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파 추리소설
1. 개요
일본 추리소설 문단에서 큰 흐름 중 하나. 일본 추리소설계의 흐름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본격 - 사회파 - 신본격&신사회파 미스터리의 순으로 큰 흐름이 변화해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격파와 신본격파의 주역이 아마추어 탐정이라면, 사회파 추리소설은 경찰이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사회파 추리소설은 리얼리티를 중시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담당하고 수사하는 팀은 경찰이라는 것을 반영한 것.
2. 시작
1950년대에 41세의 늦은 나이로 등단한 마쓰모토 세이초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의 일본 추리소설계는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나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탄생시킨 요코미조 세이시 같은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대표하던 작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주로 트릭과 사건 그 자체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본격 미스터리를 썼고, 이는 영미권의 추리소설계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는 원래 추리소설이 지닌 딜레마기도 했다. 추리소설 자체가 사건과 트릭, 그것을 눈치챌 실마리에 중점을 둔 일종의 퀴즈에 가까운 글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인문학적인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던 것.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는 사건에 있어 사람의 심리를 추리소설에 끌어들이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사건의 실마리 혹은 로맨스에 한정된 수준이었고 추리소설이 문학계에 인정받은건 레이먼드 챈들러에 이르러서였다.
등단 이전부터 이러한 탐정소설을 즐겨 읽었던 세이초는, 작품 내에 등장하는 인간과 그 인간성을 깊이 파고드는 추리소설을 쓰고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이러한 욕구가 집필 의지에 반영되어 그의 첫 단편 추리 소설 〈잠복〉이 발표됐고, 세이초 본인도 본격적으로 집필에 몰두하여 여러 편의 단편과 장편을 발표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붐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래에 설명할 이야기처럼 사회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사회파'라는 명칭을 붙였다.[1]
3. 의의
사회파 미스터리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이제껏 대개의 추리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거나 독특해야 하며, 사건 또한 어떤 특수한 집단 혹은 개인에게 발생하는 특이한 일들을 주로 다룬다는 게 보통의 인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일으키거나 또는 해결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지능이나 광기[2] 혹은 직관력이나 이성을 가진 사람[3] 인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그 외에 간접적인 사회나 당시 흐름은 간단히 설명되거나 보통은 생략되었다.
그런데 세이초는 사건의 배경을 당대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나 정치의 흐름을 스토리와 밀접하게 연관시켰고, 흔히 볼 수 있는 당시 사회의 여러 계층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또 종종 기발한 트릭들이 사용되고 사건이 중시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건의 주체가 되는 범인 혹은 가해자나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깊게 파헤치면서 그들의 심리나 동기에도 주목했다. 이러한 점은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깊이 공감하거나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하고 작품에 대해 더 몰입하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 또 작가로 하여금 사건과 트릭에만 구애받지 않고 좀 더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게 되는 토양을 형성했다. 이것은 추리소설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결과 일본 추리소설은 당시 문학계에 좀 더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4. 비판과 반론
그러나, 이러한 사회파 미스터리가 순기능만을 한 것은 아니다. 우선,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이자 거장이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성공 이후로 비슷한 작품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간단히 생각하면 초창기 한국 판타지가 드래곤 라자나 세월의 돌 같은 작품이 성공하면서 그 뒤로 중세유럽풍의 세계관'만' 끌여들어 쓴 양판소가 범람한 것처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질적 저하는 물론이고, 사건이나 그 사건 자체에 대한 내용보다는 단순히 등장 인물의 심리나 배경에 대해서만 논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실 이쯤 되면 이러한 소설들은 '사회소설'이나, '풍속소설'로 분류되어야 할 법도 한데 판매 부수를 올리려는 출판사나 작가들이 당시의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추리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오죽했으면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이자 선두주자였던 세이초마저도 이러한 시류를 대놓고 깠을 정도로 상황이 영 좋지 않았었다. 다행히도 일본 추리소설계의 이러한 흐름은 후에 시마다 소지 같은 거장이나 아야츠지 유키토, 아리스가와 아리스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신본격 미스터리를 써내면서 바뀌었다. 또 사회파 미스터리의 계보를 이을만한 뛰어난 작가들, 즉 미야베 미유키, 요코야마 히데오, 사사키 조, 모리무라 세이이치 등도 대거 등장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두 흐름 사이를 오가거나 잘 접목시키는 작품을 써내는 작가들도 있어서 질적, 양적으로도 잘 성장한 상태다.
그뿐 아니라 아무래도 사회파 미스터리가 작품 내에 등장하는 사건의 중심인물들의 심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지나치게 범인에게 감정 이입을 강요한다거나, 동정적이라는 해석을 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응당 개인에게 돌아가야 할 책임이 사회에 전가된다는 해석도 있으며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만 범인으로 내세운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분명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 중의 일부는 그러한 사회의 책임이 상당히 강조되는 경우가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요코야마 히데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라진 이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같은 경우는 그런 예에 속한다. 그리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모호한 현실에 대해서 다룬 누쿠이 도쿠로의 《난반사》 같은 작품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군에서는 범인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나 상황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사회에 책임을 묻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모든 사회파 미스터리가 그런 식으로 굴러간다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과 그에 영향을 받은 소설이 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사회 만큼이나 개인의 선택의 중요성이나 인간 내면의 탐욕, 이기심, 광기에도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작품의 내용이나 전개에 따라서 당시의 사회와 연관성과 사건 자체의 무게중심이 비슷하거나 좀더 사건쪽으로 기우는 경우도 적지않다. 당장 위에서 언급된 두 작품을쓴 요코야마 히데오는 《루팡의 소식》에서는 당대 쇼와 시대의 분위기와 사건을 밀접하게 연관시키지만, 전개나 흐름에서는 사건과 캐릭터에 좀 더 중점을 두는 식으로 작품을 썼고, 미야베 미유키는 《모방범》을 통해서 사회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각 캐릭터의 심리를 깊게 파면서, 개개인의 선택과 어리석음, 욕망에 대해서도 중점적으로 다뤘다.
거기에 당장 무시무시한 광기가 서린 범인을 중심으로 작품을 전개해 나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데, 당장 에도가와 란포상 등을 수상하면서 당시 일본사회를 적나라하게 해부한 걸로 유명한 기리노 나쓰오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섬짓하기 그지없다. 대표작인 《아임 쏘리 마마》나 아웃, 여탐정 미로 시리즈는 죄다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여기에서 범인들의 흉악한 내면과 동기를 아무런 동정심없이 냉혹하게 묘사한다. 심지어 주인공도 결코 선인이 아닌 경우가 절대 다수다. 누쿠이 도쿠로의 《우행록》 같은 작품도 마찬가지.[4]
이처럼 일본 추리 소설계는 상당히 다양한 작품군을 생산해왔고, 그 중에서도 사회파 미스터리의 저변은 꽤 넓으므로 단순하게 일반화해서 설명하는 것은 꽤 성급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대중적인 엄벌주의와 형식적 정의구현에 대한 목소리[5] 와는 달리 현실적으로, 그리고 범죄학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범죄는 사회적 영향이 크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회파의 접근방법은 오히려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광기 어린 범인관보다 더 사실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하게는 사회의 책임에 집중해야 하거나, 개인의 책임을 면책해야 줘야 하는 부류의 범인이 있고[6] , 범인의 사악함에 집중해야 하는 범인이 있는데[7] , 사회파 추리소설은 메시지를 기반에 깔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범인들을 잘 구분하고 있는 편이다. 무조건 범인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며, 이분법적으로 보지만도 않는다.
5. 현재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의 일본 추리소설계는 신본격과 사회파를 위시하여 꽤 다양한 작품군을 쏟아내고 있다. 당장에 큰 흐름으로 본격 미스터리와 사회파 미스터리를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번역서나 여러 해외의 추리소설을 수입해 오는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군이 녹아들었으므로 지금은 단순히 분류하기 어렵다. 미야베 미유키처럼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분류가 가능한 경우가 있지만 여러 장르를 혼합해서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지속되어 사회파 미스터리란 단어는 한때의 흐름으로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추리소설 내의 장르 간의 혼합 시도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장 일본뿐만 아니라 추리소설이 쓰여지고 있는 다른 모든 나라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다만 사회파 미스터리가 일본 추리소설계에 남긴 영향은 분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1] 그러나 정작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낸 세이초 본인은 이러한 명칭이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2] 주로 범인[3] 주로 탐정[4] 작품의 중심 사건이 일가족 몰살 사건이다.[5] 물론 범죄자에 대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대부분 진정한 정의감과는 관계가 크지 않다. 정의로운 사람이 정말로 그만큼 많았으면 벌써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6] 이를테면 사회적 모순이 가져온 범죄. 어떻게 보면 정치경제적 기득권이 이미 형식적 법을 도구로 한 범죄행위를 약자들에게 가하고 있는 것이고, 약자들은 불가피하게 법을 어기며 정당한 투쟁, 혹은 생존욕구를 위한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또한 좀 더 작은 범위에서도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벌어진 폭력에 대해 저항하다 일어난 범죄도 있다. 그리고 범인이 가해자에 의해, 혹은 다른 이유로 정신적 심신미약(상실)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면책 감경하는 것이 윤리적, 법적으로 타당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7] 변명의 여지가 없고 오만한 강자로서의 위치를 활용한 증오심 넘치는 범죄들을 말한다. 사실 많은 경우 이러한 범죄는 처벌되지 않거나 범죄의 영역마저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학교폭력 등은 그 행위의 죄질이 강간범과 동일하지만, 대부분의 가해자 및 방관자들(어떻게 보면 국민 대부분이다..)은 스스로가 강간범 내지 방관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화이트칼라 범죄나 '법을 도구로 한 범죄'들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