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난

 

1. 개요
2. 목록
2.1. 한국사
2.2. 일본사
2.3. 중국사
3.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을 비유하는 말
3.1. 현대그룹 (2000 ~ 2010)
3.2. 삼성그룹 (1969 ~ 2014)
3.3. 롯데그룹 (2015 ~ 2020)
3.4.1. (1차: 2002 ~ 2016)
3.4.2. (2차: 2019 ~ 진행 중)
3.5. 해외의 사례
3.6. 참고 자료


1. 개요


왕자를 중심으로 왕위 계승권을 두고 벌어진 반란내전들.
대부분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난 왕자가 형제(주로 이복형제)를 죽이고 아버지인 임금은 폐위시키는 전개가 많고 당연히 막장 패륜적인 결말이 난다.[1]
왕자의 반란으로 유명한 사례는 후백제신검이 이복동생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을 폐위시킨 신검의 난, 당태종이 형 이건성을 죽이고 아버지 당고조를 폐위시킨 현무문의 변이 있고, 한국에서 주로 왕자의 난은 조선 초기에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 이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을 아울러 가리킨다.

2. 목록



2.1. 한국사


  • 조선
    • 1차 왕자의 난 (1398)[2]
    • 2차 왕자의 난 (1400)
    • 계유정난(1453)

2.2. 일본사



2.3. 중국사



3.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을 비유하는 말


재벌 2세들이 아버지의 재산 상속이나 경영권 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을 때 마치 왕자들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습과도 같다 하여 이런 별칭이 붙기도 한다. [3]
현대그룹삼성그룹의 왕자의 난은 이 드라마에서 다루려다가 외압과 시청률 부진으로 인해 삼성 편만 다루고 흐지부지되었다(...).
당연히 서양에서도 사람사는 곳인 만큼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긴 마찬가지인데, 대표적인게 미국 비상장 기업중에서 카길 다음으로 2번째로 큰 코크 산업의 경영권을 두고 형제 4명이 두 파벌로 갈라져서 경영권을 두고 다투었다. 그리고 패배한 두명이 이긴 두명에게 자신의 지분을 거의 헐값에 넘겨주는 수준으로 마무리된 적이 있었다. 참고로 이긴 두 형제가 바로 미국 공화당의 물주중 하나인 코크 형제다.

3.1. 현대그룹 (2000 ~ 2010)


현대그룹의 경영권 계승을 둘러싸고 정주영의 아들들이 벌인 싸움을 가리킨다. 정주영의 별명이 '''왕회장'''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재벌가의 왕자의 난을 언급한다면, 대개의 경우 현대그룹의 것을 뜻한다. 그만큼 가장 유명한 케이스. 한때 재계 1위에 등극한 굴지의 대기업이었지만 경영권을 둘러싸고 왕자들이 격돌하게 되었고 그 결과 거대한 제국이었던 현대가 해체되어 여러 개로 나눠진 것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인 듯.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4]인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5남인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의 패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간 사이 3월 14일 밤 기습적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속보직시킨다. 이익치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신그룹 일원이자 정몽헌 회장의 측근이었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자동차 부문을, 정몽헌 회장은 건설·전자·증권 부문을 가져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는 장남의 사망 이후 차남으로써 실질적인 장남의 위치에 있는데다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당시 아버지 대신 총대를 매고 옥살이까지 했을 정도로 그룹을 위해 헌신해왔던 정몽구의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 그때 현대차의 위상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반면[5]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는 국내 최고 기업들[6]로 정주영 명예회장은 처음부터 경영 능력이 두드러졌던 정몽헌을 특히 아꼈다고 한다. 이에 자동차만으로는 향후 성장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던 정몽구 회장 측은 현대증권으로 대표되는 그룹의 금융 부문을 노리고 동생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배제하려 했던 것이다.
3월 24일 귀국한 정몽헌 회장은 자신의 측근이자 아버지의 가신그룹인 이익치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모아 이익치 회장의 인사 발령을 무효화하고 정몽구 회장의 그룹 공동회장직을 박탈한다. 정몽구 회장은 26일 아버지를 만나 회장직 복귀 명령을 받아내지만 몇 시간 뒤 정몽헌 회장과 가신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다시 그 명령을 무효화시켰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월 27일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접 현대경영자협의회에서 ‘정몽헌 단독 회장 체제’를 공식 승인하면서 왕자의 난은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정몽구 회장은 9월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가지고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실시해 현대차그룹을 만든다. 당시에는 누구나 정몽헌이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자 상징인 현대건설이 2000년 10월 1차 부도를 맞고 휘청거리다 결국 2001년 8월 채권단으로 넘어간다. 현대전자도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를 무리하게 인수했다 2000~2001년 반도체시장이 불황을 맞자 빚 10조 원을 지고 결국 채권단으로 넘어가 버렸다.[7] 심지어 정몽헌 회장 본인도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대북사업과 관련해 4억5000만 달러(약 5000억 원)를 북한에 은밀히 송금한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 4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투신자살하고 만다.
반면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쾌속 순항을 계속하며 재계 서열 2위 지위를 굳힌다. 이 왕자의 난 등을 거치며 한국 최대 기업 제국이었던 현대그룹은 현재의 현대그룹(현정은-5남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대자동차그룹(차남 정몽구), 현대중공업(6남 정몽준), 현대백화점(정지선-3남 정몽근 회장의 장남), 현대해상화재보험(7남 정몽윤), 현대기술투자(8남 정몽일)[8] 등 몇 덩어리로 갈라져 버렸다.
이 쪼개진 그룹과 쪼개진 집안은 2010년까지 유지되다가 그해 발생한 현대건설[9] 인수전이라는 개판 집안싸움의 원인이 된다. 자금력에서 열세였던 현대그룹이 훨씬 높은 입찰가를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으나 언론과 정치권에서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다소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박탈된다. 결국 승자는 차남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이 되었다.[10][11] 고우영 화백이 수레바퀴에서 살짝 패러디하기도 했다.
2018년 기준으로 현대자동차는 '''재계 2위''', 현대중공업은 '''재계 10위''', 현대백화점은 '''재계 21위''', 현대그룹은 '''중견기업'''이다. 현대그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자산총액으로 보았을 때 삼성그룹에 밑돌면서[12] 3위 이하와는 확실하게 격차를 벌릴 수 있었을 것이다.

3.2. 삼성그룹 (1969 ~ 2014)


1969년 말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버지를 회장 자리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투서를 날리면서 삼성가가 뒤집어졌던 사건.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패륜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이병철이 이 사실을 알고 이창희를 완전히 내쫓아버리면서 삼성가의 왕자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다.
문제는 그 후폭풍인데, 장남인 이맹희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진실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병철은 장남과 차남 두 아들을 사실상 호적에서 파버리고(...) 삼남인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이병철과 이창희가 세상을 뜬 이후에도 이 사건은 이맹희와 이건희의 오랜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당연히 이건희의 삼성그룹과 이맹희의 CJ그룹 간의 대립 양상도 매우 강해졌다.
2012년 상속 관련 소송 과정에서 이맹희와 이건희 사이에 오간 발언 내용.

이맹희: 요즘 건희가 어린애 같은 말을 해서 몹시 당황했다. 건희는 항상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 한 푼도 안 주겠다는 탐욕이 이번 소송을 초래했다.

이건희: '''이맹희 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 하던 양반이다.''' 30년 전에 나를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했다. 청와대 그 시절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했던 양반이다. 우리집에서는 이미 퇴출당한 양반.

이 과정에서 이건희는 형제들의 집에 감시용 CCTV를 설치하고, 본인에게는 조카인 이맹희의 아들을 사람을 붙여 미행하는 등 그야말로 불구대천지수 사이가 되었다.
2014년 이맹희는 형제 간의 우애가 유산보다 중요하다며 상고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 해 이건희가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이맹희마저 이듬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맹희 본인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소송 따위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현재는 이들의 후손들도 왕래가 없이 거의 남남으로 지내고 있다.[13]

3.3. 롯데그룹 (2015 ~ 2020)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前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의 경영권 다툼. 롯데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준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롯데그룹/경영권 분쟁 문서 참고.

3.4. 한진그룹



3.4.1. (1차: 2002 ~ 2016)


현대나 삼성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0년대 초부터 상당히 심각했던 재벌가 분쟁이다.
창업주 조중훈(1920~2002)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조양호(1949~2019), 조남호(1951~), 조수호 (1954~2006) , 조정호(1958~) 중에서 장남 조양호는 생전 3남 조수호와 사이가 좋았던 반면, 나머지 두 동생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특히 기업 상속은 대한항공은 조양호, 한진중공업은 조남호, 한진해운은 조수호, 한진투자증권은 조정호가 가져갔다.
조중훈 회장이 작고한 후 네 아들은 계열사를 분할 상속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알짜기업[14]을 가져간 조양호 회장측이 사이가 좋은 조수호씨에게 주력 업체의 하나였던 한진해운를 넘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나머지 두 동생과 거의 원수급으로 사이가 나빠졌고, 나머지 두 형제는 자기가 가져간 회사에서 해외출장시 대한항공 대신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도록 할 정도. 이에 발끈한 조양호의 대한항공은 조정호의 메리츠 보험(한진투자증권)에 든 보험도 모두 해지했다.
한편 3남인 조수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부인인 최은영이 한진해운의 경영을 맡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경영에 문외한인 사람이 맡았다가 알짜기업임에도 결국 2017년 그대로 망해버렸다.
조양호의 대한항공과 조남호의 한진중공업으로 대표되는 한진그룹의 상속분쟁은 현대그룹 왕자의 난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다. 삼성-CJ 간에도 그나마 삼성 라이온즈 공통지분이란 마지막 공통점이 하나 있고[15] 현대그룹은 자기들끼리 회사 인수전이 지금도 활발하다. 즉 자신야말로 현대그룹의 정통임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 하지만 한진그룹 자손들은 동족혐오 수준의 인수전조차 안 하려 들며, 정말 남남처럼 지낼 정도라서 삼성, 현대보다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아예 선친인 조중훈 회장의 제사도 따로따로 지낼 정도라고 한다.
차남이 가져간 한진중공업은 회사 그 어디에서도 우리가 한진그룹의 정통 계파임을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없다. 한진중공업 입장에선 한진그룹과 그 어떤 이유로도 안 엮이고 싶어하며 '''한진그룹의 정통성마저 부정'''하고 있을 정도로 사이가 나쁘다.[16]

3.4.2. (2차: 2019 ~ 진행 중)


2019년 조양호 회장이 작고하자, 그 자식들 사이에서도 경영권 분쟁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기어이 조현아조원태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이쪽은 누나와 남동생의 관계이기 때문에 남매의 난이라고 부른다.
2020년 3월 27일 일단 1차전에서는 조원태가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가을 겨울쯤 조현아가 다시 세를 불려 재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3.5. 해외의 사례


  • 구찌(이탈리아) - 창립자 구찌오 구찌 사후 첫째 아들인 알도 구찌와 셋째 아들인 로돌프 구찌가 각각 회사 지분의 50%을 받아 2세 경영을 했는데 이들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더 문제는 3세대 후에 터졌는데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올로 구찌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찌의 저가라인인 파올로 구찌를 만들었고 로고 로열티만 있는 라이센스 제품들을 많이 찍어내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 슈리니바스 수간달라야라(인도) - 나그참파, 슈퍼히트 의 제조사로 유명한 회사. 창립자인 사티암 세티의 사망 이후 그의 두 아들이 형제의 난을 일으켰고, 이후 형인 발라크리쉬 세티는 방갈로르에서 아버지가 하던 전통방식으로 향을 제조하고 있고, 동생인 나가라즈 세티느 뭄바이에서 조금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제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두 회사에서는 같은 나그참파 등을 판매하고 있지만, 스티커 등이 다르고 향기도 다르다.
  • 릴라이언스 (인도) - 현재 인도 최고 부자인 무케시 암바니의 석유화학 및 통신 회사. 2002년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동생 아닐 암바니와 경영권을 다투고 분쟁이 일어났는데 2004년 어머니의 중재로 장남은 핵심 주력사업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와 섬유, 화학 사업 등을 가지고 동생은 그 외 캐피털과 에너지 사업, 통신 등 기존 릴라이언스 그룹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분야에는 진입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 합의는 통신 사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게 된 무케시 암바니에 의해 곧 깨지게 된다. 2010년 무케시 암바니는 인포텔 브로드밴드를 7억 달러에 인수하고 사명을 지오 인포컴으로 바꾸면서 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16년 무료 4G 인터넷을 제공하는 등 엄청하게 저렴한 통신비로 승부하는 릴라이언스 지오 브랜드를 런칭하였다. 동생 아닐 암바니의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이 운용하는 기존 2G/3G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아 기존의 합의는 대충 주먹구구로 유지하긴 했다. 결국 경영 난조, 계속된 투자 실패가 개인적인 사치와 겹치면서 동생 아닐 암바니는 2020년 5월 개인파산 신청을 하게 된 반면 무케시 암바니는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갑부의 대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무케시 암바니의 재산은 2010년 초중반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통신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른 2016년 이후 큰 폭으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2020년 기준 인도 부호 1위, 세계 부호 5위에 오르게 된다. 현재 인도의 국력을 생각하면 인도에서 손 꼽는 부자는 전 세계적인 부자라고 봐야 한다.

3.6. 참고 자료


[1] 대개 아버지를 허울뿐인 상왕(상황)으로 올리고는 유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 여기 예시들 중 가장 유명한 왕자의 난. 한국에서 왕자의 난이라고 하면 이 사건을 일컫는 경우가 일반적.[3] LG는 구씨와 허씨의 관계를 정리하여 GS그룹으로 분리되었고 나머지 LG그룹 회장 직계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도 LS그룹, LF, 아워홈, LT그룹, 희성그룹을 가지고 분리됬으며, SK그룹은 사소한 잡음은 있어도. 그룹의 대권은 최태원이 가지고 있다.[4] 1982년 장남인 형 정몽필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실질적으로 장남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정몽필은 아들이 없었다.[5] 더군다나, 현대차는 1998년에 기아차를 인수했고, 1999년에 정몽구가 이어받았으니, 정몽구의 손에 들어온지 1년밖에 되지 않던 상황.[6] 특히나 현대건설은 전성기 때에 중동에서 많은 공사 수주를 맡았던 우량건설사이고, 현대전자도 LG 반도체를 통합해서 삼성전자를 맹추격했다.[7] 이후 현대전자는 쪼개졌고 이런 저런 사정을 거쳐 팔려 나가거나 망했다. 유명한 현대전자 계열사는 중국에 팔려나간 후 중국의 디스플레이 시장을 급성장 시켜버린 하이디스와,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더불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되는 하이닉스가 유명하다.[8] 다만 현대기술투자는 사실상 정몽준이 가지고 있었고, 정몽일은 경영만 맡았던 상황. 이후 2016년에 현대중공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돌아서면서, 정몽일은 현대기술투자를 받아서 분가했다.[9] 현대그룹의 모체로서 현대그룹의 정식 계승자라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는 이를 인수할 필요가 있었다.[10] "감개무량하다. 11년 만이다." 정몽구 회장이 2011년 4월 1일 계동 현대 사옥에 들어서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11] 사실 현대그룹 계동사옥은 현대중공업이 5개층을, 현대자동차가 10개층을 나눠서 소유했지만, 막상 그룹의 정통성과도 같았던 현대건설 자체는 소유하지 않았던 데다가 본인도 껄끄러운 기억이 있어서 오지 않았다. 이후 정통성과도 같던 현대건설을 완전히 인수하면서, 11년만에 계동사옥에 기분 좋게 들어선 것이다.[12] 삼성과 격차가 줄어들거나 추격될 일은 없다. 삼성도 신세계그룹, CJ그룹, 한솔그룹이 아직도 같이 있었다면 규모가 훨씬 컸을 것이다. 물론 갈등으로 갈라진 것은 아니고 이병철 회장이 임의로 가른 것이지만[13] 그래도 이맹희의 장례식장에 이건희의 자녀들이 모두 문상을 갔으며, 이건희의 장례식장에 이맹희의 아들인 이재현이 문상을 갔다. 친족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하는 듯하다.[14] 대표적으로 대한항공, 한진택배, 칼호텔, 한진고속(2006년 매각)[15] 지금은 삼성의 지분이 제일기획에 넘어갔지만 애초에 제일기획은 삼성의 광고회사다.[16] 이 나쁜 사이를 일조를 한 건 바로 그 잘난 장남의 . 하도 막장인 인성 때문에 '조카들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동생들이 하소연하자 분노한 조양호랑 대판 싸웠다는 얘기가 있다. 결국 이 의 사건사고로 인한 화병이 조양호 회장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조양호 회장이 상속에 대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기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자식들 간 경영분쟁이 예상되는데 못 키운 자식 감쌌다가 선친의 한진을 분해시키고 본인의 한진그룹마저 분해시킬 위기에 빠뜨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