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시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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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대 구분 중 하나. 기간으론 538~710년 사이인데 초반부는 바로 앞시기인 고훈 시대와 겹치는 부분도 있어 6세기 후반부터 8세기 초를 아스카 시대로 보기도 한다. 한국사의 삼국시대 후반부 및 통일신라 전반기와 겹친다. 국내에서는 아스카 시대의 한자를 그대로 읽어 '''비조시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아스카(飛鳥)라는 명칭은 그 당시 정치의 중심지가 지금의 아스카 지방이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왜(倭)라는 국호를 지금의 일본으로 바꾼 것 또한 이 시대 후반이다. 아스카 시대는 일본이 한창 한반도의 문화를 받아들여(2차 도래인 문화) 발전하던 때로, 쇼토쿠 태자가 활약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2. 시대 상황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도 이 시대로, 백제의 성왕이 불상과 경전을 보냄으로써 불교가 공인되었다. 하지만 천황[1] 의 불교 귀의를 놓고 불교를 배척하는 모노노베씨와 불교의 공인을 요구한 소가씨가 격렬하게 대립했는데, 결국 소가씨의 쿠데타로 인해 모노노베 씨족은 멸망하고 소가 씨족이 대권을 쥐게 된다. 소가씨(소가우지蘇我氏)는 한반도에서 온 백제 도래인 계열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목만치 참고. 이들은 관료세력을 형성하고 왕실의 외척이 되어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대신이었던 소가노 우마코를 중심으로 한 숭불파는 모노노베 모리야 등 배불파를 숙청하고 스순 덴노을 옹립하기에 이른다. 이후 소가노는 그를 숙청하려는 스순 덴노를 역관광시켜 살해하고 다시 쇼토쿠 태자의 고모를 최초의 여자 천황인 스이코 덴노로 옹립했다. 이후 외손자인 쇼토쿠 태자를 섭정으로 즉위시켰고, 그 치세 아래 아스카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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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정책적으로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문명을 크게 받아들인 시기이다. 중국의 한자[2] , 인도의 불교, 간다라 미술 등이 대거 전래됐으며 이를 통해 일본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백제의 영향 또한 받았다. 백제에서 설계도를 가져와 만든 사찰인 아스카데라가 대표적인 예인데, 건축 자체도 고구려-백제 계열의 모습을 보여주며, 출토된 기와 등은 부여에서 출토된 것과 거의 같다. 또한 절의 목탑 심주를 세우는 날에는 당시 일본의 신료들이 백제 옷을 입고 행사에 참석했다고 한다.[3] 백제 말고도 고구려로부터 영향 받았으며 대표적으로 나라의 다카마츠 고분, 돗토리의 널판그림(板繪·이타에).#
일본 최초의 절인 아스카데라 이후에는 호류지, 시텐노지, 호키지, 고류지 등이 건설되는데, 이 시대의 주요한 가람배치인 1탑 1금당식은 구다라요가란(백제양식 가람百濟樣伽藍)으로 불리고 있다.
이 중 고류지(廣隆寺)는 교토에 위치해 있으며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당시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호족 하타노 가와가쓰(秦河勝)에 의해 세워졌는데, 하타씨는 신라계 도래인이라는 설이 있다. 이곳에 있는 일본 국보 반가사유상이 한국의 국보 반가사유상와 매우 닮아있어 한국에서 보내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었으며 신라 진평왕이 보냈다는 설이 있다. 전체적인 형태가 매우 흡사하지만 묘하게 다른 점도 없지는 않기에,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보내지 않았다는 추측도 있기는 하지만 주류적인 해석은 아니다.
3. 관련 항목
[1] 사실 이 시기에는 천황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다. 후대에 소급된 것.[2] 한자의 경우 이미 직전 시대인 고훈 시대부터 받아들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스카 시대에는 한자에 영향을 받으며 초기 형태의 가나 문자가 탄생된 시기.[3] 후소랴쿠키扶桑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