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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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가톨릭의 대성당. 정식 명칭은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이며, 세비야 대성당이라는 통칭으로 불린다. 이슬람의 모스크를 예전 하기아 소피아마냥 성당으로 바꿔놓았기에 다른 성당들과는 달리 폭이 넓은 편이다. 전 세계 성당 중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브라질 아파레시다 성모 발현 국립 대성당에 이어 3번째로 큰 성당이며, 스페인의 성당 중에서는 가장 크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고딕 등 여러 양식이 반영되었다. 내부에 있는 무덤 가운데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관도 안치되어 있다. 네명의 왕들이 관을 들고있는데 그중 앞 두명은 웃고 있고 뒤 두명은 찡그리고 있다. 앞 두명은 찬성파이고, 뒤 두명은 반대파이다. 입고 있는 옷의 문장을 통해 구별할 수 있는데 앞에는 각각 카스티야와 레온을, 뒤에는 아라곤과 나바라를 상징한다. 들려 있는 이유는 콜럼버스가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을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2. 역사
2.1. 이슬람
세비야 대성당의 모체는 무와히드 왕조의 칼리파 아부 야쿠브 유수프(생몰년 : 1135~1184, 재위기간 : 1163~1184)가 건설한 모스크였다. 1172년 착공해 1198년 완공된 모스크는 길이 135m, 너비 100m에 달했다.
2.2. 가톨릭
1248년 11월 23일, 레콩키스타에 의해 세비야가 가톨릭의 영향권에 들어오자 모스크는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유럽의 대성당들이 그렇듯, 세비야 대성당이 지금과 같은 규모를 갖게 된 것은 도시의 부유함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1401년 정초식을 거행한 후 한 세기 넘게 공사한 끝에 1506년 완공되었다. 그러나 불과 5년 후인 1511년 돔 지붕이 무너져 보수 공사를 진행했고, 1888년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천장이 다시 붕괴해 1903년 보수가 끝났다.
3. 건축
특이하게도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는 무어인들에 의해 모스크로 시작되었던 것을 스페인 사람들이 그들을 몰아낸 후, 밑작업을 부수지 않고 그 위에 그대로 자기들의 양식대로 차곡차곡 지었기에 가능했다.
때문에 보면 성당 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단 부분에 이슬람 양식이 섞여있다.
3.1. 종탑(히랄다)
3.2. 경당
3.3. 무덤
여러 사람들이 묻혀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특이하게도 관이 땅에 뭍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 왕국 이전 국가들의 왕들[6] 의 모습을 딴 동상이 네 귀퉁이에서 짊어지고 있는데,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관을 땅에서 떨어진 형태로 무덤을 만든 것. 다만 실제 유해는 밖에서 보이는 관이 아니라 그 안 속에 있는 관에 있다.
이 중 고개를 든 앞의 두 왕과 고개 숙인 두 왕의 차이는 콜럼버스의 항해 동의 여부다(...). 사망 이후에 관이 여러 곳을 헤매다가 결국 정착한 곳이 세비야 성당[7] 이라서, 이 무덤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도 많은 편.
[1] 2010년 부분수정[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6] 레온, 나바라, 아라곤, 카스티야[7] 도미니카 공화국은 여전히 자신들의 땅에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