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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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1993년[1] 8월호. 표지모델은 표지에 나오는 야구선수가 흠모했다는 이 사람이다.
중앙일보사가 발행했던 소년잡지. 1969년에 창간하여 1994년에 폐간될때까지 대표적인 소년잡지로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주간지로 부활해 매주 월요일 지면과 온라인으로 기사를 발행한다. 이 밖에 유튜브 영상 채널 등이 있다.
새소년, 어깨동무와 함께 3대 어린이 잡지(소년생활을 포함하면 4대 어린이 잡지)라고 할 수 있으며 어린이 잡지 역사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소년잡지들 중에 판매량이 가장 많았다. 6~80년대 소년기를 보낸 이들의 영원한 추억이며, 이후로 지금까지 이들 잡지 정도의 네임드를 가진 인기 소년지는 다시 출현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는 본책과 여러권의 연재만화 부록(본책보다 크기가 작다), 완구 부록을 끼워주었다. 놀거리가 많지않던 1970년대에는 어린이 잡지에서 부록으로 끼워주던 완구 부록이 인기가 있었고 질도 좋은 편이었다.[2][3] 소년중앙의 가격은 1970년대 초에 200원 정도였는데 1970년대 말에는 900원대까지 상승하였다.[4]
UFO, 미스테리, 스포츠 선수 관련 등등 다양한 가십성 기사들이 인기를 끌었다. 또한 수록된 만화들 역시 쟁쟁했는데, 꺼벙이, 타이거 마스크, 비둘기 합창, 천방지축 오소리등이 연재되었고[5] , 로봇 찌빠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한 이충호 화백의 데뷔(1992년 단편 만화 연재) 역시 이 잡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철완 아톰, 리본의 기사, 유리의 성 같은 만화는 식자만 해서 그대로 싣기도 했다. 심지어 이런 복제 만화는 넘기는 방법까지 일본식으로 좌철이라, 중간에 접어서 끼워넣고나 뒷면부터 볼수 있게 싣곤 했다.[6]
본래 만화는 소년소녀만화중앙이라는 이름으로 부록으로 발매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보물섬과 만화왕국 등의 영향으로 사실상 본지가 부록이고 만화가 메인인 수준으로 볼륨 차가 크게 벌어지고 판형도 커졌다. 그리고 만화 부록의 이름도 '''만화홈런왕'''으로 바뀌었다.(이후 만화펀치, 만화 소년중앙 등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수록 작품들의 퀄리티가 성인이 봐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상당했는데 이는 주로 만화 업계에서도 대선배격인 쟁쟁한 화백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큐 점프 등 신흥 만화잡지와 일본 만화의 공세에 밀려 결국 위 사진에 나온 1993년 8월호를 끝으로 휴간을 맞으면서 만화부록을 없앴고 그 해 11월호부터 부록 만화잡지를 뺀 교양지로 부활했으나[7] 결국 시류를 버티지 못한 채 1994년 9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8] 폐간된 지 19년 만인 2013년에 주간신문 형태인 'Weekly 소년중앙'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엽서를 보내면 추첨을 통해 상품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안 보내주는 일이 많았다. 일부러 안 보내준 건지 중간 관리직의 농간인지 알 길은 없으나 당첨은 됐는데 상품은 못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당시는 못 살던 시절이고 제대로 된 우편물 추적 시스템도 없었으므로 우체국이나 배달 과정에서 내용이 잡지사 선물임을 알면 빼돌리는 등의 배달 사고가 꽤 있는 편이었다.) 이 때문인지 새소년에서는 추첨을 경찰관 입하 하에 진행한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연기자 강수연, 장서희[9] , 정태우[10] , 김민정[11] , 이재은[12] , 윤유선[13] , 우희진[14] , 김민희[15] , 김수양[16] , 주희[17] , 이은희[18] 등이 어린 시절 표지 모델로 나온 바 있다.
여담으로, 소년의 중앙에 있는 그것이라는 의미로 부르기도 했다.
소년중앙 1993년[1] 8월호. 표지모델은 표지에 나오는 야구선수가 흠모했다는 이 사람이다.
중앙일보사가 발행했던 소년잡지. 1969년에 창간하여 1994년에 폐간될때까지 대표적인 소년잡지로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주간지로 부활해 매주 월요일 지면과 온라인으로 기사를 발행한다. 이 밖에 유튜브 영상 채널 등이 있다.
새소년, 어깨동무와 함께 3대 어린이 잡지(소년생활을 포함하면 4대 어린이 잡지)라고 할 수 있으며 어린이 잡지 역사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소년잡지들 중에 판매량이 가장 많았다. 6~80년대 소년기를 보낸 이들의 영원한 추억이며, 이후로 지금까지 이들 잡지 정도의 네임드를 가진 인기 소년지는 다시 출현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는 본책과 여러권의 연재만화 부록(본책보다 크기가 작다), 완구 부록을 끼워주었다. 놀거리가 많지않던 1970년대에는 어린이 잡지에서 부록으로 끼워주던 완구 부록이 인기가 있었고 질도 좋은 편이었다.[2][3] 소년중앙의 가격은 1970년대 초에 200원 정도였는데 1970년대 말에는 900원대까지 상승하였다.[4]
UFO, 미스테리, 스포츠 선수 관련 등등 다양한 가십성 기사들이 인기를 끌었다. 또한 수록된 만화들 역시 쟁쟁했는데, 꺼벙이, 타이거 마스크, 비둘기 합창, 천방지축 오소리등이 연재되었고[5] , 로봇 찌빠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한 이충호 화백의 데뷔(1992년 단편 만화 연재) 역시 이 잡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철완 아톰, 리본의 기사, 유리의 성 같은 만화는 식자만 해서 그대로 싣기도 했다. 심지어 이런 복제 만화는 넘기는 방법까지 일본식으로 좌철이라, 중간에 접어서 끼워넣고나 뒷면부터 볼수 있게 싣곤 했다.[6]
본래 만화는 소년소녀만화중앙이라는 이름으로 부록으로 발매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보물섬과 만화왕국 등의 영향으로 사실상 본지가 부록이고 만화가 메인인 수준으로 볼륨 차가 크게 벌어지고 판형도 커졌다. 그리고 만화 부록의 이름도 '''만화홈런왕'''으로 바뀌었다.(이후 만화펀치, 만화 소년중앙 등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수록 작품들의 퀄리티가 성인이 봐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상당했는데 이는 주로 만화 업계에서도 대선배격인 쟁쟁한 화백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큐 점프 등 신흥 만화잡지와 일본 만화의 공세에 밀려 결국 위 사진에 나온 1993년 8월호를 끝으로 휴간을 맞으면서 만화부록을 없앴고 그 해 11월호부터 부록 만화잡지를 뺀 교양지로 부활했으나[7] 결국 시류를 버티지 못한 채 1994년 9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8] 폐간된 지 19년 만인 2013년에 주간신문 형태인 'Weekly 소년중앙'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엽서를 보내면 추첨을 통해 상품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안 보내주는 일이 많았다. 일부러 안 보내준 건지 중간 관리직의 농간인지 알 길은 없으나 당첨은 됐는데 상품은 못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당시는 못 살던 시절이고 제대로 된 우편물 추적 시스템도 없었으므로 우체국이나 배달 과정에서 내용이 잡지사 선물임을 알면 빼돌리는 등의 배달 사고가 꽤 있는 편이었다.) 이 때문인지 새소년에서는 추첨을 경찰관 입하 하에 진행한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연기자 강수연, 장서희[9] , 정태우[10] , 김민정[11] , 이재은[12] , 윤유선[13] , 우희진[14] , 김민희[15] , 김수양[16] , 주희[17] , 이은희[18] 등이 어린 시절 표지 모델로 나온 바 있다.
여담으로, 소년의 중앙에 있는 그것이라는 의미로 부르기도 했다.
[1] 표지에 양준혁과 한대화가 있는데, 양준혁이 삼성 라이온즈에, 한대화가 해태 타이거즈에 있던 해는 1993년 한 해 뿐이다.[2] 1977년 9월호의 분수놀이와 1978년 9월호의 분수기구는 지금 기준으로도 나름 퀄리티가 좋다. 여담으로 당시 국내 잡지계는 일본 만화잡지계의 영향인지 제호가 실제 월보다 한달 이상 빠르다. 즉 9월호는 7월 중순경(여름방학 직전)에 출간되었다. 이 관행은 신군부의 득세로 말미암아 들어 언론정화(?)의 일환으로 없어지는데 이로인해 1981년 1월호는 진짜 1월에 나오고 1980년 12월 한달이 비는 관계로 '송년호'라는 이름으로 출간된다. 즉 1980년 제호는 총 13호이다. (1980년 12월이면 제5공화국이 성립되기 전인데 이미 신군부가 전권을 장악했다는 의미도 된다.)[3] 이 언론정화로 인해 1981년부터 완구 부록 관행이 사라지며 연재만화 부록도 1권으로 제한된다. 그래서 1981년부터는 종전 여러권의 연재만화 부록이 한권으로 붙어서 나온다. 내용은 그대로인데 합본해서 권수만 준 것.[4] 1970년대 말 국내의 인플레이션은 엄청났다. 정기예금이 년 24%를 이자로 주던 시절인데 이 말은 실세금리나 화폐가치 하락분은 이것보다 훨씬 컸다는 뜻이다.[5] 다만 타이거 마스크는 애석하게도 다시 그리게 한 해적판(...)이었다. 사실 소년중앙에서 타이거 마스크 말고 내일의 죠(연재명 도전자 허리케인), 겟타로봇 등 다른 해적판 만화를 여러편 싣기도 했으며, 만화 외 기사도 일본 소년잡지를 그대로 베껴 번역해 실은 것이 다수였다. 이는 경쟁지이던 새소년도 마찬가지. [6] 디지털화된 현재처럼 간단하게 원고 좌우 반전을 하기 어렵던 시절이다. 원고 촬영-밀착인화-재촬영 과정을 거쳐야 한다.[7] 물론 구색 맞추기 정도의 몇몇 만화는 이후에도 연재됐다. 대표적으로 이보배 화백의 성교육 만화, 이향원 화백의 동물 만화 등.[8] 당시에는 휴간한다고 했으나 잡지계의 소식을 매달 전하는 잡지뉴스 1994년 11월호를 통해 폐간이 공식 확인되었다. 이 때 하이틴(구 학생중앙), 영레이디, 여성중앙도 폐간되었다. 이 중 여성중앙은 1998년에 복간했지만 2017년 12월호를 끝으로 휴간(사실상 폐간)에 들어갔다.[9] 1983년 7월호[10] 1992년 10월호[11] 1991년1월호, 1991년 12월호, 1992년 10월호, 1993년 8월호[12] 1989년 1월호, 1990년 1월호[13] 1980년 송년특대호. 전술한 대로 1980년 12월에 출간되었으며 12월호(10월 하순 출간) 다음달에 나왔다.[14] 1988년 8월호[15] 1983년 9월호[16] 1983년 4월호[17] 1983년 1월호[18] 1989년 9월호