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발현

 

1. 개요
2. 상세
3. 성모 발현 사건
3.1. 교황청, 가톨릭 지역 교구에서 인정된 발현
3.2. 교황청에서 인정하지 않은 발현
3.3. 콥트 정교회에서 인정한 발현


1. 개요


성모 마리아가 사람들 앞에 나타난 사건을 일컫는다.

2. 상세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은 가톨릭, 정교회 신자거나, 성모신심이 있는 개신교[1][2] 신자이지만, 간혹 신자가 아닌 경우[3]도 있다. 또는 교황청에서 인가받은 벨기에 바뇌의 성모발현처럼 신앙에 관심이 없던 냉담자에게 발현한 경우도 있다. 칼뱅주의를 계승하고 있는 장로회에서는 애초에 은사중지설을 주장하기에 특별한 은사나 방언과 같은 신비한 체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인데,[4] 더욱이 예수가 아닌 다른 영과의 접촉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침례회/오순절교회/감리회 등 다른 개신교 교파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개신교에서 성공회[5]와 일부 루터교회를 제외한 교파들은 성모 발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한국기독교장로회등 성서비평학과 이성적 신앙을 가진 소위 진보주의 교회에서는 기적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각 지역에서 나타나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그 지역의 주교교황청의 인증 작업을 거쳐 비준하는데, 이 기준은 그 발현이 의미하는 바가 교회의 교리와 합치하느냐 아니냐가 크게 좌우된다. 반대로 별다른 교리적 메시지 없이 기적에만 치중된 발현은 보통 인정하지 않는다.[6] 이는 사도들의 순교 이후 맥이 끊긴 공적인 계시를 사적인 계시를 통해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이며, 혹여나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의 형상을 한 악마와 혼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욱 신중을 가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사탄이 빛나는 천사나 영적존재로 위장하여 나타날 수 있다고 분명히 경고하기 때문이다.
또한 발현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지역마다 모습이 다른데, 이는 민족과 문화가 크게 좌우된다. 대표적인 예로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전형적인 멕시코 원주민의 모습이었다. 사실 발현 유무와 관련 없이 지역마다 성모 마리아의 의상이나 생김새가 민족성을 따라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의 성화나 성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와 관련하여 성상이나 성화에서 이상현상이 일어나는 등의 자잘한 사건들도 많지만, 여기서는 직접 발현한 사건들만 다루기로 한다. 아래의 10개의 발현 사례 외에는 교구 차원에서만 인준했거나, 다른 종파에서 인준했거나, 아예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주의를 요한다. 특히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은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이단이다.''' 한편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 같은 경우는 교황청에서 판정을 유보하고 방치한 탓에 사실상 순례가 이어지지만, 현재까지 교황청에서 인준하지 않았고 관할 교구의 공식 입장이 '성모발현은 없었다.'는 것이다.[7] 하지만 아직 조사 중이기에 사적인 순례는 허용된다. 아직 완전한 이단은 아니라는 소리.
이런 성모 발현으로 인해 간혹 나주 성모동산이나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 같은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생기는데 이들은 명백히 그런 발현은 없었다라고 가톨릭 교회에서 확인되었으므로 믿어서는 안된다.
다만, 성모 발현에서 종말론(지옥, 심판 등)과 하느님의 징벌을 언급하였다는 것만으로 성모발현이 가짜라고 취급하면 된다는 주장은 오류이다. 일반적으로 인가된 성모발현에서도 관련된 지옥이나 하느님의 징벌 예언 등은 상당히 많다. 하단의 교황청 공식인가발현인 파티마의 성모에서도 지옥의 환시가 보여진 바 있고 교황청의 믿을 만하다는 직접 인가를 받았으며, 마찬가지로 하단에 설명되어있는 지역교구장 인준발현인 아키타의 성모발현 등에서도 하느님의 대징벌의 예언 등이 공인받은 바 있다.
물론 교황청과 지역 교구에서 인정한 성모 발현 메시지의 거의 대부분은 시한부 종말론[8]에 빠지라는 메시지가 아니며, 심판의 날을 대비하는 것 외에도 단순한 삶과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기도하고 보속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아주 기초 중의 기초를 말할 뿐이다.
또한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발현이라 할지라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드시 그 발현의 사실성과 성모님이 하셨다는 말씀을 다 믿어야만 하는 의무는 없다. 자신이 믿기 어렵다면 믿지 않는다고 해도 신앙적으로 잘못이 아니다. 이렇게 '반드시 믿어야 할 의무는 없음'은 꼭 성모발현이 아니더라도 다른 천사나 성인의 발현, 환시 등의 사항에도 마찬가지다. 즉, 교황청에서 인정한다는 표현은 곧 '믿어도 괜찮다.'는 거지 '믿어야 한다.'가 아니다.[9]

3. 성모 발현 사건



3.1. 교황청, 가톨릭 지역 교구에서 인정된 발현


※ '''교황청에서 인정된 발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근방 테페약 언덕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당시 57세의 원주민 후안 디에고(St. Juan Diego)에게 나타났다. 과달루페는 '돌뱀을 쳐부수다'라는 뜻을 지닌 아즈텍어 '테 콰틀라소페우(Te Coatlaxopeuh)'를 '테 과틀라소페우(Te Quatlaxopeuh)'로 잘못 들어 만들어진 단어.
프랑스 왕국의 생 테티엔 르 로(Saint-Étienne-le-Laus)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브누아트 랑퀴렐(Benoîte Rencurel)이라는 양치기 소녀에게 나타났다. 2008년에 교황청이 공인함으로써 21세기 들어 최초로 비준한 성모 발현이다. 성모 마리아는 브누아트에게 그 지역의 작은 성당을 잘 지키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과 그들을 위해 피정의 집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브누아트 랑퀴렐은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었다.
  • 루한의 성모│Nuestra Señora de Luján│1630년 마리아 성모상을 싣은 마차가 코르도바로 이동하던 중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의 루한에서 마차가 멈춰섰다. 성모상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나서야 말과 마차가 다시 움직이자, 사람들은 이를 기적으로 여기고 이곳에 성당을 짓고 성모상을 안치했다.# 1930년 9월8일 교황 비오 12세는 루한의 성모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프랑스 왕국 파리의 뤼뒤박(Rue du Bac)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으로, 통칭 '기적의 메달' 사건.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St. Catherine Labouré) 수녀에게 나타났다. 기적을 바라는 신자들로 북적이는 곳으로, 기적의 메달은 이곳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느 성물방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프랑스 왕국 라 살레트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11세 치기 소년 막시망 지로(Maximin Giraud, 1835~1875)와 15세 소녀 멜라니 칼바(Mélanie Calvat, 1831~1904)에게 나타났다. 앞의 3개의 발현과는 조금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성모 마리아는 울면서 이 세상의 비극적 운명을 경고하며 인간의 자만을 지적하고 회개를 호소했으며, 이 때는 마침 과학·기술·철학적 발전이 이루어질 시기였다. 성모 마리아는 두 목동에게 따로따로 메시지를 남겼는데, 막시망에게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멜라니에게는 무시무시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 목동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거의 동시에 감자 기근을 비롯하여 각종 혁명과 폭동[10]이 일어나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고. 이 발현이 있은 뒤 비신자였던 막시망의 아버지 제르망 지로가 세례성사를 받고 가톨릭에 입교했으며,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우물은 말라 있었다가 다시 물이 솟아나왔다. 이후 막시망은 교황령 소속의 군인이 되었고, 멜라니는 수녀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의 언론이 두 사람을 많이 공격했다고 한다. 이에 막시맹 지로는 후일 나이를 먹은 뒤 라살레트에서 열린 성모 발현 기념식에 참석하여, "본인이 목격하고 체험한 것은 분명한 성모 발현이었다"라고 말하였다.(출처 : 영어 위키백과)
참고로 라살레트의 메시지 중, 인류에 대한 대징벌이나 미래 상황 예언 등을 묘사한 라살레트의 비밀 메시지(소위 '사적 메시지')는 교황청에 의해 인준받지 않은 메시지이다(라살레트 발현 자체와 감자 기근을 예언한 공적 메시지는 교황청에 의해 인준받았다). 일부 음모론자들이나 교도권과 대립하는 과격한 전통가톨릭 신자들, 그리고 각종 신심단체 활동을 하는 일반적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일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사적 메시지도 인가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11]
프랑스 제2제국의 루르드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성 베르나데트 수비루(Bernadette Soubirous, 1844~1879)에게 나타났다.
프랑스 제3공화국의 퐁맹(Pontmain)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12살의 외젠 바르베데트(Eugène Barbedette)와 10살의 요셉 바르베데트(Joseph Barbedette) 형제에게 나타났다. 보불전쟁 당시 프로이센의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공격, 위태로운 상황을 맞던 처지에서 발현 후 10여일 만인 1월 28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자 많은 이들이 발현한 성모 마리아를 '희망의 성모'라 부르며 발현 장소를 순례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1872년 2월 2일 교황청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카운티 메이요(County Mayo) 노크(Knock)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19세기 후반 아일랜드는 영국의 억압과 대기근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마을 주민 15명에게 나타난 성모 마리아는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성 요셉과 성 요한과 함께였다. 이후에도 방문자들 가운데 여러 기적적인 치유가 발생하였다. 현재까지 공인된 성모 발현 가운데서 단 한 마디의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특이한 경우이다.
포르투갈 제1공화국파티마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루치아 도스 산토스(Lúcia dos Santos), 프란치스코 마르토(Francisco Marto), 야신타 마르토(Jacinta Marto)에게 나타났다. 일명 파티마의 제3예언으로 인해서 각종 대중매체와 음모론의 단골소재로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벨기에의 보랭(Beauraing)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9~15세 사이의 어린 아이 5명에게 나타났다.
벨기에의 바뇌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가톨릭 냉담자였던 12세의 소녀 마리에트 베코(Mariette Beco, 1921~2011)에게 나타났다. 이 때 성모 마리아는 자신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소개하며 마리에트를 작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는데, 이 샘물로 씻거나 마시는 사람들은 병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진행형. 물 떠가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 발현 사건은 1941년교황청의 비준을 받았다. 이후 마리에트는 다른 발현 체험자들과는 달리 수도자가 되지 않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고 한다.
또한 바뇌 성지에는 1967년부터 한국인 수도자로 김젬마 수녀가 상주해 왔는데, 50년만인 지난 2017년 선종했다.
'''※ 가톨릭 지역 교구에서 인가된 성모발현'''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 주의 그린베이시 챔피언이라는 작은 마을에 당시 28살인 벨기에 이민 처녀 에이델 브리스에게 성모 마리아가 3번 발현한 사건으로, 당시 성모는 눈부시게 흰 옷을 입고 허리에는 노란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별 장식 관을 쓴 모습이었다. 성모는 "나는 하늘의 모후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한다"며 "너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응답했다. 성모 마리아는 또 브리스에게 "아이들을 모아 구원을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치라"고 말했다. 2010년 12월 8일 인가를 받았다.
일본아키타현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 귀가 어두웠다는 사사가와 카츠코(세례명 아녜스) 수녀에게 나타났다. 이 때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파티마와 많이 비슷하다고 한다.[12] 당시 사사가와 수녀가 있던 수녀원의 목각 성모상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일이 101회나 목격되었다. 또한 다른 발현 사건들처럼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는데, 이 사례 중 하나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사사가와 수녀의 청력이 기적적으로 즉시 회복된 것이었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치유된 한국인 신자도 있다(한국인 천선옥 데레사,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기적 치유를 확인했고 이후 니이가타 교구장 사목서한에서도 인용함).
이때 발생한 성모상의 눈물들은 과학적인 조사를 거쳐서 인간의 체액임이 확인되었고, 1984년 관할 니이가타 교구장 이토 쇼지로 주교는 사목서한을 발표하여 아키타의 성모발현, 그리고 메시지와 눈물이 믿을 만하다고 공식적으로 인가하였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1988년 6월 아키타 성모상의 눈물과 성모 발현 메시지가 믿을 만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 교황청이나 일본 내 지역 교구에서는 아키타 발현의 신뢰성에 대해 추가로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는데, 다만 지역 교구장 주교의 인가가 있다면 교황청에서도 터치하지 않는 관행에 따라 현재도 아키타 발현지(성체봉사회 성당)에 대한 성지순례는 합법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르완다에서도 가장 궁벽한 마을인 키베호, 그곳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알퐁신, 아나탈리, 마리 클레르 세 여학생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르완다가 회개하지 않으면 피의 강을 이룰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인종 간의 종교적 갈등과 미움으로 인해 20세기 후반 끔찍한 분쟁이 일어날 것임을 예언했다. 그리고 1994년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이 폭발하여 백만 명이 사망한 르완다 내전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공인된 세 목격자들 중 마리 클레어와 공인되지 않은 다른 목격자 몇은 1995년 키베호의 대학살에서 희생되었다. 2001년 6월 29일에 비준되었다.
그 밖에 지역 교구에서 인가된 성모 발현들은 이외에도 '''굉장히''' 많다. 대표적으로 베네수엘라의 베타니아에서 1980년대 초에 발현한 성모 발현[13],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950년대에 발현한 성모 발현, 에콰도르 키토의 성모 발현, 베트남의 짜끼우와 라방에서 일어났던 성모 발현들이 모두 지역 교구의 인정을 받았다.

3.2. 교황청에서 인정하지 않은 발현


미국뉴욕 베이사이드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성모 발현. 베로니카 루에켄(Veronica Lueken)에게 발현했다고 주장한다. 발현한 성모의 메시지라는 것이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많고, 당연히 인정되지 않는다.
한국전라남도 나주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성모 발현. 윤홍선 율리아(영문명: Julia Kim)에게 발현했다고 주장하지만, 교황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관할 천주교 광주대교구교도권에 순명하지 않는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행위로 규정하였다. 이곳에 관계하는 모든 이들은 파문#s-2이다.
  • 메주고리예[* 교계에서 통용되는 한글 표기이다. 그러나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메주고레'로 표기하는 것이 맞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입장도 같다. 기사]의 성모│Our Lady of Medjugorje│ 1981년 6월 24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메주고리예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성모발현. 처음엔 2명의 아이, 이후 6명의 아이가 성모발현을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현자라고 자처하는 자들[14]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고 금전적 동기까지 의심되는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현재 가톨릭에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일부에서는 메주고리예가 나주 성모동산처럼 커다란 사기극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단순히 교황청에서 인정하지 않았기에 순례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메주고리예가 성모발현지로 개발되고 홍보된 데에는 초기에 거짓 발현으로 판정하는 것을 미루고 오랫동안 순례를 방치한 교황청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제 소위 성모발현이 메주고리예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어 사실상 교구 차원에서 손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상태.[15] 2017년 1월,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신자들에게 가지 말 것을 권장하는데도 여행사들의 홍보 때문에 신자들이 계속 오자 교황청은 관할 교구주교의 요청으로 모든 교구장들에게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이 공인된 바 없다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교육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2017년 2월 26일, 관할 교구는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발현은 없었다.”는 것이 공식입장임을 재차 확인하였다.기사 2019년 5월 1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메주고리예에 대한 순례를 허용했으나 성모 발현을 진짜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기사
이외에도 인가받지 못한 대표적 발현으로는 스페인 가라반달에서 일어났다고 전해진 성모발현이 있다.

3.3. 콥트 정교회에서 인정한 발현


이 발현들은 가톨릭에서는 인정되지 않지만 콥트 정교회에서 인정한다. 현재 두 건이 알려졌다.
  • 자이툰의 성모│Our Lady of Zeitoun│ 1968년 4월 2일 ~ 2년간 이집트 카이로 근처 자이툰 지역에 있던 콥트교 성당에서 일하던 이슬람교도 기술자 파룩 무하마드가 성당 위 지붕에 서있던 여인의 형상을 목격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성모 마리아의 형상은 수시로 자이툰 지역 콥트교 성당에 나타났다. 일설에는 당시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도 목격했다고 전해진다. 발현 1달 만에 콥트 정교회 측에서 성모 발현을 인정했다.
  • 아슈트의 성모│Our Lady of Assiut│ 2000년 ~ 2001년 이집트의 아슈트에서 목격됐다는 성모 발현. 자이툰의 성모 발현과 달리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다만 콥트 정교회측에서는 이 지역의 성모발현을 인정했다.

[1] 성공회 또는 일부 루터회 신자도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Marian_apparition#Approved_by_the_Anglican_Communion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성공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발현은 3건이다.[2] 루터회성모 마리아 공경을 인정한다고 해서 가톨릭과 같은 견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물론 칼뱅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교파들보다야 그 정도가 강하긴 하나, "예수의 육체의 모친" 이외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도 부정적이다. 또한 성모승천 역시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수 없다고 여긴다. 초창기부터 루터회에서는 가톨릭의 성모신심을 우상숭배라며 강하게 주장해왔고, 지금도 교단이나 개교회별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러한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사실 성공회에서도 고교회파 일부에서나 강한 성모신심을 갖지, 복음주의(저교회파)쪽에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관점이 다른 개신교 교파와 별반 차이없다. 성모신심을 강하게 비난하지는 않을 뿐. 다만 이렇게 써놓으면 '성공회 극히 일부가 그런거고 대다수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관점이 다른 개신교과 차이없다'고 읽힐수도 있는데, 영국 성공회의 경우에는 고교회파가 더 주류이기 때문에, 성모신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개신교 교파보다는 좀더 경의를 표하는 편이다. 성공회 사제들이나 신자들도 마리아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Blessed Virgin Mary(복되신 동정 마리아)라고 호칭을 붙이는것을 볼 수 있다. 성공회 성당 이름에도 St Mary나 Blessed Virgin Mary라는 이름이 붙은 성당이 영국에 가보면 매우 많다.[3] 대표적으로, 파리의 성모발현과 연관된 발현인 반가톨릭성향의 유대인 알퐁소 라티스본에게 일어난 성모발현 사건이 있다. 라티스본은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사제가 된다.[4] 그래도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성모 발현과는 달리 '''방언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는 은사중지설을 주장하지만 개신교의 특성인 개교회주의 특성상 같은 교단의 장로회라 하더라도 교회마다 은사중지설을 따르기도 안따르기도 한다. 참고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개신교식 은사중지론을 이단 신학으로 본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은사(하느님의 은총과 가시적인 기적)는 사도 시대부터 절대 중단되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5] 성공회 신자들 가운데 자신은 성모신심이 전혀 없는데 해당 교회의 사제가 성모신심이 강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자신은 성모신심이 있는데 사제가 성모신심에 부정적일 경우, 그 신자의 신앙생활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이 불편함마저도 신앙생활의 한 요소라 생각하고 대개 포용하며 지낸다. 다른 교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성공회에서는 교회 안팎의 다른 신앙 자세에 대해 서로 관용하고 배려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꽤 익숙하다. 대한성공회 한정으로 성공회의 분위기를 말한다면, 성모송(아베 마리아)이 성모신심이 전혀 없는 신자들이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마지노선인 듯하다. 성모신심이 없는 신자 입장에서는 성모송으로 기도드려야 되는 때가 고난주간(성주간) 감사성찬례 정도밖에 없다.[6] 예외적인 사례로는 후술되어있는, 메시지 없이 발현 및 기적만 있었지만 인정받은 아일랜드 노크의 성모발현이 있다.[7]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보스니아를 방문하면서 메주고리예 추종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메주고리예는 방문하지 않았다.[8]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으로, 가톨릭에서 이해하는 일반적인 종말론은 천국, 지옥, 연옥, 최후의 심판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믿을 교리이므로 종말론 그 자체가 성모발현에 나온다 해서 거부감을 가지거나 가짜라고 단정짓는 건 대단히 그릇된 가치관이다. 그러나, 시한부 종말론이라는, 종말의 정확한 시기 예측 같은 것은 교황청에서 과거부터 적극 이단으로 보고 금지해왔기에,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적 성모발현은 애초에 절대 인가조차 받지 못하며, 신자들도 믿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9] 천주교 신자가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정한 교리는 사도신경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나온 모든 교리들, 교부들의 일치된 성경해석, 각종 세계 보편 공의회의 확정된 교리들, 7성사, 천국과 지옥, 연옥, 최후의 심판, 가톨릭 교회론과 성직계급 교리, 교황무류성, 삼위일체 하느님의 개념, 그외 교황령으로 확정된 믿을 교리인 성모무염시태성모승천교리 등이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 즉 선택받은 구세주이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흩날에 부활하였으며 다시 재림하리라 믿는 것은 기독교로서 너무나 기본적이기 때문에, 교파 막론하고 (가톨릭이든 정교회이든 개신교이든 간에) 당연히 반드시 믿어야 하는 교리이다.[10] 1848-1849년 혁명을 가리킨다.[11] 출처.[12] 회개하지 않는 인류에 대한 징벌 예고 및 희생, 사제들의 타락에 대한 경고, 보속과 기도의 당부. 당시 천주교회 안팎의 전통주의와 쇄신 갈등, 냉전과 핵전쟁에 관한 두려움(그것도 원폭에 의한 공격을 받았던 일본에서)을 비롯한 시대적 배경으로 제법 주목을 받기도 했다.[13] 1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단체로 성모 발현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전해지며, 회의적인 과학자, 신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성모 발현을 목격했다는 500명이 넘는 증인들이 있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성체 기적도 일어났다. 단, 베네수엘라 베타니아의 성모 발현은 '발현' 및 기적들만 인정받았고, 시현자 마리아 에스페란자가 받은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지역 주교에 의해서도 인정받지 못했다.[14] 파티마 시현자인 아이들보다는 꽤 나이를 먹은 청소년들이었다.[15] 아이러니하게도 보스니아에서 가장 유력한 종교는 이슬람교다. 발칸반도에서 가톨릭 교세가 강한 곳은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이며, 세르비아나치 독일 시기 우스타샤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있고 동방정교회가 우세하다. 이런 종교적 분리와 갈등은 지난 1990년대 발칸반도 내전의 주요 원인들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