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105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山淸 泛鶴里 三層石塔


'''소재지'''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진주성) 국립진주박물관 야외전시장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통일신라시대 9세기
[image]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경복궁 야외에 전시되어 있었을 때 찍힌 사진으로 보인다.
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105호


1. 개요


山淸 泛鶴里 三層石塔.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에 위치한 범허사지에 있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약 5m의 석탑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탑일 것으로 추정된다.
범허사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현재 전하는 것이 없으며, 본 석탑은 언제 폐허가 됐는지도 모르는 범허사의 절터에 무너져 뒹굴고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한 일본인이 구입하여 자신 소유의 공장으로 가져와 세워놨었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가 패망한 1945년 이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1947년에 경복궁 경내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청사 앞뜰로 옮겨왔고, 총독부 청사 건물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정부종합청사(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이 거쳐가는 동안 계속 총독부 건물 부지의 야외 뜰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2005년 용산구로 새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탑을 다시 옮겼으며, 복원 및 수리 공사 이후 2018년 국립진주박물관으로 또 다시 옮겨졌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1962년에 국보 제105호로 지정됐으며, 2019년 현재는 국립진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2. 내용


통일신라 하대로 들어서면서 석탑에 부조#s-2와 같은 다양한 조각을 새기는 양식이 유행했는데,[1]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도 몸돌[2]과 기단부에 여러 부조와 장식들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일 것으로 보이며, 장식이 화려하다는 점에서 '장식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3]
탑의 높이는 4.8m이고, 탑의 구조는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4]로 구성되어 있어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 드러난다. 기단부와 1층 탑신의 높이에 비해 2층과 3층 탑신의 높이가 약간은 비례가 안 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감이 잘 잡혀있다. 각 층의 지붕돌은 네 모서리를 살짝 들어올려서 맵시를 주고 있는데 경쾌한 인상을 준다고 평가받는다.
본 석탑은 일부가 손상되어 있긴 하지만, 첫 발견 시에 이미 무너져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체적으로 형태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단부 하층 부분과 그 아래의 지대석 부분은 탑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과정에서 시멘트로 보충 및 재건한 것인데다, 이에 대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 원형은 지금에 와서는 알 수 없다.[5] 또한 본 석탑도 현존하는 대다수의 다른 탑들처럼 3층 지붕의 머리장식이 사라지고 없다.
원형이 유실된 탑의 아래부분과는 달리,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의 기단부와 1층 탑신에 있는 조각들은 다행히도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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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기단부의 팔부신중
상층 기단의 4면에는 팔부신중[6]이 각 면마다 두 좌씩 묘사되어 있으며, 각 면에 새겨진 두 좌의 팔부신중 사이를 기둥형으로 깎아서 각 칸이 구분된다. 팔부신중들은 모두 연꽃 대좌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1층 탑신의 4면에는 역시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탑에 새겨진 모든 상은 양각 방식으로 조각하였다.[7] 현전하는 신라시대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석탑들과 마찬가지로 이 탑에 조각된 부조들도 세월의 흐름에 다소 손상이 되어 있긴 하지만 정교했던 본래의 모습은 여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105호


범허사라고 전하는 경상남도 산청의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41년경 대구의 일본인 골동상이 구입하여 공장에 세워 놓았으나, 1947년 경복궁으로 이전되었으며 현재는 국립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바닥돌과 기단의 아래부분은 옮겨 세울 당시 시멘트로 보강한 탓에 원래의 구조는 알 수 없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을 본떠 새겼는데, 아래층의 가운데기둥은 2개씩, 위층은 1개씩을 두었다. 특히 위층 기단에는 가운데기둥으로 나누어진 각 면에 8부중상(八部衆像)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보살상의 모습을 1구씩 조각해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각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은 모습이다. 또한 추녀 끝의 치켜올려진 정도가 날카로워 경쾌한 인상을 보여준다.

이 탑은 기단과 탑신의 1층 몸돌에 8부신중 및 보살상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어 ‘장식탑’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장식적인 조각표현으로 인해 장중하고 소박한 맛을 잃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1] 이러한 양식의 신라 석탑으로는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등이 유명하다.[2] 이를 탑신(塔身)이라고도 한다.[3] 출처 : 두산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4] 이를 옥개석(屋蓋石)이라고도 한다.[5]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6] 불법을 지키는 8명의 신으로 , , 야차, 아수라, 건달바, 긴나라, 가루라, 마후라가로 이루어져 있다.[7]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