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이아 공국

 



'''사보이아 공국'''
'''Ducà 'd Savòja'''
'''Ducato di Savo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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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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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년 ~ 1847년
위치
이탈리아 북부 ~ 프랑스 사보이
수도
샹베리, 토리노
정치체제
군주정
국가원수
공작
언어
피에몬테어, 프랑코프로방스어, 라틴어
종족
피에몬테인
종교
가톨릭
주요사건
1416년 공작 서임
1536년 ~ 1559년 프랑스의 강점
1720년 사르데냐 왕국 성립
1847년 사보이아 공국 해체
통화
스쿠도
성립 이전
사보이아 백국
멸망 이후
사르데냐 왕국
1. 개요
2. 역사

언어별 명칭
피에몬테어
Ducà 'd Savòja
프랑코프로방스어
Ducato di Savouè
라틴어
Ducatus Sabaudiae
이탈리아어
Ducato di Savoia
프랑스어
Duché de Savoie
영어
Duchy of Sav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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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반도 북부에 위치했던 공국이다. 프랑스 왕국부르봉 왕조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합스부르크 왕조 간의 대립을 교묘히 이용해 영토를 넓혔다. 나중에 사르데냐 왕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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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대립교황으로도 유명한 아메데오 8세 디 사보이아(Amedeo VIII di Savoia)가 신성 로마 황제로부터 공작위를 받음으로써 사보이아 공국이 성립되었다. 이탈리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1536년 프랑스군이 사보이아를 공격하여 점령했고, 밀라노 공략의 전초 기지로 삼으려 했다. 이후 스페인군에 입대한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공작이 벨기에 지역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생캉탱 전투에서 공적을 세운 대가로 1559년 사보이아 공국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의 뒤를 이은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는 프랑스, 스페인과 번갈아 동맹을 맺어가며 몬페라토 변경백국, 제노바 공화국을 상대로 확장을 하려 시도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국 30년 전쟁 중 프랑스와 스페인군이 사보이 영내에서 교전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프랑스는 론 강 유역의 사보이아 공국을 빼앗아갔다. 이 시기에 종교개혁의 여파로 사보이는 발도파를 진압하는 일에도 국력을 낭비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나자 사보이아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프랑스의 편을 들어 참전했으나 외젠[1]이 이끄는 오스트리아 군대가 밀라노에 도착하자 오스트리아의 편에 섰다. 이에 프랑스군이 토리노를 포위하였고,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군을 물리쳐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종전한 이후 사보이 공국은 시칠리아 왕국을 포상으로 받아 사보이 공작은 시칠리아 왕을 칭하게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국 동맹 전쟁이 발발하여 스페인에게 시칠리아 통치권을 빼앗겼고 결국 시칠리아를 탈환한 오스트리아에게 반강제적으로 내주고 대신 사르데냐를 얻었다. 이후 사보이 공은 사르데냐 왕을 칭하게 되었고 이후에도 사보이아 공국은 1847년 사르데냐 왕 카를로 알베르토가 사보이아와 사르데냐를 하나의 영토로 완전히 통합시킬 때까지 계속 유지되었지만 편의상 사르데냐 왕국이라 묶어 부르는 경우가 많다.
[1] 같은 가문의 사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