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선

 







'''경인선'''
京仁線 / Gyeongin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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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 31x000호대 전동차
'''소유자'''

국가철도공단이 위임
'''운영기관'''

'''노선번호'''
301
'''노선명'''
경인선 (京仁線)
'''종류'''
간선철도, 일반철도
'''영업거리'''
27.0㎞
'''궤간'''
1435㎜
'''역수'''
21
'''기점'''
구로역
'''종점'''
인천역
'''전기'''
교류 25000V 60㎐ 가공전차선
'''선로최고속도'''
110km/h
'''신호'''
ATS-S2
'''선로 수'''
4(구로역동인천역)
2(동인천역인천역)
'''개업일'''
1899년 9월 18일
'''운영노선'''
수도권 전철 1호선
1. 소개
2. 역사
2.1. 착공과 개통
2.3. 해방 이후 - 1974년
3. 일반열차 운행 문제
4. 지하화 문제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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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역인천광역시 중구 인천역을 연결하는 총 길이 27.0km 철도 노선. '''노면전차를 제외한 한국 최초 철도 노선'''이자[1][2] '''현재 존재하는 한국 철도 노선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일하게 '''19세기'''에 만들어졌다.
개통 당시에는 노량진역이 기점이었으며 1900년 7월 경성역까지 연장되었으나, 1905년에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구로역 이북 구간이 경부선으로 편입되고 나머지 구간만 남았다. 그러나 지금도 수도권 전철 1호선 역번호는 경인선을 본선으로 하여 부여되어 있다.

2. 역사


'''경인선 변천사'''
년도
당시 운영사
1899
경인철도합자회사
1903
경부철도주식회사[3]
1906
한국통감부 철도관리국
1909
일본 철도원 한국철도관리국[4]
1910
조선총독부 철도국
1946
미군정 운수부
1947
대한민국 교통부
1963
대한민국 철도청
2005
'''한국철도공사'''

2.1. 착공과 개통


1897년 3월 22일 주한미국전권공사 겸 기업가인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가 기공했는데, 하필 미국에 맡긴 이유는 대한제국이 철도규격을 표준궤로 하였고 미국 철도가 표준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대한제국 정부 조직이 매우 불안정하여 조만간에 나라로서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고 대놓고 소문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크게 위축시켰다. 그리고 1898년에 자금난을 겪어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던 것을 당해 5월 10일에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가 양도받아[5] 1899(광무 3)년 9월 18일완공시킨다.
당시 노선은 제물포역[6] - 축현역 - 우각동역[7] - 부평역 - 소사역[8] - 오류동역 - 영등포역 - 노량진역. 이후 한강철교 완공과 함께 용산역을 지나 경성역까지 가는 노선이 완공되었다.
개통 당시 노량진역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으로, 표정속도는 19.8km/h로 지금 생각해보면 답이 안 나오는 수준이지만[9] 그때의 운송수단이라고는 마차나 도보 정도였던 시절이라 증기기관차라도 가히 초고속 운송 수단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시 운임은 상등석 1원 50전, 중등석 80전, 하등석 40전이었다. 쌀 한 가마니가 4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까,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상등석이 60,000원, 중등석은 32,000원, 하등석은 16,000원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인천역 ~ 노량진역 구간 소요시간은 완행열차로 58분, 동인천역~노량진역 구간 소요시간은 급행열차로 약 43분, 특급열차로 39분이고 운임은 현금으로 2,350원[10]으로 소요시간은 특급 기준 2/7정도로, 운임은 하등석 기준 1/10정도로 감소한 셈이다.
급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선형이 매우 좋지 못했고, 그래서 개통 10년도 못 된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대규모 개량공사가 진행되었다. 이 개량공사를 통해 현재의 주안역 ~ 동인천역 구간 선형이 크게 변경되었다. 미카형 증기기관차가 미국에서 직수입 혹은 일본을 통해 간접 공수되어 투입되었으며, 광복한국전쟁 이후인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운행되었다.

2.2. 일제강점기


개화기 경인선은 명목상 사철이지만 사실상 국유철도로 기능했는데 한일합방조약 이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설치되고 정식으로 일본의 국유철도가 되었다. 1904년 경부선 개통으로 경인선은 실질적으로 경부선 지선이 되었지만 조선 수위도시 서울과 외항 인천을 연결하는 노선으로써 그 당시부터 수송량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일제는 1928년에 복선화 계획을 세웠으나 재정 부족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결국 일제가 전시체제에 돌입함에 따라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2.3. 해방 이후 - 1974년


1945년 해방으로 일제가 한반도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경인선은 해방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운영을 보였으며, 미군정에 의해 운영되다가 대한민국 철도청이 출범하면서 철도청이 경인선을 관할했다. 6.25 전쟁으로 경인선도 조선인민군에 의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 정부는 일제가 이루지 못한 경인선 복선화에 나섰고, 부족한 재정 상황에서도 공사를 추진해 1965년에 구로 - 인천 구간 복선화를 완료했다. 이 시기에 증기기관차 - 객차 편성을 대신해 일본에서 니가타 디젤동차를 도입하여 운행시간 단축을 이뤄내기도 하였다. 당시 영상

2.4. 수도권 전철 1호선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과 동시에 전철화를 하여 직결된 수도권 전철 1호선에 편입되었다. 이후로 일반열차는 비정기적 관광열차 외에는 운행하지 않으며 통근형 전동차가 운행중이다. 초기에 중장년층 이상 연령대에서 주로 기억하는 '식빵' 전동차인 초저항 1000호대가 주로 전철화 직후 운행했다. 이후 식빵 시리즈와 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가 운행되다 2020년 퇴역되었으며, 코레일 311000호대 전동차가 투입되어 운행 중이다. 그 이외에는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가 가끔 운행한다.
자세한 사항은 수도권 전철 1호선, 수도권 전철 1호선/급행, 수도권 전철 1호선/운행 계통 참고.

3. 일반열차 운행 문제


복선 전철화 이후 경인선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일반열차가 운행하지 않는다. 일반열차용 저상홈이 없기도 하고, 일반열차가 운행해야 할 정도로 선로 용량이 넉넉하지도 않다. 이러다보니 경부선 일반열차선에서 경인선으로는 연결선로가 아예 없다. 여객열차가 들어가려면 영등포역 등지에서 평면교차를 통해 전철 급행선로나 일반선로로 들어오거나 구로삼각선을 이용해 구일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아니면 경부선처럼 가감속 성능이 좋은 누리로를 동인천 특급을 폐지하고 대체하면 된다. 앞에서 말한 문제는 없어지지만 수송량이 감소할 것이다.
수도권 전철 개통 이전에는 보통 등급 일반열차가 통근열차 역할을 하며 운행되었으며, 지금도 아주 가끔 관광용 단체 무궁화호가 새벽 및 밤시간대에 들어오기도 한다. 때문에 철도통계연보에서 수송실적이 잡히는 역들이 간헐적으로 있다. '''저상 - 고상 플랫폼 문제가 생기는데, 널판지를 깔아 주면 된다고'''[11][12] 한다.(...)
주로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위한 전세열차로서 투입되는 경우인데, 철도 패키지 여행 특성상 대부분 승객은 중년 여성들이다. 내장산 단풍 구경을 위해 임시 새마을호가 경인선에 들어와 패키지 관광객들을 가득 태우고 정읍역으로 떠난 적도 있으며, 이런 임시열차는 직통으로 다니거나 아니면 중간에 한 역에 정차해 다른 관광객들을 더 태우고는 바로 목적지로 가는게 주 패턴이다. 임시 무궁화호 목적지도 정선역이나 곡성역과 같은 관광지들로만 이루어져있다. 개찰구는 비상용 게이트를 개방하거나 자동개집표기를 비상 모드로 전환하여 통과한다.
사실 일제시대에도 모든 역을 필수정차역으로 운영했으며, 19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전부터 무궁화호 같은 선택정차 운영이 비효율적이었던거.

4. 지하화 문제


이른바 '''경인 익스프레스.'''
현실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현재 경인선 구간 운행 문제'''로 실현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경인선 인근에 대대적인 도시재생사업과 단절된 도로 연결 사업을 시행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수도권 전철 운행 개시 이래 상상 이상 수송량을 자랑하고 있다. 이 엄청난 수송량에 대처하기 위해 복복선이 건설되었지만, 이 때문에 시가지 단절이 심하다.
경인선 인근 지역 중 상당수는 부설 이후부터 무계획적인 시가지가 들어서 시가지 단절이 심하다. 이어져야 할 지선도로들도 단절되어 있고 이로 인해 간선도로의 정체도 심각한 수준이다. 고가화도 고려할 수 있으나 선로 옆 건물들이 슬럼이 될 수 있어 낙후된 연선 시가지를 고려하면 지하화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
횡단하는 도로를 건설하기도 어려워 자동차로 건너기도 힘들다. 이 외에도 소음도 매우 심하다. 그러한 이유로 지하화는 인근 주민들이 강력히 원하며 인근 지자체국회의원의 필수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복선에 대피선 건설로만 공사비가 조 단위라고 한다. GTX B선 건설과 함께 추진되고 있으나 아직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이다. 또한 경인고속도로 지하화에서도 지자체 별로 각각 추진한 바가 있었듯이 지하화가 추진 중인 도원역 ~ 구로역 구간을 지나는 인천광역시, 경기도 부천시, 서울특별시가 각각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각각 약 11km, 7.5km, 5.5km 구간이다. km당 건설비를 1500억[13]으로 계산하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비용을 감수할 정도로 편익이 있는지가 문제다.
송도에 인천신항이 건설되고 내항이 개방되어 경인선을 통한 화물 운송은 감소할 것으로 보이고 장기적으로 수인선, 인천신항철도,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로 화물 수요가 옮겨갈 예정이기 때문에 화물운송에서의 문제점은 대부분 해소될 것이다.
여객열차가 운행되고 있고 선로 수가 훨씬 많은 경부선에 '''비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현재 기본 계획은 선로를 현 선로 지하에 건설하고 현재 선로 부지는 매각하여 사업비에 충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선로 부지가 아닌 인근 도로에 지하철처럼 건설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복복선보다는 복선+대피선 건설로 공사비 절감을 추구할 수도 있다. 아직 구체화된 계획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유동적인 상황이다.
위 내용은 어디까지나 '''추진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것'''일 뿐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부천, 재정자립도도 높고 그 많았던 빚도 다 해소했지만 그래도 아직 거대 토목 사업을 벌이긴 부담스러운 인천, 재정자립도는 높지만 그만큼 쓸 곳이 많은 서울[14] 모두 교통 예산이 풍족하지 않고. 국비를 쓸려고 해도 예타조사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 국비 투입이 거의 불가능하므로[15] 민자 유치 가능성이 매우 높다만 요금이 비싸진다는 단점이 있어 쉽지 않다. 인근에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시행된다면 교통분담금 명목으로 사업비에 보탤 수도 있을 것이고, 사업과 동시에 인근 재개발을 동시에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은 경인고속도로 서인천IC ~ 신월IC 구간도 지하화가 확정된 상태인데, 국토교통부는 여전히 반대 입장이다.
일단 타당성 분석은 추진한다고 한다.
2016년 10월 25일 인천일보 보도에 의하면 사업 타당성 연구 용역에서 경제성이 낮아 철도부지를 일반 재산화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와 경인선 지하화가 난관에 봉착했다고 한다.

5. 기타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역들은 스크린도어가 열릴 때 "안전문이 열립니다." 나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라는 방송이 나오는데 음질이 매우 안 좋다. 치지직 거리는 소리가 대부분이고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리는 게 태반. 이는 GS네오텍(소사역 등)이나 현대엘리베이터(부평역 급행 승강장 등)의 스피커 부품 문제이다.
경부철도가처럼 경인철도가라는 철도찬가도 있다.
제2경인선 계획이 있다.
[1] 노면전차를 포함하면 1899년 5월 20일 개업한 경성전차가 최초이다.[2] 경부선도 엄청나게 오래되었으나 1904~5년 가량에 지어져 경인선이 이르다.[3] 경부철도주식회사가 경인철도합자회사를 매수하여 경인선을 소유하게 되었다.[4] 1909년 12월 일본 철도원으로 조직이 이관됐다가 1910년 8월 한일병합 후 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개편되면서 그리로 이관돼 '철도국'이 됐다.[5] 2019년에 경인선 부설권을 갖기 위해 미국과 꾸준히 합의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다.#[6] 현재 인천역.[7] 도원역이 가장 가깝다. 미국 공사 호러스 뉴턴 알렌의 별장 가까이에 역을 짓는다는 이유로 선로까지 꺾어가며 지었다. 부설권이 일제로 넘어가자 당연히 존재 이유는 사라져버렸고 1906년에 폐역했다. 선로도 1908년에 이설하여 더 이상 역 터에 선로는 존재하지 않는다.[8]부천역.[9] 지금은 특급 기준 50km/h까지 나온다.[10] 이 중 1회용 교통카드는 보증금 500원이 들어있다. 선후불교통카드 사용시 1,750원[11] 다만, 이로 인해 머리를 부딫히거나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다리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12] 스크린도어 위치와 일반열차 출입문 위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스크린도어가 없는 1선(급행선)에서 승하차한다.[13] 9호선 1단계 구간 km당 건설비가 약 1400억.[14] 서울시 차원에서는 경인선 인근이 외곽 주거 지역인데다 이미 재개발된 곳이 많아 효용도 크지 않고 재원 확보도 어렵다.[15] 연선 낙후화가 사회적 문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전제가 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