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여의도동) 소재.
1. 개요
2. 회의장
3. 역사 및 건축
4. 국회의원회관
4.1. 국회의원회관 신관
5. 전시의사당
6. 그 외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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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회가 활동하는 건물. 근·현대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사당은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 모든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총집되는 '민의의 전당'으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도 청와대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대접'''을 받고 있는 건물이다. 방송에 자주 나온다고 해서 쉽게 볼 만한 그런 건물이 아니라, 민의를 총집하여 법을 만듦으로써 한 국가를 돌아가게 만드는 '''3권 분립 기관의 중심 관청''' 중 하나다.[1]
1948년 대한민국 국회 개원 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중앙청중구 태평로옛 의사당을 썼으며 1975년부터 현재까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의사당을 쓰고 있다.

2. 회의장


남북통일이나 개헌 등으로 양원제가 실시될 것에 대비해 설계했기 때문에 큰 회의장이 2개다. 아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의 사진을 보면 생김새가 본회의장이 축소된 수준인 거 빼면, 배치나 구성은 거의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가 이 때문.
우리가 흔히 보는 국회 본회의장. 정식명칭은 "제1회의장"이다. 양원제가 부활할 경우 하원[2]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책걸상을 최대 600개까지 배치가 가능하다. 총 600석 중에서 현재 350석을 사용중이다.[3] 참고로 의장석 양옆은 부의장이나 국회의원이 쓰지 않고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쓴다. 의장 기준으로 바로 오른쪽은 국회사무총장, 왼쪽은 의사국장이 쓴다. 이곳에서 주로 국회의원들의 싸움이 일어난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정식명칭은 "제2회의장"이다. 총 200석 중에서 현재 100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양원제가 부활할 경우 상원[4]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이곳에 있는 국회 상징도 한글로 교체되었다. 통일 시에 사용할 목적으로도 설계된 회의장이다.

3. 역사 및 건축



대한뉴스 《남산에 세워질 국회의사당》 보도. (1959)
처음에는 중앙청을 개수해 국회로 썼다. 그러다 6.25 전쟁이 끝난 후,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을 고쳐 국회로 사용했다.[5]
6.25 전쟁 당시 부산임시수도를 옮겼을 때는 경상남도청(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청사)의 부속건물로 일제강점기일본제국 경찰무술 훈련장으로 쓰였던 무덕관(武德館)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했고, 부산극장과 문화극장을 국회의사당으로 징발해 사용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 말엽에는 남산(백범광장 근처)에 국회의사당 신축 계획을 세우고(당시 설계공모 당선자가 김수근이었다[6]) 기초 공사까지 하였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무산되어 12월에 취소 방침이 결정되었다. 당시 국회의사당의 위치로 남산이 선정된 이유 중 하나로는, 일제강점기 동안 그 곳에 거대한 조선신궁이 있었기 때문. 광복 이후 (주요 건물만 철거된 채) 버려져 있었으니 터를 닦기도 쉽고 신축하기도 좋았다. 거기다 옛 일본제국의 정신적 상징을 깔아뭉개고 독립국가의 국회의사당을 세운다는 상징성도 있었고…[7]

대한뉴스 《국회 의사당 준공》 보도. (1975)
현재의 국회의사당은 1975년에 완공된 것으로, 지붕은 돔 형식인 건물이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로 1(여의도동 1번지).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 최대라고 한다. 사진으로 보는 전경과 달리 실제로 가서 보면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뺨치는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이기 때문에 웅장한 맛이 있다. 참고로 영등포구청역 인근에 있는 사진들에 의하면 과거 이 자리에는 양말산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산을 허물고 의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의사당 앞에 있는 길 중에는 양말산길이 있다[8]. 더불어 현재 국회의사당을 지을 당시, 아주 가관이던 게 상당한 헐값으로 무리하게 건축가들에게 맡긴 탓에 김수근을 비롯한 이들은 반발하여 건축설계에서 빠졌고 결국 여러 명이 번갈아가면서 설계했으나 이들 모두 현재까지 이 건물에 대하여 자신의 졸작으로 여겨 이야기하는 것도 꺼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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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초안 설계와 초안대로 건설했을 경우의 모습.
1968년 당시 건축 공모안을 살펴보면 초안에는 본래 이 없었다. 그러나 '''"서양 건축물에 돔이 없다니 웅장미가 떨어진다!"'''는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시공 도중 억지로 돔을 붙여버렸다(#). 결국 건축가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갈한 모더니즘 건축의 위에다가 어색할 정도로 거대한 돔을 얹게 되었다.
처음에 돔을 얹자는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축가들은 비례에 어긋날 정도로 큰 돔을 그려넣으면 의원들이 마음을 바꿀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바뀐 설계도를 본 의원들이 싫어하기는커녕 '''매우 만족해하자''' 오히려 건축가들이 당황해 돔의 높이를 낮추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청보다 높아야지 않겠냐"며 한 층 더 올릴 것을 요구했다(#). 부지 때문에 옆으로 늘리지는 못하고 위로 늘리느라 건물의 비율마져 애매해졌다. 이 돔 때문에 국회의사당 안에 태권브이 같은 거대 로봇병기의 격납고가 있고 위급 상황 때 돔이 열려서 출격하게 된다는 도시전설(?)스러운 우스갯소리는 지금도 나름대로 유명하다.[그러나]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그 후 시간을 흘러, 이번에는 국회의원들이 국회 모습이 마치 상여와 똑같다며 이번엔 기와지붕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의사당은 모더니즘 건축물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으로 변할 뻔 했지만 결국 기와지붕 건은 무산되었다. 돔에 기와를 섞는 것도 문제지만 말을 뒤집는 게 문제.## 이런 삽질 때문에 웬만한 건축가들은 국회의사당을 흑역사로 분류하며, 실제로 2013년 동아일보/SPACE가 선정한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 6위로 선정되었다. 관련 글
2006년에는 연두빛 돔[9]을 황금색으로 칠하기 위한 예산안이 국회 심사에 제출되었으나, 워낙 비용이 막대하여 실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통과되었다면 예산이고 뭐고 일단 국민들의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기둥은 24개이며 24절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중 전면에서 보이는 기둥은 8개로 8도를 나타낸다. 앞에 배치된 암수 한 쌍의 해태 상은 화기를 막고 국회를 사기(邪氣)로부터 수호한다고 한다. 어차피 의원님이 아닌 이상 국회 본관 정문은 뒤로 돌아 서쪽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상관없을수도있다. 근데 뒤쪽 입구에도 해태상 한 쌍이 그대로 있다.
위상에 걸맞게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하고 있으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은 그동안 야간 조명 시설의 부족으로 국가 위상을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도시의 야간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2007년 4개월간의 공사 끝에 국회의사당의 야간 경관조명을 완성하고 매일 일몰 후부터 새벽 1시까지 국회를 밝히도록 하였다. 특히, 의사당 건물 전체가 멀리서 봐도 밝고 뚜렷하게 보일 수 있도록 했고, 건물 전면에 대형 그릴 LED판을 부착해 국회 회기나 국경일에 태극기·무궁화 등 다양한 국가 상징물들을 연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사당 건물 조명과 함께 국회 경내의 관목·동상·분수대·광장보도 등에도 각각 특성에 맞는 조명을 설치, 의사당과 주변 경내 등 국회 공간 전체의 야간 경관이 어우러지도록 했다.

4. 국회의원회관


의사당 본관을 마주보고 섰을 때, 좌측에 있는 큰 건물로 국회의원들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의원회관이다. 이곳에 의원실들이 입주되어 있다.. 역ㄷ자 형태의 건물인 것이 특징이며 뒤에 있는 건물이 바로 신관. 신관이 지어지면서 역ㄷ자형 건물에서 구도가 더욱 복잡해졌다. ‘ㅂ’자형으로,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길을 잃을 만하다는 말도 나온다. 오죽하면 A부터 G구역까지 나뉜다. 보통 이곳에서 민원 처리를 받기도 하고, 법안에 대한 서명이나 발의를 한다. 과거에는 보좌진이나 의원들이 직접 의원회관을 돌며 법안 서명을 받았으나 요즘에는 팩스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인데, 때때로 중요한 법안이나 의원의 성격에 따라 보좌진과 의원 본인이 직접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뉴스에서 나오는 OOO 의원 의원실 같은 건 대부분 이 건물. 대부분의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구에서의 활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의원회관의 의원실과 별도로 지역구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지역구 활동이 필요없는 비례대표 의원은 물론 별도의 사무실이 없다.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지역구인 의원 중 일부는 여의도의 의원실 하나로도 충분해서 지역구 사무실을 두지 않는 사례가 있다. 의원회관은 밤에 가 보면 빛이 안 들어오는 컴컴한 복도에 각 의원실에 회색으로 대충 칠해놓은 나무 문 등으로 분위기가 참 으스스했는데, 2013년 이후 싹다 리모델링 공사를 해 고쳤다.
좋은 의원실을 얻기 위한 경쟁이 상당한데, 의사당 내 의원실에도 명당이 있는가 하면 재수 옴붙는다는 자리가 있다. 그래서 새 국회가 개원할 때마다 명당을 차지하려는 의원들의 각축이 치열하다고 한다. 의외일지 모르지만 의원실 배정은 당 단위까지만 해주고 개인끼리는 알아서 잡아야 한다. 한번 잡히면 웬만하면 4년 내내 쓰지만, 각계각지의 이유에 따라 의원실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19대 국회에서는 의원회관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바람에 어느 의원실의 경우 몇 차례나 이사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의원들은 주로 잔디밭이 보이는 쪽의 방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6층부터 8층은 '로얄층'으로 층수가 높아 햇볕도 잘 드는데다가, 바로 앞에 한강이 보여 전망이 좋기 때문이다. 반대로 초선 의원들은 3층, 4층과 같은 저층에 많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도 국회의원 당시 대권주자 급이지만 초선이기에 3층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방의 호수에 의미를 부여하여, 특정 호수의 사무실을 선호하는 의원도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의원 시절 남북정상회담의 '615 공동선언'에 의미를 부여하여 615호를 고집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전술했듯 3층을 사용했으나 19대 국회의원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인 5월 23일을 뒤집은 325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반면 '''542호'''는 왠지 '재수 옴이 붙었다'며 의원들이 기피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그 방을 쓴 주인은 17대 의원이었던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이었는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암으로 사망했다. 이후 그 방을 쓰려는 의원이 없어서 통합신당모임, 경위과 등의 사무실로 쓰이다가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제19대 국회에서는 18대의 4년간의 공실을 깨고, 새누리당 김형태 의원이 사용했는데, 당선을 하자마자 동생의 아내를 성폭행 했다는 의혹이 나오며 논란에 시달렸고, 이후 조카에게 사과하는 녹취록이 나와 빼도 박도 못하게 드러나 무소속으로 지내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가 되었다. 이후 이 의원회관을 물려받은 재보궐 당선자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은 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물러나게 되었고 이후 20대 당선 때는 방을 옮겼다. 이후 제20대 국회 내내 세미나실처럼 쓰이다, 제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윤재갑 의원이 사용 중이다.
지하2층에는 의원 전용 사우나도 있다. 입구에는 '체력단련실'이라고 적혀있고, 헬스 기구도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의원들의 휴식을 위한 사우나 용도로 가장 많이 이용된다고. 원래는 남탕만 존재하였으나, 2000년대 들어서 여성 국회의원들이 많아지면서 남탕은 있으면서 왜 여탕은 없냐고 항의한 끝에, 현재는 여탕도 존재한다. 남탕은 1980년대 만들어진 것이라 내부는 의외로 평범한 동네목욕탕 수준이라고.[10]

4.1. 국회의원회관 신관


일부 의원들은 새로 건축한 신관에 입주하고 있다. 기존의 역ㄷ자 형태 건물이었던 구 의원회관 양쪽 날개 끝에 길게 애드온을 달고 로비도 넓혔는데, 겉으로 보아도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신관 건축 후 구관은 순차적으로 구역을 나누어 폐쇄하고 신관과 비슷한 모양으로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사실 의원회관에서 일하는 보좌관들이나 비서관들은 리모델링한 회관을 별로 안 좋아 한다 카더라. 이유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유리궁전이기 때문이다.
에어컨이나 보일러도 잘 안 틀어준다. 하지만 확실히 구관 사무실에 비해 신관 사무실이 더 넓은 것은 사실이다. 사무실이 두 배 정도 넓어졌다는 썰이 있다. 구관보다 시설이 신식이지만 어두운 복도에 빽빽하게 의원실이 들어찼다 보니 밤에는 여전히 을씨년스럽다(...). 의외로 낮에도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곳이 많다.
신관이 생기면서 기존 구관의 2층로비 외에도 남쪽으로 크고 아름다운 1층 로비 공간이 생겼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신분증 교환 패용 때문에 2층으로 들어오면 1층으로 나올 수가 없는데, 반대도 마찬가지. 신분증을 보관했던 장소로 나와야 하니까. 다만 1층 로비가 폐쇄되는 밤 늦은 시간 이후에는 2층 로비로 나오게 해 준다.
의원회관에 출입하는 민원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보좌진이나 직원만 이용할 수 있는 지하 통로가 있다. 2층 로비로 들어와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엘리베이터는 다른 곳의 엘리베이터와 다르게 지하로는 지하 1층까지밖에 운행하지 않는데, 이곳에는 의사당과 국회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지하통로가 있다. 그리고 급한일이 생겨서 회관과 의사당을 이동해야할 경우가 있는데 이 통로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는 이곳 하나뿐이기에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이 좀 걸린다. 정말 급한 일이라면 가까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뛰어라! 그게 더 빠르다. 이곳을 지나가려면 반드시 출입증을 패용하자. 안 그러면 소속 직원이라도 걸린다. 아예 못 가진 않지만 어차피 본관 입구에서 걸리므로 무의미.

5. 전시의사당


대한민국전쟁이 발발하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 모처에 있는 전쟁용 의사당으로 피난하여 옮기게 된다. 전시용 국회의사당은 위치 자체가 '''0급 기밀'''이라서, 지금까지 존재 이외의 다른 사안이 알려진 바가 하나도 없다. 국회의원들도 이런 시설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사무처 직원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위치를 알고 있다고. 즉, 여의도 국회의사당 밑에 지하공간이 상당히 커서 여기로 대피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아예 다른 위치에 별도의 비상용 의사당이 존재하는 것.

6. 그 외


  • 2015년 1월 26일부로 본회의장 국회 상징물이 한글로 교체되었다.[11]

  • 당시 국회 본회의장 상징물이 한자에서 한글로 교체된 것과 관련된 뉴스 보도.
  • 국회의사당의 푸른 돔은 사실 산화된 구리로서 건축 초기에는 붉은 색이었다. 산화되면서 푸르스름해지는 것인데 기한을 맞추기위해서 인부들이 돔 위로 올라가 오줌을 갈겨 산화시켰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품위에 목숨 거는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이런 짓을 허용할 리는 없다. 수십 년이 지나 산화되면 푸른 색으로 변한다는 걸 국회의장이 믿지 못하자 건설 담당 간부 중 1명이 시범으로 오줌을 싸서 산화하는 과정을 눈으로 보게 했다는 얘기는 있다.# 실제로 영상속에서 붉은 빛이다.[12]
  • 흔히 돔 밑에는 본회의장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회의장 천장도 둥근 모양에 조명이 박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로텐더 홀이라고 부르는 공간으로, 들어가보면 돔 아래부터 1층까지 그냥 뻥 뚫려 있는 공간이다. 참고로 로텐더 홀이란 명칭은 이런 원형 중앙공간을 의미하는 단어 'rotunda'에서 왔다고 하는데[13] 이걸 괴상하게 읽은 데다가 같은 의미의 홀이라는 단어까지 붙여서 요상한 중언부언이 되고 말았다(...) '역전 앞' 같은 오류.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저 명칭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끔 보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유야무야되기 일쑤. 그나마도 로텐더홀이라는 이름도 세간에 알려진 건 국회가 공전을 거듭할 때면 의원들의 점거농성이 연달아 터지면서 뉴스에 저 명칭이 오르내리고 나서다(...). 의원들의 점거농성 외에 이 공간이 유의미하게 사용되는 광경은 매년 7월 17일 제헌절 경축식이 이 공간에서 열리는 것 외에는 딱히 없다.[14] 참고로 건물 외관의 기둥 24개도 하중을 받지 않는 기둥이라 있으나 없으나 한 기둥이다.
  • 본회의장 천장 조명은 365개인데 365일 내내 뼈빠지게 일하란 의미라고 한다. 개정된 초6 2학기 교과서 1단원에는 365일년 내내 국민들이 보고있다는 뜻으로 정의된다.
  • 국회 정문의 해태상은 해태제과에서 기증한 것으로, 2075년에 개봉하게끔 해태상 밑에 백포도주가 파묻혀 있다. 거짓말 같은 얘기지만 실제로 해태제과측에서도 각각 36병씩 72병을 묻었다고 인증했다. 본래 국회의사당 신축 기념으로 기증한 것이지만, 아직 민주주의정착하기 전인 시대이다 보니 "한 100년 후에는 우리나라도 민주주의가 꽃피었을 테니 그때 기념하자."라는 의미로 묻었다고 한다. 그런데 와인의 보관기간은 아무리 장기숙성을 하더라도 최대 50년. 더군다나 그때 해태제과가 기증한 와인은 그런 장기숙성용 와인도 아니라고 한다. 2075년의 국회의원들은 와인 마시려다가 식초를 마실 거 같다. 물론 개봉행사만 하고 시음은 그때 만든 와인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 부지가 조선시대 궁녀들의 무덤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멀쩡한 기록은 버리고 민간 설화만 신뢰하는 기사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15] 실제로는 등을 방목하며 키우는 목장 땅이었다고 한다.
  • 관악구 봉천동서초구 방배동에는 각각 국회단지라는 이름의 마을들이 있었다. 국회의사당이 건설되기 전에 살고 있던 철거민들이 이주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서초구의 국회단지 동네는 2017년부터 재개발 후 단독주택 단지로 바뀌었고, 봉천동의 국회단지는 도로명주소로 남아있다.
  • 본회의장의 좌석은 위치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보통 가운데의 뒷자리일 수록 '서열'이 높아서 당 대표나 중진급 의원들이 이 뒷자리를 차지한다. 출입구와 가깝고 다른 의원들이나 기자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다[16] 다른 의원들과 의논을 하려면 뒷자리가 더욱 편하기 때문이다. 맨 앞자리에는 초, 재선 의원들 중에서 각종 발언을 위해 발언대에 자주 나가는 주요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주로 앉는다.
  • 본관의 완공일이 1975년 8월 15일 광복절이다. 그리고 앞서 설명된 것처럼 중앙청보다 일부러 더 크게 지었다.
  • 풍수지리적으로 음기가 강해 여성 의원들이 기를 펴지만, 기가 너무 강한 반작용으로 여성 의원들의 개인 가정사가 좋지 못하더라는 카더라 통신이 있다. 그래서 강한 음기를 억누를 목적으로 국회사무처가 2008년 4월 30일에 국회개원 60주년 명목으로 기념비를 세웠는데… 이게 남근석 논란을 부르면서 원래 위치에서 헌정기념관 뒤쪽 공터로 옮겨지는 수난을 겪었다. 근데 용도 자체가 남근석 맞다(…).
  • 풍수지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풍수사들이 존재한다. 주장에 따르면 "여의도는 한강에 뜬 배의 형상이고, 배는 중심부분이 으뜸이고 꼬리부분이 가장 멀미가 심하다. 순풍을 타고 안정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배의 가운데가 가장 길지인 것인데, 국회의사당은 배의 말미에 위치하고 있어 위치상으로 흉(凶)이다. 또한 그 모습은 상여를 짊어 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이 역시 흉(凶)이며, 역(易) 배산임수의 지형에 자리잡고 있어 역시 흉(凶)하다."는 주장이다. 몇 풍수사들은 2020년 이전하는 용산 미군기지 터로 국회의사당을 이전해야 한다고.... 그 곳이 워낙 터가 좋단다.
  • 2008년 5월에 한 의원 보좌관이 철야근무 도중 처녀귀신으로부터 "집에 들어가서 자!"라는 소릴 들었다는 괴담이 한동안 회자되었다.#
  • 국회 본청에는 총 4개의 식당이 있다. 본청 1층에는 국회 사무처 직원들과 방문객, 출입기자 등이 이용할 수 있는 큰 식당과 작은 식당이 있는데 큰 식당은 맛이 꽤 괜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또 본청 내에 의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의원식당이 따로 있다. 아울러 식사와 회의를 겸할 수 있는 귀빈식당도 있다.[17] 큰 식당과 작은 식당, 귀빈식당은 국회가 직영으로 운영하고 의원식당은 외주업체에 운영권을 맡겼다.
  • 의원회관에는 구내식당이 3곳이 있는데 하나는 평범한 카페테리아의 형태고, 진짜 구내식당이라고 하는 건 '큰 식당'으로 불리는 2층의 구내식당과 '작은 식당'이라 불리는 1층의 식당으로 두 곳인데, 1층은 외주를 받아 운영되는 식당으로 매일 2가지 코스에서 고를 수 있는 식당이다. 가격은 2014년 기준으로 5~6천 원으로 그리 싸진 않은 편.[18] 의원회관 2층 식당은 더도 덜도 말고 딱 '구내식당' 수준으로, 직원 식권을 구매했을 경우 1끼에 식권 1장이고 외부인은 1인당 4,800원을 지불하고 식권을 구매해야 하며, 직원용과 방문객용 식권이 구분된다. 출근시간 무렵에 1층 식당에 가면 해장용 라면을 먹을 수 있는데, 뚝배기에 끓인 해장라면+공기밥+계란후라이가 기본으로 3천 원이라는 가격 치고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구성이다. 평범한(?) 의원용 식당이 또 있는데 주로 의원님들이 외부손님들 딱히 모시러 갈 데가 없을 때 오찬장 비슷하게 쓴다. 그래서 나름 호텔 한식당처럼 생겼는데, 맛은 평이한 수준. 외부 방문객도 이용 가능. 직원이나 보좌진들은 그냥 옆에 후생동에 밥 먹으러 가거나 나가기 귀찮거나 날씨가 안 좋거나 할 때엔 2층에서 먹는 경우가 많다. 실제 후생동 식당이 맛있다. 때로 배달을 시켜먹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의원실로 바로 배달은 되지 않고 2층 로비에서 받아서 가져와야 한다. 그래서 중국집에 음식을 시키면 스티로폼 용기에 담아서 가져온다 카더라.
  • 우즈베키스탄 국회의사당과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 우즈베키스탄 위키를 들어가보면 공공 건물의 고전적인 스타일을 사용했다고 할 뿐, 한국의 국회의사당을 따라했다고는 언급되지 않는다. # 단지 설명하기를, 청록색 돔 및 금색 창문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흰색 기둥들이 특징이라고 한다. 우연히 비슷한 경우를 배제할 순 없을듯... 블로거와 트위터를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이 한국의 국회의사당을 배꼈다고 하는 데.. 지금까지는 사실 확인이 안되어 있는 풍문일 따름이다.
국회의사당 주변, 즉 여의도공원 서쪽의 서부 여의도는 동부 여의도와 달리 고층 건물이 많지 않은데, 이 이유가 국회의사당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 사무처가 "국회주변일대 즉 광장 서측 77만㎡의 광역에 국회 건물보다 높은 건물은 지어질 수 없다. 반드시 지상 40m 이하의 건물만 짓게 하라."는 압력을 가해왔는데, 1975년 8월 15일 국회의사당 준공 직후의 일이라고 한다.[출처] 고도제한을 두는 곳은 의외로 많이 있지만, 한국의 특성상 이 조치는 워싱턴 D.C.워싱턴 기념탑 고도제한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워싱턴 기념탑은 160m 정도라는 것.(…) 한국은 너무 그걸 낮게 잡았고, 여의도 동편과 비교하면 잔디깎이한 듯한 건물 모양 덕분에 어색하다. 2012년 7월에 이 고도제한에 대하여 의원들끼리 연구회를 조직해서 논의 중이란 말이 있었지만 감감 무소식인 듯.
특히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회의사당 시설은 물론이거니와 '''국회의사당 건물 뒤쪽에 있는 도로[19] 및 여의도한강공원 등의 전 구역이 통제된 구역'''이었기에 더더욱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문제는 윤중로 쪽이 벚꽃이 만발하는 주요 구간이어서 시민들의 불만이 상당히 컸고, 결국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 3월에 곧바로 국회의사당 정문을 비롯한 건물 뒤쪽의 구역을 전면 개방하여 오늘날에는 일반인도 국회도서관을 비롯한 시설물들을 비롯해 윤중로와 여의서로의 통행 및 여의도한강공원의 이용도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부속 건물로 개별 국회의원들의 사무실이 입주해있는 국회의원회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위한 자료를 수집 및 제공하는 국회도서관[20], 국회예산정책처와 국회방송 등이 입주해있는 의정관 등이 있다.
2010년 4월 국회 내 녹지 공간에 신규로 전통 양식의 건축물을 공사 중이며 여러 문제로 인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건설의안 자체도 날치기로 처리한 데다가 책정된 예산도 과다하고, 숭례문 복원에 중요한 인물을 총책임자로 배정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2011년 2월의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회의사당의 자산가치는 부속건물 포함 총 1,654억 원이라고 한다.#
테러를 하면 '''한국인들이 기뻐하기 때문에''' 테러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다. 비슷한 이야기는 미국에도 있다고. 일본에서도 1954년에 개봉한 고지라(1954) 관객들이 고지라가 일본 국회의사당을 부수는 장면이 나오자 기립박수를 쳤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나라나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뢰도가 엉망이라는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저 농담이 튀어나온 건 9.11 테러 직후의 일이다. 게다가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하는 지라… 심지어 "알카에다가 한국 국회의사당을 테러해서 국회의원들 쓸어가 주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말도 종종 나온다. 농담이야 이렇지만, 진짜 이유는 국회의사당이 헌법기관이기 때문. 여기에 테러를 했다가는 '''얄짤없이 내란죄로 처단'''된다. 다만 이건 한국인 얘기고, 설마 외국인 테러리스트가 이런 걸 두려워하지는 않겠지(…).
일일 방문객 수는 3,000여 명이라고. 2014년까지만 해도 방문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했'''다. 과거 국회 앞마당까지는 신분증을 보여주기만 하면 됐지만[21] 2014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열린 국회' 선포 이후 국회 경내 방문 시 주간에는 신분증 검사를 아예 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업무상으로 의원회관이나 본관 방문 등을 위해서는[22] 공항처럼 검색대를 한 번 거치고 방문목적을 서류에 기재한 후, 신분증과 방문증을 맞교환받아 목에 걸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국방부의 '''국가중요시설 지정 및 방호 훈령'''에 보면 두 번째로 나오는 구체적 장소가 바로 여기다. 수많은 시설이 지정되어 있고 구체적 개수로 따지면 천 개는 족히 되는데 그 안에서도 순서를 매기면 국회의사당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당연히 다 아는 그곳. 외부의 경비는 경찰청 국회경비대가 담당한다.[23]
차를 타고 올 경우 주차장으로부터 본관까지 거리가 좀 더럽게 멀다.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서울 지하철대중교통 수단이 차라리 나을 정도. 왜냐면 국회 방문객은 한강둔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역'''이 생겼으니 그걸 이용하도록 하자. 특히 의원회관 민원 방문은 지하철이 가장 편리하다. 쪽문 옆으로 바로 나오기 때문.
또한 국회 안에 전기 카트 비스무레한 셔틀이 있긴 하지만 20분에 1대씩 있기 때문에 차라리 걸어나오는 게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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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5일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장 전경.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식은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더이상 장충체육관이나 잠실실내체육관[24]을 사용하지 않으며, '민의의 전당'인 의회권력을 존중한다는 상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이 첫번째로 의사당 취임식을 행했고, 이후 5명의 대통령 모두 국회에서 취임식을 진행했다. 이승만, 윤보선 대통령도 구 국회의사당[25]에서 취임식을 올렸다.[26] 공교롭게도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한 대통령들은 모두 국회의원 경력이 있고[27][28] 반대로 체육관 출신 대통령들은 모두 국회의원 경력이 없다.[29]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말미암아 인수위원회도 없는 상태에서 취임했는지라 다른 대통령들처럼 국회 앞마당에 단상 차려놓지 않고 로텐더홀에서 약식으로 취임식을 진행했다.
tvN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시정연설이 진행중이던 국회의사당이 테러 세력에 의해 발파 해체 방식으로 폭발물이 폭발하여 본관 건물이 붕괴되고 돔이 내려앉는다..
  • 국회의원들이 매일 모여서 싸우기나 하는 대한민국 종합격투기 리그 國K-1의 경기장이라는 식의 드립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사실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을 대신해서 싸우라고 뽑아놓은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국회의원들이 싸운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가 나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신호다. 국회의원들이 편을 갈라 싸운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에 적어도 서로 비등한 두 개 이상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안 싸우는 나라야말로 문제가 있는 나라이다. 국회의원들끼리 안 싸운다는 것은 1. 민의를 철저히 탄압하는 독재국가이거나[30], 2. 국민들 대다수가 정치에 무관심한 중우정치 국가라는 뜻이다. 1의 대표적인 사례인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로 '국회'에 해당하는 조직은 없고 단원제 국회에 상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있다. 북한의 경우 야당이 있긴 있으나 구색 정당이므로, 역시 1에 해당된다. 2의 대표적인 사례인 일본은 법적으로는 다당제가 보장되어 있으나 사실상 자민당 일당우위제이다. 그런 중국이나 일본의 국회에 비해, 국회의원들이 서로 소리 지르며 싸우는 대한민국의 국회는 민주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말로 점잖게 싸우는 것이 정상인 것이지, 논쟁이 격화되어 국회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2013년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격투기장 드립은 옛말이 되었지만, 여전히 상징적인 의미로써 쓰이는 경우가 많다.
  • 2019년 세종특별자치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실제 세종시에는 국회 분원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설계비 10억원이 책정되었다. 만약 현실화된다면 세종에 있는 정부기관과 연계되는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곳으로 쓰일 예정이다. #
  • 2020년 12월에 세종특별자치시에 국회 세종의사당 기본설계비 127억 원이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면서 2027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

7. 관련 문서



[1] 다른 두 곳은 행정부의 중심 관청인 청와대와 사법부의 중심 관청인 대법원.[2] 양원제가 부활하게 될지, 또 양원제 부활 시 양원의 이름을 옛 명칭대로 쓸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옛 이름을 다시 쓸 경우 하원을 민의원(民議院)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3] 300명은 국회의원, 나머지 50명은 국회 본회의장에 대정부질문 등으로 출석하는 정부 측 국무위원이나 배석차관 등이 앉는데 사용된다.[4] 양원제가 부활하게 될지, 또 양원제 부활 시 양원의 이름을 옛 명칭대로 쓸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옛 이름을 다시 쓸 경우 상원을 참의원(參議院)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5] 김두한이 국회의원 시절 인분을 투척한 곳이 이곳이다.[6] 당시 윤승중 역시 공모에 참가했다 떨어졌으나, 국회의사당설계사무소에서 실시설계를 진행하였다.[7] 같은 맥락에서, 훗날 이 자리에는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건립되었다.[8] 참고로 양말산의 어원은 양과 말을 방목하던 곳이라고 한다.[그러나] 실제 돔 밑은 넓은 로비가 있다.[9] 이 연두빛은 돔에 시공한 구리산화된 것이 이유이다.[10] 정봉주 전 의원이 한겨레신문의 인터넷방송 '김어준의 New욕타임즈'에서 언급한 내용. 참고로 여탕은 안 들어가봐서 모른다고…[11] 1970년대 초 국회의사당이 세종대로에 있던 시절, 한글 표기가 사용된 적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국회가 아닌 '국'자만 적혀있었다. 의원 배지도 마찬가지. 제2공화국 양원제 시절에는 대한민국 참의원은 한자 '國', 민의원은 한글 '국'자를 사용했다.[12] 유사한 발상을 실현시킨 인간도 지구상에 존재하는데 흔히 팝 아트로 알려진 앤디 워홀이 그 사람이다. 1978년 작품인 "산화"를 그렇게 만들었다.[13] 미국 국회의사당에도 돔 아래 위아래로 뻥 뚫린 원형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을 '로툰다'라고 부른다.[14] 후술하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도 여기서 열렸다.[15] 다만 풍수상으로는 무덤지 같이 음기가 강한 곳은 국가기관처럼 양기가 매우 강한 부지로 알맞는다는 말은 있다.[16] 그러나 윗층의 사진기자석에서는 뒷쪽에 앉은 다선·중진 의원들의 자리를 매우 선명하게 찍을 수 있다. 그렇다보니 의원들의 은밀한 휴대폰 메시지와 각종 이상 행동들(...)이 의도치 않게 포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17] 대부분 당정 고위급 조찬 정책협의회 등과 같은 성격의 회의를 귀빈식당에서 여는데 다른 식당처럼 주방이 붙어있는 것은 아니고 별도 공간에서 조리된 음식을 자리로 서빙해준다고 한다.[18] 혹은 2층 큰식당용 식권 2장.[출처] 손정목 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19] 여의서로의 일부, 즉 윤중로[20] 만 18세 이상의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관외대출은 불가능하며, 원래는 개인 소유의 책을 들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현재는 가능하다. 들어가려면 출입증이 필요하고, 비치된 투명가방에 개인 짐을 옮겨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21] 예식장 등의 이유로 차로 가면 운전자만 보여줘도 된다.[22] 국회의원 및 정책연구단체 주최 간담회로 일반인들이 방문하는 경우도 많은데, 유튜버 꽈뚜룹은 국회의원회관에서 크리에이터 강연을 마친 뒤 관계자, 보안팀 등의 허가를 받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짜장면 먹방을 촬영하기도 했다.[23] 본회의장 안에는 특별한 요청이 없는 한 경찰관이 공무수행을 위해 진입할 수 없다.[24]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 대통령과 최규하 대통령은 장충체육관, 전두환 대통령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취임식을 열었다.[25] 이승만은 중앙청, 윤보선은 현 서울특별시의회 건물인 옛 부민관.[26] 윤보선의 경우는 대통령 직에 물러난 후에도 국회의원 직을 역임하였다.[27] 노태우 대통령도 예편 이후 대통령 당선 이전까지 정치인 생활을 했는데 초선이지만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활동하다가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퇴했다.[28] 또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지금의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직을 수행한 적이 있으며, 신축된 청와대 본관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29]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대통령. 박정희전두환은 예편 이후 바로 대통령이 됐고 최규하는 관료 출신이다.[30] 국회가 독재자의 거수기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여당도 그렇다 해도 문제가 되는 판에 야당이 그렇다면 할 말 없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