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토고쇼
1. 개요
仙洞御所 / 선동어소
고대 일본에서 천황이 퇴위하고 상황이나 법황이 되었을 때 거주한 장소이자 퇴위한 천황의 이칭(異称)이다. 고대 아스카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천황의 생전퇴위는 매우 많았기 때문에 퇴위한 상황이 거주할 장소도 생긴 것이다.
선동(仙洞)은 중국의 도교에서 유래된 호칭으로 신선이 사는 산골을 의미하는 말이다. 속세에서 벗어나 깊은 산골에서 은둔생활을 하는데 이 점에서 퇴위한 천황의 거주 장소를 선동(仙洞)이라 불렀고 귀인이 사는 곳이 어소(御所)라 하여 선동어소(仙洞御所)라고 불리게 되었다. 선동어소는 원(院)이라고도 불렸는데 전근대 시절 퇴위한 상황이나 법황의 명칭인 ~원(院)이라는 명칭이 여기서 유래했다.
선동어소는 가정기관(家政機関)으로 원청(院庁)이 설치되었고 인세이의 정점을 찍었던 시라카와 덴노 때는 근위대라고 할 수 있는 북면의 무사(北面の武士)와 서면의 무사(西面の武士)가 설치되었다.
2. 교토어원의 선동어소
교토시 교토어원 내에 있는 교토고쇼의 동남쪽에 선동어소가 남아있으며, 조성당시 정식명칭은 앵정전(桜町殿)이었으나 아키히토의 양위 이후 황거내부에 위치한 후키아게 선동어소와의 구별을 위해 교토선동어소(京都仙洞御所)로 이름을 개칭하였다.
원래 이 곳은 도요토미 가문의 성이었던 교토신성(京都新城)이 위치하였던 지역으로, 당시에는 태합어소(太閤御所)라는 별칭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가문이 에도 막부에 의해 멸문당한 이후 네네의 사저로 이용되었고, 이후 아시모리번주이자 궁내소보였던 기노시타 도시후사(木下利房)의 저택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627년, 고미즈노오 덴노를 위해 에도 막부가 선동어소로 조성하였으며, 당시의 황거였던 교토 고쇼보다 크게 짓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선동어소의 건물들은 185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생전퇴위가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재건될 이유가 없어져 다시 재건되지 않고 현재는 정원만 남아 있다. 이 정원은 고보리 마사카즈가 설계한 것이다.
선동어소 동북쪽에 인접해있는 오미야 어소(大宮御所/대궁어소)는 고미즈노오 덴노의 황후인 도쿠가와 마사코[1] 의 여원어소(女院御所)로서 조성된 것이 시초라고 한다.
3. 황거의 선동어소
아키히토가 덴노였을 시절에 거주하였던 후키아게 어소는 현재 후키아게 선동어소로 개칭된 상황이다.
4. 아카사카 어소
1990년대 이후부터 일본 황실에서 벌어진 진흙탕 권력 다툼으로 인해, 125대 천황인 아키히토가 생전 퇴위를 하고 상황으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현재 일본 황실의 거주지는 도쿄이며, 교토에 있던 선동어소는 이미 전소된 지 오래이기에 본래 황태자 일가가 사용하는 동궁어소를 사용하기로 했다.[2]
2019년 4월 22일 궁내청에 의해서 생전퇴위 후 상황으로 된 아키히토 천황 내외의 말년의 최종적인 거처가 될 동궁어소가 최종적으로 선동어소가 되며, 명칭도 아카사카 어소(赤坂御所)로 개칭된다. 동궁어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기존에 거주하였던 황거 내 후키아게 선동어소[3] 가 아닌 다카나와 동궁어소에서 임시로 지내게 되며, 이에따라 다카나와 동궁어소는 선동가어소(仙洞仮御所)로 불리게 되었다.
5. 관련항목
[1]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딸로 메이쇼 덴노의 어머니다.[2] 생전퇴위 당시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 부부가 후키아게 대궁어소에 지낼 것으로 봤으나, 최종적으로는 동궁어소에서 지내는 것으로 결정났다. 일각에서는 2000년 죽는 날까지 수십년에 걸쳐서 맏며느리 미치코 상황후에게 시집살이를 시킨 고준 황후(나가코)의 거처였던 후키아게 대궁어소에서 지내는 건 상황후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었다.[3] 후키아게 대궁어소와는 별개의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