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249호

'''250호'''

251호
구 인천부 청사
'''서울 한강철도교'''
대구 대봉배수지

'''한강철교'''
Hangangcheolgyo(Railway Bridge) | 漢江鐵橋
하류 방면
원효대교
<color=#373a3c>
한강

상류 방면
노량대교
【철도 노선 보기】
소요산 방면
용 산
← -.- ㎞
1호선

인천·신창 방면
노량진
-.- ㎞ →
서울·행신 방면
서 울
← -.- ㎞
용산·행신 방면
용 산
← -.- ㎞
KTX

부산·목포 방면
광 명
-.- ㎞ →
부산 방면
(수원 경유)
영등포
-.- ㎞ →
서울역 종착열차
서 울
← -.- ㎞
용산역 종착열차
용 산
← -.- ㎞
ITX-새마을

모든 열차
영등포
-.- ㎞ →
<color=#373a3c>
새마을호

<color=#373a3c>
무궁화호

정기 관광열차




철교 배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C-D-A-B 순서
'''다국어 표기'''
영어
Hangangcheolgyo
(Railway Bridge)
한자
漢江鐵橋
중국어
汉江铁桥
일본어
漢江(ハンガン鉄橋
'''관리기관'''
한강철교

'''구조형식'''
A~B교
단순 워런 트러스교
(Warren Truss Bridge)

강판형교
(Steel plate girder Bridge)

C~D교
더블 워런 트러스교
(Double Warren Truss Bridge)

강판형교
(Steel plate girder Bridge)

'''시공사'''

1. 개요
2. 역사
3. 구조
4. 기타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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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가로로 본 모습[1]
[image]
세로로 본 모습[2]
漢江鐵橋 / Hangangcheolgyo(Railway Bridge)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용산역)과 동작구 노량진동(노량진역)을 잇는 길이 1,110m의 철도 전용 교량이다.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다리'''[3]로 총 4개의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간은 '용산구 이촌동 172-1'번지 쪽 도로부터 노들로 쪽 까지이다. 관리는 전구간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에서 담당한다.

2. 역사


원래 미국인인 제임스 모스가 경인선 건설과 함께 부설권을 획득했다. 당시엔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보도 전용 다리를 옆에 같이 건설하게 되어 있었다.
1897년 3월 29일 기공식을 올렸다. 그러나 자금난과 인력난으로 모스는 부설권을 일본에 넘겨 버리고, 일본은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보도 전용 다리는 부설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4] 우여곡절끝에 1900년 7월 5일 단선으로 개통된다. (A선) 이어 경부선이 개통되고 교통량이 늘어나자, 1912년 A선의 상류 쪽에 단선 철교를 하나 더 놓는다. (B선) 그리고 일제시대에 여러 노선 개통으로 경성(서울)을 기점으로 하는 열차 운행이 늘어나면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1944년 8월 1일 복선 철교를 하류 쪽에 하나 더 놓게 된다. (C선)
1950년 6월 28일 6.25 전쟁이 터지고 서울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북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이승만 정부에서 다리를 모두 폭파했다. 하지만 한강대교와는 달리 약간인 파손만 입었기 때문에 조선인민군 육군이 도섭판을 깐 후 T-34 전차를 영등포로 직접 투입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면서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는 중요한 목표물이 되는 바람에 반복적인 폭격으로 많은 부분이 완파되어서 교량으로서인 기능을 잃어버린다.[5] 이후 서울을 탈환한 다음 1951년 미 육군 공병대인 미군 제62공병단에 의해 A선만 임시복구, 열차가 임시로 통행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열차 운행이 늘어나면서 하나만으로는 통행이 어렵게 되자 B선을 1952년부터 복구하기 시작했고, 1957년 7월 C선을 완전복구하여 복선 운행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열차 통행이 점점 늘어나자 C선 하나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방치되어 있던 A선과 B선도 1969년 6월에 완전히 복구하여 복복선으로 운행하게 된다.[6]
1980년대 후반 들어 경인선 철도가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경인선을 복복선화가 진행된다. 이미 복복선화했던 용산-구로간은 3복선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맞춰 A선과 C선 사이에 복선철교로 D선을 새로 건설, 1994년 12월 개통된다.[7] 이로써 지금의 한강철교가 완성되었다.

3. 구조


현재 이용하는 열차는 각 선별로 아래와 같이 구분된다.
B선 북단에서 용산삼각선이 분기하고 그 직전에 A선에서 B선으로 옮겨탈 수 있는 건넘선이 있다. 경부선을 따라 올라오다가 경원선으로 진입하는 열차[8]는 A선으로 한강철교 북단까지 온 뒤, 한강철교 위에서 신호를 기다려 평면교차를 통해 용산삼각선을 따라 경원선으로 진입한다. 따라서 경부선 일반열차 선로를 따라 올라오는 열차는 영등포역에서 평면교차로 1호선 급행 선로로 바꿔탄다. 선로 구조상 노량진역에는 바꿔탈 수 있는 건넘선이 없기 때문.
B선은 중간에 굽어지는 곡선이 있어 지나가는 열차는 무조건 서행한다. 1호선 동인천 급행의 용산 - 노량진 소요시간은 이 때문에 D선으로 강을 건너는 완행보다 더 걸리며 간혹 완행이 급행을 추월하는 하극상도 생긴다(...).

4. 기타


현재 1994년에 개통한 D선을 제외한 A,B,C선만 등록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현재 북단 보수공사로 그 밑을 지나가는 강변북로의 통행속도가 느려졌다. 2015년 12월 10일 철교 남단 부근에서 불발탄이 발견되어 11일 새벽에 해체작업을 했다. 6.25 전쟁에 미군이 사용하였던 AN-M65 폭탄이다.
반쪽만 트러스가 있는데 이는 예전에 한강 폭이 절반에 불과했던 흔적이다. 그 시절엔 노들섬도 섬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이름으로 한강철교라는 가혹행위가 있는데, 자세는 엎드려 뻗치거나 '''머리를 땅에다 박고 두 다리를 뒤에 똑같은 자세를 한 동기생의 다리에 올린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5. 관련 문서


[1] 미니어처로 보일 수 있겠지만 틸트 시프트(tilt-shift) 효과를 사용하여 미니어처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2] 왼쪽부터 C선, D선, A선, B선이다.[3] 한강대교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한강대교는 한강에 건설된 최초의 '''인도교'''이다.[4] 이 보행용 다리는 한강대교를 건설하면서 해결된다.[5] 6.25 전쟁 당시 투하한 것으로 보이는 불발탄이 40여년 후 D선 교각 터파기 공사때 발견되기도 함.[6] 이때 A선과 B선의 트러스를 전면교체하고, A선 트러스 일부는 완도대교 건설에, B선 트러스 일부는 수색철교 건설에 쓰였다. 수색철교는 1990년대 안전조사 결과 붕괴위험이 크다는 판정이 떨어져 93년 통행금지되었고, 1995년 철거되었다. 뒤이어 옆에 있던 수색교가 8차로로 확장되면서 흔적까지 완전히 없어졌다. 구 완도대교 역시 새로운 다리가 지어지면서 2012년 철거되었다.[7] 가장 최근에 건설된 관계로 이것만 도상교량이다.[8] 화물열차가 대다수고, 임시 여객열차가 이 선로를 이용한다. 예외는 육군훈련소 신병배출열차. ''엄연한 무궁화호 정기여객열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