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역(폐역)

 



'''서대문역'''
'''(폐역)'''

'''다국어 표기'''
일본어
西大門
(せいだいもん)
영어
Seidaimon
'''주소'''
경기도 경성부 의주통1정목
(現 서울특별시 중구 의주로1가 44-2)
'''역 운영기관'''
경부선
궁내부 내장원 서북철도국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인선
'''개업일'''
1900년 7월 8일
'''폐업일'''
1919년 3월 31일
'''열차거리표'''
기점
'''舊 경부선'''

'''(폐역)'''
'''舊 경인선'''

'''(폐역)'''
西大門驛 / Seidaimon Station
1. 개요
2. 상세
3. 주변 정보
4. 오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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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00년 경인선이 연장 개통할 때 개업하여 1919년까지 존재한 역.
초기에는 서울의 중앙역 역할을 했다.

2. 상세


[image]
역명의 변천사
1900년 7월 8일 경인선한강철교를 건너 서울 도심으로 연장 개통되었을 때 함께 개업한 역이었다. 개업 당시 역명은 '''경성정거장(京城停車場; Seoul station)'''이었고[1] 경인선 시종착역이 되었다. 즉 원래는 서울역 포지션이었다. 이 역에서 신문로나 정동을 거쳐 곧바로 서울 도심으로 갈 수 있었다.
5년 뒤 경부선이 개통되어 경부선 시종착역도 함께 맡게 되었으나 몇 개월 후 남대문역사가 증축되면서, 서대문정거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남대문역 위주로 철도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경부선 열차도 남대문역에서 시발, 종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2] 일본인들이 남산 주변에 주로 거주했기 때문에 남대문역을 중앙역으로 삼게 되었다는 추측이 있다.
이후 일제는 도심에서 신의주 방면으로 가기 위해선 용산역까지 내려와야 하는 불편[3]을 없애고자 경부선과 경의선을 직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경부선 종점에서 잇는 건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남대문역에서 잇는 현재 선형이 결정되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인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던 3·1 운동 주요 집결지 중 하나가 되었다.[4] 이 여파로 직결 공사를 앞당겨 개통하였다. 그러자 필요성은 감소했고 결국 개통된 직후인 1919년 3월 31일 폐역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11년 후 바로 근처에 서소문역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14년 만에 다시 폐역(...).
그리고 일본 최초의 철도시발지라고 여겨지는 신바시역과 역명 뺏기구 폐역된건 비슷하다.(...) 다만 신바시역(시오도메역)은 원래 위치에 재현해 놓았다.

3. 주변 정보


서대문 주변에는 한국인이 살았고, 남대문 주변에는 일본인이 살았다고 한다.

4. 오늘날


1995년수도권 전철 5호선 서대문역이 이 역이 있었던 장소 근처에 건설되었다. 이곳이 "서대문 정거장 터"임을 알리는 비석이 이화외고와 바비엥2 오피스텔 사잇길(통일로4길)에 놓여 있다. 현재 역사 부지 일부는 해방 직후 이화학원에서 매입하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부지에 포함되어 있다.

[1] 출처: 1900년 7월 7일자 황성신문 3면[2] 이후 역명'서울역(Seoul station)'은 노선도에서 사라졌다가 1922년 남대문역이 가져가게 된다.[3] 즉, 당시 경의선 이었던 용산선을 이용했다.[4] 이를 기리기 위해 버스정류장 명칭을 "서대문경찰서・유관순 활동터"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