록에 半毗氏라는 가문이 사반왕을 시조로 받드는 가문으로 적혀져 있다.

4. 기타


제11대 비류왕이 구수왕의 2남으로 기록되어 있어 기록상으로는 사반왕의 동생이 된다. 다만 비류왕의 비정상적인 나이와 행적을 보면 아닐 가능성이 크다.

[1]삼국유사》.[2] 사실 이건 원시한장어 재구음이다. 상고한어에서 중고한어로 넘어갈 때 대부분의 -r이 -n으로 바뀌었는데 이 한자도 그 때 변한 것인지는 불명.[3] 여기서 -d는 전호현상으로 인해 고유어에서는 -l로 발음[4] 구수왕과 나이 차가 많이 나서 후비에게 얻었다는 추측이 가능한 만큼 구수왕의 유언으로 즉위했으나 정통성을 주장하는 고이왕에 의해 어린 나이에 왕위에서 쫓겨난 듯 하다.[5] 원문은 낙초 2년 기미(樂初二年己未)로 되어있다. 위명제(226~239) 시기에 쓰인 연호 경초의 오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